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어느 중년의 여자가 지팡이를 짚은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탔다. 마침 버스는 승객이 많아 마땅히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서 갈 판이다. 여자는 하는 수 없이 어머니를 부축하고 섰다. 놀라운 건 그녀의 어머니는 노약자 보호석 옆에 꼼짝없이 서서 가고 그 자리엔 어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일부러 모른 척 하느라 열심히 스맛폰만 보고 있었다는 것.
순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거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 부모가 어떻게 키웠길래 저 모양인가란 생각 보단, 쟤는 부모 욕 먹이고 있구나란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사리분별을 못할 정도는 아니니 그게 어디 부모가 안 가르쳐서만이겠는가.그러면서 "여기 노약자석이니 좀 일어나라.할머니 좀 앉게."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올라 오는 걸 겨우 참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중년의 여자가 하지 않는 일을 왜 내가 한단 말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도 그 아이 못지 않게 사리분별 할 줄 아는데 무엇이 부끄러워 그 아이에게 그 요구를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자기 엄마 힘들게 서서 가게 생긴 것만 안타까워 한다. 그나마 어느만치 가니 어느 승객이 자리를 양보해 감읍해 하며 가서 앉았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교육의 부재라고 해야하는 걸까.
대체로 젊은 사람들은 노약자 보호석에 잘 안 앉는 것 같긴하다. 특히 지하철 안에선. 그러나 노약자 보호석이 아닌 곳에선 노약자가 앞에 서 있어도 모른 척 한다. 모른 척 하기에 가장 좋은 물건의 역시 스맛폰만한 것이 없다. 역시 MZ 세대라 그럴까? 합리적이란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버스를 탔는데 어느만치 가니 노인이 올라탔다. 어느 앳된 젊은 여자가 앉아 있는데 자리에서 일어날까 말까를 고민하다 '친절하게도' 그 노인에게 조그만 소리로, "저기 자리 있어요." 하고 가르쳐 주는 건 그나마 나은 경우라 하겠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일선 학교나 공공기관에선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교육을 따로 하지 않는 모양인가 보다. 내가 학창시절엔 공익 차원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자는 캠페인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예 노약자 보호석을 따로 마련해서 그런 캠페인을 폐지시키니 오히려 노약자 보호석이 개인주의를 부추겨 왔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와는 반대로, 몇년 전 지하철을 탔는데 어느 젊은 여자가 아이와 함께 노약자 보호석에 잠시 앉았다. 그런데 그 꼴을 못 봐준 어느 꼰대 노인이 눈을 흘기며 한마디를 하자 같이 맞장구를 치는 또 다른 노인이 있었다. 그러자 결국 여자는 낮이 뜨거운지 동행인과 함께 다른 칸으로 꽁지가 빠지게 옮겨 가더라. 참고로 그녀의 아이는 이제 겨우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조그만 어린 아이였다.
모르긴 해도 그 여자도 어느 노인이 와 앉으려 하면 일어설 요량은 아니었을까. 자기 아이 다리 아플까 걱정해서 같이 앉은 모양인데 그걸 가지고 잘 모르는 여자에게 눈을 흘기는 그 노인도 정상인가 싶기도 하다. 그 시기의 여성만큼 대우 못 받는 여성이 또 있을까. 아이 낳아 키우는 것도 엉덩이가 빠져라 힘든 일인데, 젊었다는 이유로 앉고 싶어도 앉을 수가 없다니, 이런 이상한 나라가 어디있는가. 자기 엉덩이 부치고 앉아 있으면 됐지 그게 그렇게 아니꼬운 일인지 모르겠다.
그 노인들 그래놓고 어디가 요즘 젊은 것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입바른 소리하고 돌아다니지는 않을까 모르겠다. 아니면 그런 입바른 소리도 얼굴 봐 가면서 하던가. 그 젊은 애기 엄마가 만만해 보이니 그런 거 아니겠는가 말이다.
도대체 노약자 보호석은 누구를 위한 보호석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