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너무나 재미난 풍자소설을 읽었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세간의 주목을 잔뜩 받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당대 한가닥하던 소설가를 콕 찝어 묘사했기 때문이다. 풍자그림을 그려놓고 말풍선에 내부고발을 잔뜩 써놨는데 인물 그림이 하필 누구누구를 닮아도 너무 닮은 거지.


작가 서머싯 몸은 문단의 현실과 성공한 작가의 사회적 굴레를 가감없이 표현했다. 특히 작품 속에서 이른바 '거장'으로 묘사되는 '에드워드 드리필드'라는 노작가는 '토마스 하디'를 묘사했다고 알려지고 있고 실력보단 인맥과 활발한 처세술로 명맥을 유지하는 동료 작가' 앨로이 키어'로 등장하는 인물은 서머싯 몸의 20년 지기인 작가 '휴 월폴'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연히 당사자인 '휴 월폴'은 이 소설을 읽자마자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 문장을 보고 나는 한참을 웃었다.


월폴은 <케이크와 맥주>를 받아 든 첫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공포감이 점점 커져 갔다. 그것은 누가 봐도 나의 초상화였다." p.299,작품해설


'토마스 하디'를 표현했다는 작품 속 노 작가 '드리필드'는 여러 노동직을 전전한 끝에 작가가 되어 계급과 출신을 중시하던 블렉스터블이라는 지역에서 그닥 대우받지 못했다. 게다가 자유분방한 성향인 그의 아내 로지는 술집에서 일했고 문란했던 과거 때문에 더욱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당시 어린 학생이었던 서머싯 몸의 작중 캐릭터 어셴든과 이들은 자전거를 시작으로 한동안 즐겁게 어울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부부는 주변에 잔뜩 외상을 진 체로 야반도주를 해버린다. 이후 노 작가는 꾸준히 작품을 쓰다가 70쯤 되어서야 트러퍼드 부인의 후원으로 작가로써 명성을 얻게 된다.     


작가의 삶이란 가시밭길이다. 우선 가난과 세상의 냉대를 견뎌야 한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나서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대중에 휘둘린다.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인터뷰를 하려는 신문 기자들,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 원고를 달라는 편집자들, 소득세를 긁어 가는 세금 징수원들, ...(후략)- P294


'왕관을 쓴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던가 무명에서 '거장'으로 신분상승을 이루었지만 후원자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노작가의 삶은 그리 자유롭게 보이지 않는다. 또 유명세 만큼이나 비판도 거세져 작품활동의 자율성마저 침해받는 듯 느껴지는데 이런 여러요인과 작가 스스로의 고뇌등 명성있는작가의 굴레를 서머싯 몸은 이 책에 잘 담아냈다. 상대적으로 남들에게 비판받을 지언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어나가는 노작가의 첫 아내 로지의 삶은 독자에게 생각꺼리를 던져준다.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그런면에서 로지로 표현되는' 단순한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인데 문학 작품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최초로 등장한다.' - P299



예나 지금이나 참 안된것이 정치인들은 막말은 물론 바보같은 소릴 잔뜩 늘어놓아도 대게는 그들이 원래 그런 작자들이거니 하고 잠시 욕을 하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작 할말은 더 많을듯한 작가들은 대체로 그렇질 못한데, 그래서 일까 정치인들은 가장 장수하는 직업1위이고 작가들은 가장 단명하는 직업1위라는 통계가 있다고도 한다. 물론 비난을 감수하고 쓴소리 별소리 다하는 작가들도 드물게는 있다. 서머싯 몸은 이 책에서 냉소적이지만 직설적이고 날카롭게 성공한 작가를 '만들어내는' 대중과 평단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아마 이런 시원시원한 성격탓에 그도 역시 99세까지 장수하지 않았을까. 조만간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를 읽어봐야겠다.


하지만 작가는 한 가지 보상을 얻는다. 뭔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괴로운 기억,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 짝사랑, 상처받은 자존심, 배은망덕한 인간에 대한분노,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는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P295










  

  

  





서머싯 몸의 20년지기 휴 S.월폴의 작품이 포함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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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17 11: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토마스 하디˝ 작품을 아직 안 읽어봤는데 읽어봐야 겠습니다. <더버빌가의 테스> 중고로 사놓고 방치중임 ㅜㅜ ˝토머스 하디˝를 잘 모르더라도 작품 자체가 재미있더라구요 ㅋ

청아 2022-01-17 11:10   좋아요 2 | URL
저도 <테스>워낙 어릴때 읽어서 다시 보려고요. 새파랑님 리뷰 지금 다시 제대로 읽어봤어요ㅋ<인간의 굴레에서>도 클리어하셨네요.역시! 저는 그 작품을 맨 마지막에 읽어볼까해요^^

새파랑 2022-01-17 11:15   좋아요 3 | URL
제가 예전에 유명한 작가 책은 한편씩은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문어발식으로 읽었어요 ㅋ <인간의 굴레에서>는 읽다보면 좀 화가나실 수 있어요ㅋ

청아 2022-01-17 11:17   좋아요 3 | URL
아주 바람직한 문어발입니다ㅋㅋㅋ

Falstaff 2022-01-17 12:22   좋아요 6 | URL
테스, 비추....잉글랜드를 정복한 충청도 사투리의 위용은 읽어볼 만함.
이름없는 주드, 추천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강추

Falstaff 2022-01-17 12:25   좋아요 4 | URL
참고. 제임스 미치너가 뽑은 과대 평가된 영국 소설가 4인방.
윌리엄 셰커리, 찰스 디킨스, 토마스 하디, 존 골즈워디
제임스 미치너가 아니라 제임스 미친놈.....이 맞음. ㅋㅋㅋㅋ

청아 2022-01-17 12:30   좋아요 0 | URL
오 추천 감사해요!! 골드문트님~♡♡

청아 2022-01-17 12:33   좋아요 2 | URL
저는 작품 속 ‘거장‘ 추측했을때 배경지식이 워낙없어서 스콧 피츠제럴드인줄 알았어요ㅋㅋ

Falstaff 2022-01-17 12:4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서머싯 몸이 나이가 은근히 많아요. 조선이 개항하기도 전인 1874년생인데요, 스콧 핏제럴드는 홀아비가 된 고종이 자기도 일본 깡패들한테 칼 맞아 죽을까 싶어 어마 뜨거라 하고 아라사 대사관으로 몸을 피한 아관파천의 해 1896년 생입니다.

