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최초로 젠더 관점에서 주목한 사람들은 여자정신분석학자인 재닛 플래너와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다. 재닛플래너는 파팽 사건을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부르주아계층에 대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보부아르는 사건 30년이지난 후 자서전 《연륜의 힘 (La Force de Lage)》(1963)에서 이 사건을 회고하며 이 사건은 마녀재판이었고 파팽 자매는 "가해자인 동시에 희생자, 순교자"라고 평했다.- P144


두 자매는 한 가정에서 함께 하녀로 일하게 된다. 언니 크리스틴은 일을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하고 바느질에 뛰어난 소질이 있다. 동생 레아는 언니와 쌍둥이 처럼 닮았지만 매사 느린 대신 좀 더 사랑스러운 느낌을 풍기는지 자기 엄마에게도, 주인집 여자와 그녀의 딸에게도 더 예쁨받는다. 특히 엄마와 사이가 틀어진 언니 크리스틴은 집에도 찾아가려 하지 않을 정도로 엄마를 증오한다. 그녀는 동생과 돈을 모아 언젠가 농장을 갖게 될 날을 꿈꾸면서 난방도 되지 않는 배고프고 비참한 하녀 생활을 꿋꿋하게 견뎌 나간다. 안주인 마담 당자르는 흰 장갑을 끼고 이곳저곳의 먼지를 살피고 말이 아닌 눈빛으로 하녀들에게 일을 지시한다. 때로 상대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를 일부러 버려 줍게한다. 이에 비해 촌스러운 취향은 그녀의 갑작스런 지휘향상을 드러내고 그로인한 자격지심인지 하녀들 앞에서 교양있는 척 하려 애를 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마담 당자르와 하녀 크리스틴에게서 권위 혹은 주도권에의 욕망을 느꼈다. 마담 당자르는 파리지엔이 되고 싶어 그런 가사를 담은 노래를 즐겨 듣곤 하지만 하녀들의 인기척이 들리면 클래식으로 바꿔틀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그녀는 넘쳐나는 시간 때문에 무료함을 느끼는 동시에 이웃을 비롯한 타인의 시선에 적잖이 신경을 쓴다. 답답하고 지루한 날들을 벗어나 기분전환을 할 법한데 하녀들만 집안에 남겨두기 두려워 여행조차 가지 못할 정도로 소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밤중이면 은식기를 세어보는 그녀는 조용하고 불만없는 하녀들에게 만족하고 있지만 세세한 집안일까지 과도하게 신경쓰는 탓에 그들의 불안한 동거는 더욱 위태롭게 이어진다.  


반면 크리스틴은 어린시절 수녀원에서의 생활이 견디기 힘들어 여러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매번 엄마에게 잡혀 되돌아갔던 전적이 있다. 이후에 수녀가 되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엄마 때문에 좌절되는데 하녀로 일하며 엄마를 위한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던 그녀에게 완벽주의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확립하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 마담 당자르 밑에서 하녀로 일하며 얼마간 평화가 유지되었던 것은 마담이 부엌과 그들의 방에 들어가지 않는 등 크리스틴의 영역을 어느정도 존중해주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그들이 어느날 외출 후 갑작스레 집에 들렀을 때 상황은 급변하고 마담은 그 위태로운 선을 넘어선다.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감시하던 마담의 도발은 위태롭게 자신의 영역을 지켜가던 크리스틴 입장에서 돌이킬수 없는 분노로 이어져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마담 당자르의 눈은 보이지 않는 곳과 보이지 않는 것을모두 본다. 마담은 하녀를 감시하고, 딸을 감시한다. 마치 판옵티콘처럼 그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보고 있다. 벽으로 막힌 하녀 방 내부까지 꿰뚫어 본다. 그 방 안에서 자매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본다. 그래서 그날 밤 층계에서 크리스틴과 마주쳤을 때 자매들을 싸잡아 "쓰레기 같은 것들, 쓰레기 자매(Scum, Scum sisters) (15.63)라고 모욕한다.- P128


         판옵티콘



시선은 권력을 상징한다. 면접관들은 면접자들을 독자적으로 평가한다고 믿지만 실은 면접상황에서만은 면접자들도 면접관들을 관찰하고 어느정도 평가한다. 시선이 교환되는 상황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같이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머무는 상황에서 타인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싶어하지 않는 심리는 자리 선택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대부분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를 먼저 선점한다. 가장자리에서 사람들을 내 시선안에 둘 수 있는 자리는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당연하지만 상대적으로 노출된 자리는 불안하고 이는 빼앗긴 권력으로써 수치심과도 연결된다. 모자를 쓰거나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 쓰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차단되고 싶은 욕구의 반증이다.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이런 방법들을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바로 이것은 시선의 권력을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반증이다.    


