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부의 부목사가 오랫동안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최고 소설가로 인정받고 있는 작가를 아랫사람처럼 대하던 것을 생각하면 실소가 터질 일이지만 당시 블랙스터블에서는 대부분 그를 그렇게 대접했다.  - P119

그녀는 인컴 부인으로 몸집이 작고주름진 얼굴이 진지한 여자였다. 짧게 자른 반백의 머리와 앞코가 네모난 부츠 상단까지만 덜렁 내려온 검은색 서지 치마에 우리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블랙스터블에 등장한 신여성의 첫 사례였다.우리는 휘청하고는 즉시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녀가 풍기는 지성인의 면모에 우리 자신이 부그럽게 느껴졌다. - P120

드리필드 부인은 카드놀이에 천부적 재능이 있었다. 평소행동이 신중한 그녀가 카드놀이만 하면 신속하고 기민했다.
머리싸움에서 나머지 우리를 능가했다. 평소에는 말이 많지않고 말투도 느렸는데 한 판이 끝나고 좋은 뜻에서 내 실수를지적할 때는 말이 명료하고 유려했다. 조지 경은 모두에게 그러듯 그녀도 놀려 먹었다. 그녀는 소리 내어 웃는 일이 좀체없었기 때문에 그의 우스갯소리에 그저 미소를 지었고 가끔씩 깔끔하게 받아쳤다. 그들은 애인이라기보다 허물없는 친구처럼 행동했다. 
(반전매력) - P126

하절기 역사 과목 우등상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방학에는 잉글랜드의 역사를 열심히 파 볼 생각이었다.  - P129

평론가는 형편없는 작가에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있고 세상은 전혀 가치 없는 자에게 열광할 수 있지만 두 경우 모두 오래가지는 못한다. - P138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숙고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키츠가 쓴 시 엔디미온」의 첫 구절을 보면 키츠보다 더한 거짓말을 한 시인은없을 듯하다. 

아름다운 것이 마법 같은 감성을 불러일으킬 때마다 내 마음은 즉시 방황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어떤 풍광이나 그림을 몇 시간씩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황홀감이고 배고픔만큼이나 단순하다. 이러쿵저러쿵 떠들 만한 거리가 아닌 것이다. 장미 향기와 같아서 한번 냄새를 맡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것이 예술 비평이 지루한 이유다. 
- P141

세상의 모든 그림
들 중에서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할 만한 티치아노의 『그리스도의 매장에 대해 모든 평론가들은 그저 가서직접 보라고 말하면 된다. 그것 말고 더 할 말이 있다면 역사나 전기 정도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다른 특성들 - 숭고함, 인간적 관심, 부드러움, 사랑 ㅡ 을 덧붙인다. 아름다움이 그들을 오래 만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완벽하지만 완벽함은 (인간의 본성상) 사람들의 주의를 참시 잡아 둘 뿐이다.  - P142

어느 수학자가 「페드르』를 보고 나서
"케스크 사 프루브?"(그게 어쨌다는 거요?) 하고 물었다면 그가 아무리 평소 어리숙해 보였다고 해도 그리 바보는 아니다. 파에스툼에 있는도리아 양식의 신전이 시원한 맥주 한 잔보다 더 아름다운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름다움과무관한 것들을 끌어댄다면 모를까. 아름다움은 막다른 골목이고, 한번 도달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산봉우리다. 그것이 우리가 티치아노보다 엘 그레코에, 라신의 완전한 대작보다 셰익스피어의 불완전한 업적에 도취하는 이유다.  - P142

 마흔 살에 정치인이었던 사람이 일흔살이 되면 정치 거물이 된다. 너무 늙어 점원도 정원사도 즉결 심판 치안 판사도 못 하는 나이가 되어서야 한 나라를 다스릴 만큼 성숙해진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예로부터 노인들은그들이 젊은이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젊은이들을 끊임없이 세뇌했고, 젊은이들은 그것이 허튼소리임을 깨달을 즈음엔 이미늙은이가 되어 그 기만적 행태에 편승해 이익을 봐 왔다. 또한 정치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치고 국가를 다스리는 데 별다른 지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결과만 봐도 판단이 가능하다.)
🐯🐯🐯🐯🐯 - P144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 P144

"신사와 작가 노릇을 동시에 하는 건 어려운 일이야."
- P156

로지 드리필드가 남편에게 대단히 해로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에이미의 입장이야.
남편에게 도덕적으로,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타격이 될 만한 짓은 모두 했다는 거야. 로지는 모든 면에서, 특히 지적으로나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편보다 열등한 여자였는데, 그럼에도 그분이 생존했던 것은 순전히 그분의 엄청난 저력과 활력덕분이었다는 거지. 첫 번째 결혼이 아주 불행했다는 건 분명해. 여자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는데 해묵은 추문을 들쑤시며남부끄러운 속사정을 내보이는 건 꼴사나운 일 아니겠나. 하지만 드리필드의 모든 명작들이 그 여자와 같이 살 때 쓰였다.
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 P158

