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독을 즐기는 편이다. 외동으로 살아온 분들은 많이들 공감하실테지만 고독은 외동에게 삶 자체일 수도 있다. 어릴 때 내가 외동이라고 대답하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질문은 '외롭지 않냐?'는 것이었다. 아니, 형제가 여럿 있다가 혼자 떨어져야 외로운거지. 처음부터 혼자였는데 어떻게 외롭다는거지? 많은 사람들 틈속에 살다가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은 혼자 남았을때 두렵고 외로울 수 있다. 사람들과 살다가 혼자가 됐으니 그럴 수 있는거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인도에 혼자 살던 사람은 누군가 무인도에 들어오는게 더 무섭고 불편할 수도 있다. 외동이 아닌 사람들은 이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나도 어딘가 아플 땐 극도로 외로움을 느낀다. 외동의 삶도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친구를 사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교감하고 싶을 때 교감하고 언제든 나의 고독의 자리에 되돌아올 수 있지만 질병이라는 고독은 이렇듯 조절할 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누구나 예외없이 절대적으로 고독해진다. 이 아픔을 나만큼 공감해 줄 사람은 나 말고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언제든 꺼내서 타인들과 나누어 가지기엔 아픔은 너무나 주관적이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라도 모든것이 동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다. 무서운 것은 그렇게'아픔'이라는 쓸쓸한 고독을 느끼는 와중에 '죽음'이라는 고독의 끝판왕이 나를 보며 버티고 앉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라도 보게된다는 점이다. 죽을 때는 모두 혼자다. 로맹가리가 '삶은 죽음의 패러디'라고 했던 것처럼 인간들은 사는동안 어떻게든 죽음을 외면하기 위해 발버둥치치만 결국 게임의 최종 단계에 이르듯 죽음의 마지막 고독에 모두가 예외없이 다다른다.
이번에 읽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이렇듯 평소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죽음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품위 있는 판사로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며 살아왔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고 하는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새로 이사한 집의 이곳저곳을 꾸미다가 그만 사다리에서 떨어져 옆구리를 다친다. 그 후로 옆구리가 점점 더 아파오고 몰골은 변해간다. 수많은 덕망있는 의사들을 만났지만 아무도 이 병이 과연 무엇인지 확답을 주지 못한다. 3개월 동안 그렇게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고독'속에 죽어간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된다.
그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당연하게 느끼던 것들이 다른 모습을 띄게된다.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애쓰며 살아왔는지를 비참하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 것이다. 결혼생활에는 사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그래서 더욱 일에 몰두하며 사회적 성공만을 향해 달렸다. 그의 삶을 독자로써 아프게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만일 그가 아내와 진실된 관계였다면 이렇게까지 외롭지 않았을거라고, 그도 아내도 단지 결혼이라는 틀에 서로를 묶고 살았을 뿐 '공유'하는 것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삶을 살만하게 하는 것이고 때로 죽음까지도 위로하는 가치를 지닐지도 모른다. 아편이나 모르핀이 아닌 진실한 공감과 사랑만이 죽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고. 사실상 이반 일리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아내를 포함한 사람들의 기만이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진실된 하인 게라심과 아들의 눈물에서만 그는 자신의 고통을 '수용'하게 된다.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다면 그 무게를 느끼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수작이다.
그가 보기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무섭고 끔찍한 의식을 그저 어쩌다가 발생한 불쾌한 사건, 품위가 떨어지는일 정도로(마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응접실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을 대하듯이) 격하시켰다. 그가 평생토록 지키려 애썼던 품위라는 게 고작 그런 것이었다. 그도 알다시피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단 한 사람, 게라심만이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를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이반 일리치는 오로지 게라심과 있을 때에만 마음이 편했다. - P85
이반 일리치가 느끼기에 의사는 (잘 지내시죠?) 라고 말하려 하다가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에 (밤새 안녕하셨나요?)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는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 라는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의사는 그의 표정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 P92
그는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