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칭송 받았다는 조지 버나드 쇼. 그런 그가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이라는 설명을 읽고 가만 생각해보니 더블린에는 유명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제임스 조이스를 비롯해서 오스카 와일드도 있지 않나? 거기에 조지 버나드 쇼까지? 그래서 찾아보니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도 이곳 출신이고,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이쪽 트리니티 대학 출신으로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뮈엘 베케트,드라큘라의 저자 브램 스토커가 있다니 연속적으로 놀랍다. 이 때문인지 더블린은 유네스코 문학의 도시로도 선정되었고 유럽 최초로 작가 박물관이 더블린에 자리잡게 되었다. 부럽다. 이 지역의 기세는 U2를 비롯한 음악가들로 이어지고 심지어 기네스 맥주도 이곳의 자랑이다.
냉소적인 행인 : 그래, 계속해서 점을 치고 싶으면 저 양반이 어디서 왔는지 말해 보시구려.
메모를 하던 사람 :(히긴스) 첼튼엄에서 태어나, 해로우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와서 인도에서 근무했죠.
신사: 바로 맞혔소. - P31
<피그말리온>의 줄거리는 이렇다.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상스러운 말과 알아듣기 힘든 영어를 사용하는 일라이자는 길에서 꽃을 팔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던 어느날 언어학자 히긴스가 하필 그녀 주변에서 그녀가 하는 말을 받아 적는 것을 알게 된다. 일라이자는 두려워한다. '경찰인가,첩자일까?' 위협적으로 느끼고 걱정하는 것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그녀가 흥분하다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일이 점점 커져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알고보니 언어학자는 그녀를 비롯한 구경꾼들의 말 몇 마디만 듣고도 셜록홈스처럼 출신지와 교육정도까지 파악하는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 언어학자 히긴스는 인도에서 그를 만나러 온 동료학자 피커링과 내기를 해 6개월간 언어교육을 통해 일라이자가 개천의 용처럼 완벽한 발음을 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리자: 누가 나랑 결혼을 하겠어요?
히긴스: (갑자기 최대한 웅변조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저음을 쓰면서) 정말이지, 일라이자, 내가 너와의 작업을 끝내기도 전에 길거리에 너 때문에 자살한 남자의 시체가 널려 있게 될 거다.- P59
그러나 히긴스의 인성은 이랬다. 젊은 여성을 혐오하고 독신주의를 지향하는 히긴스는 사교생활도 혐오한다. 게다가 어쩌면 당연하게도 상대를 배려해서 말을 할 줄도 모른다. 오히려 발음에 관한한 예민해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다. 그런 그가 6개월이란 시간동안 얼마나 일라이자를 들들 볶았겠는가. 다행히도 언어습득에 타고났는지 일라이자는 완벽하게 변신에 성공한다.그리고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울부짓는다. "나를 왜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냐고." 히긴스는 일라이자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그녀를 교육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라이자는 지적이지만 나이많고 이기적인데다 냉정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히긴스와 상류층이고 젊은 데다 자신을 존중하지만 능력이 없는 프레디 중에 고민한다.
그는 기운이 넘치는 과학자적 인물로, 과학의 대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열정적으로, 과격하게까지 관심을 가지며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그들의 기분까지도)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사실 나이와 체구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요란하게 세상을 알아 가는 매우 충동적인 아기와 같아 의도하지 않은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해야만한다. 그의 태도는 기분이 좋을 때는 다정하게 부탁을 하기도 하고, 뭔가 잘못되었을 때는 폭풍우같이 짜증을 내기도하는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그는 모든 면에 솔직하고, 악의가 없어서 가장 합리적이지 못한 순간에도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P47
이 작품은 먼저 오드리 햅번 주연의 <마이 페어 레이디>로 접했는데 그래서인지 작품을 읽을 때 익숙한 줄거리라 뚝딱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간단한 줄거리를 품고 있음에도 많은 생각 꺼리를 던져주었고 의문점도 많았다. 우선 영화에서도,책에서도 결말이 좀 이상했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워낙 어릴 때 본 것도 있지만 당시 헐리우드 영화처럼 틀에 박힌 결말이 아니었다. 왜 여주인공 일라이자는 길거리에서 꽃을 팔던 상황을 벗어났음에도 히긴스에게 훗날 그렇게 화를 냈던 것일까? 그나마 책에서는 어느정도 상세한 내막을 읽어낼 수는 있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답답함이 여전히 남았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의 모티프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피그말리온>에서 따온 것이었다.
신화에서 피그말리온은 히긴스 처럼 여성들을 혐오하고 결혼을 하려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아닌 자신이 만든 완벽한 모습의 여인상을 사랑하게 되고 아프로디테에게 그 조각상같은 여인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결국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는 그녀와 행복하게 산다. 하지만 조지 버나드 쇼는 이 신화에 반대하는 작품을 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히긴스와 일라이자의 대화의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 고민은 일라이자의 남다른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헐리웃의 일반적인 결말인 해피엔드에 익숙해진 대중을 위해 영화 감독과 연출자들은 쇼와 엇박자를 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흥행으로 이어져 쇼는 각본상을 타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을 재투성이에서 공주로 만들어 준 <왕자>히긴스의 슬리퍼를 집어다 주는 대신, 자신을 추앙하는 프레디와 대등한 부부관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녀는 더 이상 피그말리온이 만들어 낸 갈라테이아가 아니라 창조자로부터 독립해 세상을 살아가는 신여성인 것이다. P.234 (역자해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