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신의 전통 엘뵈프‘가 당하는 모욕과 함께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은, 그녀의 가게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축적돼온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뿐이었다. 하지만가게의 파국은 곧 그녀 자신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며, ‘전통 엘뵈프‘가 문을 닫게 되는 날에는 그녀도 그와 함께 생을 마치게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 P49

다시금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보뒤는 밀랍을 입힌 식탁보위에서 손가락 끝으로 퇴각의 곡조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또다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보인 것에 나른한 피로감과 더불어 후회마저 느끼고 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짓누르는 가운데 그들 모두는 허공을 응시하면서 자신들의 씁쓸한 인생 역정을 되돌아보았다.  - P49

무레는 온갖 종류의 무모함과 경솔함, 부주의로 인한 실수 그리고 여자들과의 우려할 만한 스캔들로 얼룩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부르동클은 열정적인 프로방스 출신의 동료처럼 반짝이는 천재성과 대담함, 사람들을 압도하는 매력을 갖추지 못했다.  - P59

매사에 분명하고논리적이며 냉철한, 따라서 추락할 위험도 없는 그였지만 성공은 여자와 같은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파리는용감한 자에게만 키스를 허락한다는 것을.
- P62

드니즈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그런 생각이 너무나 엉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리스도의 변용(變容)처럼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 보였다. 발그스레한얼굴에, 다소 커 보이는 입가에 띤 미소는 얼굴 전체를 활짝 피어나게 했다. 회색빛 눈동자는 부드럽게 불타오르는 듯했고,
양쪽 뺨에는 사랑스러운 보조개가 패었다. 빛이 바랜 것 같은머리조차 그녀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함과 용기를 동반한 경쾌함 속에서 위로 날아오르는 듯 보였다.
- P98

그는 신화로 둘러싸인, 무시무시한 기계의 주인이었다. 아침부터 강철 이빨로 그녀를 물고놓아주지 않으려 하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조종자였다. 그의 잘생긴 얼굴 뒤로, 잘 다듬어진 수염에서, 오래된 황금을 떠올리게 하는 눈 속에서 죽은 여인이 보이는 것 같았다. 피로 백화점의 돌들을 봉인한 예의 그 에두앵 부인이었다.  - P99

이제, 여인네들은 모두 마르티부인이 산 것을 보고자 하는 호기심에 몸이 달아올랐다. 그녀가 유혹에 약하고 낭비벽이 심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정숙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고 남자의 구애에도절대 흔들림이 없는 그녀였지만, 조그만 천 조각 앞에서는 즉각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서 그 유혹에 굴복하곤 했다. 평범한사무원의 딸인 그녀는 이제는 보나파르트 리세에서 제5학년과정을 가르치고 있는 남편을 파탄으로 내몰고 있었다. 그녀의남편은 점점 늘어나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1년에 6천 프랑의 수입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출장 교습과 같은가윗벌이를 끊임없이 찾아다녀야만 했다.  - P109

여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레의 우아한 몸짓 뒤에는 여성의 살을 파운드로 떼어 팔고자 하는 유대인 상인의잔인함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여성을 위해 신전을 세우고, 수많은 직원들로 하여금 여성을 위한 향을 피우게 함으로써 새로운 숭배 의식을 만들어냈다. 또한 자나 깨나 오직 여성만을 생각했으며, 끊임없이 더 효과적이고 강렬한 유혹의 방식을 생각해내기에 바빴다. - P134

"그러다 언젠가는 여자들한테 크게 당할 수도 있네."
하지만 무레는 오만하고 경멸적인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모든 여자들은 그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그녀들은 그에게 속했지만, 그는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었다. 그는 여자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부와 쾌락을 모두 얻고 나면, 그녀들에게서 아직 무언가를 얻어낼 게 있는 이들을 위해 가차 없이그녀들을 버릴 것이었다. 이 모든 건 투기꾼 기질을 지닌 남부출신 남자의 치밀하게 계산된 자신만만한 행보였다.
- P134

바로 그 순간, 고개를 든 마르티 부인은 바로 앞에서 잔뜩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남편의 눈길과 마주쳤다. 그는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변한 얼굴로, 운명에 체념한 가난한 남자의 고뇌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토록 힘겹게 벌어들인자신의 급여가 얼음이 녹듯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을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레이스 한 조각은 그에겐 재앙과도 같았다. 그로 인해 힘겨운 수업과 출장 교습을 하며 보낸 나날들이 모두 탕진되고 먹혀버렸던 것이다. 그는 쉴 새 없이 밤낮으로 뛰어다니면서도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고통과 지옥 같은 궁색한 삶을 떨쳐버리진 못했다.  - P144

