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고독을 즐기는 편이다. 외동으로 살아온 분들은 많이들 공감하실테지만 고독은 외동에게 삶 자체일 수도 있다. 어릴 때 내가 외동이라고 대답하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질문은 '외롭지 않냐?'는 것이었다. 아니, 형제가 여럿 있다가 혼자 떨어져야 외로운거지. 처음부터 혼자였는데 어떻게 외롭다는거지? 많은 사람들 틈속에 살다가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은 혼자 남았을때 두렵고 외로울 수 있다. 사람들과 살다가 혼자가 됐으니 그럴 수 있는거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인도에 혼자 살던 사람은 누군가 무인도에 들어오는게 더 무섭고 불편할 수도 있다. 외동이 아닌 사람들은 이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나도 어딘가 아플 땐 극도로 외로움을 느낀다. 외동의 삶도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친구를 사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교감하고 싶을 때 교감하고 언제든 나의 고독의 자리에 되돌아올 수 있지만 질병이라는 고독은 이렇듯 조절할 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누구나 예외없이 절대적으로 고독해진다. 이 아픔을 나만큼 공감해 줄 사람은 나 말고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언제든 꺼내서 타인들과 나누어 가지기엔 아픔은 너무나 주관적이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라도 모든것이 동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다. 무서운 것은 그렇게'아픔'이라는 쓸쓸한 고독을 느끼는 와중에 '죽음'이라는 고독의 끝판왕이 나를 보며 버티고 앉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라도 보게된다는 점이다. 죽을 때는 모두 혼자다. 로맹가리가 '삶은 죽음의 패러디'라고 했던 것처럼 인간들은 사는동안 어떻게든 죽음을 외면하기 위해 발버둥치치만 결국 게임의 최종 단계에 이르듯 죽음의 마지막 고독에 모두가 예외없이 다다른다. 


이번에 읽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이렇듯 평소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죽음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품위 있는 판사로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며 살아왔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고 하는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새로 이사한 집의 이곳저곳을 꾸미다가 그만 사다리에서 떨어져 옆구리를 다친다. 그 후로 옆구리가 점점 더 아파오고 몰골은 변해간다. 수많은 덕망있는 의사들을 만났지만 아무도 이 병이 과연 무엇인지 확답을 주지 못한다. 3개월 동안 그렇게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고독'속에  죽어간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된다. 


그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당연하게 느끼던 것들이 다른 모습을 띄게된다.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애쓰며 살아왔는지를 비참하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 것이다. 결혼생활에는 사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그래서 더욱 일에 몰두하며 사회적 성공만을 향해 달렸다. 그의 삶을 독자로써 아프게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만일 그가 아내와 진실된 관계였다면 이렇게까지 외롭지 않았을거라고, 그도 아내도 단지 결혼이라는 틀에 서로를 묶고 살았을 뿐 '공유'하는 것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삶을 살만하게 하는 것이고 때로 죽음까지도 위로하는 가치를 지닐지도 모른다. 아편이나 모르핀이 아닌 진실한 공감과 사랑만이 죽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고. 사실상 이반 일리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아내를 포함한 사람들의 기만이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진실된 하인 게라심과 아들의 눈물에서만 그는 자신의 고통을 '수용'하게 된다.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다면 그 무게를 느끼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수작이다. 


그가 보기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무섭고 끔찍한 의식을 그저 어쩌다가 발생한 불쾌한 사건, 품위가 떨어지는일 정도로(마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응접실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을 대하듯이) 격하시켰다. 그가 평생토록 지키려 애썼던 품위라는 게 고작 그런 것이었다. 그도 알다시피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단 한 사람, 게라심만이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를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이반 일리치는 오로지 게라심과 있을 때에만 마음이 편했다.  - P85


이반 일리치가 느끼기에 의사는 (잘 지내시죠?) 라고 말하려 하다가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에 (밤새 안녕하셨나요?)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는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 라는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의사는 그의 표정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 P92


그는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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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15 17:24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나서 ‘열심히 살면 뭐하냐 즐기면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결국 인간은 혼자구나 라는 생각도 하고 ㅋ 저는 열린책들 35주년 세트를 통해 재독을 한건데 한번 더 읽으니까 다르게 느껴지더라구요~!!

이제 열린책들 35주년 세트 얼마 안남으셨을거 같아요^^

청아 2022-01-15 17:41   좋아요 8 | URL
맞아요! 저도 새삼 그렇게 마음먹기도 했고요ㅋ 어제 친구랑도 얘기한건데 남의 눈치를 너무 보며 살았구나하는 생각도 했어요. 이 작품은 저에겐 처음이지만 확실히 재독은 깊은 맛이 나는것 같아요^^

저 열린책 미니 은근히 많이 남았어요ㅋㅋ

2022-01-15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5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2-01-15 19: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의 삶을 반영한 것 같기도 하네요.
톨스토이 몇 작품 읽고 안 읽은지 꽤 오래 됐네요. 다시 붙들어야 할 텐데...
즐기는 인생도 중요하지만 고독과도 친해져야 할 것 같아요.ㅠ

청아 2022-01-15 19:49   좋아요 6 | URL
그 유명한 ‘메치니코프‘의 형이 판사였는데 톨스토이와 친분이 있었나봐요. 그 사람을 모델로 이 이야기를 썼다고해요. 아내에 관해서는 스텔라님 말씀처럼 톨스토이 개인의 경험이 반영되었을것 같아요. 톨스토이는 역시 놀라운작가입니다^^*

coolcat329 2022-01-15 21:4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고 ‘나도 뭐라도 깨닫고 눈 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그리고‘ 죽어서 행복하다‘ 이런 생각하며 세상과 이별하고 싶어요.

