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이너를 사러 올리브0에 갔었다. 제법 작지 않은 매장에 직원 혼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고르던 제품에 대해 질문을 하자 대답하는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마침 그 시간에 손님은 나 하나 뿐이었지만 그녀 혼자서 계산하랴 손님 응대하랴 재고정리하랴 정신이 없어보여 힘들어서 그러겠구나 안쓰러웠다. 계산해야해서 불러야하는데 어쩐지 그거마저 미안해지는 분위기.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재고정리(아마도)하는 그녀를 찾아가 말했다. " 저...계산좀 해주세요." 포인트며 이것저것 묻고 결제해주는 그녀에게 "지금 여기 일을 다 혼자 하시는거예요?"하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동그래진 눈을 마주 쳤을때 나는 일부러 눈웃음을 던져주었다 "네. 직원분이 안나오셔서요."하고 대답한다. '알바생인데 일을 다 떠맡았구나...'생각하니 더 억울할것 같다. 요즘 난 적립이며 뭐며 하지 않는데 조금 전 물어놓고 적립하시면 샘플 챙겨드리니 하실거냐고 재차 묻는데 목소리가 처음보다 친절해졌다. '곧 점심인데 이 사람 밥은 어떻게 해결하지? 화장실은?' "괜찮아요"하는 내게 이거저거 챙겨주는 그녀의 온건해진 마음이 전해지는건 내 착각일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도 때때로 못된 구석, 못난 구석이 이런저런 상황에 튀어나오는 평범한 중생이다. -곱씹기는 내 전문이다-아마 내 글을 꾸준히 읽어보신 분들은 잘 아시리라 믿는다. (때때로 속좁 미미ㅋ)예전에 나라면 이곳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다른 매장을 찾거나 한 마디 해주었을거다. 아님 "뭐 기분 나쁜 일 있으세요?"하고 묻거나. 그런데 어떤 책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은 화자의 색다른 대응과 거기에 따른 설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불친절한 사람은 그날 아주 안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걸수 있다고(아주 드물게 원래 성격이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럴때 따뜻한 위로 한마디가 상대를 누그러지게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지하철에서 어떤 두 사람이 시비가 붙었을때 지나가던 행인이 화를 내는 쪽을 끌어 안아주는 모습도 기사로 읽었다. 감정이 격해진 사람을 상대로 이성적 논리를 따져봐야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게 필자의 취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오히려 감정을 다독여줘야한다고. 내 행동이 바뀐건 내가 만일 화가나고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상황이면 누군가 그런 나를 너그럽게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램때문이기도 하다. 얼마전 영화'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대해 글을 썼는데 거기 써둔 브레들리 쿠퍼의 행동,그 부분과도 들어맞을 듯 싶다. [알라딘서재]우리는 신화이며 미스터리다 (aladin.co.kr)
상호대차로 신청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드디어 받았다. 카페에 들러 따뜻한 라떼를 마시며 목차를 살펴보고 '들어가며'까지 읽었다. 지난번 단발머리님의 글을 읽고 신청한 책인데 '들어가며'만 읽어봐도 역시 임지현교수 글을 참 잘 쓴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일단 논리정연해 설득력이 있고 그래서 읽는 맛이 제법난다. 이 분의 다른 책도 다 읽어보고 싶어진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이렇다. 한때 '패전 직후 한반도 북부에서 본국으로 귀환하는 일본인 피난민의 고통을 그린 『요코 이야기』'가 뜨거운 감자가 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한국을 침략했던 일본에 대한 역사인식,맥락 없이 일본인 피난민의 고통을 주로 다룬 내용으로 보여지는데 마침 이 책이 미국 학제 중 6~8학년의 추천도서가 되어 '동아시아 역사에 무지한 미국의 학생들'에게 잘못된 이미지(한국인은 가해자, 일본인은 피해자)를 줄 수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논란이 커지자 임지현 교수가 거기에 대해 칼럼을 썼다. 『요코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왜곡'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취지였다. 그러자 많은 항의 메일을 받았고 임지현 교수는 이 일을 계기로 보다 큰 관점에서 민족주의적인 '기억전쟁'을 연구주제로 삼게된다. 단순히 칼럼으로 그친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자료조사를 하고 고민하고 공부해 책으로 엮어낸 점에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다. 궁금해서 이분의 강의 영상도 찾아봤는데 그의 모든 생각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자세히 읽어보고 싶은 흥미로운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 책을 마저 읽어봐야겠지만 이런 온건한 보수적 관점도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런 관점이야말로 제대로 된 '이해'가 전재되어야 한다. 왜냐면 피해의식이란 것이 무엇보다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억은 '정확한 역사'이고 요코의 기억은 '역사의 왜곡'이라는 단정은 위험하다.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가해와 희생을 대립시키는 단순 구도 속에서 자신의 생존 경험을 재구성하는 이 책의 서사가 탈역사화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거짓 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지나쳤다. 한국계 미국인의 위치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미국의 서구중심주의 또는 '애국주의적 세계사'교육에 대한 비판이 동반되어야 했다. 홀로코스트 등 나치의 범죄행위나 유럽의 역사는 열심히 배우지만 동아시아 역사에는 무지하고 베트남전쟁의 기억까지 주변화하는 미국의 역사교육이나 기억 문화는 확실히 문제가 많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미국의 논쟁이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의 거억 전쟁에 불을 붙인 것이다. P.9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임지현
역시 논리적이다. 그런데 학식이 많이 딸리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똑똑한 주장이 감정적 연대의식에 가 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임지현 교수의 위치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의 위치는 각각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본다.
그의 주장이 상당히 타당하지만 그것은 서구중심주의 또는 '애국주의적 세계사'교육주체자들에게 향해야 하지 않을까? 그의 논리정연함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도 그들이고 정작 바뀌어야할 사람들도 그들이지 않을까.
만추를 조금씩 보고 있다. 탕웨이의 연기는 마치 소설같다. 대사를 치지 않는데, 독백도 안나오는데 그 마음이 전해지는 연기랄까? 의처증 때문이었던것 같은데 폭력적이었던 남편을 살해해 복역중인 주인공 '애나'는 엄마의 죽음으로 72시간의 외출을 허가받는다. 거리를 걷다가 근사한 옷을 사입고 화려한 귀걸이도 걸어본다. 워낙 오랜만이라 그런지 귀걸이가 잘 들어가지 않아 겨우겨우 뚫어넣는다. 예쁘게 화장도 하고. 꽤나 멋져진 그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쇼핑백과 가방. 손에 쥔 물건들이 가득인데 어디선가 전화기가 울린다. 감옥에서 언제든 울리면 꼭 받아 수인번호와 함께 위치를 보고하라고 준 것. 허둥지둥 이제야 전화기의 존재가 떠오른 그녀는 가방에서 전화기를 다급히 찾아 겨우 받아든다. 감정없고 고압적인 상대의 목소리에 애나는 2537번이라고 수인번호를 보고하고 자신의 위치도 알린다. 인사도 없이 전화가 끊기자. 화려한 옷차림이 자신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근처 화장실에 들어가 새로 산 옷들을 벗어두고 원래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쓸쓸히 걸어나온다. 그녀에게는 온건한 위로가 필요하다.
최근에 산 책들 중 몇권만 올려본다. (책산 자랑 자제하는 중: 빨리 다 읽지 못해 부끄러워서)
땡투는 정확히 보내는 편^^*
선물받은 책은 여러가지 이유로 되도록 공개하지 않는데 프루스트라서 참을 수가..없어서 자랑을..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도 읽고 싶어 사두었는데 신간이 또 나왔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