석양이 느끼게 해주는 나른한 관능적 분위기와 여인들의 어깨에서 풍겨 나오는 달아오른 체취 속에서도, 환히 웃어 보이는 얼굴 뒤로 여전히 흔들림없이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았다. 그는 여자였다. 여인네들은자신들의 깊숙한 내밀함을 간파해내는 섬세한 감각을 지닌 그에게 온통 까발려지고 지배당하는 듯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매료된 채 기꺼이 자신들을 내맡겼다. 반면 무레는 여자들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음을 확신한 순간부터 거친 태도로 그녀들 위에 군림하면서 천들을 지배하는 전제군주처럼 굴었다.
"오! 무슈 무레! 무슈 무레!"
- P146

터키, 아라비아,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가 그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궁전을 모두 비워내고, 모스크와 바자르를 약탈이라도 해온 듯했다. 낡은 옛날 카펫들속에는 황갈색을 띤 금빛이 주된 색조를 이루고 있었고, 퇴색한 빛깔들은 불 꺼진 화덕의 잔해처럼 어두운 열기를 간직하고있었다. 나이 든 대가의 그림 속에서처럼 그윽하면서도 섬세한느낌을 전해주는 색조들이었다. 태양과 해충의 나라에서 온 오래된 양털이 간직한 강렬한 내음이 너른 공간을 가득 메운 가운데, 야성적인 예술이 과시하는 화려함 뒤로 동양의 꿈들이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 P153

그들은 한 단계를 더 올라가기 위해 바로 위에 있는 동료를 밀어내고, 누구라도 장애가 된다면 동료를 먹어치우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욕망의 대립과 서로를 밟고 올라서는 행위는, 거대한 기계가 순조롭게 작동하면서 판매를 촉진시키고, 파리 전체를 놀라게 하는 성공의 불꽃을 지피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위탱의 뒤에는 파비에가 있고, 파비에의 뒤로는 또 다른 이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괴물 같은 기계가 거대한 아가리로 요란하게 씹어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비노는 이미 끝장난 목숨이었다. 모두들 벌써부터 앞다투어 그의 뼛조각을 하나씩 차지했다.  - P273

무레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야심은 여성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성이 자신이 이룩한 백화점의 왕국에서 여왕으로군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여성을 위한 신전을 지어 바친 다음,
그곳에서 그녀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정중하고 세심한 배려로 여성을 취하게한 다음, 그녀의 욕구를 부추겨 달아오른 욕망을 충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P393

그들이 내세우는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광고였다.
무레는 카탈로그와 신문 광고, 포스터 등에만 연간 30만 프랑을 쏟아부었다. 여름 신제품의 판매를 위해 20만 부에 이르는카탈로그를 제작해 그중 5만 부는 각 나라 언어로 번역해 외국으로 보냈다. 이젠 카탈로그에 삽화까지 곁들였고, 심지어 종이에 샘플을 붙여 함께 보내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넘쳐나는광고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존재를각인시켰다. 건물들 담벼락이나 신문, 심지어 극장의 커튼에서까지도 그 이름을 만날 수 있었다. 무레는 여성은 본래 광고에약한 존재이므로, 필연적으로 소문의 진원지로 향하게 되어 있다고 공언했다. 게다가 이제 그는 인간의 본성을 세심하게 분석하는 학자처럼, 여성에게 좀 더 높은 차원의 덫을 놓았다. 여성이 값싼 물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면서 필요 없는 상품을 구매한다는 사실을 간파해냈던 것이다. - P395

무엇보다 백화점 내부 배치에 관한 무레의 안목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어느 한 구석도 한가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천명했다. 어느 한군데도 빠짐없이 모든 곳에서, 북적거림과 몰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삶은 또 다른 삶을 끌어당기고, 새로운 욕구를 잉태하며, 그 욕구를 빠르게 전파시키기 때문이다. 무레는 그러한 법칙에 근거해 온갖 종류의아이디어를 이끌어냈다. - P395

"그래, 여전히 사는 게 즐겁나?"
무레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즉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예전에 삶의 공허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무의미한 고통에 대해 서로 얘기를 주고받았던 것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물론이지, 난 여태 지금처럼 삶을 충실하게 살았던 적이 없었네.
오! 이보게 친구, 날 비웃지 말게나. 고통스러워 죽을 것 같은 순간조차 더없이 소중한 거니까 말일세!"
그는 눈물이 덜 닦인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면서 애써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 P536

"그럴지도! 난 나 자신이 무언가에 현혹되기를 바란다..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죽어야 하는 거라면, 지루해서 죽는 것보다는 무언가에 미쳐서 죽는 게 더 낫지 않겠나."
그들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 P537

"드니즈의 이러한 시도는 봉 마르셰 백화점의 마르그리트 부시코가 했던 시도를연상시킨다. 백화점 설립자인 부시코는 공동 설립자인 아내의 발의로 1876년 7월31일 직원들을 위한 공제조합을 만들었다. 그에 앞서 1872년에는 직원용 도서관을 열었으며, 음악과 펜싱 수업, 외국어 강좌를 개설했다.
- P592

