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강남역 교보문고에 갔다.
사실 어제 아는 후배가 혼자 사는지라 생각나서 명절에 먹었던 빈대떡을 전달해주려고 저녁무렵 만났다. 그런데 밥을 먹는데 작은 언쟁이 있었다.
사실 나도 좋은 성격마는 아닐테지만, 그 후배도 직업이 교사인데다 음악 전공이라 조금은 피곤한 성격이다. 그동안은 안 부딪히려고 둥글둥글 농담 따먹기나 하며 잘도 지내왔다. 그러다 어제 잠시 미스테이크가 있었던 것.
구구하게 설명은 않겠지만 걔는 이 타임쯤 뭔가를 풀고 가자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좀 넘어 갔으면 좋겠는거고. 그 친구는 워낙에 자아가 강하고 한마디로 오지랖이 넓어 어느 순간 보면 내가 분명 선배임에도 꼭 학생 대하듯 한다. 그래도 그걸 타내지 않고 대충 뭉개며 갔던 건데. 한마디로 말하면 그 친구의 분석적 사고와 나의 전지적 사고가 충돌했다고나 할까?ㅋ
암튼 그런 일이 없었으면 바로 밥 먹고 차를 마시러 갔을텐데 뭔가의 하프타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마침 밥을 먹었던 곳이 교보문고와 가까운 곳이라 그곳에서 잠시 기분을 풀고 가자는 것이다. 뭐 그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아, 정말 이곳을 얼마만에 와 보는지 모르겠다. 책을 산다면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거나 중고샵을 이용할뿐 이런 오프라인 서점을 나온다는 건 거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 책 저 책을 만져보고 있는데 마침 한 서가에서 <알쓸신잡 2>에 나왔던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란 책이 눈에 띄었다. 물론 오래 전부터 한 번쯤 읽고 싶기는 하나 역시 난 살 생각은 없었다.
난 아무 생각없이 이 책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내 귓가에 속삭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 책 재미있어요." 짬짝 놀라 누군가 돌아보려고 했는데 어느 인상 좋은 젊은 여자가 씩웃으며 나를 스쳐지나 간다. 순간 그전까지 침체된 기분이 뭔가 구원 받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나도 좀 놀랐다. 모르는 여자의 속삭이는 그 한마디가 이렇게 기분을 좋게 만드는 줄은.
그렇다면 나는 그런 공중이 이용하는 서점에서 그 여자처럼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책을 낯선 사람이 보고 있을 때 다가가 속삭일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스토커라고 오해나 받겠지.하지만 그 사람이 어제의 나처럼 그런 기분이었다면 또 나 같은 기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그 책 좋은 책이라고 한마디 하고 지나갔다고 해서 놀라거나 화낼 필요는 없을 것이고, 내가 좀 그랬다고 해서 상대 역시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 여자 인상이 너무 좋아서 한 번쯤 더 보고 싶기는 했지만 워낙에 넓고 사람이 많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인상 좋은 여자가 지나가며 재밌다고 했으니 한 권쯤 살만도 했을 텐데 결국 끝까지 사지 않았다. 나도 독하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