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머릿속에 쓰여지지 않고 남아있는 인물은 집착이 된다. 생각이 끊임없이 그것으로 회귀하면서 상상력이 점차 그것을 키워 가는 동안 작가는 누군가 그의 마음 한편에 살면서 그의 상상에 순종하면서도 그와는 동떨어진 기이하고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다채롭고 파란만장한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특별한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일단 종이 위에 정착하는 순간 그 인물은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작가는 그 인물을 잊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몽상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 일시에 잊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 P8

나는 오랫동안 존경을 받아 온 작가라면 그 명성이 아직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작고 예민한 모험심과 갈등을 일으킬것이라고 보았다. 머릿속에는 상충하는 기이한 생각들이 수없이 빗발치지만 작가는 추종자들이 그에게 바라는 위엄 있는 외면을 유지하는 것이다. 

(유명세가 항상 좋은것은 아니다) - P9

나는 우연히 토머스 하디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억하기로 그는 작은 체구에 흙처럼 거친 얼굴의 남자였다. 풀을 먹인 하이칼라 셔츠의 야회복 차림이었는데도 이상하게 흙과닮은 인상을 풍겼다. 그리고 유쾌하고 온화했다. 그때 나는 그가 수줍음과 자신감이 절묘하게 조합된 사람이로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십오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은 분명하다. 대화가 끝날 무렵그는 나를 크게 칭찬하고 나서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내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 P10

나는 나 자신의 흠결을 돌아보는 고약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나 자신에게서 자조할 수밖에 없는 면모를 많이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이런 유감스러운 기벽이 없는 다수의 작가들에 비하면 덜 미화된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편이다. - P11

어떻게든 공적 인물이 되어야 한다. 대중의 시야 안에 머물러야 한다. 인터뷰를 하고 사진이 신문에 실리도록 해야 한다. 《더 타임스》에 편지를 쓰고, 모임에서 연설하고,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만찬 후 연설을 해야 한다. 출판사들이 광고하는 책들을 추천해 주어야 하고, 적합한 시간과 적합한 장소에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절대 순순히 잊혀서는 안 된다. 한 번의 실수로 큰 대가를 치를 수 있기에 힘겹고 불안한노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책을 널리 세상에 읽히려 백방으로 애쓰는 작가를 친절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은 잔혹한 처사다.

(대중작가의 삶은 얼마나 피곤할까ㅋ) - P12

그는 평론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그의 책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은 심히 유감이지만 그 자체로 아주 흥미로운 서평인 데다 대단한 비판적 지성과 대단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의견을 용감히 피력한 분에게 편지를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고 말한다. 로이보다 더 개선의 의지를 활활 태우는 사람은 없다. 

그는 계속 배우기를 희망한다. 성가시게 굴고 싶지 않지만 평론가께서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용무가 없으시다면 사보이 호텔에서 같이 점심을 들며 제 책의 정확히 어느 부분이 좋지 않은지 말씀해주실 수 없겠는지요? 로이보다 점심을 더 맛있게 주문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평론가는 생굴을 대여섯 개 삼키고 어린 양고기의 등심을 한 조각 먹고 나면 대개 본인이 뱉은 말까지같이 삼키게 된다. 이후 로이의 다음 소설이 나왔을 때 그 평론가가 로이의 차기작에서 커다란 진전을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적 정의라 하겠다.

(갑자기 피곤해진다ㅋ) - P22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한때 친밀하게 지냈으나 시간의 경과에 따라 흥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응대하는 것이다. 양측이 모두 평범한 처지에 머물러 있다면 인연이 자연스럽게 끊어지면서 아무런 악감정이 생기지 않지만, 만약 한쪽이 대단한 지위를 성취한 경우라면 어색한 상황이 펼쳐진다. 

옛 친구들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성공한 쪽은 새 친구들을 여럿 사귀게 된다. 오만 가지 일로 시간은 부족한데 옛 친구들은 자기들이 당연히 우선시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친구가 바로바로 응대하지 않으면 한숨을 내쉬고 어깻짓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 그것참, 난 당신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줄 알았어요.당신이 성공했으니 이제 나는 버려지겠군요."물론 당사자는 그러고 싶다.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 P23

위선만큼 성취하기 어렵고 진이 빠지는 악덕도 없다. 위선은 한시도 늦추지 않는 경계심과 영혼을 초월하는 극기가 필요하다. 불륜이나 폭음과 달리 짬짬이훈련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야 하는 작업이다. 또한 이기적인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 P27

"자네는신수가 훤하구먼."
이 말에 내 관심은 로이의 외모로 쏠렸다.
"나야 자네 신수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대꾸했다.
"바른 자세와 금주, 경건한 삶의 결과라네." 그가 웃었다.
- P35

많은 작가들이 단어에 심취해 있다 보니 대화 중에단어를 지나치게 고르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너무 정성껏 문장을 만들어 의도하는 바를 가감 없이정확하게 말한다. 