scott 2022-01-18 00:36   좋아요 1 | URL
두분 만일 막!장을 사릉하쉰다면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사알 짝 추천 ^0^

mini74 2022-01-17 11: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에서 발견하는 내 모습이라니 ㅎㅎ서머싯 몸 용감하네요. 월폴은 몸과 절교하지 않았나요 ㅎㅎ미미님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새파랑님에 이어 미미님까지 읽으셨다니 저도 어여 찾아서 읽어야 할텐데 ㅎㅎ 작가의 굴레. ㅎㅎ 제목에 빵 터졌어요 ~

청아 2022-01-17 11:21   좋아요 4 | URL
정말 많이 웃었어요! 너무 솔직해서 제가 불안할 지경이었는데 당시 반응이 이해가 되더라고요ㅎㅎㅎ지금도 이런 작가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내부고발 넘 좋아요ㅎㅎ🥰

그레이스 2022-01-17 1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몸의 장수비결 때문에 입꼬리 올라갔어요 ㅋㅋ

청아 2022-01-17 12:09   좋아요 3 | URL
장수해서 책 오래 읽으려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1-17 12: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작가들이 단명의 1순위이지만 99세의 장수를 했던 작가라면?? 음.....왠지 인물상이 떠올려질 법 합니다ㅋㅋㅋ
이 책도 작년에 진짜 많이 봐 온 책이긴 합니다.
읽고 있는 책들이 너무 많아 이젠 읽어봐야 겠네요!란 말도 못하겠어요ㅜㅜ
언제 읽게 될까요? 일단 책 제목만이라도 읽고 갑니다^^

청아 2022-01-17 12:12   좋아요 4 | URL
저도 작년에 읽어보겠다고 했던 책이 대체 몇권인지 감도 못잡겠어요ㅋㅋㅋ올해도 그러고 있습니다ㅋㅋ 작가들 얘기가 담겼다고해 솔깃해서 읽어본건데 아주 흡족했어요! 제목만 눈여겨 봐두시는것도 좋죠^^♡

건수하 2022-01-17 12: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몸을 읽은 적 없다 생각했는데 <인생의 베일>을 읽었더란…. <달과 6펜스>부터 읽어봐야지 했는데. <케이크와 맥주>도 궁금해지네요. <십이야>가 나오나요? :)

청아 2022-01-17 12:50   좋아요 3 | URL
네! 이 책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가 셰잌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서 처음 등장했대요^^* 해설에 나온얘기예요.ㅎㅎ 재밌게 읽었어요~♡

페넬로페 2022-01-17 13:1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읽는 독자에겐 몸의 신랄함이 통쾌했지만 동료의 입장에서는 많이 당혹스러웠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너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느냐‘라는 질문도 받을 수 있을듯 하기도 해요 ㅋㅋ
정치가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 작가들도 드리필드처럼 끝까지 계속 쓰라는 몸의 주문은 의미심장했어요.
단명하는 작가가 너무 많은 현실에 던지는 메세지같기도 하고요^^

청아 2022-01-17 13:30   좋아요 7 | URL
네 ^^♡ 그래서 몸이 나중에 친구를 달래주었나봐요ㅋㅋㅋ쓰면서 자유인이 된다는 말에 일기도 좀 더 열심히 쓰자 이번에 마음먹었어요ㅋㅋ

scott 2022-01-18 00:3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인간 <모옴>은 정말 싫고
작가 <모옴>은 매력 없고,
정보요원MI5<모옴>은 무능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재밌게 읽혀지능 ^ㅅ^

청아 2022-01-18 04:34   좋아요 3 | URL
모옴도 정보요원이었군요!! 이 책 뒷표지 사진의 눈빛이 어쩐지 예사롭지 않았어요^^

leepapggot 2022-01-23 0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문장이 무겁다고 느껴지네요.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일까‘의문이 드는 말입니다. 써야만 하는 숙명인거죠. 학창 시절에 읽었던 서머셋 모음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케이크와 맥주>는 일단 제목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청아 2022-01-23 09:37   좋아요 0 | URL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는 말씀처럼 여러 각도에서 달리 생각할 수 있는 말인듯 해요.^^* 좋은 문장,깊이있는 문장이 많아 저도 좀 더디게 읽은 부분도 있었는데 중간의 이야기는 잘 넘어가더라구요. 저도 모옴의 작품을 다 읽어보고싶어요!
 

숙부의 부목사가 오랫동안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최고 소설가로 인정받고 있는 작가를 아랫사람처럼 대하던 것을 생각하면 실소가 터질 일이지만 당시 블랙스터블에서는 대부분 그를 그렇게 대접했다.  - P119

그녀는 인컴 부인으로 몸집이 작고주름진 얼굴이 진지한 여자였다. 짧게 자른 반백의 머리와 앞코가 네모난 부츠 상단까지만 덜렁 내려온 검은색 서지 치마에 우리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블랙스터블에 등장한 신여성의 첫 사례였다.우리는 휘청하고는 즉시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녀가 풍기는 지성인의 면모에 우리 자신이 부그럽게 느껴졌다. - P120

드리필드 부인은 카드놀이에 천부적 재능이 있었다. 평소행동이 신중한 그녀가 카드놀이만 하면 신속하고 기민했다.
머리싸움에서 나머지 우리를 능가했다. 평소에는 말이 많지않고 말투도 느렸는데 한 판이 끝나고 좋은 뜻에서 내 실수를지적할 때는 말이 명료하고 유려했다. 조지 경은 모두에게 그러듯 그녀도 놀려 먹었다. 그녀는 소리 내어 웃는 일이 좀체없었기 때문에 그의 우스갯소리에 그저 미소를 지었고 가끔씩 깔끔하게 받아쳤다. 그들은 애인이라기보다 허물없는 친구처럼 행동했다. 
(반전매력) - P126

하절기 역사 과목 우등상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방학에는 잉글랜드의 역사를 열심히 파 볼 생각이었다.  - P129

평론가는 형편없는 작가에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있고 세상은 전혀 가치 없는 자에게 열광할 수 있지만 두 경우 모두 오래가지는 못한다. - P138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숙고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키츠가 쓴 시 엔디미온」의 첫 구절을 보면 키츠보다 더한 거짓말을 한 시인은없을 듯하다. 

