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일단 잘 쓴 작품이라는 것엔 이의가 없다.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이다. 전후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여성들로 이루어진 재미 교포 사회에서 자랐다고 한다. 2002년이 되어서야 엄마의 고향 한국 땅을 처음 밟았고 거기서 일본군 '위안소'에 감금된 위안부 여성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첫 소설로 이 작품을 내게 된다. 영국 런던 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공부했다고 한다. 또한 2018년에 가디언지가 선정한 10명의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솔직히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위안부를 다룬 문학작품이 있었나 관심도 갖지 않았다. 물론 찾아보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대중 학술 서적이 많고 있어도 관심을 갖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은 가히 군계일학이라고나 할까. 책 장정도 나쁘지 않고 내용은 더더욱 나쁘지 않다. 아니 이만하면 훌륭하다. 과연 가디언지가 주목할 만하다 싶다.


작품이 꼭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지만, 이제 영화적 글쓰기는 세계적 추세다. 안타깝고, 짠하고, 할 수만 있으면 책 속으로 들어가 일본군(쉐끼들)을 처단하고 싶어진다.(그런 책 있지 않나?) 게다가 나름 장쾌하기도 하다. 거의 말미에 보면 하나에게 묘한 집착을 가진 모리모토 하사가 일본군이 패망을 하자 하나를 데리고 전장을 탈출해 몽골 평원을 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 정말 이 작품 영화로 봤으면 좋겠다 싶다. 그런 걸 보면 저자의 대륙적 기질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해서 완벽한 작품은 아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한국계 미국인이다. 한국계라고 해서 한국의 작가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미국 작가다. 물론 저자는 모르긴 해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지 않을까. 그 정체성은 이민 디아스포라면 다들 할 것이다. 그런 작가가 의욕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파고든 점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뭔가 우리의 정서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저자에게 묻고 싶기는 하다. 쓴다면 디아스포라에 대해서 쓰지 왜 굳이 위안부냐고. 아무리 뛰어난 작가도 자신이 태어난 곳과 본 것과 아는 것 이상을 뛰어넘지는 못하는 법인데 말이다. 물론 인생 어느 시점에서 위안부에 대해 알았으니 그걸 글로 쓰고 싶긴 했을 것이다. 내가 왜 이 소설을 낯설다고 보는 건 등장인물에 동의할 수 없어서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의 이름이 '하나'고, 동생의 이름은 '아미'다. 너무 현대적 아닌가. 옛날에 여자는 이름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의미 없는 촌스러운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이들의 부모는 어질고 착하고 교양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뭐 불가능한 인물은 아니겠지만 생활인으로서 제주도 특유의 정서를 이해한다면 결코 이렇게는 설정하지 못할 것 같다.


제주도라는 지역을 인식하는 저자의 묘사에도 동의할 수 없다. 한마디로 너무 낭만적이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했다면 그곳의 역사와 지리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제주도가 역사적으로 어떤 땅이었는지 알고 있다. 미국인이지만 한국인이란 기대를 떨쳐내지 못한 내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자는 잘못이 없다. 독자는 오독할 권리가 있다. 단지 어떻게든 저자를 이해하고 싶다.


어찌 보면 작가는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가지고 이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어떤 작가도 자신의 경험과 인식 그 이상을 뛰어넘지는 못하는 법이니까. 게다가 작가가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영화적으로 글을 썼다. 난 이게 마땅치 않은 것이다. 나도 한때 글쓰기에 필요하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잠깐 배우기도 했지만 이건 세계적인 규격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영화적'이라고 했을 때 그건 '할리우드적'과 동의어일 때가 많은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모든 것을 그렇게 맞추다 보니 손발 다 자르고, 심지어 가슴 즉 정서도 잘린 느낌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작품이 그렇다. 한국인의 정서에서 보자면 말이다. 스토리는 완벽한데 말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 작품이 훨씬 잘 읽힐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저자가 위안부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과연 자료 조사를 안 했을까. 제주도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을까. 했을 거라고 본다. 작가의 근성이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 시대를 온전히 담아내지 않은 건 작가의 선택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요한 건 일본군의 만행과 위안부를 알려야겠다는 그 하나에만 방점을 찍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내가 지적한 것들은 솔직히 비본질적인 것들이다. 물론 다른 분야는 몰라도 문학은 비본질조차도 버리면 안 될 때가 많지만 그것을 제외했다고 작품을 못 쓰는 건 아니다. 그건 다른 작가가 해도 되는 것이다. 정서를 잘 표현해 줄 사람. 단지 이 작품이 위안부 문학의 전부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긴 하다. 요컨대 이런 위안부 문학은 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80년대 문학은 저항 문학이었다. 그 시절 한 필력 한다는 작가마다 저항에 대해 쓰지 않는 작가가 없었고, 이것 때문에 감옥에 간 작가도 많았다. 그리고 그건 90년대 후일담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땐 작가들마다 시대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지금은 저항을 쓰는 작가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졌다. 정말 저항할 것이 없이 모든 게 평등하고 평화로운 시대가 왔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문학의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잠시 잊었거나 수면 밑으로 내려앉았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문학은 역시 저항이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는 승자의 것인지 모르지만 문학은 패자의 것이고, 상처받은 자의 것이다. 어느 때부턴가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이 없고 그저 자아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위안부 피해 여성이 있는데 또 그 얘기냐며 손사래쳐 오지 않았는지. 위안부 여성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 있는데 그들을 여성으로 보기보단 어떤 특별한 트라우마를 가진 할머니로만 보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지금도 얼마 만에 한 번씩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관한 소설과 영화가 나오고 있다. 그건 오늘날에도 유효한 역사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왜 한때 날리는 필력을 가진 작가들이 왜 이리 조용한지 모르겠다. 사실 그들은 이제 너무 연로해졌다. 그들 대부분은 펜을 놓았다. 이제 후대의 작가들이 이걸 해 줘야 하는 것 같은데 문학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자꾸 떠들어줘야 세계가 관심을 갖고, 일본이 망발을 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태평양 건너의 한국인이지만 미국 작가에게 관심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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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30 20: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 이 저자의 책들이 이렇게 수 많은 국가의 언어로 번역이 ??

