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의 숏컷
김지운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해 보니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거의 다 본 것 같다. 한 두 작품은 못 봤으려나?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반칙왕>과 <장화, 홍련>이다. 비주얼이 좋기로야 <달콤한 인생>이 좋긴 하지. 하지만 난 도무지 피흘리고 싸우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 좋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그 영화가 시작할 때 이병헌의 목소리를 타고 나오는 바람 어쩌구 하는 선문답 같은 대사 인상에 남는다. 똥폼 재대로 잡고 시작하지 않는가?

백수생활 10년을 어떻게 탈출을 했는가 궁금해서 이 책에 관심을 가졌더랬다. 그건 어쩌면 나 역시 백수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침 운이 좋아 얼마 전 나는, 잘 알려진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친필 사인본을 받았기에 읽는데 조금의 망설임 없었다(뒤에 지승호 씨가 김지운을 인터뷰한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읽다보니 백수도 급수가 있고, (나는 꼭 사람이 일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데 그래도) 그냥 시간만 죽이는 백수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운 감독이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감독이 되기까지는 그 나름의 백수의 내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백수시절 영화만을 줄창 본 내공이 처음 쓴 시나리오가 당선이 됨으로 그때부터 영화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는 것. 그리고 밑바닥을 훑지도 않고 카메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번에 감독이 됐다는 건 백수계의 전설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록 김지운이 시나리오 당선된 날, 어머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드렸더니 이젠 거짓말까지 한다고 혀를 끌끌 찼다고는 해도, 백수가  출세하지 말라는 법은 확실히 없다. 그래도 카메라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닌데 감독을 했다는 건 구라일까 아니면 나름의 겸손을 가장한 아우라일까? 어쨌든 김지운은 보통의 백수는 아닌 듯하다.

그래도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의 글은 담백하며 능청 떠는 솜씨가 예술이다. 첫 부분은 삶의 단상에 관해서 썼고, 중간부 정도부터는  배우들에 대한 느낌, 영화를 찍었을 때의 있었던 일등을 일기처럼 써놓고 있어서 나름 유익했다. 우리나라 영화계는 영화를 찍었을 때 기록 필름을 남겨놓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감독의 일기는 나중에 영화를 찍는 이들에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 읽으며 드는 생각은, 사람은 무슨 일이든 힘든 일을 할 때는 서로를 독려하며 기를 한데 모으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달콤한 인생>을 찍으며 이병헌의 고생담을 들려주는데, 나의 지난 날, 아마추어 연극을 하면서 마음 고생했던 때와 오버랩 되면서 그런 생각이 든것이다. 힘들면 불평하고, 남 험담하기 쉬운데 그래서는 죽도 밥도 다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김지운은 그런 불운은 격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왜 그리도 힘들었던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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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3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달콤한 인생 정말 좋게 봤어요 :) 한국 영화중에 숨겨진 보물이라고 생각하는데...
김지운 감독은 어딘지 김영하 작가랑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예술로 밥벌이를 한다는 건, 힘든어야 정상 아닐까요? :)

진달래 2007-05-23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장화 홍련>보고 둑다 살아났어요. 중요한 장면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요... 증말 대단한 감독 같아요. <달콤한 인생>도 좋긴 했지만... 책도 재밌겠네요. ^^ 급수가 있는 백수... 저도 다시 백수로 돌아가야 하는데... 참, 모아놓은 게 없어서... 밥벌이가 뭔지 말이죠... ^^* 암튼 리뷰도 재밌습니다. ^^

네꼬 2007-05-23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지운 감독은 어딘가 영리하고도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이 책을 읽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리뷰를 읽으니 스멀스멀... 저도 역시 <달콤한 인생>이 왕 좋았습니다. 이병헌도 그렇지만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에릭의 포스도 좋구요. 안녕하세요, 스텔라님? 저는 네꼬라고 해요. : )

stella.K 2007-05-24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2님/김지운과 김영하! 맞아요. 읽으면서 살짝 그런 느낌 받았어요.^^
진달래님/김지운 영화가 보는 사람의 기를 빼놓는 뭔가가 있지요. 백수가 된다굽쇼? 반가워요. ㅋ. 저랑 같이 놀아요. 하하.
네꼬님/반갑습니다. 다른 이의 서재에서 언듯 뵌 적이 있었는데 친히 찾아주시고...고맙습니다. 이 책 읽어보세요. 재밌어요.^^

프레이야 2007-06-0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축하해요!!
저도 달콤한 인생, 무지 좋아해요. 장화홍련, 다시 봐야겠어요.
전에 보다 말았거든요, 무슨 일이었던가...

마노아 2007-06-08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주의 마이리뷰 당선이에요. 추카합니다^^ 전 달콤한 인생 재밌게 보았어요. 유혈이 낭자한 것은 끔찍했지만 연기가 압권이었거든요. 그리고 굉장히 강렬한 '색채'에 반했답니다. 원래 이병헌을 좋아하기도 했구요^^ 김지운 감독이 그런 전설적인 백수였다니 놀랐어요. 역시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나 봅니다^^

네꼬 2007-06-1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하핫. 저도 나름 보는 눈이 있다니까요. : )

stella.K 2007-06-1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고맙습니다 네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