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맑음
다시 추워짐. 어젠 날씨가 좀 풀렸는데...
1. 글이 짧아진다
이번에 서재의 달인이 되어서 알라딘에서 보내주는 돈다발 같은 다이어리에 지금까지 단 하루를 제외하고 꼬박꼬박 일기를 쓴다.
처음엔 요 쬐그만걸 어디다 쓰나, 정말 이런 돈 묶음 하나 어디서 뚝 떨어지면 소원이 없겠단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글을 쓰면 만연체로 쓰지 않는가.
근데 글은 정말 쓰기 나름인가 보다. 요 쬐그만 다이어리에 딱 그만큼의 글을 쓰고 있다. 노트가 사람의 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글이 노트에 맞추는 형국.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육필로 글을 쓰겠는가. 육필은 메모 정도만하고, 긴 글은 컴에다 쓰지. 하긴 요즘엔 긴 글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니 컴에 쓰는 글도 점점 짧아진다.
이 다이어리는 판매용이 아니라 서재의 달인만을 위해 주는 건가? 알라딘에선 못 찾겠더라.
2. 책 득템
명절 열흘쯤 남겨놓고인가, 모 카페에 오랜만에 들어갔다. 웬만해서 잘 안 들어가는데 어느 회원님께서 책 나눔 이벤트를 하길래 들어가 봤더니 으아~! 내가 좋아하는 문학 책을 잔뜩 내놓으시고 가져 가란다. 처음엔 세 권쯤 골랐던 것 같다. 그러자 쥔장께서 그것 가지고 되겠어요? 눈치를 준다. 그래서 내친김에 두 권을 더 골랐다.
넨장, 그 바로 얼마 전엔 큰 맘 먹고 안 보는 책 주민센터에 기증했건만 이거 되고 주고 말로 봤는 건가?
근데 이분 화끈해서 좋다. 말로는 명절 전후해서 보내게 될 것 같다더니 찜한지 하룬가, 이틀만에 도착했다. 책은 거의 새것 같아 더 놀라웠다.
사진 맨 오른쪽에 키 작은 하얀 책은 문학동네에서 비매품(?)으로 발간한 Attntion Book도 보너스로 보내주셨는데, 작년 <김승옥 문학상> 수상자들의 짤막한 지상 인터뷰와 대상 수상자 편혜영의 자전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김승옥 문학상>을 문학동네가 주관한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는데, 그럴 경우 보통은 타계한 작가들 중에서 문학상을 제정하는 거 아닌가? 아직 생존해 있는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라 이러는 경우도 있구나 했다.

대상 수상자를 비롯해 6명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이런 문학상 받고 인터뷰 당하면 기분 꽤 괜찮겠지~. 난 솔직히 얼마나 글을 잘 써야 이런 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아직 현타가 오지 않아 잘 모른다.
한때는 우리문학을 우습게 봤던 시절도 있었던지라 뭐 뚝딱 쓰는 거 아냐, 했던 적도 있다.ㅋ 다 철없던 시절 얘기다. 누가 뚝딱 쓰는 글에 이런 문학상을 주겠는가.
주최측에서 7가지 공통질문을하고 수상자들이 그에 대한 답을한다.
뭐 나름 다들 똑부러지거나 괜찮은 답들을 했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답을 했던 작가는 문지혁이다. 인상에서 풍기는 것만큼이나 날카롭고 도도하다.
잠깐 옮겨보면, 글 쓸 때 루틴이나 버릇 같은 거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더니 밤 12시에서 4시까지 쓰고 있는데 그렇다고 온전히 집중해서 쓰지도 못한다고 고백한다. 뭐 애들 재우고, 손발톱 깎고, 새로 나온 레고 검색하고, 한 두 시간 빙빙 돌다 글을 쓴다고. 처음엔 나란 인간은 왜 이 모양인가 자과감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걸 거룩한 낭비라고 생각한단다.
어쩌면 나와 그렇게 같은지 모르겠다. 한 두 시간 허비하는 거 말이다.
정말 앉자마자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른 것이 있다면 누구는 글을 써서 대박을 터트리는데, 누구는 여전히 거룩한 낭비를 하며 산다는 정도가 되시겠다.
작가가 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는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소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건 몹시 나쁜 거짓말이지만, 어쩌면 한 사람의 마음 정도는 돌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자기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문득 이 작가의 글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 중엔 이런 질문도 있다. 요즘 푹 빠져 있는 건 뭐냐고.
이 질문에 난데없이 내가 답을 해 보면,
난 요즘 드라마 <미씽2>에 빠져 있다.
시즌1도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엉큼하게도 현세와 내세를 연결시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내세는 독특하게도 시체를 찾지 못한 망자들이 사는 마을을 보여준다. 시체를 못 찾았으니 그들은 죽었으나 살았고, 산 사람에게는 죽은 존재다. 그래서 죽은 때로부터 더 이상 늙지 않으며 서로를 돌보아주며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살아간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학교에선 운동회도 하며.
사고사로 죽은 사람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미제 사건으로 행방불명인체 사라진 사람들이다. 그곳은 현세와 달리 현찰을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많은 물자들을 어디서 공수해 오는지 모르겠다. 육체의 감각도 살아 있어 등장인물이 관절염을 앓기도 하고, 서로 치고 받고 싸우기도 한다. 상처가 나면 잠깐 났다 사라진다.
우여곡절 끝에 현세에서 시체를 찾으면 그 사람은 그 시간부로 바람같이 서서히 사라진다. 그때야 비로소 지옥이든 천국이든 간다. 그게 참 그럴 그럴 듯하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살아났다고 무조건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육체를 벗어났을 때 깨끗하고 개운한 느낌인데,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 후줄근하고 추레한 욕체를 다시 뒤짚어 쓰는 건 그리 유쾌한 느낌은 아니라고 한다.
뭐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어쨌든 난 이 드라마가 꽤 흥미롭다. 이거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