허참! 우리가 대체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됐는지. 새파란 어린 것 하나 때문에 늙은이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다니 참으로 기막히지 않은가 말이야!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줄지어 도산하는 광경이한낱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게다가 앞으로도 문닫을 가게들이 줄을 서 있단 말이지. 그 작자들이 백화점에다꽃, 모자, 향수 그리고 신발 매장까지 낼 거라면서? 또 앞으로뭐가 더 생겨날지 그걸 누가 알겠나?  - P616

복잡한 관현악법으로 연주되는 대가의 푸가가 지속적으로 전개되면서, 끊임없이 더 높은 곳으로 영혼을 날아오르게 하는 듯했다. 오직 백색들만이존재했지만 결코 똑같은 백색이 아니었다. 백색들은 서로를 돋보이게 하거나 대립하고, 서로를 보완하기도 하면서 빛과 같은광채를 뿜어냈다. 처음에는 캘리코와 리넨의 무광 백색, 플란넬과 나사의 은은한 백색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벨벳, 실크, 새틴과 함께 단계가 차츰 올라가면서 백색이 조금씩 불타오르다가는 주름진 천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불꽃이 점차 잦아들었다.
- P660

그가 창조해낸 것들은 새로운 종교를 일으켰다. 그의 백화점은 흔들리는 믿음으로 인해 신도들이 점차 빠져나간교회 대신, 비어 있는 그들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 여인들은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의 백화점을 찾았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예배당에서 보냈던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들을 그곳에서 죽여나갔다. 백화점은 불안정한 열정의 유용한 배출구이자, 신과 남편이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는 곳이며, 아름다움의 신이 존재하는 내세에 대한 믿음과 육체에 대한 숭배가 끊임없이 다시 생겨나는 곳이었다. 그가 백화점 문을 닫는다면거리에서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해실과 제단을박탈당한 독실한 신자들이 절망적으로 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P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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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연극배우에게 어느날 닥친 ‘재능의 죽음‘은 그를 재기 불능의 상태로 빠뜨린다.
이혼까지 하게되자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나온 그는 거짓말같이 시작된 사랑에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얼마안가 다시 혼자가 되어버리는데...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전락한 그의 마지막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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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20 15: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재능의 죽음이란 단어가 그냥 죽음보다 더 섬뜩한 느낌이에요. 딱히 재능이 없어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ㅎㅎ 미미님 주말 잘 보내세요 *^^*

청아 2021-11-20 15:46   좋아요 3 | URL
저도 이런 재능은 가져본적이 없어서 실감은 안났지만 대리경험은 역시 안전하기도 하고 문학의 최대 즐거움이죠~^^♡ 미니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새파랑 2021-11-20 16: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생을 사는것도 어떻게 보면 다 연기 아닌가란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 로스옹책은 다 자전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ㅋ

청아 2021-11-20 16:16   좋아요 3 | URL
새버스의 극장하고 유사한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별하나를 뺐어요ㅋㅋ새파랑님 리뷰 다 공감되고 좋아서 저는 요렇게 짧게 썼어요🤭

초딩 2021-11-21 1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추락인줄 알았어요 ㅎㅎ :-)
좋은 휴일 되세요~

청아 2021-11-21 11:45   좋아요 3 | URL
ㅋㅋㅋ제목 느낌이 비슷하죠? 초딩님도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
 

그를 그이게 만들어주었던 모든 것이 이제는 그를 미치광이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최악의 연기로 무대에 서 있다는 걸 매 순간 의식했다. 예전에는 연기할 때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의 훌륭한 연기는 본능에서 나온 것이었으니까. 이제 그는 온갖 생각을 했고, 거침없고활력 넘치던 모든 것이 죽어버렸다. 그런 것들을 생각으로 통제해보려 했는데, 오히려 파괴해버리고 말았다.  - P10

무대에 오르는 것이 두려워졌다. 시작신호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들으며 자신이 해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시작되는 순간의 해방감과 진짜 그 인물이 되는 순간을 기다렸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자신이 연기하는 바로 그 인물이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대신 완전히텅 빈 채, 자신이 뭘 하는지 모를 때나 할 법한 연기를 하면서 무대에 서 있었다. 그는 온전히 쏟아내지도 못했고, 자제하지도 못했다. 그의 연기에는 유려함도 없었고 절제도 없었다. - P12

자신이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누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에 그가 매료된 것은 서너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애초부터 자신이 연극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연기력이 떨어지는 배우는 목청만 높이지만, 그는 주의 깊게 듣고 집중하는 힘을 활용했다. 무대 밖에서도 그의 그런 능력은 힘을 발휘했다. 특히 그가 젊었을 때,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그녀들만의 이야기와 목소리,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그가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여자들과 상대할 때 그랬다. 그 여자들은 액슬러와 함께 여배우가 되었고, 자신들의 인생에서 여주인공이 되었다.  - P12