할 말이 전혀 없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답이 궁재는 그저 입을 다루는 것이 언제나 상책이다. 나는 침묵하면서 로이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 P160

마리 로이드(코미디언 겸 뮤지컬 배우)에 대해 한 말은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난 그 여자가 참좋더라고요. 어찌나 사람을 웃기는지 말이야. 끝장을 낼 것처럼 덤비지만 막상 선을 넘지는 않잖아요."  - P166

이 방에 살면서부터 지나온 세월과 그동안 내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아려 왔다. 바로 이 탁자에서 푸짐한 아침밥을 먹고, 소박한 저녁 식사를 하고, 의학 서적을읽고, 첫 작품을 썼다. 이 팔걸이의자에 앉아서 처음으로 워즈워스와 스탕달, 엘리자베스 시대의 희곡, 러시아 소설, 기번,
보즈웰, 볼테르, 루소를 읽었다. 이후 어떤 사람들이 썼을까?
- P171

나의 일상은 아주 규칙적이었다. 온종일 병원에 있다가 6시쯤 걸어서 빈센트 스퀘어로 돌아왔고, 램버스 브리지에서 사 온 《스타》를 읽다가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왕성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청년답게교양서를 한두 시간 진지하게 읽었다. 그 후에는 소설과 희곡을 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 P173

만약 신분이 높은 사람이 예술가 계층과 어울린다면 대개는 망신스러운 이혼이나 경미한카드놀이 도박 문제로 원래의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된 경우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의무 교육이세상에 가져온 가장 큰 혜택 가운데 하나는 귀족과 신사 계층에 글쓰기를 보급한 것이다.  - P180

아무래도 소설은 백작의 전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미 이 어려운 기술에 상당한 소질을 발현해 왔고, 인원수도 아주 많아서 소설의 수요를 능히 충족할것이다. 후작에게는 문학 분야 가운데 이른바 (왜 이렇게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순수 문학의 생산을 맡기면 좋을 것이다.
순수 문학은 금전적 측면에서는 별 이득이 되지 못하겠지만 그것의 명예는 이 낭만적인 작위와 아주 잘 어울린다.
- P181

문학의 황제는 시(時)다. 시는 문학의 궁극이자 지향점이다.
인간의 정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활동이다. 아름다움의성취다. 시인이 지나가면 산문 작가는 길을 비켜 주어야 한다.
최고의 소설가도 시인 앞에서는 애송이일 뿐이다. 그러므로시를 짓는 일은 공작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권리는 엄벌과 벌금으로 보호될 것이다. 가장 고귀한 신분 외에 다른 자가 가장 고귀한 예술을 행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짓이니까.  - P181

"언제 완성됩니까?"
"완성된 거야." 그가 대답했다.
나는 얼굴을 벌겋게 붉혔다. 천하의 바보처럼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현대 화가들의 작품에 자유자재로 대응하는 요령을 아직 터득하기 전이었다. 지금은 예술에 대해 잘몰라도 화가를 만족시킬 각종 창의적인 반응들이 깔끔하게정리된 얇은 안내서 하나쯤 이 자리에서 당장 쓸 수도 있다.

"세상에!" 하는 감탄사는 철저한 사실주의자의 역량을 인정하는 말이고, "지독히 진실하군요."는 부시장 미망인의 컬러 사진이 눈앞에 불쑥 나타났을 때 당혹감을 감추기에 좋은 말이다. 후기 인상파를 칭찬하고 싶으면 슬쩍 낮은 휘파람을 불고,입체파에게는 "지독히 재밌군요."라는 말을 던지고, 압도되는경우에는 "오!"를,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매료되면 "아!"가 좋다.

그때 나는 "완전히 똑같네요" 하는 변변찮은 말만 겨우 했을 뿐이었다.
- P197

얼마 전 나는 《이브닝 스탠더드》에 실린 에벌린 워 씨의 글을 읽었다. 그는 이 글에서 일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는 것은경멸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말을 남겼다. - P210

그의 조언에 따라 퍼시 러벅 씨의 <소설의 기술>을 읽었는데 소설을 쓰려면 오직 헨리 제임스처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 E. M. 포스터 씨의 <소설의 면면>을 읽었더니 소설은 오직 E. M. 포스터처럼 써야할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에드윈 뮤어 씨의 『소설의 구조」를 읽었지만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했다. 