아름다운 것이 마법 같은 감성을 불러일으킬 때마다 내 마음은 즉시 방황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어떤 풍광이나 그림을 몇 시간씩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황홀감이고 배고픔만큼이나 단순하다. 이러쿵저러쿵 떠들 만한 거리가 아닌 것이다. 장미 향기와 같아서 한번 냄새를 맡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것이 예술 비평이 지루한 이유다. 
- P141

세상의 모든 그림
들 중에서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할 만한 티치아노의 『그리스도의 매장에 대해 모든 평론가들은 그저 가서직접 보라고 말하면 된다. 그것 말고 더 할 말이 있다면 역사나 전기 정도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다른 특성들 - 숭고함, 인간적 관심, 부드러움, 사랑 ㅡ 을 덧붙인다. 아름다움이 그들을 오래 만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완벽하지만 완벽함은 (인간의 본성상) 사람들의 주의를 참시 잡아 둘 뿐이다.  - P142

어느 수학자가 「페드르』를 보고 나서
"케스크 사 프루브?"(그게 어쨌다는 거요?) 하고 물었다면 그가 아무리 평소 어리숙해 보였다고 해도 그리 바보는 아니다. 파에스툼에 있는도리아 양식의 신전이 시원한 맥주 한 잔보다 더 아름다운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름다움과무관한 것들을 끌어댄다면 모를까. 아름다움은 막다른 골목이고, 한번 도달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산봉우리다. 그것이 우리가 티치아노보다 엘 그레코에, 라신의 완전한 대작보다 셰익스피어의 불완전한 업적에 도취하는 이유다.  - P142

 마흔 살에 정치인이었던 사람이 일흔살이 되면 정치 거물이 된다. 너무 늙어 점원도 정원사도 즉결 심판 치안 판사도 못 하는 나이가 되어서야 한 나라를 다스릴 만큼 성숙해진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예로부터 노인들은그들이 젊은이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젊은이들을 끊임없이 세뇌했고, 젊은이들은 그것이 허튼소리임을 깨달을 즈음엔 이미늙은이가 되어 그 기만적 행태에 편승해 이익을 봐 왔다. 또한 정치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치고 국가를 다스리는 데 별다른 지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결과만 봐도 판단이 가능하다.)
🐯🐯🐯🐯🐯 - P144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 P144

"신사와 작가 노릇을 동시에 하는 건 어려운 일이야."
- P156

로지 드리필드가 남편에게 대단히 해로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에이미의 입장이야.
남편에게 도덕적으로,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타격이 될 만한 짓은 모두 했다는 거야. 로지는 모든 면에서, 특히 지적으로나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편보다 열등한 여자였는데, 그럼에도 그분이 생존했던 것은 순전히 그분의 엄청난 저력과 활력덕분이었다는 거지. 첫 번째 결혼이 아주 불행했다는 건 분명해. 여자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는데 해묵은 추문을 들쑤시며남부끄러운 속사정을 내보이는 건 꼴사나운 일 아니겠나. 하지만 드리필드의 모든 명작들이 그 여자와 같이 살 때 쓰였다.
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 P158

할 말이 전혀 없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답이 궁재는 그저 입을 다루는 것이 언제나 상책이다. 나는 침묵하면서 로이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 P160

마리 로이드(코미디언 겸 뮤지컬 배우)에 대해 한 말은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난 그 여자가 참좋더라고요. 어찌나 사람을 웃기는지 말이야. 끝장을 낼 것처럼 덤비지만 막상 선을 넘지는 않잖아요."  - P166

이 방에 살면서부터 지나온 세월과 그동안 내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아려 왔다. 바로 이 탁자에서 푸짐한 아침밥을 먹고, 소박한 저녁 식사를 하고, 의학 서적을읽고, 첫 작품을 썼다. 이 팔걸이의자에 앉아서 처음으로 워즈워스와 스탕달, 엘리자베스 시대의 희곡, 러시아 소설, 기번,
보즈웰, 볼테르, 루소를 읽었다. 이후 어떤 사람들이 썼을까?
- P171

나의 일상은 아주 규칙적이었다. 온종일 병원에 있다가 6시쯤 걸어서 빈센트 스퀘어로 돌아왔고, 램버스 브리지에서 사 온 《스타》를 읽다가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왕성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청년답게교양서를 한두 시간 진지하게 읽었다. 그 후에는 소설과 희곡을 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 P173

만약 신분이 높은 사람이 예술가 계층과 어울린다면 대개는 망신스러운 이혼이나 경미한카드놀이 도박 문제로 원래의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된 경우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의무 교육이세상에 가져온 가장 큰 혜택 가운데 하나는 귀족과 신사 계층에 글쓰기를 보급한 것이다.  - P180

아무래도 소설은 백작의 전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미 이 어려운 기술에 상당한 소질을 발현해 왔고, 인원수도 아주 많아서 소설의 수요를 능히 충족할것이다. 후작에게는 문학 분야 가운데 이른바 (왜 이렇게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순수 문학의 생산을 맡기면 좋을 것이다.
순수 문학은 금전적 측면에서는 별 이득이 되지 못하겠지만 그것의 명예는 이 낭만적인 작위와 아주 잘 어울린다.
- P181

문학의 황제는 시(時)다. 시는 문학의 궁극이자 지향점이다.
인간의 정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활동이다. 아름다움의성취다. 시인이 지나가면 산문 작가는 길을 비켜 주어야 한다.
최고의 소설가도 시인 앞에서는 애송이일 뿐이다. 그러므로시를 짓는 일은 공작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권리는 엄벌과 벌금으로 보호될 것이다. 가장 고귀한 신분 외에 다른 자가 가장 고귀한 예술을 행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짓이니까.  - P181

"언제 완성됩니까?"
"완성된 거야." 그가 대답했다.
나는 얼굴을 벌겋게 붉혔다. 천하의 바보처럼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현대 화가들의 작품에 자유자재로 대응하는 요령을 아직 터득하기 전이었다. 지금은 예술에 대해 잘몰라도 화가를 만족시킬 각종 창의적인 반응들이 깔끔하게정리된 얇은 안내서 하나쯤 이 자리에서 당장 쓸 수도 있다.

"세상에!" 하는 감탄사는 철저한 사실주의자의 역량을 인정하는 말이고, "지독히 진실하군요."는 부시장 미망인의 컬러 사진이 눈앞에 불쑥 나타났을 때 당혹감을 감추기에 좋은 말이다. 후기 인상파를 칭찬하고 싶으면 슬쩍 낮은 휘파람을 불고,입체파에게는 "지독히 재밌군요."라는 말을 던지고, 압도되는경우에는 "오!"를,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매료되면 "아!"가 좋다.

그때 나는 "완전히 똑같네요" 하는 변변찮은 말만 겨우 했을 뿐이었다.
- P197

얼마 전 나는 《이브닝 스탠더드》에 실린 에벌린 워 씨의 글을 읽었다. 그는 이 글에서 일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는 것은경멸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말을 남겼다. - P210

그의 조언에 따라 퍼시 러벅 씨의 <소설의 기술>을 읽었는데 소설을 쓰려면 오직 헨리 제임스처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 E. M. 포스터 씨의 <소설의 면면>을 읽었더니 소설은 오직 E. M. 포스터처럼 써야할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에드윈 뮤어 씨의 『소설의 구조」를 읽었지만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했다. 

