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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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도 이 책의 가제본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언제부턴가 그 누구의, 어떤 작품도 가제본을 읽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교롭게도 그렇게 해서 읽은 작품이 나에겐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평가가 여타의 독자들이 그 책을 선택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객관적인 평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하면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그 책에 대한 리뷰를 언제 쓰게되던지간에 나는 그 책을 읽는 제1군에 속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도 작가의 작품이라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그의 작품 세계의 독특함을 알기에 나름 즐거울거란 기대를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읽으면서 즐거웠다. 몇몇 작품은.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 책을 읽으려고 펼쳐들었는데 마침 내 취향에 딱이다 싶은 책을 만나면 기분 좋은 거. 그땐 정말 빨려들어갈듯 하면서도, 밥을 안 먹어도 든든한 행복감 을 느낀다(물론 그렇다고 책 읽느라 끼니를 걸러본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다. 글쎄, 앞으로 내 인생에 과연 그럴 때가 있으려나?) .  말하자면 그런 느낌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몇몇 작품에서는.  

이를테면, 이 책의 첫번째에 나오는 <근처>나, 두번째에 나오는 <누런 강에 한 척> 같은 작품을 읽으면서 이 책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작가의 단편집이라해도 다 좋을 수는 없다. 그래도 이렇게 출발이 좋으면 이 책은 생각 보다 훨씬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난 초두의 그 두 작품에서 이외수의 문장 내지는 김훈의 문장을 떠올리기도 했으니까. 그러리만치 나는 이 책에 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편 느끼는 것은, 작가도 나이를 먹는 걸까?(68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43세다) 이 정도의 경지라면 상당히 노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노쇠해졌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  놀라울 정도로.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나는 그의 비주류적 감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동시에 젊은 감성 또한 잃지 않고 있음을 과거 <핑퐁>에서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하긴, <핑퐁>이 언제적 작품이던가? 그후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수록작 <낮잠>을 어디선가 읽었던 적이 있다. 도저히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연극적이면서도 노년의 살풍경함을 유감없이 들어내놓고 있어 놀랍기도 하고,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의 작품의 생경함에 놀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작가는 젊다고 하기엔 나이들었지만, 노숙하기엔 또 아직 젊지 않은가? 모르긴해도, 어쩌면 그는 일련의 몇 작품을 통해 앞으로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렇게 몇 작품을 제외하면 나머지 작품들은 여전히 박민규식 독특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스펙이 넣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또 어찌보면 편차가 너무 심하다는 느낌도 든다. 한마디로 작가는 작품집 안에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SF, 판타지, 세기말, 서부극 등 종합선물세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앞서 말한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작품은 작가가 담아내고자하는 정서가 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엔 다소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앞서도 밝혔지만, 난 작가의 작품을 그리 많이 접해 보질 못했다. 더구나 열거한 SF니, 판타지니 하는 장르는 내가 그리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익숙한 장르도 아니다. 그런 여타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종합선물세트를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가제본을 다 읽기도 전에 진짜 책이 왔다. 사실, 상하권(이 책에 따르면 side A,B)으로 되어있다는 것은 '예약판매' 때부터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단편소설 모음을 상하권으로 냈다. 이례적이란 생각이 든다. 더구나 구성도 독특하지 않은가? 꼭 옛날 아날로그 시대의 레코드 LP판이 생각이 난다. 책 표지 그림은 딱 내 취향은 아니지만 독특하다. 꼭 송강호가 영화 <반칙왕>에서 쓴 타이거 마스크가 생각이 난다. 책을 이렇게 구성할 수도 있구나. 나름 놀랍고 신선한 시도란 생각이 들었다. 더 놀라운 건, 별책부록인 아트북이다. 일러스트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그림이 인상적이다. 예전에 조경란의 <혀>의 표지 장정을 보고 혀를 내둘렀던적이 있었는데, 이건 그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하드카바케이스 까지! 정말 선물용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책이 언제부터  선물용으로 손색이 있다 없다를 가늠했는지 모르겠다. 책은 그저 책일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난 옛날 사람 아니, 적어도 아날로그 때 책의 맛을 들였던 사람이 돼나서 그런지 책의 이런 변화가 내심 반갑진 않았다. 언제부턴지, 책도 글자가 깨알 같이 박힌 것 보다 듬성듬성 박히고 화려한 그림으로 채운 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책은 모름지기 글로 전하는 것인데 책이 직무를 유기한 듯하다. 책을 기획해서 내는 쪽이 그러하다면 독자 역시 그렇게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 될 수 있으면 작가의 글이 멋진 디자인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선 그 보단 얼마나 내용이 좋은가가 우선일 것이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하지 않은가? 이를테면 디자인이나 장정은 좋은데 내용이 이를 받혀주지 못하면, 아니 적어도 이 부수적인 것 때문에 작가의 글이 재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안 되지 않는가?(아, 내가 어쩌다 이런 말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요는, 독자가 책을 선택할 때 반드시 장정이 좋아서 그 책을 선택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는 것이다.  또한 작가의 글이 아쉽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말했지만, 작가의 문체는 자유로운데 어떠한 정서를 담아내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무국적이고, 좋게 말하면 스펙이 넓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다. 더구나 이걸 두권으로 낼 생각을 했으니, 차리라 깔끔하게 한 권으로 냈더라면 기획에서 무리수를 뒀다는 말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책의 겉모양이나, 내용면에서 균형을 잡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젠장, 독자가 왜 이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하는지 모르겠다. 독자야 작품이 어떤 그릇에 담겨졌던지 간에 그 내용으로 좋았다, 안 좋았다를 얘기하면 그만 아닌가? 그래서 책은 너무 화려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과유불급이다. )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수도 있다. 다양한 문학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다소의 보수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좁은 시야가 모처럼 내놓은 작가의 책을 이렇게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아무튼, 마침 가제본으로 미쳐 다 읽기도 전에 읽기가 책이 도착이 됐다.  내심 가제본으로 읽기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받게 되어 반가웠다. 그런데 단행본으로 읽으면 잘 읽힐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듯했다. 아무래도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일갈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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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11-13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책은 맛있거나, 유익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므로 스테님의 글 제목을
보고 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웃음)
아..그런데 도대체, 책장을 넘겨 본지가 언제인지(만화책 빼고 -_-;)....가물가물..
한 때는, 너무 먹어대서 질려서 스스로 책에 손이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시간이 허락해주질 않는군요.헹..