그는 케네디 센터에서 푸로스퍼로와 맥베스 를 연기해달라는요청을 받았다. 두 편에 동시에 출연하다니, 이보다 더 대단한 기회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그는 두 배역 모두 실패하고 말았는데, 특히 맥베스 역이 심했다. 그는 별로 격하지 않은 셰익스피어 작품도 잘해내지 못했고, 대단히 격한 셰익스피어 작품도 잘해내지 못했다. 평생 셰익스피어 작품을 해왔는데도, 그가 연기한 맥베스는 우스꽝스러웠고, 그의 연기를 본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으며, 보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까지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 사람들은 날 모욕하러 굳이 극장까지올 필요도 없는 거야." 그는 말했다.  - P13

무너져내리는 인물을 연기할 때 거기엔 체계와 질서가 있다.
그러나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지켜보는 건, 자신의 종말을 연기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일이다.
그는 스스로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자신이 푸로스퍼로 혹은맥베스라는 것을 납득시키지 못했듯 자신이 미쳤다는 것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 그는 미치광이로서도 가짜였다. 그가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은 어떤 역을 연기하는 역할뿐이었다.  - P14

 아침마다 그는 몇 시간씩 침대에 숨어 있곤 했는데, 그런 역할에서 숨는다기보다는 단순히 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살에 대한 게 전부였지만, 자살을 흉내내지는 않았다. 죽고 싶어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살고 싶은 남자였으니까.
- P15

한편 푸로스퍼로의 가장 유명한 대사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는데, 아마도 아주 최근에 그가 완전히 망친 대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어찌나 자주 되풀이되었던지, 완곡한 의미조차 없고 어떤 실재도 가리키지 않았음에도 그 대사는 얼마지나지 않아 개인적인 의미가 충만한 주문 같은 힘을 지닌 아우성이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의 잔치는 다 끝났다. 말한 대로 이배우들은 모두 정령이었다. 이제 다 흔적도 없이,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는 혼란스럽게 되풀이되는 "흔적도없이"라는 두 마디를 머릿속에서 도통 몰아내지 못한 채 아침 내내 침대에 무력하게 누워 있었고, 그 두 마디는 점점 의미를 잃어가면서도 뭔가 모호한 비난의 분위기를 띠었다. 그의 복잡한전인격全人格이 "흔적도 없이" 라는 말에 완전히 휘둘렸다.
- P16

지금 무엇이 그의 자신감을 파괴해버린 걸까? 그는 이 병실에서뭘 하고 있는 걸까? 전에는 존재한 적 없는 자기 희화화가 생겨났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자기 희화화, 그가 바로 자기 희화화자체인 이런 일이 어쩌다 일어났을까? 그저 흐르는 세월이 가져다준 쇠퇴와 몰락일 뿐인 걸까? 그저 노화의 징후일까?  - P19

파 박사는 매주 두 번있는 면담 시간에 액슬러에게, 박사 자신이 "보편적인 악몽"이라고 묘사한 증세가 갑자기 나타나기 이전에 액슬러의 삶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되짚어보라고 했다. "보편적인 악몽" 이라는 말은 곧, 이 배우가 극장에서 겪은 불운이, 즉 무대에 서긴 했으나연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실패에 충격을 받은 일이사이먼 액슬러처럼 전문 배우가 아닌 꽤 많은 사람들도 꾸는 스스로에 대한 뒤숭숭한 꿈의 내용이라는 의미였다. 무대에 서긴했으나 연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거의 모든 환자가 한 번쯤은털어놓는 흔해빠진 꿈의 유형에 속했다. 그런 꿈과,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의 대로를 알몸으로 걷는 꿈, 혹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었는데 준비를 전혀 못한 꿈, 혹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 - P20

고통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인간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기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마련이다. 설사 그 설명이 무엇 하나해명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한 또하나의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는사실을 알더라도.
- P21

몇몇은 자살을 시도했을 때 자신을 엄습한 느낌이 사이코패스가살인을 저지를 때 느낄 법한 쾌감과 유사했다고 묘사했다. 한 젊은 여자가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한테도 주변 모든 사람한테도무기력하고 완전히 무능한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세상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하기 어려운 걸 실행하기로 마음먹을 수있어요. 그게 기분을 돋워주죠. 기운나게 해주고요. 행복감도 느끼게 해줘요."  - P23

 "자살은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창작한 역할이에요." 그는 말했다. "우리는 그 글 안에 존재하면서 그 역을 연기하는 겁니다.
모든 게 신중하게 연출되지요. 자기 시신이 어디서 발견될 것인가, 어떻게 발견될 것인가." 그런 다음 덧붙였다. 단, 공연은 한번만 가능합니다."
- P24

