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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존재 자체로 낙인이었어
오현세 지음 / 달콤한책 / 2022년 12월
평점 :
저자가 활동 이력이 나름 화려하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영화사에서도 일을 하고 700여 편의 광고와 객원기자, 칼럼니스트, 그룹사운드의 리드 기타, 탁구 선수 등으로도 일을 하고 바둑 문학상도 받았단다. 현재는 합창단 지휘를 하고 있다. 그러다 뒤늦게 갑골문에 심취해 10년간 자료를 모으고, 그에 대한 첫 번째 결과로 이 책을 냈다고 한다. 솔직히 이거 하나만 파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자료를 모았을지 대단하다 싶다.
나도 변하는 걸까? 이런 불온한 제목의 책은 예전 같으면 안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지는 모르겠는데 끌렸다. 아마도 표지 디자인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비녀를 꽂은 여인의 뒷모습이라니. 더구나 저 비녀는 남근의 상징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눈에 봐도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우리는 여자가 하나의 재산이나 노예로 취급받던 고대 시대로부터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그게 어떤 의미인 건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나마 우린 지난 세월 페미니즘 운동으로 이만큼이라도 주권을 누리고 사는 거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과 만감이 교차한다. 우린 당장 가장 가까운 일제강점기를 더듬어 봐도 남자도 견디기 어려운 망국의 한을 여자가 어떻게 견뎠을지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그보다 더 오랜 조선의 병자호란은 어땠을까? 오랑캐에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으면서 50만의 여성이 세자와 함께 끌려가야만 했다. 그나마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 와도 그녀들의 고향에선 환영받을 수 없었다. 오랑캐의 땅에서 어떻게 굴러 먹었을지 모르니 안 오느니만 못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환향녀'였고, 말 그대로 고향으로 환향한 여자가 오늘날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뿐인가. 그런 전쟁이 아니어도 왕이 왕비를 맞이한다고 하면 일단 금혼령이 내려진다. 당시론 여자가 그리 건강한 것은 아니고 아기를 낳다 죽는 일이 흔했으니 그만큼 금혼령도 자주 내렸을 것이다. 왕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왕비 후보들의 나이는 상대적으로 젊어진다. 가장 많은 나이 차이를 보였던 건 영조였다. 왕비를 다시 간택할 때의 나이가 60대 초반이고, 새로운 왕비의 나이는 10대에 불과했다. 지금 같으면 할아버지가 손녀뻘의 여자를 맞이한 거지만 그땐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권력이 좋다지만 그런 늙은 왕에게 시집보내기를 즐거워하는 아비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딸이 있는 사대부들은 금혼령이 내려지기 직전 서둘러 시집을 보내거나 몰래 혼사를 치르다 발각이 되면 치도곤을 면치 못했다. 그러고 보면 우린 순화되다 못해 말도 안 되는 사극을 보면서 역사 공부의 재미를 붙였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불온한 것들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알 수가 없다. 그보다 더 오래전 고대 시대엔 남자들이 밤새 여자를 가지고 놀다가 다음 날 삶아 먹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니 여자는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없고 그저 남자의 애완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세월이 흐르면서 공창이 생기고 매춘이 사화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되자 숨이 트이기도 했다. 내가 공창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건 중학교 때었다. 당시 여자로서 드물게 경찰계에 높은 직위에 있었던 한 여성 경관님이 공창을 주장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저런 소리를 하나 어린 마음에 분개했다. 사창이든 공창이든 매춘이란 직업은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이 여성을 옹호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주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창녀가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고 공창이 돼야 그녀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처럼 사회의 발전에 따라 여자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지만, 고대 시대를 연구한다고 해서 여자들이 왜 이토록이나 천대받아야 하는지를 알 수는 없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갑골문만이 증명해 줄 뿐이다. 갑골문이 뭔가? 한자 이전의 문자고 뼈에 아로새긴 문자다. 바로 그 갑골문에 여자를 상징하는 온갖 문자들은 한마디로 불온하기 짝이 없다. 어느 것 하나 계집 女 자를 좋은 뜻에서 쓴 글자가 하나도 없다. 또한 그 이미지는 철저하게 남성의 시각에 고정되어 있다. 모르긴 해도 이 책은 극히 일부를 소개했을 뿐 더 알아보면 사전 한 권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도 여러 가지일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읽다가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여자가 이렇게까지 비하되고 착취 당할 수 있냐며. 솔직히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기 시작한 건 100년 남짓 아닌가. 그전까지는 물건 아니면 집에서 키우는 암컷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이 사회 문화적 존재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동물적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고개를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다가도 죽일 수 있고 죽음을 당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착잡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왜 여자끼리 연합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선사시대로부터 암컷으로 길들여진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여자들은 딸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것은 성 정체성을 말하기 이전의 얘기니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혐오하며 싸우더라.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싸우는 것이 아니겠냐며. 분명 이 책은 서로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싸움 역시 모르긴 해도 꽤 오래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느 때까지라고 못 밖을 수는 없지만, 여자가 착취되어 온 세월만큼 또 그것이 착취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남자의 역사만큼 치열하고 길지 않을까. 그러다 어느 때가 되면 합의점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때가 조금이라도 앞당겨지길 바랄 뿐이다.
책이 의외로 흥미롭고 재미(?) 있다. 저자는 갑골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동파문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동파문이란 중국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이 7세기 경부터 만들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순수 그림문자다. 이는 현대의 이모티콘과 놀랄만치 흡사하다. 여기에서만 머물렀다면 읽다가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중간중간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힌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