그 책들에서는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대에는 유명했으나 지금은 확실히 시들해진 디포, 스턴, 새커리, 디킨스, 에밀리 브론테, 프루스트 같은 소설가들이 왜 에벌린 워 씨가 비난하는일인칭 시점을 사용했는지 그 이유를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 P210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복잡성과 변덕, 부조리를 더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이것은 중년이나 노년의 작가들이 더 진중한 주제로 생각을 돌려야 마땅함에도 가상 인물의 사소한관심사에 몰두하는 유일한 변명이 되곤 한다. 인류에 대한 올바른 연구는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 맞다면 현실의 불합리하고 모호한 인물보다는 일관되고 견고하며 의미가 있는 가공인물에 전념하는 것이 더 현명하기 때문이다. 

가끔 소설가는자신을 신처럼 생각하고 작중 인물에 대해 모든 걸 이야기하려 들 때가 있지만, 반면에 작중 인물에 대한 모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것만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걸 점점 더 의식하기 마련이니 작가가 경험으로 체득한 것 이상은 쓰지 않으려 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일인칭 시점은 이 제한된 목적에 한해 대단히유용하다.
🐯🐯🐯🐯🐯 - P211

64) 자기 자신을 알고 신처럼 모든 것을 알려 하지 말라는,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인간론』에서 인용한 말.
- P211

"그렇게 가게 두시면 안 되죠." 바턴 트래퍼드 부인이 말했다. "그런 상태에서는 템스강에 몸을 던졌을 수도 있어요."
"나도 그 생각은 했지만 그가 강 쪽으로 달려가지 않고 우리가 걸어온 동네의 지저분한 길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어요.
작가가 작품을 쓰다 말고 자살한 사례는 역사상 찾아볼 수가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떤 고난이 닥쳐도 미완성인 작품을 후세에 남기고 싶지는 않은 법이거든요."
🐯🐯🐯🐯🐯 - P236

남들에게 보이는얼굴은 가면이었고 그의 행위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실체는 죽을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독한 존재였고, 그의 작품을쓰는 작가와 그의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 사이를 조용히 오가는 유령이 아니었을까.  - P272

문체는 생략의 기술이라고 하지 않던가?
- P278

작가의 삶이란 가시밭길이다.
우선 가난과 세상의 냉대를 견뎌야 한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나서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대중에 휘둘린다.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인터뷰를 하려는 신문 기자들,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 원고를 달라는 편집자들, 소득세를 긁어 가는 세금 징수원들, ...

🐯🐯🐯🐯🐯🐯🐯 - P294

하지만 작가는 한 가지 보상을 얻는다. 뭔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괴로운 기억,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 짝사랑, 상처받은 자존심, 배은망덕한 인간에 대한분노,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는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 - P295

처세술로 성공한 작가 앨로이 키어의 원형은 서머싯 몸의이십 년 지기 친구였던 소설가 휴 월폴로 추정되고 있다. 월폴은 『케이크와 맥주를 받아 든 첫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공포감이 점점 커져 갔다. 그것은 누가 봐도 나의 초상화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일기에 적기를 "몸이 그려 낸 출세 지향적인 문인의 초상은 고문에 가까운 부분이다. 휴는 벼락출세한 얼굴 두껍고 위선적인 대중 작가로 그려지고 있다."라고평했다.
월폴이 『케이크와 맥주』의 출판을 막으려 하자 서머싯 몸은 월폴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그를 달랬다고 한다.
"만약 자네가 이 작품에서 자네의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가 대동소이할 뿐 결국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세."
- P299

이 작품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단순한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인데 문학 작품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최초로 등장한다.  - P299

‘케이크와 맥주‘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삶의 유희와 쾌락은이 작품의 테마로 뚜렷이 자리하고 있다. 서머싯 몸은 자신의문학적 자서전인 『요약」에서 철학자들과 도덕론자들이 육체의만족이 짧다는 이유로 육체를 줄곧 미심쩍게 바라보았음을지적하며 쾌락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쾌락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쾌락의 가치가 경시되어 관념과 도덕에 치우치는 위험을 경계한 것이다. 서머싯 몸 자신도 온갖종류의 감각적 쾌락을 체험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 P300

드리필드의 두 번째 아내와 앨로이가 로지를 천박하다고 깎아내리자 어셴든은 로지를 변호하다가 그들의 비웃음을 사고는 "영원불멸한 지성이 보기에는 하찮은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처지에 온갖 고통에 시달리며 아등바등하는 인간이 그저 농담" 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심각하던 일상이 별안간 덧없이 느껴지고 인간의 일생이 우주의한 점으로 쪼그라드는 대목이다.
- P302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제목은 스피노자의 『에티카』4부 표제에서 따온 말로 인간의 삶이 이성이 아닌 정념에 의해 지배되면서 겪는 예속 상태를 뜻한다. 『인간의 굴레에서가 정념에 의한 인간의 내적 예속을 다루었다면, 『케이크와맥주는 한 작가의 생애를 통해 인간을 구속하는 외적 요인,사회적 굴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P305

 예나 지금이나 작가는 대중과 평단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서머싯 몸은 작가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성공을꼽으면서 현명한 작가라면 마땅히 성공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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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머릿속에 쓰여지지 않고 남아있는 인물은 집착이 된다. 생각이 끊임없이 그것으로 회귀하면서 상상력이 점차 그것을 키워 가는 동안 작가는 누군가 그의 마음 한편에 살면서 그의 상상에 순종하면서도 그와는 동떨어진 기이하고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다채롭고 파란만장한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특별한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일단 종이 위에 정착하는 순간 그 인물은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작가는 그 인물을 잊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몽상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 일시에 잊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 P8

나는 오랫동안 존경을 받아 온 작가라면 그 명성이 아직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작고 예민한 모험심과 갈등을 일으킬것이라고 보았다. 머릿속에는 상충하는 기이한 생각들이 수없이 빗발치지만 작가는 추종자들이 그에게 바라는 위엄 있는 외면을 유지하는 것이다. 