그래서 어휘 구사력이 단순하고 민감한 욕구에 국한된 상류 사회 사람들은 이들과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 결과 이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망설이게된다. 

로이는 이러한 종류의 제약을 받은 적이 없었다. 춤꾼과 이야기할 때는 춤꾼에게 정확히 통하는 용어로 말하고, 경주마를 좋아하는 백작 부인과는 그녀의 마구간 소년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로이가 여느 작가들과 조금 다르다고 열정과 안도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에게이보다 더 기분 좋은 칭찬은 없었다.  - P37

현자는 모름지기 상용구를 많이 쓰고(요즘 나는 ‘남이사‘를 가장 애용하고 있다.) 유행하는 형용사를 쓰며(‘끝내주는 이나 뻘쭘한 같은 말) 그 상황에 딱들어맞는 표현을 써서(‘팔꿈치로 쿡 찌르다‘ 같은 말) 환담에 소탈한 광채를 더하고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게끔 한다. 

지구상에서 효율성을 가장 따지는 미국인들은 이러한 요령을 완벽의경지로 끌어올려 방대한 범위에서 간결하고 진부한 문구들을무수히 만들어 냈고, 그 덕분에 서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한시도 생각하지 않고 즐겁고 활기찬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을뿐만 아니라 이로써 이성은 큰 사업과 간통 같은 더 중요한 문제의 몫으로 자유롭게 남겨 둔다.

🐯🐯🐯🐯🐯  - P37

나는 그가 언제쯤 본론으로 넘어갈까 궁금했다. 한창때의런던에서 앨로이 키어가 서평을 쓰지도 않는, 더구나 마티스,
러시아 발레, 마르셀 프루스트를 토론하는 모임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동료 작가와 한 시간을 노닥거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쾌활한 태도 뒤에는 희미한 불안감이 어른거렸다. 만약 그의 넉넉한 형편을몰랐다면 나한테 100파운드쯤 빌릴 속셈인가 의심했을 것이다.  - P38

뉴먼은 형편없게 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피츠제럴드의 짤랑짤랑한 사행시는 너무 고평가했었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는 읽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걸작이라고 생각하네."
"그럼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글쎄, 트리스트럼 샌디』, 『아멜리아」, 『허영의 시장」, 『마담보바리』, 『파르마의 수도원』,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워즈워스와 키츠, 베를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독창적인생각은 아닌 것 같군."
- P44

집에 돌아온 이튿날 아침에 수건 하나와 수영복을 들고 바닷가로 내려갔다. 하늘에구름 한 점 없고 공기는 뜨겁고 맑았지만 북해의 톡 쏘는 내음이 실려 있어 그저 살아서 숨만 쉬어도 즐거웠다.
(바닷가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싶다) - P54

나는 아침을 먹고 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름을 대자마자 비서는 전화를 그에
게 곧장 연결했다. 만약 내가 탐정 소설을 쓰고 있었다면 그가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나 곧장 의심했을 것이고, "여보세요." 하는 로이의 남자다운 목소리에서 그 짐작이 맞았음을확인했을 것이다. 누구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이른 아침에 이렇게 활기찬 사람은 없었다.

(너무 웃끼다ㅋ서머싯 몸 전작읽기를 해야겠다~♡) - P63

음식은 자리에 맞게끔 성찬이면서도 과하지 않았다. 돌돌 말아 화이트소스를 뿌린 가자미 살, 햇감자와 완두콩을 곁들인 구운 닭고기, 아스파라거스, 구스베리 풀18)이었다.  - P69

드리필드 부인은 문인의 아내들이 대부분 그렇듯 말이 많았다. 그녀는 주변에서 대화가 시들해지는 걸 가만두지 않았고, 우리는 탁자 반대편에 앉은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녀는 명랑하고 활기찼다. - P70

드리필드 부인은 선반에서 파란색 모로코가죽으로 묶은원고 뭉치를 꺼냈다. 다른 사람들이 경건하게 원고를 구경하는 동안 나는 방 안에 즐비한 책들을 둘러보았다. 여느 작가들처럼 내 책이 있나 재빨리 훑어보았지만 없는 듯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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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1-15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저 이 책 사서 방금 박스 뜯었네요. 역시 넘 잘 샀네요~^^

미미 2022-01-15 21:30   좋아요 4 | URL
너무 재밌어요ㅋㅋㅋ잘하셨어요! 서머싯 몸에게 반했습니다~♡ㅋㅋㅋ지금 운동나왔는데 못나올뻔 했어요^^

scott 2022-01-15 22:32   좋아요 4 | URL
방금 박스!
쿨켓님의 박스 속 책 리스트 궁금 합니돠 !ㅎㅎㅎ

coolcat329 2022-01-17 10:14   좋아요 2 | URL
아! 딱 두 권이에요 ㅎ
브로크백 마운틴 사면서 이 책도 같이 구입한 거에요~^^

2022-01-15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5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