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 러시아 고전산책 6
막심 고리키 지음, 이수경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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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생각만큼 그렇게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읽는다 해도 왠지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에 선듯 손이 가지는 않았다. 

러시아 작가라야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정도일텐데, 나는 이들의 작품을 한번도 흡족한 마음으로 읽어보지 못했다. 두껍기는 왜 이리 두껍고, 관념적이기는 왜 이리 관념적인가? 그래도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꾸역꾸역 읽은 기억 밖에는 나지않는다.

때론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과연 이렇게 어려운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남몰래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래도 남들 앞에서는 고전은 좋은 거라고 떠들었겠지. 

 

꾸준히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덕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재미만을 위해 소설을 읽는다면 그건 책 읽는 자의 자세에 온전히 이르지 못한 것. 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나마 그것을 위해서도 책을 읽지 않은 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또 그럴 바엔 TV 드라마를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요즘 소설의 흐름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워낙에 다양해 뭐라고 꼭 집어 말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다면, 소설은 언제부턴가 신에 대해 말하지 않고, 인간의 도덕이나 규범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대신 인간의 욕망이나 관계 또는 실존과 군상에 대해 무수히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는 이 책 막심 고리키의 '마부'를 읽었을 때야 비로소 러시아 문학의 위대함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위대함이란 표현이 낮간지러울까? 다른 나라의 다른 작품도 위대한 작품이 많은데 굳이 러시아 문학에 그런 형용사를 쓴다는 건 형평성에 위배되는 거라고 태클을 걸 사람이 있을까? 무엇보다 내가 러시아 문학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위대함을 논할까? 그냥 러시아 문학이 내가 읽어 온 다른 문학에 비해 다른 점을 발견하기 시작했다고 해 두자.

 

그것은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러시아 문학은 신에게 묻고 있다는 것이고, 인간의 도덕과 규범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끊임없이 말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현대의 포스트 모던한 세대에선 얼마나 고리타분한 주제인가? 하지만 그러므로 인간을 말하려 했다는 것이 러시아 문학이 지닌 강점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건 러시아 문학이 아니면 물어질 수 없는 것이니까.

우리가 읽은 '부활'을 생각해 보고, '죄와벌'을 생각해 보라. 그런 것이 읽혀지지 않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 책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본명을 두고도 '막심 고리키'란 필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름이 뜻하는 바는 '극단의 고통'이라고 한다. 아, 어쩌자고 그런 이름을 사용할 생각을 했을까? 그만큼 그의 삶이 고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그의 단편들은 대체로 밝은 느낌이었고, 생을 긍정하도록 만드는 요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굳이 이름과 연결시킨다면 '극단의 고통'이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삶이란 한 가지로만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이 책에 나오는 '파란 눈의 여인' 같은 경우, 그의 시대 러시아는 공창 제도가 아직 있던 때였나 보다. 허가만 받으면 누구든 직업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창이든, 사창이든 직업적으로 몸을 판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하층 직업군의 하나고 비난 받는다. 그것을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경찰서장을 통해 얼마나 적나라하게 표현되는가? 하지만 나중엔 그 파란 눈의 여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자 하는 경찰서장의 또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요즘 상업주의에 밀려 사람의 몸이 성적 쾌락의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다. 오늘 날의 문학은 바로 이 인간의 몸과 쾌락이 화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에 이건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 쉽게 뭐라고 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물론 과연 이 시대에 생존을 위해 몸을 파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쉬운 비난 보단 어려운 시대일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안는 시선이 더 필요한 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런 작가의 시선은 그 뒤에 나오는 '아쿨리나 할머니'에서도 같은 각도로 볼 수가 있는데, 두이야기의 교훈은 오늘 날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즉, 사람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규범에 관한 물음은 표제작인 '마부'나 '환상' 같은 작품에서 잘 나와 있다다. 특히 '마부'에서 파벨 니콜라예비치는 사람을 죽이고 돈을 갈취해 훗날 시장이 된다. 하지만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오히려 절망하는 장면은 마치 도스토옙스크의 <죄와 벌>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직접 묻는다. '내 안에 내적 규범이 있는가, 없는가?'를. 그것을 읽는 순간 나는 뭔가에 얻어 맞은 듯 띵했다. 과연 요즘 작가들 중에 이것을 이렇게 대놓고 묻는 작가가 있었는가? 이것을 묻는 건 또 얼마나 뜬금없는가? 하지만 이 뜬금없는 세상에 오히려 더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나마 주인공은 사람을 죽이고 그 돈으로 시장이 되겠다는 포부라도 있었지. 묻지 마 범죄가 성행하는 오늘 날의 세상에서 정말 규범이 없어진 것에 대해 인간의 사고는 마비가 된 듯하다. 이런 세상에 왜 작가는 직접적이고도 강력하게 묻지 못하는가? 작가의 사명은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잊혀진 질문에 대해 묻는 것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또 주인공의 꿈을 빌어 서술되고 있다. 읽고나면 또 한 번 뒤통수를 맞는 느낌인데 그래서 이 작품은 환상 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과연 그 서사가 대단하다 싶다.