"이보게." 제리는 말했다. "누구나 못하겠다‘는 느낌이 어떤건지 알고, 자신이 엉터리라는 게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어떤 건지도 알아. 배우라면 다들 느끼는 공포감이야. 사람들이알아채고 말았어. 들켰어. 까놓고 말해 나이가 들면 한 번쯤 패닉에 빠지는 게 사실이네. 난 자네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여러해 동안 그런 문제를 겪어왔네. 그중 하나가 갈수록 느려진다는걸세. 모든 면에서, 읽는 것조차 느려지지. 내가 지금 뭔가를 빠르게 읽는다면 아주 많은 부분을 기억 못할 걸세. 말하는 속도도느려지고 기억력도 느려지지.  - P45

장서에 둘러싸인 채 그는 그곳에 앉아, 등장인물이 자살하는 희곡들을 떠올려보았다. 「헤다 가블러의 헤다. ‘영애令愛 줄리‘의줄리, ‘히폴리투스‘의 파이드라, ‘오이디푸스 왕‘의 요카스테,
안티고네 의 거의 모든 인물들,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먼, 모두가 나의 아들의 조 켈러, 얼음장수 오다의 돈 패릿.
「우리 타운」의 사이먼 스팀슨, 「햄릿」의 오필리아, 오셀로의 오셀로, 「줄리어스 시저」의 카시우스와 브루투스, 리어 왕의 고너릴,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안토니, 클레오파트라, 이노바부스, 차미언, 「깨어나 노래하라!」의 할아버지, 「이바노프의 이바노프, 「갈매기」의 콘스탄틴, 이 놀라운 목록은 한때 그가 연기했던 작품들만 꼽은 것이었다. 더 많았다. 훨씬 더 많이 있었다.
- P48

 자살은 기원전 5세기 이래로 극작가들이 경외감을 가지고 숙고해온 주제다. 이 대단히 예외적인 행위를 고취할 수 있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닌 인간들이 매혹되어온 주제이기도 하고, 그는 이 작품들을 억지로라도 다시읽어봐야 한다. 그래, 소름끼치는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마주해야한다. 그 누구도 그가 이 문제를 충분히 숙고하지 않았다고 말할수 없도록.
- P49

그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던 일을떠올렸다. 그처럼 집중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것은 오랜만에 연기를 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건 어쩌면 그가 회복되는 데도 도움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랬다, 그는 그녀를,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그녀가 남편을죽여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기억했다.  - P51

영화에서는 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돌아다니지만, 그런 영화를 제작하는 이유는 관객의 99.9퍼센트가 사람을 죽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그것도 없애버리고 싶어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 정도로 어렵다면, 상상해보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성공하기란 얼마나 어렵겠는가. - P52

그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무적의 분위기를 풍겼고, 비록 원형은 선머슴 같은 말괄량이였지만, 배우인 어머니의 발성법을 본받기라도 한 듯 사람의 마음을 끄는 억양으로 말했다.
- P59

우린 늘 캠핑과 하이킹을 갔어요. 심지어 눈이 오는 날씨에도요. 매년 여름이면 알래스카 같은 데로 떠나 하이킹과 캠핑을 했죠. 재밌었어요. 뉴질랜드에도 가고 말레이시아에도 갔어요. 대담하게 전 세계를 함께 돌아다니는 게 난정말 좋았지만, 그런 우리에겐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었어요. 우린 두 명의 도망자 같았어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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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상위 0.2프로 안에 처음 들어가봅니다.
며칠전에 무심코 ‘당신의 기록‘ 눌렀다가 경악했어요.
6월에 나에게 무슨일이...
놀랍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이번에는 안올리려고 했는데 잠자냥님이 궁금해하셔서 올립니다. (상위 0.2프로라는 자체는 조금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요;; 다시는 이러고 싶지 않지만)

구매한만큼 읽는다면 저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합니다. (별일 없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분석을 해보자면 여름엔 제가 가계부를 안적은 탓도 있고 더위에 멘탈이 특히 취약해지는 탓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플친 여러분들 탓도ㅋ
여러분 여름에 저를 자극하지 말아주세요...

이 페이지는 갑자기 사라질 수 있습니다. 쉿!

여성학/젠더 비율이 커지는 것 같아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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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1-20 2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그래도 소비 중에 가장 남는 소비는 책에 소비하는 것이 아닐까요??^^;;

청아 2021-11-20 23:05   좋아요 2 | URL
라로님!!ㅋㅋㅋㅋ 내년에는 제가 자제할 예정이지만 100번 옳으신 말씀입니다~♡.♡

라로 2021-11-20 23:32   좋아요 3 | URL
아니에요,,,ㅠㅠ 저 이 댓글 달고 제 기록 보고 저런 댓글 단 것 후회했어요,,, 취소하고 싶습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남의 이야기 일 떄와 제 이야기 일 때가 다른;;;ㅠㅠ

scott 2021-11-22 2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내 댓글이 사라져 버렸네용
(•̥́_•ૅू˳)