복장 착용에는 드레스 코드의 법칙이 있어 신분의 엄중한 구별이 있다. 젠더별로도 여자는 여자 옷을 남자는 남자옷을 입게 되어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계층과 신분적 질서를 표시하기 위해 하녀들에게 유니폼을 입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녀는 주로 검은색상하의에 목과 소매에 하얀 깃을 달고 머리에는 하얀 머리띠나 캡을 썼으며 흰 앞치마를 입었다.- P137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임에 분명하지만 자매는 가난과 배고픔속에서 엄마와 주인들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한채 살았다. 그들에게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하녀들은 그들이 원하는 옷도 마음껏 입을 수 없었고 개성없는 무채색의 하녀복을 입고 주로 집안에서 생활해야 했다. 당시 집안에 하녀를 둘 수 있었던 부르주아 계층을 제외하면 주부들은 가사 노동으로 가정에 매일 수 밖에 없었고 그만큼 집안일이란 끝이 보이지 않는 일거리로 여자들을 숨막히게 했을 것이다. 하녀들은 재력을 가진 부인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맡긴 대리자들이다. 실제로 이들 자매는 12~14시간씩 일하며 주말 반나절에만 겨우 쉴 수 있었다. 주인 마담을 비롯해 결혼을 기다리는 그녀의 딸과 하녀들은 세상으로부터 배제된 여성들의 모습을 여실히 그려낸다. 이 작품에는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잠시 언급되는 사진사는 극에서도 목소리만으로 장면에 배치된다. 하지만 마담의 카드놀이에서 나타내듯 퀸을 이기는 것은 킹이고 자매의 범죄를 단죄하는 것도 남성들이다. 법정에서 자신의 판결앞에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 봐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 '이 집에 사는 내 언니'는 집안에 갇힌 채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한 여성들의 참담한 비극이었다.  


많은 연극(희곡)이 남자들의 이야기, 부자, 형제, 남자 사이(동료,적)의 관계를 다루는 데 반해 이 작품은 네 명의 여자를 다루는 희귀한 작품이라는 점, 그러면서 지배 피지배, 억압(성,젠더, 계급) 등 여자들의 모든 걸 담고 있고, 여자가 여자를공격하는 희소한 범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였다. - P142






*판옵티콘

판옵티콘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이 합성된 용어로,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의 형태이다. 교도소에서 중심에 위치한 감시자들은 외곽에 위치한 피감시자들을 감시할 수 있으나, 감시자들이 위치한 중심은 어둡게 되어 있어 피감시자들은 감시자들을 감시자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조차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렇게 되면 죄수들은 자신들이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결국은 죄수들이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후,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가 1975년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 Discipline and Punish》에서 현대의 컴퓨터 통신망과 데이터베이스가 마치 죄수들을 감시하는 ‘판옵티콘’처럼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한다고 지적하면서 사용하였다. 실제로, 미셀푸코의 지적처럼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전자주민카드 · 전자건강보험증서 등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각종 전자증서를 통해 저장되면서 권력기관이 사람들을 보다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는 현실에 우려가 제기되었다. 실제로 미국 국가안보국(NSA)가 PRISM을 이용한 대규모 감청이 이루어졌던 것이 밝혀지면서 판옵티콘이 이슈화 되었었다.

출처:시사경제용어사전, 2017. 11., 기획재정부


판옵티콘 참조 이미지 출처:https://blog.naver.com/diegesi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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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18 20: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시 희곡 시작 미미님~!! 잠자냥님 리뷰보고 읽고 싶었는데 먼저 읽으셨군요 ㅋ

청아 2021-11-18 21:00   좋아요 5 | URL
네! 주절주절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어요ㅋㅋ희곡은 멈춰선 안될것 같아요😳

mini74 2021-11-18 21: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미미님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예전엔 하녀들에게 스트라이프무늬 옷을 입혔다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 줄무늬는 벽지로 사용되었고 그들에게 하녀는 그냥 눈에 띄지 않게 벽지처럼 자유도 숨을 권리도 앖이 벽에 붙어 있는 존재ㅠㅠ미미님 리뷰 넘 좋아요. ㅎㅎ저번 제 2의 성에서 언급하신 자매이야기. 저도 읽고 싶어요 ㅎㅎ

청아 2021-11-18 21:05   좋아요 5 | URL
긴 글을 읽어봐주시다니 고맙습니다😍 마담과 딸이 나누는 얘기를 깜빡하고 못담았는데 제가 다 기분이 상하더라고요. 난방도 안되는데 담뇨좀 달라고 해도 무시하고ㅠㅠ 슬펐지만 역사공부도 되고 좋았어요ㅎㅎ😄

공쟝쟝 2021-11-18 21: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지? 파팽자매를 다루고 있는 영화일까요? 마침 건네주신 영화포스터도 그렇고 시선-권력 이라는 말에 셀린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생각납니다. 사실 그 영화를 보고나서 읽은 김혜리의 평론이 더 마음에 남아요. male gaze의 전복, 착취하지 않는 응시. 읽으면서 시선, 폭력, 여성 등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 연관 검색어처럼 생각나는 댓글을 주섬주섬 적어봅니다. 좋은 밤 되시기를!