청아 2022-01-15 21:44   좋아요 7 | URL
고전이 좋은게 이런점인것 같아요! 정작 중요한데 모르고 살아가는 문제에 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거요. 저는 ‘원없이 책 읽었다‘생각하며 떠나고 싶어요ㅋㅋㅋ

coolcat329 2022-01-15 21:47   좋아요 5 | URL
오 그것도 좋네요. 사놓은 책은 다 읽고 가기 위해 화이팅!

청아 2022-01-15 21:53   좋아요 5 | URL
잔뜩 읽고 저 세상에서 또 책얘기해요!ㅋㅋ작가들도 만나고요ㅋ화이팅👍

persona 2022-01-15 22: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요즘 고독사의 방식이랑 너무 비슷한 거 같아요. 외롭냐는 질문에 대한 말씀 공감이 갑니다. 다른 방향으로 이해한 걸 수도 있는데 제일 이해가 안가는 질문인데, 외로워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저는. 혼자가 더 재밌고. 이 코로나 시국에도 사람 못만나 괴롭고 이게 아니라 나홀로 카페놀이를 못한다는 거 뿐, 저 개인에게는 별로 영향이 많지는 않은 거 같더라고요. 그럼에도 어릴 때 이 단편 읽고 혼자 사는 게 무섭다고 느낄 땐 있었던 거 같아요. ㅎㅎㅎ

청아 2022-01-15 22:29   좋아요 6 | URL
아! 고독사... 그렇네요!!! 생각해보니 이반 일리치에게 거의 그런 셈이었네요?!
제 주변에도 코로나 시국이라고 특별히 불편을 못느낀다는 친구들이 몇 있어요ㅎㅎ 반면에 아이들이 좀 많이 딱하긴해요. 소통의 차원에서 예전만 못하고 아이들이 선택한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마스크에 입이 가려지니까 눈으로 감정전달을 하려고 애쓰게되니(눈웃음이라던지,..) 분명 새로운 변화의 측면도 있고요.
으아~ 어릴때 이 작품 읽었다면 저도 더 무서웠을것 같아요!ㅎㅎ

persona 2022-01-15 22:32   좋아요 5 | URL
애들에겐 하루 한달이 엄청난 발달 단계를 달려가는 시간인데, 표정을 못 읽고 타인을 이해하는 발달이 느려질까 걱정도 되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요즘 아기들 눈 땡그랗고 반짝 거리고 눈 속에 온 우주가 담긴듯 표정이 풍부해서 너무나 예쁘긴 합니다. 정말 왜들 그렇게 이쁜 건지. ㅎㅎㅎ

청아 2022-01-15 22:35   좋아요 5 | URL
네! 그걸 우려한 책도 최근에 나왔더라구요? 워낙 인간이란 적응력이 좋으니 두고봐야죠ㅎㅎ아이들은 다 천사들이죠ㅎㅎ 날개없는 귀한 천사들♡

페넬로페 2022-01-16 12:1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딸아이가 외동이라 미미님의 글이 더 가슴에 와 닿아요. 근데 딸아이는 많이 외로워하고 앞으로의 외로움도 힘들어해요.
엄마, 아빠 없을 날을 생각하면 넘 괴롭다고~~그래서 꼭 결혼하고 싶어하고 자식도 둘 낳고 싶대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읽으며 삶이 참 허무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차피 인간은 혼자인것 같기도 하고요~~
특히 육체의 고통은 나만 느낄수 있다는 것도 슬프고 그러기에 중요한건 지금 이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청아 2022-01-16 12:20   좋아요 6 | URL
물론 저도 늘 그렇진 않았던것 같아요. 특히 사촌들이 와서 자고가면서 하나 더 낳아달라고 엄마에게 조르고요ㅎ 형제많은 친구들보고도 부러운적도 분명 있었거든요. 아이도 저는 제가 한 6명쯤 낳는다고 말했었어요ㅎㅎ제 외동 친구들은 저랑 비슷하지만 외동이라고 다 똑같진 않겠죠.^^*
‘지금 이순간‘노래가 갑자기 떠오르네요~♡홍광호버젼 가장 좋아했는데ㅎ

책읽는나무 2022-01-16 12: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남동생이 둘 있긴한데...외동딸이어서 어릴 때부터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음 싶더라구요.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네요.
주변에 자매들 모여 살면서 서로 의논하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가까이 살아서 몰라도 될 고민거리를 더 안고 살게 되는 단점이 있다 해도 부러운 부분들이 더 많아 보여요. 욕심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전 딸이 둘 있어 걔들은 좀 다행이겠다!싶다가도 딸들마저 부러운 거에요ㅋㅋㅋ
이것도 외로움일까요??ㅋㅋㅋㅋ
카프카의 책이군요?
그러고 보니 카프카 책도 제대로 읽어본 게 없네요?ㅜㅜ 아~읽을 책이 이리도 많다니????
참 저 이제 생각났는데요~~ 어젯밤 꿈에 스텔라님이랑 미미님이 그 단디 클럽 1 년?을 운영해서 두 분이 책 내시는 꿈을 꾼 듯 합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책 관련해서 그런 비슷한 꿈을 꿨네요^^

mini74 2022-01-16 16: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산을 오르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 산에서 계속 내려오고 있는 중이란 문장이 항상 기억에 남더라고요. 미미님 말씀처럼 죽음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책이었어요. 저도 넘 좋았어요 ~~

그레이스 2022-01-17 0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았던 책, 얇은데 많은 생각을 했던 책이었습니다.
메멘토 모리 그 이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