그 책들에서는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대에는 유명했으나 지금은 확실히 시들해진 디포, 스턴, 새커리, 디킨스, 에밀리 브론테, 프루스트 같은 소설가들이 왜 에벌린 워 씨가 비난하는일인칭 시점을 사용했는지 그 이유를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 P210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복잡성과 변덕, 부조리를 더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이것은 중년이나 노년의 작가들이 더 진중한 주제로 생각을 돌려야 마땅함에도 가상 인물의 사소한관심사에 몰두하는 유일한 변명이 되곤 한다. 인류에 대한 올바른 연구는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 맞다면 현실의 불합리하고 모호한 인물보다는 일관되고 견고하며 의미가 있는 가공인물에 전념하는 것이 더 현명하기 때문이다. 

가끔 소설가는자신을 신처럼 생각하고 작중 인물에 대해 모든 걸 이야기하려 들 때가 있지만, 반면에 작중 인물에 대한 모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것만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걸 점점 더 의식하기 마련이니 작가가 경험으로 체득한 것 이상은 쓰지 않으려 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일인칭 시점은 이 제한된 목적에 한해 대단히유용하다.
🐯🐯🐯🐯🐯 - P211

64) 자기 자신을 알고 신처럼 모든 것을 알려 하지 말라는,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인간론』에서 인용한 말.
- P211

"그렇게 가게 두시면 안 되죠." 바턴 트래퍼드 부인이 말했다. "그런 상태에서는 템스강에 몸을 던졌을 수도 있어요."
"나도 그 생각은 했지만 그가 강 쪽으로 달려가지 않고 우리가 걸어온 동네의 지저분한 길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어요.
작가가 작품을 쓰다 말고 자살한 사례는 역사상 찾아볼 수가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떤 고난이 닥쳐도 미완성인 작품을 후세에 남기고 싶지는 않은 법이거든요."
🐯🐯🐯🐯🐯 - P236

남들에게 보이는얼굴은 가면이었고 그의 행위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실체는 죽을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독한 존재였고, 그의 작품을쓰는 작가와 그의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 사이를 조용히 오가는 유령이 아니었을까.  - P272

문체는 생략의 기술이라고 하지 않던가?
- P278

작가의 삶이란 가시밭길이다.
우선 가난과 세상의 냉대를 견뎌야 한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나서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대중에 휘둘린다.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인터뷰를 하려는 신문 기자들,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 원고를 달라는 편집자들, 소득세를 긁어 가는 세금 징수원들, ...

🐯🐯🐯🐯🐯🐯🐯 - P294

하지만 작가는 한 가지 보상을 얻는다. 뭔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괴로운 기억,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 짝사랑, 상처받은 자존심, 배은망덕한 인간에 대한분노,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는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 - P295

처세술로 성공한 작가 앨로이 키어의 원형은 서머싯 몸의이십 년 지기 친구였던 소설가 휴 월폴로 추정되고 있다. 월폴은 『케이크와 맥주를 받아 든 첫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공포감이 점점 커져 갔다. 그것은 누가 봐도 나의 초상화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일기에 적기를 "몸이 그려 낸 출세 지향적인 문인의 초상은 고문에 가까운 부분이다. 휴는 벼락출세한 얼굴 두껍고 위선적인 대중 작가로 그려지고 있다."라고평했다.
월폴이 『케이크와 맥주』의 출판을 막으려 하자 서머싯 몸은 월폴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그를 달랬다고 한다.
"만약 자네가 이 작품에서 자네의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가 대동소이할 뿐 결국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세."
- P299

이 작품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단순한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인데 문학 작품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최초로 등장한다.  - P299

‘케이크와 맥주‘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삶의 유희와 쾌락은이 작품의 테마로 뚜렷이 자리하고 있다. 서머싯 몸은 자신의문학적 자서전인 『요약」에서 철학자들과 도덕론자들이 육체의만족이 짧다는 이유로 육체를 줄곧 미심쩍게 바라보았음을지적하며 쾌락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쾌락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쾌락의 가치가 경시되어 관념과 도덕에 치우치는 위험을 경계한 것이다. 서머싯 몸 자신도 온갖종류의 감각적 쾌락을 체험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 P300

드리필드의 두 번째 아내와 앨로이가 로지를 천박하다고 깎아내리자 어셴든은 로지를 변호하다가 그들의 비웃음을 사고는 "영원불멸한 지성이 보기에는 하찮은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처지에 온갖 고통에 시달리며 아등바등하는 인간이 그저 농담" 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심각하던 일상이 별안간 덧없이 느껴지고 인간의 일생이 우주의한 점으로 쪼그라드는 대목이다.
- P302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제목은 스피노자의 『에티카』4부 표제에서 따온 말로 인간의 삶이 이성이 아닌 정념에 의해 지배되면서 겪는 예속 상태를 뜻한다. 『인간의 굴레에서가 정념에 의한 인간의 내적 예속을 다루었다면, 『케이크와맥주는 한 작가의 생애를 통해 인간을 구속하는 외적 요인,사회적 굴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P305

 예나 지금이나 작가는 대중과 평단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서머싯 몸은 작가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성공을꼽으면서 현명한 작가라면 마땅히 성공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 P3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