청아 2021-11-22 21:45   좋아요 2 | URL
??(*Ꙩꙻ₀Ꙩꙻ)?스콧님 저는 지우지 않았어요!! 근데 귀여우심요♡ㅋㅋㅋㅋㅋ

scott 2021-11-23 00:35   좋아요 1 | URL
오! 섬세한 눈썹이 !
ᘏ▸◂ᘏ
꒰ ɞ̴̶̷ ·̮ ɞ̴̶̷ ꒱
저는 이런 속눈썹만 그릴 줄 알아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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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최초로 젠더 관점에서 주목한 사람들은 여자정신분석학자인 재닛 플래너와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다. 재닛플래너는 파팽 사건을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부르주아계층에 대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보부아르는 사건 30년이지난 후 자서전 《연륜의 힘 (La Force de Lage)》(1963)에서 이 사건을 회고하며 이 사건은 마녀재판이었고 파팽 자매는 "가해자인 동시에 희생자, 순교자"라고 평했다.- P144


두 자매는 한 가정에서 함께 하녀로 일하게 된다. 언니 크리스틴은 일을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하고 바느질에 뛰어난 소질이 있다. 동생 레아는 언니와 쌍둥이 처럼 닮았지만 매사 느린 대신 좀 더 사랑스러운 느낌을 풍기는지 자기 엄마에게도, 주인집 여자와 그녀의 딸에게도 더 예쁨받는다. 특히 엄마와 사이가 틀어진 언니 크리스틴은 집에도 찾아가려 하지 않을 정도로 엄마를 증오한다. 그녀는 동생과 돈을 모아 언젠가 농장을 갖게 될 날을 꿈꾸면서 난방도 되지 않는 배고프고 비참한 하녀 생활을 꿋꿋하게 견뎌 나간다. 안주인 마담 당자르는 흰 장갑을 끼고 이곳저곳의 먼지를 살피고 말이 아닌 눈빛으로 하녀들에게 일을 지시한다. 때로 상대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를 일부러 버려 줍게한다. 이에 비해 촌스러운 취향은 그녀의 갑작스런 지휘향상을 드러내고 그로인한 자격지심인지 하녀들 앞에서 교양있는 척 하려 애를 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마담 당자르와 하녀 크리스틴에게서 권위 혹은 주도권에의 욕망을 느꼈다. 마담 당자르는 파리지엔이 되고 싶어 그런 가사를 담은 노래를 즐겨 듣곤 하지만 하녀들의 인기척이 들리면 클래식으로 바꿔틀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그녀는 넘쳐나는 시간 때문에 무료함을 느끼는 동시에 이웃을 비롯한 타인의 시선에 적잖이 신경을 쓴다. 답답하고 지루한 날들을 벗어나 기분전환을 할 법한데 하녀들만 집안에 남겨두기 두려워 여행조차 가지 못할 정도로 소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밤중이면 은식기를 세어보는 그녀는 조용하고 불만없는 하녀들에게 만족하고 있지만 세세한 집안일까지 과도하게 신경쓰는 탓에 그들의 불안한 동거는 더욱 위태롭게 이어진다.  


반면 크리스틴은 어린시절 수녀원에서의 생활이 견디기 힘들어 여러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매번 엄마에게 잡혀 되돌아갔던 전적이 있다. 이후에 수녀가 되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엄마 때문에 좌절되는데 하녀로 일하며 엄마를 위한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던 그녀에게 완벽주의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확립하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 마담 당자르 밑에서 하녀로 일하며 얼마간 평화가 유지되었던 것은 마담이 부엌과 그들의 방에 들어가지 않는 등 크리스틴의 영역을 어느정도 존중해주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그들이 어느날 외출 후 갑작스레 집에 들렀을 때 상황은 급변하고 마담은 그 위태로운 선을 넘어선다.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감시하던 마담의 도발은 위태롭게 자신의 영역을 지켜가던 크리스틴 입장에서 돌이킬수 없는 분노로 이어져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마담 당자르의 눈은 보이지 않는 곳과 보이지 않는 것을모두 본다. 마담은 하녀를 감시하고, 딸을 감시한다. 마치 판옵티콘처럼 그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보고 있다. 벽으로 막힌 하녀 방 내부까지 꿰뚫어 본다. 그 방 안에서 자매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본다. 그래서 그날 밤 층계에서 크리스틴과 마주쳤을 때 자매들을 싸잡아 "쓰레기 같은 것들, 쓰레기 자매(Scum, Scum sisters) (15.63)라고 모욕한다.- P128


         판옵티콘



시선은 권력을 상징한다. 면접관들은 면접자들을 독자적으로 평가한다고 믿지만 실은 면접상황에서만은 면접자들도 면접관들을 관찰하고 어느정도 평가한다. 시선이 교환되는 상황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같이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머무는 상황에서 타인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싶어하지 않는 심리는 자리 선택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대부분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를 먼저 선점한다. 가장자리에서 사람들을 내 시선안에 둘 수 있는 자리는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당연하지만 상대적으로 노출된 자리는 불안하고 이는 빼앗긴 권력으로써 수치심과도 연결된다. 모자를 쓰거나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 쓰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차단되고 싶은 욕구의 반증이다.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이런 방법들을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바로 이것은 시선의 권력을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반증이다.    


