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이 온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최근 2, 3년 내에 내 눈은 급격히 나빠진 것 같다. 안경을 맞춰야 할 것 같긴한데 이것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중이다. 몇년 전 어느 책에서, 중국의 어느 석학은 책이 온통 집을 점령한 상태에서 이젠 주방까지 점령했다며, 하루종일 그야말로 해가 떨어져 깜깜해질 때까지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나 열심히 읽는지 전깃불을 켤 새도 없이 읽는다는 것.
모르긴 해도 이 사람도 노안은 언제부턴가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 눈을 생각해서 아니 집안이 깜깜하니 불을 켜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꼼짝도 안하고 읽는단다. 그러고 보면 책 읽는 눈은 따로 있는 것은 아닐지.
물론 그 중국 석학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책을 좋아하니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는 눈만큼은 안경 안 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일 그래주기만 한다면 안경은 포기하고 살아도 될 것만 같다. 안경을 그토록 쓰고 싶어했던 때도 있었는데 막상 그때가 오니 쓰기가 싫은 건 뭐 때문일까? 안경을 쓴다고 해서 침침했던 눈이 얼마나 밝아질지 알 수도 없는 일이고.
노비문장이란 말이 있단다. 노안 이후 비로소 보이는 문장을 일컫는 말이란다. 뭔가 심오해 보인다. 노안 이후에 보이는 문장이라!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게 발견한 건지 아니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건지 그것을 알 수가 없다. 분명 어제도 읽고 있는 책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어 줄을 치긴 했는데, 노안이어서 줄을 친 건지 아니면 늘상 그래왔으니까 친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노안은 슬프나 나도 언젠가 노비문장 하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뭔가의 희망이 생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