자그마치 2000년작이다.
이미연이 아직 풋풋한 젊음이 살아있을 때 찍은 작품이다.
뭐 응답하라 1988에 나온 것을 보면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저 때만큼은 아니긴 하다.
그렇지 않아도 개봉할 당시 좀 유명했던 것 같은데, 세월에 묻히고 다른 신작 영화에 묻혀 이 영화를 볼 기회를 놓친채 기억속에 사라졌다.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영화.
워낙 오래된 영화라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보기시작 했다. 본 사람들의 평은 대체로 좋긴 하다. 그런데 역시 생선도 막 잡았을 그 당시가 가장 싱싱하고 좋은 것처럼 이 영화도 그런 것 같다. 개봉 당시는 좋았을 것이다. 좋았으니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도 받고 그랬지. 하지만 지금 보면 세월을 감안하고 봐줘야할 것 같다. 한마디로 영화 독법이 지금과 너무 많은 차이를 보인달까?
대사가 절제되긴 했지만 CF 같다. 과연 요즘에도 저런 어색한 대사를 쓸까 싶다.
상대역으로 나왔던 최우제라는 남자 배우는 최근에도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얼굴을 비췄나 본데 나는 이 영화에서 이런 배우가 있었구나 했다. 그러고 보니 낯선 배우도 아닌 것 같은데 그의 발연기는 가히 압권이다. 그러다 보니 난 이미연이 그다지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이 영화에선 엄청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배우가 적어도 발음 하나만 정확하게 전달해줘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최우제는 뭘 믿고 이미연의 상대역이 됐는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타잔같이 생겨서...?
그에 과연 정답이 될 수 있을까? 어쨌든 그런데 비해 이미연은 적어도 발음 하나 만큼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집착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애련으로 나왔던 이미연은 사랑을 아직 한번도 해 보지 못한 여자로 나온다. 동석역의 최우제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첫사랑을 그렇게 집착적으로 해 버리면 다음 사랑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그런 집착적 사랑은 통과의례 같은 것은 아닐까? 그런 집착적인 사랑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 점에서 애련은 확실히 비련의 여인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14,5년 전엔 여자가 먼저 좋아하면 100%란 공식이 있었다. 그런 걸 애련은 알았는지 몰랐는지 먼저 말해버리고 말았으니.
그런데 동석이 그러한 빌미를 줬던 것도 사실이다. 왜 처음 만나는 여자 앞에서 질척거리냔 말이지. 그러면 뭔가를 해 주고 싶어진다. 사랑은 상대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자신의 중요감이 느껴지면서 상대에게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놓고 부담스럽다고 뭔가를 해 주면 내가 고마워할 줄 아냐고 되레 큰 소리다. 뭐 이런 적반하장이 있을까? 나쁜 남자라기 보단 멍청이에 가깝지 않을까?
적어도 사랑에 마성을 지닐려면 응답하라1988의 박보검 같은 스타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보검은 뭔가 모성본능을 지극한다. 왜 그럴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봤더니 박보검은 오직 한 사람만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가능한 것이다. 응팔도 빤해보이는 게 있어 좀 지루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의 압권은 아무래도 사랑에 점점 미쳐가는 이미연의 연기인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동석의 오피스텔에 들어와 파란 꽃병을 깨고 그 위를 미친듯이 걸어가며 아픈 줄도 모르고 말하는 애련이다. 마음이 아픈 건 육체가 아픈 것에 비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랑은 미친거라던 애련이 다시는 그런 아픈 사랑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랑은 아프지 않고 어떻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 사랑의 아이러니가 있는 것이다.
영화는 다소 촌스럽긴 하지만 볼만은 하다. 이미연의 절제된 연기도 볼만하고, 무엇보다 옛날의 향수를 느낄 수도 있다. 어항의 노랑과 파란 금붕어(?)도 볼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