복장 착용에는 드레스 코드의 법칙이 있어 신분의 엄중한 구별이 있다. 젠더별로도 여자는 여자 옷을 남자는 남자옷을 입게 되어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계층과 신분적 질서를 표시하기 위해 하녀들에게 유니폼을 입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녀는 주로 검은색상하의에 목과 소매에 하얀 깃을 달고 머리에는 하얀 머리띠나 캡을 썼으며 흰 앞치마를 입었다.- P137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임에 분명하지만 자매는 가난과 배고픔속에서 엄마와 주인들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한채 살았다. 그들에게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하녀들은 그들이 원하는 옷도 마음껏 입을 수 없었고 개성없는 무채색의 하녀복을 입고 주로 집안에서 생활해야 했다. 당시 집안에 하녀를 둘 수 있었던 부르주아 계층을 제외하면 주부들은 가사 노동으로 가정에 매일 수 밖에 없었고 그만큼 집안일이란 끝이 보이지 않는 일거리로 여자들을 숨막히게 했을 것이다. 하녀들은 재력을 가진 부인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맡긴 대리자들이다. 실제로 이들 자매는 12~14시간씩 일하며 주말 반나절에만 겨우 쉴 수 있었다. 주인 마담을 비롯해 결혼을 기다리는 그녀의 딸과 하녀들은 세상으로부터 배제된 여성들의 모습을 여실히 그려낸다. 이 작품에는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잠시 언급되는 사진사는 극에서도 목소리만으로 장면에 배치된다. 하지만 마담의 카드놀이에서 나타내듯 퀸을 이기는 것은 킹이고 자매의 범죄를 단죄하는 것도 남성들이다. 법정에서 자신의 판결앞에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 봐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 '이 집에 사는 내 언니'는 집안에 갇힌 채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한 여성들의 참담한 비극이었다.  


많은 연극(희곡)이 남자들의 이야기, 부자, 형제, 남자 사이(동료,적)의 관계를 다루는 데 반해 이 작품은 네 명의 여자를 다루는 희귀한 작품이라는 점, 그러면서 지배 피지배, 억압(성,젠더, 계급) 등 여자들의 모든 걸 담고 있고, 여자가 여자를공격하는 희소한 범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였다. - P142






*판옵티콘

판옵티콘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이 합성된 용어로,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의 형태이다. 교도소에서 중심에 위치한 감시자들은 외곽에 위치한 피감시자들을 감시할 수 있으나, 감시자들이 위치한 중심은 어둡게 되어 있어 피감시자들은 감시자들을 감시자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조차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렇게 되면 죄수들은 자신들이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결국은 죄수들이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후,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가 1975년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 Discipline and Punish》에서 현대의 컴퓨터 통신망과 데이터베이스가 마치 죄수들을 감시하는 ‘판옵티콘’처럼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한다고 지적하면서 사용하였다. 실제로, 미셀푸코의 지적처럼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전자주민카드 · 전자건강보험증서 등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각종 전자증서를 통해 저장되면서 권력기관이 사람들을 보다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는 현실에 우려가 제기되었다. 실제로 미국 국가안보국(NSA)가 PRISM을 이용한 대규모 감청이 이루어졌던 것이 밝혀지면서 판옵티콘이 이슈화 되었었다.

출처:시사경제용어사전, 2017. 11., 기획재정부


판옵티콘 참조 이미지 출처:https://blog.naver.com/diegesi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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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18 20: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시 희곡 시작 미미님~!! 잠자냥님 리뷰보고 읽고 싶었는데 먼저 읽으셨군요 ㅋ

청아 2021-11-18 21:00   좋아요 5 | URL
네! 주절주절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어요ㅋㅋ희곡은 멈춰선 안될것 같아요😳

mini74 2021-11-18 21: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미미님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예전엔 하녀들에게 스트라이프무늬 옷을 입혔다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 줄무늬는 벽지로 사용되었고 그들에게 하녀는 그냥 눈에 띄지 않게 벽지처럼 자유도 숨을 권리도 앖이 벽에 붙어 있는 존재ㅠㅠ미미님 리뷰 넘 좋아요. ㅎㅎ저번 제 2의 성에서 언급하신 자매이야기. 저도 읽고 싶어요 ㅎㅎ

청아 2021-11-18 21:05   좋아요 5 | URL
긴 글을 읽어봐주시다니 고맙습니다😍 마담과 딸이 나누는 얘기를 깜빡하고 못담았는데 제가 다 기분이 상하더라고요. 난방도 안되는데 담뇨좀 달라고 해도 무시하고ㅠㅠ 슬펐지만 역사공부도 되고 좋았어요ㅎㅎ😄

- 2021-11-18 21: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지? 파팽자매를 다루고 있는 영화일까요? 마침 건네주신 영화포스터도 그렇고 시선-권력 이라는 말에 셀린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생각납니다. 사실 그 영화를 보고나서 읽은 김혜리의 평론이 더 마음에 남아요. male gaze의 전복, 착취하지 않는 응시. 읽으면서 시선, 폭력, 여성 등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 연관 검색어처럼 생각나는 댓글을 주섬주섬 적어봅니다. 좋은 밤 되시기를!