(유명세가 항상 좋은것은 아니다) - P9

나는 우연히 토머스 하디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억하기로 그는 작은 체구에 흙처럼 거친 얼굴의 남자였다. 풀을 먹인 하이칼라 셔츠의 야회복 차림이었는데도 이상하게 흙과닮은 인상을 풍겼다. 그리고 유쾌하고 온화했다. 그때 나는 그가 수줍음과 자신감이 절묘하게 조합된 사람이로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십오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은 분명하다. 대화가 끝날 무렵그는 나를 크게 칭찬하고 나서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내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 P10

나는 나 자신의 흠결을 돌아보는 고약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나 자신에게서 자조할 수밖에 없는 면모를 많이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이런 유감스러운 기벽이 없는 다수의 작가들에 비하면 덜 미화된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편이다. - P11

어떻게든 공적 인물이 되어야 한다. 대중의 시야 안에 머물러야 한다. 인터뷰를 하고 사진이 신문에 실리도록 해야 한다. 《더 타임스》에 편지를 쓰고, 모임에서 연설하고,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만찬 후 연설을 해야 한다. 출판사들이 광고하는 책들을 추천해 주어야 하고, 적합한 시간과 적합한 장소에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절대 순순히 잊혀서는 안 된다. 한 번의 실수로 큰 대가를 치를 수 있기에 힘겹고 불안한노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책을 널리 세상에 읽히려 백방으로 애쓰는 작가를 친절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은 잔혹한 처사다.

(대중작가의 삶은 얼마나 피곤할까ㅋ) - P12

그는 평론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그의 책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은 심히 유감이지만 그 자체로 아주 흥미로운 서평인 데다 대단한 비판적 지성과 대단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의견을 용감히 피력한 분에게 편지를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고 말한다. 로이보다 더 개선의 의지를 활활 태우는 사람은 없다. 

그는 계속 배우기를 희망한다. 성가시게 굴고 싶지 않지만 평론가께서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용무가 없으시다면 사보이 호텔에서 같이 점심을 들며 제 책의 정확히 어느 부분이 좋지 않은지 말씀해주실 수 없겠는지요? 로이보다 점심을 더 맛있게 주문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평론가는 생굴을 대여섯 개 삼키고 어린 양고기의 등심을 한 조각 먹고 나면 대개 본인이 뱉은 말까지같이 삼키게 된다. 이후 로이의 다음 소설이 나왔을 때 그 평론가가 로이의 차기작에서 커다란 진전을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적 정의라 하겠다.

(갑자기 피곤해진다ㅋ) - P22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한때 친밀하게 지냈으나 시간의 경과에 따라 흥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응대하는 것이다. 양측이 모두 평범한 처지에 머물러 있다면 인연이 자연스럽게 끊어지면서 아무런 악감정이 생기지 않지만, 만약 한쪽이 대단한 지위를 성취한 경우라면 어색한 상황이 펼쳐진다. 

옛 친구들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성공한 쪽은 새 친구들을 여럿 사귀게 된다. 오만 가지 일로 시간은 부족한데 옛 친구들은 자기들이 당연히 우선시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친구가 바로바로 응대하지 않으면 한숨을 내쉬고 어깻짓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 그것참, 난 당신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줄 알았어요.당신이 성공했으니 이제 나는 버려지겠군요."물론 당사자는 그러고 싶다.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 P23

위선만큼 성취하기 어렵고 진이 빠지는 악덕도 없다. 위선은 한시도 늦추지 않는 경계심과 영혼을 초월하는 극기가 필요하다. 불륜이나 폭음과 달리 짬짬이훈련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야 하는 작업이다. 또한 이기적인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 P27

"자네는신수가 훤하구먼."
이 말에 내 관심은 로이의 외모로 쏠렸다.
"나야 자네 신수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대꾸했다.
"바른 자세와 금주, 경건한 삶의 결과라네." 그가 웃었다.
- P35

많은 작가들이 단어에 심취해 있다 보니 대화 중에단어를 지나치게 고르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너무 정성껏 문장을 만들어 의도하는 바를 가감 없이정확하게 말한다. 

그래서 어휘 구사력이 단순하고 민감한 욕구에 국한된 상류 사회 사람들은 이들과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 결과 이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망설이게된다. 

로이는 이러한 종류의 제약을 받은 적이 없었다. 춤꾼과 이야기할 때는 춤꾼에게 정확히 통하는 용어로 말하고, 경주마를 좋아하는 백작 부인과는 그녀의 마구간 소년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로이가 여느 작가들과 조금 다르다고 열정과 안도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에게이보다 더 기분 좋은 칭찬은 없었다.  - P37

현자는 모름지기 상용구를 많이 쓰고(요즘 나는 ‘남이사‘를 가장 애용하고 있다.) 유행하는 형용사를 쓰며(‘끝내주는 이나 뻘쭘한 같은 말) 그 상황에 딱들어맞는 표현을 써서(‘팔꿈치로 쿡 찌르다‘ 같은 말) 환담에 소탈한 광채를 더하고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게끔 한다. 

지구상에서 효율성을 가장 따지는 미국인들은 이러한 요령을 완벽의경지로 끌어올려 방대한 범위에서 간결하고 진부한 문구들을무수히 만들어 냈고, 그 덕분에 서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한시도 생각하지 않고 즐겁고 활기찬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을뿐만 아니라 이로써 이성은 큰 사업과 간통 같은 더 중요한 문제의 몫으로 자유롭게 남겨 둔다.

🐯🐯🐯🐯🐯  - P37

나는 그가 언제쯤 본론으로 넘어갈까 궁금했다. 한창때의런던에서 앨로이 키어가 서평을 쓰지도 않는, 더구나 마티스,
러시아 발레, 마르셀 프루스트를 토론하는 모임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동료 작가와 한 시간을 노닥거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쾌활한 태도 뒤에는 희미한 불안감이 어른거렸다. 만약 그의 넉넉한 형편을몰랐다면 나한테 100파운드쯤 빌릴 속셈인가 의심했을 것이다.  - P38

뉴먼은 형편없게 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피츠제럴드의 짤랑짤랑한 사행시는 너무 고평가했었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는 읽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걸작이라고 생각하네."
"그럼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글쎄, 트리스트럼 샌디』, 『아멜리아」, 『허영의 시장」, 『마담보바리』, 『파르마의 수도원』,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워즈워스와 키츠, 베를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독창적인생각은 아닌 것 같군."
- P44

집에 돌아온 이튿날 아침에 수건 하나와 수영복을 들고 바닷가로 내려갔다. 하늘에구름 한 점 없고 공기는 뜨겁고 맑았지만 북해의 톡 쏘는 내음이 실려 있어 그저 살아서 숨만 쉬어도 즐거웠다.
(바닷가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싶다) - P54

나는 아침을 먹고 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름을 대자마자 비서는 전화를 그에
게 곧장 연결했다. 만약 내가 탐정 소설을 쓰고 있었다면 그가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나 곧장 의심했을 것이고, "여보세요." 하는 로이의 남자다운 목소리에서 그 짐작이 맞았음을확인했을 것이다. 누구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이른 아침에 이렇게 활기찬 사람은 없었다.

