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명작의 탄생>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소설가들 19인을 인터뷰한 책인데 그중 소설가 박상우 편이 눈에 띄어 여기 옮겨 본다.
박상우는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1999년 이상문학상 수상하게 된다. 그런데 아는가? 이 옥탑방이 그가 처음 그 소설에서 사용했다는 것을. 나도 몰랐던 건데 이 책 <명작의 탄생>에서 처음 밝혀진 사실이다. 그것에 대한 인터뷰 부분을 보자.
이(이 책의 저자): 옥탑방이라는 단어가 사회문화로 익숙해진 것도 그 무렵부터가 아니었나요?
박상우: 그때 당시는 옥탑방이 국어사전에 공식적으로 올라 있지 않았어요. 일상적으로 사용한 것은 제 소설이 처음입니다. 그 뒤 옥탑방 고양이가 나오고 '옥탑방, 옥탑방' 하더라구요. 어디 가서 옥탑방 쓴 작가라고 하면 드라마인 줄 알고 "<옥탑방 고양이> 잘 봤습니다." 그러더군요.(72쪽)
여기서 그 무렵이란 박상우가 그 작품으로 이상문학상을 받고 알려지기 시작한 때일 것이다. 그런데 하필 '옥탑방 고양이'가 나오고 그것과 맞물려 알려지다니. 하지만 그것에 대해 억울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소설이란 게 드라마 보다 파급력이 그리 세질 못하니 일반 대중이 그렇게 인식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단지 '옥탑방'이란 단어가 그때까지 사전에도 없다가 박상우의 작품에서 처음 썼다는 나는 더 놀랍다. 그는 어떻게 하다가 이 '옥탑방'이란 단어를 발견했거나 만들어 냈던 것일까? 난 그런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일상어라 새롭지도 않겠지만 그때까지 누구도 쓰지 않은 단어를 썼다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옥탑방'은 드라마에 의해 부풀려진 것도 사실이다. '옥탑방'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서 어느 호텔의 펜트하우스와 동급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그게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었나? 거기서 주인공 공유의 주거공간이 옥탑방으로 기억하는데, 겉으로 볼 땐 그냥 보통집 옥상 같은데 옥탑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의 아방궁처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그때 이후 드라마에서의 옥탑방은 딱 우리네 서민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네 인식 속에서도 옥탑방은 서민이 살기에 딱 좋은 상징적 공간이 된 것 같다. 그렇게 된 것엔 무엇보다 옥상에서는 하늘과 세상을 다 품을 수 있다는 것이리라. 하지만 실제로 옥탑방은 여느 집 반지하나 그 보다 못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박상우의 인터뷰에서 재밌는 일화가 나온다. <명작의 탄생> 박상우편을 더 읽어보자.
이: 옥탑방이란 단어를 소설에 처음 쓴 작가인 만큼 옥탑방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았겠네요?
박상우: 대통령 선거가 있던 무렵인데, 당시 출마했던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각축을 벌이고 있을 때였어요. 기자들이 두 대통령 후보에게 옥탑방에 가 본적이 있는가? 옥탑을 아는가? 이런 질문을 했는데 노무현 후보도 이회창 후보도 둘 다 옥탑방을 모른다고 하는데 작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거예요. 저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어 코멘트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72~73쪽)
나는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옥탑방을 모른다는 두 대통령 후보 때문이 아니다. 그때 막 회자가 되기 시작했는데 모르는 것도 당연한지도 모른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웃기는 건 기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기자들은 떼거리로 그에게 몰려가 두 분의 대통령 후보가 모른다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당연히 당황해 하는 수밖에.
순간 나는 어렸을 때 보았던 한컷 만화가 생각이 났다. 어느 기자가 나가라는 취재는 안 나가고 어느 여자와 여관 방(그때는 모텔이 생기기 전이었을 것이다)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딱 한 마디 써 있다. '기자도 정신...!' 모르긴 해도 당시 기자가 취재는 안하고 딴짓거리하다 잡힌 게 회자가 됐었나 보다. 그러니 누군지 모르지만 기자가 정신이 나갔다는 걸 말하기 위함이었겠지. 그처럼 그 기자들도 웃긴다. 작가에게 그런 질문을 할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옥탑방을 처음 썼기로서니 말이다.
모르긴 해도 기자들은 우리나라 서민정책에 대해 두 후보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알고 싶어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박상우 작가가 그 소설을 썼을 때 과연 서민의 고뇌와 상실을 고발하기 위해 썼을까? 그건 또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논픽션이나 르포문학을 썼겠지. 문학 작품은 문학 작품으로 봐야할 텐데 우리나라 기자들 진짜 대책이 없다.
사실 '옥탑방'이란 단어를 박상우 작가가 처음 썼다는 것 뿐 그것은 70년대에 이미 있어왔던 주거 형태다. 당장 나는 유년시절 나의 첫 피아노 선생님 댁이 그런 옥탑방이었다. 지금은 '양옥'이란 단어가 사어가 됐을 법한데 당시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막 이층 양옥을 한 두채 짓기 시작했을 때이기도 했다.
그 피아노 선생님 댁도 이층이긴 하지만 양옥은 또 아니었다. 다락방 울라가듯 이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가면 나무 판자를 덧댄듯한 복도를 지나면 방 하나가 나오는데 그 방에 피아노가 있었다. 그 피아노 앞에 앉으면 왼쪽은 창문이었고, 오른쪽은 이층 베란다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그 시절 집이 거의 다 그렇듯 세를 둘 수 있겠끔 지어졌다. 그러므로 그 베란다에 수도가 있었고 그 방과 비스듬히 마주 보이는 곳이 부엌으로 쓸 수 있게 지어졌나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선생님 댁은 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은 창고처럼 쓰였던 것 같다. 그러니 그 방은 햇볕과 통풍이 기가막히게 좋은 곳이었다. 대신 겨울은 견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선생님은 내가 입고 왔던 오버코트를 벗지 못하게 했고, 피아노 한 곡을 다 치고나면 손이 시렵다고 켜 놓은 조그만 미니 전기곤로에 손을 녹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나중엔 너무 추워 피아노를 옆방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후 내가 옥탑방을 가 본 건 대학을 졸업하고 한 친구의 집에 갔을 때다. 그 친구가 그곳에서 동생과 자취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이런 집이어서 좋겠다고 감상을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보기만 좋을 뿐 불편하다고 했다. 하긴 부엌이 같이 붙었다면 주방이 되었을 텐데 신발을 신고도 맞은 편에 있었으니 불편했을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도 공동으로 써야했기 때문에 급하거나 귀찮으면 부엌 바로 옆의 수채 구멍에 해결을 하기도 한단다. 훗날 그 친구는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을 했고, 결혼한지 1년인가 2년만에 안타깝게도 암에 걸려 주거지를 지상에서 천국으로 옮겨야 했다. 아무튼 이렇게 가진 게 별로 없던 시절 옥탑방에 대한 감상은 반지하 보다 몇 배 크다.
그런데 그게 박상우가 <내 마음의 옥탑방>이 나오기 이전 얘긴데 옥탑방을 박 작가가 처음 썼다니 좀 의아스럽긴 하다. 하긴 누가 어떤 단어를 처음 썼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아직도 이 세상엔 인간이 지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일 게다. 아직도 집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 나라의 조건에서는 더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