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주혁을 추모하며 얼마 전부터 tv 다시보기로 드라마 <아르곤>을 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 드라마가 시작했을 땐 김주혁 보단 천우희 때문에 챙겨보겠다고 했다. 그걸 김주혁 때문에 보게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람 앞날 모른다더니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용병으로 들어 온 계약직 천우희를 김주혁이 뺑이 돌리니까 하도 어이가 없고 화가나 "저 새끼가..."란 한마디를 흘리는데 그게 왜 그리 기억에 남던지. 명장면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천우희는 혹시 연기 천재는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아르곤>은 HBC라고 하는 가상의 방송국 뉴스 프로를 만드는 보도국 사람들의 치열한 보도 전쟁을 그린 드라마다. 그런데 드라마가 늘 그렇듯, 잘 나가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찌질이들의 까이고 채이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보고 공감하고 박수쳐 줄 테니까.
아르곤은 그 뉴스 프로의 이름이고, 김주혁은 이팀의 팀장이다. 그가 맡은 역할은 비록 찌질하지만 올바른 정도의 길을 가는 정의파 앵커.
오늘 새벽 잠 자다말고 깨어 마지막 남은 8회분을 보았다.
요즘 내가 이런다. 초저녁 잠이 많은 엄마를 닮아 밤 10시 골든 타임 때 TV 켜놓고 잠이 깜빡 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TV 끄고 본격적으로 자야지 하면 말똥말똥 하고. 그나마 나도 모르게 잠이 들면 새벽에 이렇게 깨는 날도 많아졌다. 그러니 이제 나에게 본방을 사수한다는 건 먼 남의 나라 말이다.
아무튼 이걸 보는데 참 아쉬운 드라마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16부 내지 18부도 하더만 8부면 단막이다. 작가도 3명이 붙었던데. 그걸 단 8부에서 끝내버리다니. 아무래도 연출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력상 연출이 맡는 작품마다 시작은 좋은데 끝은 말아 먹으니 장막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지. 그것도 하나의 전략이라면 전략일 것이다. 이렇게 단막에서 만회하면 다음에 다시 장막을 맡을 때 유리하지 않을까?.
어쨌든 아쉬운 드라만데, 끝이라도 좋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렇게 올곧아 채이고 까였으니 그래도 사필귀정이라고 정직한 사람이 나중엔 승리한다는 뭐 이런 거면 좋을 텐데, 예전에 탐사 보도를 다시 한 번 들쑤셔 보도가 얼마나 정의로운가를 보여주려 했건만, 결국 제가 내리친 도끼에 제 발등을 찍은 결과를 낳고 끝나버린다.
그래도 드라마는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매력인 것 같다. 정말 인간 세계를 팩트만 가지고 다 보여줄 수 있을까? 팩트안에 감춰진 인간과 인간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잘 만든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또한 겹겹이 쌓인 팩트의 팩트를 벗겨주는 그 묘미가 아주 괜찮았다.
비록 발등을 찍었지만 김백진 그러니까 김주혁의 퇴진은 제법 멋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동안 보여준 그의 아우라 때문일 것이다. 늘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자신이 손해 보더라도 팀원들을 챙겼다. 그러니 퇴진이 아름다웠던 것.
마지막 엔딩 장면을 보는데 짠했다. 김백진이 등을 보이며 방송국을 나서는 장면인데 저때만 해도 자신이 그 가을 날 죽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마치 자신의 마지막을 예고하듯 등을 보이며 방송국을 떠났고, 또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죽기 전 영화 미개봉 영화 두 편을 찍어놓은 상태라고 하니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개봉하면 위로가 되겠지.
나......? 나는 글쎄... 김주혁이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건 인정하지만 아주 많이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광식이 형 광태>나 이미 고인이된 장진영과 함께 나온 <청연>에 나온 그를 기억할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방자전>에 나온 그가 기억에 남는다. 영화 잘 찍기로 유명한 김대우 감독의 작품이기도 했으니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최근엔 <좋아해줘>에서 최지우와 나름 좋은 케미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그가 죽은지 얼마 안되서 찾아 봤던 영화다.
그러고 보니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이렇게 저렇게 그의 작품을 제법 많이 챙겨 봤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살아있을 땐 몰랐는데 가고없으니 그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내친김에 그의 나머지 영화도 챙겨봐야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