stella.K 2010-11-14 15:14   좋아요 0 | URL
ㅎㅎ 엘신님은 이런 글 제목에 끌리시는군요.
알겠습니다. 기회되면 엘신님 상대로 낚시질이나 해 봐야겠습니다.
이번엔 제가 입질에 성공한 거죠?ㅋㅋ

L.SHIN 2010-11-15 21:11   좋아요 0 | URL
낚시질이라니요...쿨럭..;;
기왕이면 밑밥으로 금 한 냥 이런거 달아주..ㅋㅋㅋ

cyrus 2010-11-14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제본이면 어떤건가요?? 스텔라님~ 어떤 형식으로 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이번에 나온 박민규 작가의 신작이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신선한 구성으로 다가왔긴한데,, 스텔라님은 이번 작품에 실망이 컸는가보네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라는 말이 떠올리네요.

2010-11-14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11-14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다른 책 구입하였더니 맛뵈기로 얇은 책자가 따라왔더라구요.
제가 박민규를 좀 애정하기는 하는데,또 소설집에는 별 매력을 못 느껴서요.
님의 리뷰를 보니,더 망설여지는 걸요~ㅠ.ㅠ

stella.K 2010-11-14 15:1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작가의 독특함이 좋은데
이 책이 딱 좋다고 권하기엔 조심스럽더라구요.
한마디로 전 내용이나 기획이나 과유불급이라고 생각했습니다.ㅠ

2010-11-14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4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11-14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제본이라는 대목에 관심이 갑니다. 가제본은 읽기 힘들게 되어 있나요? 박민규는 단편 하나 읽어 봤어요. <카스테라>가 좋다고 난리여서 여러 번 도서관에서 대출해 보려다 못 보고 <근처>인가를 읽어 봤는데 기대보다 좋지는 않더라구요. 안그래도 이번 신간 비주얼이 정말 박민규다워서 참 궁금했는데 정갈하고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스텔라님.

stella.K 2010-11-15 11:29   좋아요 0 | URL
아뇨. 가제본이 다 그렇죠 뭐.
맞아요. 비주얼이 박민규스럽긴 해요.
그런데 몇몇 작품을 빼고는 저는 좀 그랬어요.
읽어줘서 내가 더 고맙습니다. 블랑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