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대면 알만한 유명 외식업체에서 일하는 둘째 조카가

이번 설 명절에 외가에 못 올 것 같다고 했었다. 

그러다 극적으로 타협이 되서 어제 언니네 가족들과 합류해

외가인 우리집에 왔다.

 

어려서부터 외할머니가 해 주는 음식은 무엇이든 좋아했던 조카들이기에

좀 늦은 점심상을 차려주니 세놈이 손가락을 쪽쪽 빨며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겨우 배 두들겨가며 쉴려고 하는 찰라 일하는 곳에서 전화가 왔다.

점장인지 메니저인지가 불러내는 것이다.

내용인즉 갑자기 몸이 안 좋아 일을 못하겠다며

대신 나와서 일을 마무리 해 달라는 것이다. 

 

와, 쉬는데 이런 전화 받으면 정말 죽을 맛이다.

그나마 휴일을 허락 받을 때도 고집을 피웠던 것도 아니다.

쉬어도 되겠냐고 마음을 비우고 물어보고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마음이었는데 

자기가 직속 상관이란 이유만으로 자기 멋대로 남의 휴식을 훼방놓는 것이다.

 

그렇다고 진짜 아픈 것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조카 말에 의하면 이런 적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란다.

지난 1월 말에 발령나서 조카와 인연을 맺었는데

벌써 이번이 세 번째란다.    

왜 아프면 꼭 남이 쉴 때 아프냔 말이다.

 

하긴 어디를 가든 그런 인간 꼭 있다.

남 뭐할 때 꼭 초치는 인간.

그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치고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그걸 안다면 그런 경우없는 일은 하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매번 이런 식이라면 정말로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다면 

어쩔 것인가?

또 그 정도면 근무태만 아닌가?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큰 조카는 더 황당한 일도 말을 하는데

지면상 옮기지는 않겠다.

한마디로 부하직원은 노예인 것이다.

인격도 없고 쉴 필요도 없는.

 

이렇게 쉴 때 쉬지 못하고 쉬는 것 조차도 상사의 눈치를 봐야한다면

이건 법으로라도 규제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사생활 침해에 관한 법령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역지사지라고 했는데 이런 것조차 서로를 배려하지 못해

법을 끄집어 내야한다면 그도 문제 아닌가?

 

지금도 녀석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오늘 정말 행복했는데, 오늘 정말 행복했는데..."

이 말을 몇번을 반복하고 안 떨어지는 발을 떼며 돌아갔는지 모른다.

 

왜 안 그렇겠는가? 모처럼 쉬는 날에 외할머니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고,

본가에 있었더라면 매일 보고 놀아줬을 반려견 예삐도 오랜만에 보았으니 행복했겠지.

행복이 뭐 크고 거창할 필요 있냐고 말들은 하면서

이런 하찮은 작은 행복조차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게

불쌍하고 측은하다.

 

물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쓸쓸한 어떤 청춘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다.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일하고 쉴 때 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면 되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도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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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02-1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조그만 지위로 갑질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니 참 서글프네요ㅜ.ㅜ

stella.K 2018-02-19 18:12   좋아요 0 | URL
의외로 많더군요. 근무시간 외에 일 시키는 거
규제한다고 한 것 같은데우리나라는 권고사항 가지고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ㅠ

hnine 2018-02-1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 울분이!
직장에서 상관이면 뭐든, 아무때나 다 시켜도 된다고 착각하는군요.

stella.K 2018-02-19 18:16   좋아요 0 | URL
저의 큰 조카는 서점이 바로 집 앞인데
굳이 먼데 있는 조카를 불러다 심부름시키고
뺑이 돌리기까지 하면서 미안한 것도 고마운 것도
없고 오히려 운전할 때 슬리퍼 신지 말라고 충고까지 하더랍니다.
조카가 발에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거든요.
정말 욕 나오겠더군요.

2018-02-19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2-19 18:15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씁쓸하네요.ㅠ
과부 사정 과부가 안 다는 말은 옛말 같습니다.
성경에도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잖습니까?
아, 서글퍼라.ㅠㅠ

cyrus 2018-02-20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얄미운 직장동료는 자신의 일을 대신 해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지 않아요.

stella.K 2018-02-20 13:38   좋아요 0 | URL
맞아. 그럴 거야. 그래서 조카한테 그 앞에서 강한 척
하지 말라고 했어. 그렇지 않아도 약한 척 연기를 얼마나 잘
하는지 모른다고 해서 너도 똑같이 그 앞에서 그러라고 했지.
제깐엔 나름 대처한다고는 하는데 조카도 되바라진 편은 아니라
한동안 고생 좀 하겠구나 싶더군.

페크pek0501 2018-02-2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새로이 밝혀지고 있는 성추행 사건도 같은 맥락이에요. 갑의 위치에서 을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죠. 을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걸 왜 모를까요?

stella.K 2018-02-21 18: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문제는 더 많이 시끄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알마나 참고 억압되어 왔는지
갑이 또는 남성들이 깨우쳐야 한다고 봅니다!!

꿈꾸는섬 2018-02-2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과 사의 구분이 모호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에요.ㅜㅜ
휴식보장 당연해야하는 거잖아요.

stella.K 2018-02-23 13:3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법적인 규제라도 있어야할 것 같고,
나중에 근무 평점에서 벌점 받도록 하는 그런 제도라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상대가 아프다고 하니 당장 땜빵은 해야겠고
공사를 구분 못하는 게 우리나라에 정 문화가 있어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게 나쁜 게 아닌데 이럴 때 발목을 잡아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