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책을 사지 않으려고 중고샵 조차도 나가지 않고 있다. 뭐 게으름의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책 팔러 한 번에 서너 권의 책을 추려 가지고 나가면, 싼 맛에 꼭 한 두 권의 책은 업어 온다. 중고책 사냥의 재미도 만만치 않으니 이 유혹을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물리치긴 왜 물리쳐? 즐겨야지. 그럴 것이 아니라면 아예 책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무리 김영하 작가가,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 놓은 책 중에서 읽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래, 사 놓은 책 읽으려고 버텨보는 중이다.
그런데 이 생각에 반드시 시험을 거는 책이 등장한다. 이름하여 리커버 책.
그동안 잘도 버텼다. 리커버로 나온 책이 몇 권 있었고, 지금도 리커버 책이 구매 의욕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만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더라.
당장 읽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역시 책은 반드시 읽으려고 사는 것은 아니다.
안 살 수 없는 것이, 저자도 저자지만 역자가 몇년 전 작고한 신영복 선생이다.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씨도 한몫한다.
내가 이 책을 언제 읽었더라...? 교회 청년부를 다니고 있을 때 친구 한 애가 아주 괜찮다며 내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빌려주겠단다. 거절하기가 뭐해 그냥 좀 읽다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는 나 말고도 다음 타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빨리 읽고 돌려 달란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독서에 있어 최대의 난제는 책을 빨리 못 읽는다는 것. 400페이지 넘는 책을 그렇게 빨리 읽을 수는 없을 것 같아 친구 말대로 그렇게 괜찮다면 좀 읽다 아예 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이 나름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던 건, 보통의 1인칭 소설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책은 각각의 등장인물이 1인칭으로 자기 얘기를 한다. 그런 소설 기법이야 지금도 가끔씩 발견되긴 하지만, 그전엔 그런 기법은 처음 본다. 바로 그 친구는 그점을 주목하여 나에게 읽어 볼 것을 권했던 것이다.
친구 말대로 나름 꽤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엔 신영복 교수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냥 번역가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책을 돌려줄 때 친구가, 괜찮지? 괜찮았지? 하며 동의를 구하는 걸 난 뭐 때문인지 꽤 시크하게 별로 좋은 소릴 안하고 돌려줘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문체나 내용도 꽤 괜찮았는데. 하나 흠이 있다면 너무 장중하고 무겁달까? 더구나 중국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도 다 모르고 있는 판에 뭐 그리 남의 나라까지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기법이 인상에 남아 나중에 한 번 사 봐야지 해 놓고 세월이 흘렀다.
인연이란 게 꼭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시 볼 책도 언젠가 꼭 다시 보게 되어 있는가 보다. 이렇게 리커버로 나오니 다시 사 볼 생각도 드니 말이다. 실로 몇년만이냐? 리커버의 위력이 새삼 무시 못하겠다 싶다. 뭐 그런 점에서 알라딘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하는 걸까?
솔직히 리커버에 대한 불신도 없지 않았다. 괜히 리커버한답시고 가격만 올려 받는 건 아닌가?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책 활자는 요즘에 비하면 약간 올드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못 볼 건 아니고, 어차피 리커버니까 불만은 없다.
아, 그런데 이를 어쩐다. 어제 책을 신청할 때, 알라딘에서 하는 1천원 적립금 특별 퀴즈를 거쳐야 하는 건데 잊어버리고 그냥 신청을 했다. 건망증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아, 글쎄, 며칠 전엔 엄마 케모포트 제거 수술 관계로 병원측과 통화를 했는데 집전화 번호를 묻길래 가르쳐준다는 것이 그만 먼저 집에서 살 때 번호가 생각나 그걸 대줬다는 것 아닌가? 그집 떠나온지가 이제 20년을 바라보는데 말이다. 전화 끊고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그런 거야 뭐 그럴 수도 있다지만(그도 심각하긴 하다), 어떻게 1천원 적립금 특별 퀴즈를 까먹을 수가 있니?
그래서 허겁지겁 주문 취소를 하려고 했는데 알다시피 주문 취소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결국 그 시간을 초과한 관계로 결국 1천원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영영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
이런 거 선불로 말고 책 구입 후 나중에 서비스 받는 뭐 그런 거 좀 만들어 주면 안 되나? 원래 진짜 알라딘 램프의 지니는 뭐든지 주인이 원하는 건 다 이루어주던데...
그런데 말이다, 나의 기억에 문제는 또 하나가 더 있다. 이글을 쓰려고 이 책의 초판 기록일을 뒤졌다. 2005년이란다. 내가 이 책을 그 친구한테 소개 받은 건 90년 대 중반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설마...? 그럴리 없을텐데... 내가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 내가 읽어 온 책을 헷갈리고 할 정도로 기억력이 썩은 건 아닌데.
이럴 땐 누구라도 붙들고 하소연이라고 하고 싶다. 지니야, 내 기억력을 돌려 줘!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