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 크루즈와는 한달, 매즈 미켈슨과는 1년, 주 드로는 3개월, 이완 맥그리거는 7개월, 다니엘 크레이그와 6개월,... 이런 식으로 간혹 좋아하는 배우들과의 연애기간을 꿈꿔볼 때가 있다. 당연히 더 좋아하는 만큼 그 기간도 연장되는 식인데 이런 불가능하지만 행복한 상상을 한 계기는 시트콤 프렌즈 때문이다. 거기서 레이철의 부모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둘은 각자 아주 좋아하는 스타가 한명씩 있었고 서로가 상대방의 이상형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확률적으로는 희박하지만 만약 각자 그 이상형을 만나고 사랑할 기회가 온다면 인정해 주기로 약속했던 것. 당시에는 부부로써 정말 황당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센가 나도 전염되어 이런 상상을 하고 있더라.
"내 심장을 살라다오, 욕망에 병들고
죽어가는 짐승에 단단히 들러붙어
이 심장은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니."
ㅡ예이츠, 비잔티움으로 가는 배에 올라
욕망을 현실로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이혼 후 독신으로 살며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데이비드. 그는 서평가로 라디오방송에 나가고 문학비평으로 TV에도 출연한다. 스스로는 보잘것 없다 여기는 그정도의 명성 덕분에 더 수월하게, 자신의 세미나에서 마치 하이애나처럼 원하는 여학생을 골라 뒀다가 훗날 목적을 이뤄내곤한다. <죽어가는 짐승>은 그런 난봉기질 충만한 데이비드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고백하듯 내밀한 욕망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환갑을 일년 더 넘긴 데이비드는 이번에도 자신이 늘상 하던 패턴대로 학생들을 불러 파티를 연다. 혹시나 문제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학점을 주고 난 뒤로 주도면밀하게 시기를 정한다.
아이들은 내 수업에서 서로를 발견해. 또 나를 발견해. 그러다 파티를 하면서 갑자기 내가 한 인간임을 보게 되지. 나는 그 아이들의 선생이 아니고, 나는 나의 명성이 아니고, 나는 그 아이들의 부모가 아니야. 나는 쾌적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는 복층 아파트에 사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은 내 커다란 서재, 내가 평생에 걸쳐 읽은 책들을 품고 아래층 거의 전체를 차지하며 늘어서 있는 양면 서가들을 보고 , 내 피아노를 보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나의 헌신을 보고, 그리고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아.P.17
솔직하고 거침없고 유혹적이다. 나는 페이지 구석구석에 빨려들듯 읽어 나가다가도 몇 번이나 앞쪽에 있는 작가 필립 로스의 사진을 확인한다. 소설은 단지 소설로 봐야 한다는거 나도 알아 안다고! 하지만 이건 경험에서 나오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 아닌가? 어차피 작가들은 자전적 이야기와 허구를 버무릴 수 밖에 없으니 더 의혹이 일 수 밖에!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건가? 그렇다면, 만일 혹시라도 이런 경험을 했다면 그에게는 여성들을 자극하는 매력, 노화를 가득 머금고도 발산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도발적인 매력이 있다는 의미니까. 책에 실린 흑백 사진만으로도 어느정도 그런 자신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사진을 본다. 넘치는 정력의 상징이라 일컬어 지는 벗겨진 이마. (조금 억지스럽지만)10점! 그리고 강렬한 눈빛. 그래 눈빛만한 증거는 없지. 눈빛은 늘 조용하지만 아주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하니까.10점!(아 더 자세한 이야기는 차마 여기서 할 수가 없어 슬프다.흑)
상상해봐, 그 아이가 아마존적인 의식까지 갖추고 마키아벨리처럼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파악했을 경우를 상상해보란 말이야.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아이는 끝까지 생각을 해보는 훈련을 받지 않았고, 우리 둘 사이에 그 모든 일을 만들어놓고도 결코 일어난 일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어. 이해했다면,거기서 더 나아가 불 위에 올라선 남성을 괴롭히는 취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나 자신의 '백경白鯨'에 완전히 난파해 가망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 거야. P.151
그렇게 그의 입장에서 읽다가 그의 제자들의 입장이 되어본다. 싱글인 교수와(10점) 그의 피아노, (피아노 치는 남자 30점 추가) 벽을 가득 메운 책들(40점). 그의 지적인 삶과 세계. 그런 모든 열정이 녹아든 자취들을 보면서 적당히 알콜이 긴장감을 가라 앉히는 동시에 그녀들을 들뜨게 한다. "교수님이 내 앞에 서 있다. 그가 이런저런 질문들로 내게 호감을 보인다." 그는 결국 그렇게 점 찍어 뒀던 콘수엘라와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다. 늙어가는 그에 비해 빛나는 그녀의 젊음, 쿠바 이민2세로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그녀. 타고난 미모에 비해 자신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순간 어찌어찌해서 그는 그녀에게 압도되고 사로잡힌다.
콘수엘라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누드. 내 기분 탓에 무덤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던 벨벳 같은 검은 심연 위에서 불가해한 모습으로 자고 있는 황금 피부의 누드. 여자는 물결치는 하나의 긴 선으로 그곳에 누워 기다리지, 죽음처럼 고요하게.P.121
모딜리아니의 누드를 담은 도발적인 표지도 좋았고, 예이츠 시의 한 구절을 그대로 옮긴 제목도 상상력을 자극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연애담을 들려주는 방식에 귀 기울여 읽다보면 어느새 대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네 돈 후안 꼭 읽어볼래요 바이런이라구요?" 그런데 화자는 과연 누구에게 이야기 하는 걸까? 죽은 절친? 그저 내가 느낀대로 독자? 그는 독신으로의 자유를 만끽하지만 그의 전처와 아들은 그로 인해 상처받고 생채기가 사라지지 않은 삶을 사는 듯하다. 특히 그의 아들 케니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카라마조프 아버지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마치 너무나 그리워하듯 그를 재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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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오 모딜리아니-1917년 뉴욕 현대미술관. 누워 있는 누드
우리는 독서를 통해 이러한 경험을 보다 많이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내가 살지 않았던 삶,살 수 없는 삶들을. 이런 경험들은 내 모습과 위치에 끝없는 질문을 던져준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누리며 사는 동시에 누리지 못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할 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죽음이 임박했을 때 생각하는 데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또 둘 중 어떤 때에 우리는 좀더 솔직해질까? 과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때라는 것이 있을까? 미학적 관점처럼 자기 인생에 거리를 둘 수 있을까? 그게 불가능해서 우리는 소설을 찾는 것일까? 그걸 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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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중년 매즈 미켈슨 생각하며 읽은 거 안비밀!
<죽어가는 짐승>읽으며 떠올랐던 영화들
읽고 싶은 그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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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분량임에도 묘하게 중간중간 생각이 많아져 시간이 걸린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메모를 하며 읽었는데도 리뷰 쓰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것보다 더 쓰고 싶은 얘기가 많이 있었지만 워워~~릴렉스~ 말을 줄이려 노력하는 편인데, 글로 수다쟁이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