(너무 웃끼다ㅋ서머싯 몸 전작읽기를 해야겠다~♡) - P63

음식은 자리에 맞게끔 성찬이면서도 과하지 않았다. 돌돌 말아 화이트소스를 뿌린 가자미 살, 햇감자와 완두콩을 곁들인 구운 닭고기, 아스파라거스, 구스베리 풀18)이었다.  - P69

드리필드 부인은 문인의 아내들이 대부분 그렇듯 말이 많았다. 그녀는 주변에서 대화가 시들해지는 걸 가만두지 않았고, 우리는 탁자 반대편에 앉은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녀는 명랑하고 활기찼다. - P70

드리필드 부인은 선반에서 파란색 모로코가죽으로 묶은원고 뭉치를 꺼냈다. 다른 사람들이 경건하게 원고를 구경하는 동안 나는 방 안에 즐비한 책들을 둘러보았다. 여느 작가들처럼 내 책이 있나 재빨리 훑어보았지만 없는 듯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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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1-15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저 이 책 사서 방금 박스 뜯었네요. 역시 넘 잘 샀네요~^^

청아 2022-01-15 21:30   좋아요 4 | URL
너무 재밌어요ㅋㅋㅋ잘하셨어요! 서머싯 몸에게 반했습니다~♡ㅋㅋㅋ지금 운동나왔는데 못나올뻔 했어요^^

scott 2022-01-15 22:32   좋아요 4 | URL
방금 박스!
쿨켓님의 박스 속 책 리스트 궁금 합니돠 !ㅎㅎㅎ

coolcat329 2022-01-17 10:14   좋아요 2 | URL
아! 딱 두 권이에요 ㅎ
브로크백 마운틴 사면서 이 책도 같이 구입한 거에요~^^

2022-01-15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5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고독을 즐기는 편이다. 외동으로 살아온 분들은 많이들 공감하실테지만 고독은 외동에게 삶 자체일 수도 있다. 어릴 때 내가 외동이라고 대답하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질문은 '외롭지 않냐?'는 것이었다. 아니, 형제가 여럿 있다가 혼자 떨어져야 외로운거지. 처음부터 혼자였는데 어떻게 외롭다는거지? 많은 사람들 틈속에 살다가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은 혼자 남았을때 두렵고 외로울 수 있다. 사람들과 살다가 혼자가 됐으니 그럴 수 있는거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인도에 혼자 살던 사람은 누군가 무인도에 들어오는게 더 무섭고 불편할 수도 있다. 외동이 아닌 사람들은 이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나도 어딘가 아플 땐 극도로 외로움을 느낀다. 외동의 삶도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친구를 사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교감하고 싶을 때 교감하고 언제든 나의 고독의 자리에 되돌아올 수 있지만 질병이라는 고독은 이렇듯 조절할 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누구나 예외없이 절대적으로 고독해진다. 이 아픔을 나만큼 공감해 줄 사람은 나 말고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언제든 꺼내서 타인들과 나누어 가지기엔 아픔은 너무나 주관적이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라도 모든것이 동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다. 무서운 것은 그렇게'아픔'이라는 쓸쓸한 고독을 느끼는 와중에 '죽음'이라는 고독의 끝판왕이 나를 보며 버티고 앉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라도 보게된다는 점이다. 죽을 때는 모두 혼자다. 로맹가리가 '삶은 죽음의 패러디'라고 했던 것처럼 인간들은 사는동안 어떻게든 죽음을 외면하기 위해 발버둥치치만 결국 게임의 최종 단계에 이르듯 죽음의 마지막 고독에 모두가 예외없이 다다른다. 


이번에 읽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이렇듯 평소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죽음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품위 있는 판사로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며 살아왔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고 하는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새로 이사한 집의 이곳저곳을 꾸미다가 그만 사다리에서 떨어져 옆구리를 다친다. 그 후로 옆구리가 점점 더 아파오고 몰골은 변해간다. 수많은 덕망있는 의사들을 만났지만 아무도 이 병이 과연 무엇인지 확답을 주지 못한다. 3개월 동안 그렇게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고독'속에  죽어간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된다. 


그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당연하게 느끼던 것들이 다른 모습을 띄게된다.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애쓰며 살아왔는지를 비참하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 것이다. 결혼생활에는 사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그래서 더욱 일에 몰두하며 사회적 성공만을 향해 달렸다. 그의 삶을 독자로써 아프게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만일 그가 아내와 진실된 관계였다면 이렇게까지 외롭지 않았을거라고, 그도 아내도 단지 결혼이라는 틀에 서로를 묶고 살았을 뿐 '공유'하는 것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삶을 살만하게 하는 것이고 때로 죽음까지도 위로하는 가치를 지닐지도 모른다. 아편이나 모르핀이 아닌 진실한 공감과 사랑만이 죽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고. 사실상 이반 일리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아내를 포함한 사람들의 기만이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진실된 하인 게라심과 아들의 눈물에서만 그는 자신의 고통을 '수용'하게 된다.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다면 그 무게를 느끼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수작이다. 


그가 보기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무섭고 끔찍한 의식을 그저 어쩌다가 발생한 불쾌한 사건, 품위가 떨어지는일 정도로(마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응접실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을 대하듯이) 격하시켰다. 그가 평생토록 지키려 애썼던 품위라는 게 고작 그런 것이었다. 그도 알다시피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단 한 사람, 게라심만이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를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이반 일리치는 오로지 게라심과 있을 때에만 마음이 편했다.  - P85


이반 일리치가 느끼기에 의사는 (잘 지내시죠?) 라고 말하려 하다가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에 (밤새 안녕하셨나요?)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는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 라는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의사는 그의 표정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 P92


그는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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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15 17:24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나서 ‘열심히 살면 뭐하냐 즐기면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결국 인간은 혼자구나 라는 생각도 하고 ㅋ 저는 열린책들 35주년 세트를 통해 재독을 한건데 한번 더 읽으니까 다르게 느껴지더라구요~!!

이제 열린책들 35주년 세트 얼마 안남으셨을거 같아요^^

청아 2022-01-15 17:41   좋아요 8 | URL
맞아요! 저도 새삼 그렇게 마음먹기도 했고요ㅋ 어제 친구랑도 얘기한건데 남의 눈치를 너무 보며 살았구나하는 생각도 했어요. 이 작품은 저에겐 처음이지만 확실히 재독은 깊은 맛이 나는것 같아요^^

저 열린책 미니 은근히 많이 남았어요ㅋㅋ

2022-01-15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5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2-01-15 19: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의 삶을 반영한 것 같기도 하네요.
톨스토이 몇 작품 읽고 안 읽은지 꽤 오래 됐네요. 다시 붙들어야 할 텐데...
즐기는 인생도 중요하지만 고독과도 친해져야 할 것 같아요.ㅠ

청아 2022-01-15 19:49   좋아요 6 | URL
그 유명한 ‘메치니코프‘의 형이 판사였는데 톨스토이와 친분이 있었나봐요. 그 사람을 모델로 이 이야기를 썼다고해요. 아내에 관해서는 스텔라님 말씀처럼 톨스토이 개인의 경험이 반영되었을것 같아요. 톨스토이는 역시 놀라운작가입니다^^*

coolcat329 2022-01-15 21:4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고 ‘나도 뭐라도 깨닫고 눈 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그리고‘ 죽어서 행복하다‘ 이런 생각하며 세상과 이별하고 싶어요.

