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가끔 가족이 들어와야할 시간에 안 들어와도 걱정을하고 불안한데 아이가 집 나가 안 들어온다는 건 생각하기조차
싫어진다. 이혼한 부부가 있고, 엄마가 차를 타고 멀리 앞서가는 것을 조그만 아이가 쫓아 오는 걸 반쯤 의식했지만 설마하며 무시했다면 그것에
대한 후회는 얼마만한 것일까? 그때 잠깐 백미러를 통해 확인만 했어도 아이를 그렇게 무참하게 잃어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가끔 우리도 그렇지
않나? 내가 의식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해야 하는 걸 무심하게 넘겨버리다 그게 잘못이란 걸 나중에 깨닫고 후회한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의 다각적인 이야기이다. 즉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과 그 아이를 납치한 사람의 사정을 선악의 논리로만 보지 않고 다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아이를 납치하는
건 나쁜 일이다. 보통 그럴 때 영화나 드라마는 흔히 그 아이를 어디 먼곳으로 보내버려 인권을 유린 당하게 하거나, 아이를 매개로 돈을
챙기겠다거나 그런 나쁜 의도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아이 유괴 사건이 심심찮게 보도되지만, 중국에서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면 더 안 좋은 시각을 갖게 되는 건 왜일까? 우리나라에선 유독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가까운 일본보다 더 안 좋다. 아이가 유괴 당했으니 분명
안 좋은데 아이를 쓸 것이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런 일은 빈번할 것이라고 추측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한 자녀만 가질 수 있는
강력한 산아제한 국가가 아닌가.
그런데 우린
여기까지만 생각할뿐 그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까지는 짐작조차 하지 않는다. 바로 영화는 그 지점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영화를 보면 과연 그렇겠다
싶다. 세상엔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예를들면 사별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사별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도하지 못한다. 그런
것처럼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은 그런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사는지,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는지 모른다.
문제는 또 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운 좋아 찾는다고 해도, 그 아이가 원래의 부모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의 답답하고 괴로운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억해 보라고 종용하고 강요하는 건 아이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이 될까?
아이를 납치해서 키운
양부모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왜 아이를 납치했는지가 분명치가 않은데, 내가 알고 있기론 그들 부부도 이미 아이 하나를 납치해 키우고 있고,
이번이 두번째다. 그런 것으로 봐 아이를 못 낳는 부부다. 그런데 이 무슨 개떡 같은 운명인가? 여자는 아이를 못 낳는 줄만 알았는데,
남편을 잃고 아이도 빼앗긴 마당에 필사의 도움을 받고 싶어 남편의 후배와 하룻밤 지냈을 뿐인데 임신이 됐다. 그때까지 자신의 결함으로 아이를 못
낳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부장의 단적인 예를 보는 것 같다.
그뿐인가? 중국
사회는 급격한 산아제한으로 아이를 낳으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아 부모 모임에서 한 부부가 결국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고 새로 아기를
낳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축복이 아니고 오히려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 얼마나 비정 사회인가? 잃어버린 아이의 생모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이미 새 남편과 살고 있는데 섹스를 극도로 거부한다.
이렇게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영화는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중국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나라는 이 정도는 아닐테지만 아기 하나 낳기도 당국의 허가를 맡는 것 하나만 빼놓으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미아 발생이 한 해
몇건이나 발생하고, 그중 찾는 비율은 어느 정돈지, 그 이후 아이와 부모는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우리도 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줘야할 것
같다. 보고나면 마음이 좀 무겁긴 하지만 문제 의식은 제대로 잘 건드려준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