청아 2021-11-18 21:57   좋아요 4 | URL
쟝쟝님을 대학때 담당 교수님으로 만났더라면 제 인생은 어땠을까요😎
댓글로도 늘 솔깃한 주제를 던져주시니 또 받아적습니다~♡ 리지는 책읽고 하녀관련한 영화로 찾았는데 파팽과는 관련없지만 역시 실화라고하네요. 쟝쟝님도 굿밤되세요🌹

coolcat329 2021-11-18 2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리뷰보고도 참 섬뜩하고 놀라웠는데 이렇게 다시 읽으니 좋네요. 글을 잘 쓰셔서 술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리지. 저 영화가 이 작품이었군요.

청아 2021-11-18 22:29   좋아요 3 | URL
감사해요 쿨캣님^^♡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인데요. <리지>는 제가 이 책 읽고나서 하녀관련한 다른 작품 찾다가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해서 같이 올림요ㅎㅎ

그레이스 2021-11-18 22: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
무시무시하죠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으로서의 시선!
그것을 푸코가 다시 현대사회의 감시와 통제의 개념으로 사용했죠!^^
눈에 보이는 그런 감옥에 있으면 미쳐버릴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권력은 잊고 산다는 것이 아이러니한듯요

청아 2021-11-18 23:05   좋아요 5 | URL
역시 그레이스님~^^*♡ 저는 어렴풋이 들어봤다가 이제야 좀 알게됐는데 갈수록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게 참 무섭고 걱정스러워요!
그리고 전 언제 푸코읽고 언제 벤담읽을지도 까마득하고요ㅋㅋㅋ

페넬로페 2021-11-18 23: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건을 담은 책을 읽고 또다시 이렇게 깊게 재해석 되는군요.
모든 행동은 그 원인이 있고 거기엔 또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있는거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청아 2021-11-18 23:46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 페넬로페님~♡ 어떤 책이나 그렇겠지만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것도 ,문제의 원인도 다 다를듯한 그런 작품이예요. 해설도 도움이 많이되었어요!😉

책읽는나무 2021-11-19 0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인데도 확실히 느낌이 다르네요?잠자냥님 서재에서 읽은 것과 또다른 느낌!!!^^
미미님이 지적하신 권력의 시선!!
좋은 지적이에요^^
판옵티콘!! 예전에 판옵티콘의 구조를 들었을 때 좀 섬뜩했었는데 정보기술의 발달로 지금도 우리가 감시받는 환경!! 그러네요~맞네요!!!
또 섬뜩!!!! 그래서 문자나 카톡등 한 번씩 조심스러울 때가 있더라구요^^
리지 영화도 한 번 챙겨봐야 겠네요!!^^
하녀 여자들의 삶이란...살인까지는 공감되진 않지만 그녀들의 힘든 심경은 마음 아픈...ㅜㅜ
잘 읽고 갑니다...이래서 제가 미미님께 늘 배우게 되는 거에요ㅋㅋㅋ
오늘 하루도 굿데이 하시구요^^

청아 2021-11-19 08:55   좋아요 3 | URL
감사해요 나무님^^♡
여성들이 집안에 갇혀서 권력의 시선을 욕망하는걸 좀 더 잘 마무리 지었어야하는데 중구난방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쭉 적다보니 마무리가 미흡한거같아요. 그래도 여러관점을 나눌수 있다는게 이 공간의 최대행복이고 장점이라 믿기에 부족한대로 뻔뻔하게 막 올리고 있습니다ㅋㅋㅋ리지는 저도 볼건데 재미있을지 모르겠어요. 파팽자매에 대한 일부 관점처럼 리지도 동성애까지 다루고있는 공통점이 있긴합니다 금요일 나무님 응원받아 파워업!!ㅋㅋㅋ나무님도 힘나는, 유쾌한 하루 되세요^^*♡

서곡 2022-12-17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리지 넷플에서 전에 본 영화인데요 페이퍼 잘 보았습니다

청아 2022-12-17 21:47   좋아요 1 | URL
서곡님 <리지>보셨군요! 책이랑 연결해서 볼만한 영화들이 많은듯 합니다.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읽기를 확장해주는 느낌이 좋아요^^*

서곡 2022-12-17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 잘 아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ㅎ 미미님 편안한 토욜밤 되세요!

청아 2022-12-17 23:27   좋아요 1 | URL
네ㅎㅎ 서곡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