청아 2022-01-15 21:44   좋아요 7 | URL
고전이 좋은게 이런점인것 같아요! 정작 중요한데 모르고 살아가는 문제에 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거요. 저는 ‘원없이 책 읽었다‘생각하며 떠나고 싶어요ㅋㅋㅋ

coolcat329 2022-01-15 21:47   좋아요 5 | URL
오 그것도 좋네요. 사놓은 책은 다 읽고 가기 위해 화이팅!

청아 2022-01-15 21:53   좋아요 5 | URL
잔뜩 읽고 저 세상에서 또 책얘기해요!ㅋㅋ작가들도 만나고요ㅋ화이팅👍

PersonaSchatten 2022-01-15 22: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요즘 고독사의 방식이랑 너무 비슷한 거 같아요. 외롭냐는 질문에 대한 말씀 공감이 갑니다. 다른 방향으로 이해한 걸 수도 있는데 제일 이해가 안가는 질문인데, 외로워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저는. 혼자가 더 재밌고. 이 코로나 시국에도 사람 못만나 괴롭고 이게 아니라 나홀로 카페놀이를 못한다는 거 뿐, 저 개인에게는 별로 영향이 많지는 않은 거 같더라고요. 그럼에도 어릴 때 이 단편 읽고 혼자 사는 게 무섭다고 느낄 땐 있었던 거 같아요. ㅎㅎㅎ

청아 2022-01-15 22:29   좋아요 6 | URL
아! 고독사... 그렇네요!!! 생각해보니 이반 일리치에게 거의 그런 셈이었네요?!
제 주변에도 코로나 시국이라고 특별히 불편을 못느낀다는 친구들이 몇 있어요ㅎㅎ 반면에 아이들이 좀 많이 딱하긴해요. 소통의 차원에서 예전만 못하고 아이들이 선택한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마스크에 입이 가려지니까 눈으로 감정전달을 하려고 애쓰게되니(눈웃음이라던지,..) 분명 새로운 변화의 측면도 있고요.
으아~ 어릴때 이 작품 읽었다면 저도 더 무서웠을것 같아요!ㅎㅎ

PersonaSchatten 2022-01-15 22:32   좋아요 5 | URL
애들에겐 하루 한달이 엄청난 발달 단계를 달려가는 시간인데, 표정을 못 읽고 타인을 이해하는 발달이 느려질까 걱정도 되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요즘 아기들 눈 땡그랗고 반짝 거리고 눈 속에 온 우주가 담긴듯 표정이 풍부해서 너무나 예쁘긴 합니다. 정말 왜들 그렇게 이쁜 건지. ㅎㅎㅎ

청아 2022-01-15 22:35   좋아요 5 | URL
네! 그걸 우려한 책도 최근에 나왔더라구요? 워낙 인간이란 적응력이 좋으니 두고봐야죠ㅎㅎ아이들은 다 천사들이죠ㅎㅎ 날개없는 귀한 천사들♡

페넬로페 2022-01-16 12:1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딸아이가 외동이라 미미님의 글이 더 가슴에 와 닿아요. 근데 딸아이는 많이 외로워하고 앞으로의 외로움도 힘들어해요.
엄마, 아빠 없을 날을 생각하면 넘 괴롭다고~~그래서 꼭 결혼하고 싶어하고 자식도 둘 낳고 싶대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읽으며 삶이 참 허무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차피 인간은 혼자인것 같기도 하고요~~
특히 육체의 고통은 나만 느낄수 있다는 것도 슬프고 그러기에 중요한건 지금 이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청아 2022-01-16 12:20   좋아요 6 | URL
물론 저도 늘 그렇진 않았던것 같아요. 특히 사촌들이 와서 자고가면서 하나 더 낳아달라고 엄마에게 조르고요ㅎ 형제많은 친구들보고도 부러운적도 분명 있었거든요. 아이도 저는 제가 한 6명쯤 낳는다고 말했었어요ㅎㅎ제 외동 친구들은 저랑 비슷하지만 외동이라고 다 똑같진 않겠죠.^^*
‘지금 이순간‘노래가 갑자기 떠오르네요~♡홍광호버젼 가장 좋아했는데ㅎ

책읽는나무 2022-01-16 12: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남동생이 둘 있긴한데...외동딸이어서 어릴 때부터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음 싶더라구요.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네요.
주변에 자매들 모여 살면서 서로 의논하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가까이 살아서 몰라도 될 고민거리를 더 안고 살게 되는 단점이 있다 해도 부러운 부분들이 더 많아 보여요. 욕심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전 딸이 둘 있어 걔들은 좀 다행이겠다!싶다가도 딸들마저 부러운 거에요ㅋㅋㅋ
이것도 외로움일까요??ㅋㅋㅋㅋ
카프카의 책이군요?
그러고 보니 카프카 책도 제대로 읽어본 게 없네요?ㅜㅜ 아~읽을 책이 이리도 많다니????
참 저 이제 생각났는데요~~ 어젯밤 꿈에 스텔라님이랑 미미님이 그 단디 클럽 1 년?을 운영해서 두 분이 책 내시는 꿈을 꾼 듯 합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책 관련해서 그런 비슷한 꿈을 꿨네요^^

mini74 2022-01-16 16: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산을 오르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 산에서 계속 내려오고 있는 중이란 문장이 항상 기억에 남더라고요. 미미님 말씀처럼 죽음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책이었어요. 저도 넘 좋았어요 ~~

그레이스 2022-01-17 0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았던 책, 얇은데 많은 생각을 했던 책이었습니다.
메멘토 모리 그 이상이었어요.
 