자료조사도 하고 생존하고 계신 분들과 직접 인터뷰를 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영미권 문학계에서 이토록 주목 받고 있다는 거 대단한거죠
스텔라 케이님 말씀처럼 울 작가들 조용!!


stella.K 2021-10-01 16:36   좋아요 1 | URL
저렇게 많은 나라에서 번역됐다면 일본 우익들도
좀 긴장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작품 더 나와줘야 하는데.

막시무스 2021-09-30 21: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작가에 대한 따가운 질타를 진지하게 새겨 들었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네요!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ㅎ

stella.K 2021-10-01 16:39   좋아요 2 | URL
지금 4, 50대 울나라 작가들이 단편이든 장편이든
한 작품씩만 써도 파급 효과가 장난 아닐텐데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2021-09-30 2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일깨워주시니, 몇 박자 늦게 이제서야, 아쉽구나, 안타깝다. 좀 더 스피커들이 많아져야 할텐데 하는 생각 뒤늦게 하네요.

stella.K 2021-10-01 17:03   좋아요 2 | URL
이 작품 정말 괜찮습니다. 기회되시면 꼭 읽어보세요.
저도 올해 이산문학 독후감 대회 도서목록 보고
알았는데 보니까 정말 읽고 싶은 작품이 꽤 많더군요.
암흑기일수록 문학은 더 빛나지 않나 싶어요.^^

희선 2021-10-03 0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국계 미국사람이고 영어로 써서 세계 사람이 볼 수 있기도 하겠습니다 미국에서 살았으니 한국 사람 정서와 똑같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소설이 나오는 건 좋은 일이겠지요 몇 해 전에 김숨이 《한 명》과 《흐르는 편지》 그리고 다른 책도 썼어요 그건 증언집이더군요 그건 못 봤지만...

《풀》(김금숙)은 만화지만 이것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예요


희선

stella.K 2021-10-03 18:37   좋아요 0 | URL
아, 맞다. 김숨의 <한 명>이 있었죠? <흐르는 편지>는 저도 몰랐네요.
이런 작품도 외국어로 번역되어 서양사람들도 관심을 가져야할 텐데.
예전엔 저항 문학이 먹혔는데 지금은 얼마나 볼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런 문학 썼다고 잡혀가고 그러지 않는데...
저도 관심 가지고 좀 봐야겠습니다.
알려줘서 고맙슴다.^^

페크pek0501 2021-10-03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 제주 4.3을 다룬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저자가 읽어 봤다면 좋았을 듯싶네요.
역사를 알아야 하는 건 문학인의 필수 조건인 듯해요.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인식 그 이상을 뛰어넘지는 못한다는 님의 말씀은 옳습니다. 정말 그래요.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은 글이란 없어요. 제가 칼럼을 써 보면 딱 제가 아는 만큼만 쓰더라고요. 그 이상이 안 돼요.
경험이란 한계가 있으니, 저는 부족함을 독서로 메우려고 다짐을 하죠. 다짐한 만큼 독서를 많이 못하는 게 문제지만요...

stella.K 2021-10-03 18:42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제주 4.3 사건을 함께 다뤘죠.
그 사건이라면 저도 현기영이 생각나고.
모르긴 해도 서로 알고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작품은.

저도 그래요. 부족함을 독서로 메우려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TV와 영화도 볼게 많고. 행복한 비명이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