청아 2021-11-18 21:57   좋아요 4 | URL
쟝쟝님을 대학때 담당 교수님으로 만났더라면 제 인생은 어땠을까요😎
댓글로도 늘 솔깃한 주제를 던져주시니 또 받아적습니다~♡ 리지는 책읽고 하녀관련한 영화로 찾았는데 파팽과는 관련없지만 역시 실화라고하네요. 쟝쟝님도 굿밤되세요🌹

coolcat329 2021-11-18 2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리뷰보고도 참 섬뜩하고 놀라웠는데 이렇게 다시 읽으니 좋네요. 글을 잘 쓰셔서 술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리지. 저 영화가 이 작품이었군요.

청아 2021-11-18 22:29   좋아요 3 | URL
감사해요 쿨캣님^^♡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인데요. <리지>는 제가 이 책 읽고나서 하녀관련한 다른 작품 찾다가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해서 같이 올림요ㅎㅎ

그레이스 2021-11-18 22: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
무시무시하죠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으로서의 시선!
그것을 푸코가 다시 현대사회의 감시와 통제의 개념으로 사용했죠!^^
눈에 보이는 그런 감옥에 있으면 미쳐버릴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권력은 잊고 산다는 것이 아이러니한듯요

청아 2021-11-18 23:05   좋아요 5 | URL
역시 그레이스님~^^*♡ 저는 어렴풋이 들어봤다가 이제야 좀 알게됐는데 갈수록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게 참 무섭고 걱정스러워요!
그리고 전 언제 푸코읽고 언제 벤담읽을지도 까마득하고요ㅋㅋㅋ

페넬로페 2021-11-18 23: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건을 담은 책을 읽고 또다시 이렇게 깊게 재해석 되는군요.
모든 행동은 그 원인이 있고 거기엔 또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있는거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청아 2021-11-18 23:46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 페넬로페님~♡ 어떤 책이나 그렇겠지만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것도 ,문제의 원인도 다 다를듯한 그런 작품이예요. 해설도 도움이 많이되었어요!😉

책읽는나무 2021-11-19 0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인데도 확실히 느낌이 다르네요?잠자냥님 서재에서 읽은 것과 또다른 느낌!!!^^
미미님이 지적하신 권력의 시선!!
좋은 지적이에요^^
판옵티콘!! 예전에 판옵티콘의 구조를 들었을 때 좀 섬뜩했었는데 정보기술의 발달로 지금도 우리가 감시받는 환경!! 그러네요~맞네요!!!
또 섬뜩!!!! 그래서 문자나 카톡등 한 번씩 조심스러울 때가 있더라구요^^
리지 영화도 한 번 챙겨봐야 겠네요!!^^
하녀 여자들의 삶이란...살인까지는 공감되진 않지만 그녀들의 힘든 심경은 마음 아픈...ㅜㅜ
잘 읽고 갑니다...이래서 제가 미미님께 늘 배우게 되는 거에요ㅋㅋㅋ
오늘 하루도 굿데이 하시구요^^

청아 2021-11-19 08:55   좋아요 3 | URL
감사해요 나무님^^♡
여성들이 집안에 갇혀서 권력의 시선을 욕망하는걸 좀 더 잘 마무리 지었어야하는데 중구난방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쭉 적다보니 마무리가 미흡한거같아요. 그래도 여러관점을 나눌수 있다는게 이 공간의 최대행복이고 장점이라 믿기에 부족한대로 뻔뻔하게 막 올리고 있습니다ㅋㅋㅋ리지는 저도 볼건데 재미있을지 모르겠어요. 파팽자매에 대한 일부 관점처럼 리지도 동성애까지 다루고있는 공통점이 있긴합니다 금요일 나무님 응원받아 파워업!!ㅋㅋㅋ나무님도 힘나는, 유쾌한 하루 되세요^^*♡

서곡 2022-12-17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리지 넷플에서 전에 본 영화인데요 페이퍼 잘 보았습니다

청아 2022-12-17 21:47   좋아요 1 | URL
서곡님 <리지>보셨군요! 책이랑 연결해서 볼만한 영화들이 많은듯 합니다.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읽기를 확장해주는 느낌이 좋아요^^*

서곡 2022-12-17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 잘 아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ㅎ 미미님 편안한 토욜밤 되세요!

청아 2022-12-17 23:27   좋아요 1 | URL
네ㅎㅎ 서곡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