그가 키제베터(독일의 철학자)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 논법, 즉 카이사르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므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는 카이사르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자신에게는 절대로 해당될 리 없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카이사르는 인간, 즉 일반적인 인간이니까 삼단 논법이 적용되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카이사르, 즉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었고, 항상 다른 모든 존재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 P73

이반 일리치는 정신을 집중해서 통증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했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더니 죽음이찾아와 그의 앞에 떡 버티고 서서 그를 빤히 바라보는 것아닌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 P76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죽음이 이반 일리치를 자꾸만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무언가를 하도록 하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니었다. 단지 그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죽음만을 쳐다보도록, 아무것도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죽음만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하기위해 그러는 것이었다.
- P76

근래 들어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직접 꾸민 응접실에 부쩍 자주 나오고는 했다. 이 응접실은 그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던 곳이다. 그때 다친 옆구리에서 병이 시작되었으니까 그는 결국 목숨을 바쳐 응접실을 꾸며 놓은 꼴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 P77

배뇨와 배변 시에도 특수 제작된 용변기를 사용해야 했는데, 이를 사용하는 것은 매번 고통의 연속이었다. 불결함과 창피함과 냄새가, 그리고 용변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너무나 괴롭혔다.
- P80

이반 일리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거짓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모두가 묵인하고 있는 거짓말,
그는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플 뿐이다. 그러니 잠자코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거라는 그 거짓말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앞으로 뭘 어떻게 하든 병에서 회복될 수 없으며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고통과 죽음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84

거짓, 거짓, 그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행해지는 이거짓, 무시무시하고 장엄한 죽음의 의식을 한낱 문병이니커튼이니 식사에 나온 철갑상어니 하는 것들로 격하시키는 이런 거짓이 이반 일리치를 무섭도록 고통스럽게 했다.
- P84

그가 보기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무섭고 끔찍한 의식을 그저 어쩌다가 발생한 불쾌한 사건, 품위가 떨어지는일 정도로(마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응접실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을 대하듯이) 격하시켰다. 그가 평생토록 지키려 애썼던 품위라는 게 고작 그런 것이었다. 그도 알다시피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단 한 사람, 게라심만이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를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이반 일리치는 오로지 게라심과 있을 때에만 마음이 편했다.  - P85

그는 이따금 자신의 다리를 높이 올려 든 게라심이 옆에서 밤을 꼬박 새우면서 (걱정하지 마세요, 이반 일리치나리, 저야 아무 때나 자면 되니까요)라고 말해 주는 것이정말 좋았다. 아니면 불쑥 친근한 어투로 (안 아프셨더라도 뭐 이 정도 못해드리겠어요?)라고 애교를 부리는 것도좋았다. 

오직 게라심만이 그에게 그 어떤 거짓말도 하지않았다. 모든 점에서 볼 때, 게라심 하나만이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으며,다만 점차 쇠잔해 가는 나약한 주인을 가엾게 여기고 있었다.  - P85

「우리는 언젠가 다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 좀 못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을위해 고생 좀 하는 것이 전혀 힘들거나 괴롭지 않으며, 그또한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수고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 P86

거짓말 외에, 아니 거짓말 때문에, 이반 일리치를 고통스럽게 했던 또 한 가지는 그 누구도 그가 바라는 만큼 그를 가엾게 여겨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오랜 기간 고통스럽게 병마와 씨름하면서 이반 일리치는 사실대로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기는 해도 누군가가 자신을 병든 어린아이 대하듯 마냥 불쌍히 여겨 주기를 그 무엇보다 간절히소망했다. 

아이를 달래며 보살피듯 다독여 주고 입을 맞춰주고 자기를 위해 울어 주기를 바랐다. 수염이 하얗게 세어 가는 나이의 권위 있는 판사에게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누군가가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게라심과의 관계에는 그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고, 그래서 그는 게라심과 있을 때면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 P86

이반 일리치가 느끼기에 의사는 (잘 지내시죠?)라고 말하려 하다가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에 (밤새 안녕하셨나요?)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는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라는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의사는 그의 표정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 - P92

고요 속에서 그는 어떤 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언어로 된 목소리가 아닌 영혼의 소리,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생각의 흐름에 귀를기울였다.(너한테 필요한 게 무엇이냐?) 그가 맨 처음 들은 가장확실하고 분명한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랬다. (필요한 게 뭐냐고? 무엇이 필요하지?)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무엇이냐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 사는 것.)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통증조차 못느낄 정도로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걸 말하는 거지?) 영혼의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사는 것. 예전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예전엔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목소리가물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자신의 즐거웠던 삶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하나씩 되새겨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이상하게도, 즐거웠던 삶에서의 좋았던 순간들이 이제는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제외한 모든것이 다 그랬다. 그때, 어린 시절에는 진짜로 기쁜 무언가가 있었다.  - P103

그러나 그런 기쁨을 누리던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회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회상하는 것처럼 느껴겼다.
- P104

나는 산에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랬었던 거야. 분명 사람들 눈에 나는 올라가고있었어. 하지만 정확하게 그만큼씩 삶은 내 발아래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다 끝났어. 죽는 것만 남았어!
💫💫💫💫💫 - P105

소파 등받이에 고개를 처박고 누워 지내는 요즘 이반 일리치는 고독과 함께 살았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우글대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고독이었고, 지인들과 가족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느끼는 고독이었다. 바닷속 저 깊은 곳에서도, 땅 밑 저 아래에서도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절대 고독이었다.  - P108

전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여겼던 생각, 즉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으신 분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저항하고 싶어 했던 한때의 희미한 충동, 그러나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곧바로 떨쳐내 버리곤 했던 그 충동만이 진짜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업무, 그가 삶을 살아온 방식, 가족, 사회와 직장에서의 이해관계 같은 것들이 모두 잘못된것일지도 몰랐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모든 것들을 변호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돌연 자신이 변호하려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허접하기 그지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변호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P113

그는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 - P114

죽어 가던이반 일리치는 절망적으로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두 팔을 내젓고 있었다. 그의 손이 소년의 머리에 부딪혔다. 소년은 아버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입술에 대고 울음을 터뜨렸다.
바로 이 순간 이반 일리치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져 빛을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그래서는 안되는 삶이었지만 아직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도대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귀를 기울였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아들이 보였다. 아들이 불쌍했다.
- P119

<용서해 줘>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가게 해줘>라고말하고 말았다. 그러나 고쳐 말할 힘조차 없어서 손을 내저었다.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겠지.
💫💫💫💫💫 - P120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얼마나 좋아, 얼마나 단순해.)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통증은?) 하고 그는자신에게 물었다. (통증은 어디로 갔지? 이봐, 너, 어디로간 거야?)그는 귀를 기울였다.
(아, 여기에 있었군. 그래, 뭐, 거기 있으라고 해.)(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로 갔지?)그는 그동안 익숙해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죽음은 어디 있지? 무슨 죽음? 두려움은이제 없었다. 죽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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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모델이 된 인물의 동생으로,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인메치니꼬프는 (죽음의 공포를 이보다 잘 묘사한 작품은 없을것)이라고 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이 소설을 언급하고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이키루>는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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