 

작가는 확실히 글발이 대단하다. 특히 '지난해는 자신의 생의 마지막 날...'로 시작해서 '......이미 새로운 해의 옷으로 갈아입은 지난해만이 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진리가 남았는데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영원한 꼴찌였다!'(167~173p)로 끝나는 '지난해'는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해 주는 가히 독특하고도 놀라운 은유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더불어 '시간'이란 작품은 에세이 소설의 전범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뭔가의 웅변이 느껴졌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하나 같이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사담이긴 한데,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살았던 시대엔 러시아에도 새벽 예배가 있었나 보다. 이 새벽 예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독교 전통인 줄 알았는데 러시아에도 있었다니 새삼 놀랍기도 했다. 가끔 러시아 선교사한테서 들으면 그 나라는 신앙의 불모지처럼 전해지고 있는데 언제 다시 러시아의 부흥이 있을까? 아득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초두에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난 이 책으로 인해 러시아 문학에 한 발 다가선 것 같아 뿌듯한 느낌이었다. 나 같이 러시아 문학에 다가서는데 왠지 모를 부담이 있다면 이 작품으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감히 권해 본다. 새해 벽두에 아주 좋은 작품으로 시작한 것 같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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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하층 직업인 그 여자들한테 찾아가는 사람들,
사내들도 '최하층'인 사람들일 테지요.

stella.K 2014-01-10 11: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상한 건 창녀는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면서
그 반대인 남창은 잘 다루지 않는다는 것도 저로선 잘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어요.
뭐 그만큼 이 사회는 남자가 꽉잡고 있다는 뜻일테지만.ㅋ

카스피 2014-01-09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문학을 읽기 시작하셨네요.고리키는 공산주의 리얼리즘 문학을 창조한 분으로 소련 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죠.
그나저나 늦었지만 스텔라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O^

stella.K 2014-01-10 11:29   좋아요 0 | URL
오, 오랜만이어요, 카스피님!
카스피님이 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어요.
저는 막심 고리키는 이 책이 첨인데 좋아어요.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4-01-1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찌된 일인지 처음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막심 고리끼,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의 작품부터 읽었어요. 제가 수강한 어느 문학 강의에선 그런 것 가지고 수업을 하기도 했지요.
<죄와 벌>이 그렇게 재밌는지도 처음 알 때여서 경이로웠어요.
막심 고리끼의 <나의 문학 수업>을 읽기도 했죠. 고리끼의 수준으로 글을 쓸 것도 아닌데...
지금 생각하면 에세이 중에서 쉽게 쓴 에세이부터 읽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새해, 서재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

stella.K 2014-01-15 15:56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저는 이 책 덕분에 러시아 문학이 쫌 좋아졌어요.

근데 언니, 올해도 저의 서재는 별로 번창할 것 같지 않아요.
며칠째 제 서재에 들어오면 1이었어요. 그나마 언니가 빌어주셔서 그런가요?
그나마 지금은 9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