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이야기 이산의 책 19
수잔 휫필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이산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 리뷰 안 쓰려고 했다. 혼자만 숨겨두고 몰래 읽고, 내 글에 인용하면서 잘난척 하고 싶었다. 과민성 대장증세가 있는 나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아랫배가 아팠다. 왜냐고? 이런 글을 쓰는 저자에게 질투가 나서!

 

아아, 이 책 멋지다. 오랫만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서 몰입했다. 나는 8세기의 둔황 문서를 넋놓고 보고 있다가 내려야할 역을 지나칠까봐 얼른 21세기로 돌아와야했다. 내가 문자로 만나 흠뻑 빠진 이 세계는 현실인가, 꿈인가. 내 입 속에는 모래가 서걱거리는데. 역사서인듯 소설인듯 이렇게 디테일도 강하고 문장도 멋지다니!

 

영국 역사학자인 저자의 전공은 둔황학이다. 저자는 11세기 이전 둔황 문서를 통해 사마르칸트, 티베트, 위구르, 중국, 카슈미르, 쿠차, 둔황 등 실크로드 각지에서 살던 위인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다. 이들은 전쟁 등 큰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면서 개인사와 거대역사가 씨실 날실로 직조되는 과정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원제인 <Llfe Along the Silk Road>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 삶에대해 은근 성찰하게 해 준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인생에 달관한 인생 선배를 만나 이야기 듣고 한뼘 성장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하는 출판사의 책 소개글에서 가져온 목차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느니 이편이 나을듯.


1. 사마르칸트와 당나라 수도 장안을 오가며 장사하는 상인 나나이반다크(730-751)
2. (적군의 장수인) 고선지 장군의 무용담을 후배 병사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티베트 병사 세그 라톤(747-790)
3. 중국에 팔 조랑말 떼를 몰고 다니는 목부(牧夫)였으나 티베트와의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전사한 위구르인 쿰투그(790-792)
4. 정략결혼의 제물이 되어 투르크(돌궐) 카간에게 시집가는 당나라 목종(穆宗)의 누이 태화공주(821-843)
5. 중국 우타이(五臺) 산으로 순례여행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장안에 도착하는 카슈미르의 승려 춧다(855-870)
6. 기생이 되어 군대를 따라 전전하다가 장안에서 생활하던 중 그만 황차오(黃巢)의 난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고향 쿠차로 돌아간 금발의 기생 라리슈카(839-890)
7. 어린 나이에 불가에 귀의하여 승방 주지로 생을 마감하는 둔황의 비구니 먀오푸(880-961)
8. 독실한 불교신자이며, 묵묵히 인생의 고통을 감내하는 둔황의 과부 아룽(888-947)
9. 역법(曆法)에 조예가 깊고 불심이 돈독해 뭇사람들로부터 칭송을 얻은 둔황의 관리 자이펑다(883-966)
10. 둔황 석굴을 장식하는 데 평생을 바친 화가 둥바오더(965)

 

한참 <서유기>에 빠져있다보니 자연스레 현장이 지나간 길에 관심이 가서 찾아 읽은 책인데, 예상 외로 기존 역사서에 없는 미시사를 읽은 것 같다. <서유기>와 <대당서역기>에 언뜻 언급된 중앙아시아 지역의 풍습 중에 이 책에 자세히 나와있는 내용이 꽤 많으니 말이다. 심지어, <서유기>가 환상소설이기에 허구일 거라고 생각한 내용까지 이 책에 사실로 나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예를 들어, <서유기> 제 8권에 보면 비구국에 간 손오공이 도사로 변신해서 간을 달라는 비구국 국왕 앞에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실제로 실크로드를 떠도는 유랑극단의 차력사나 도사들이 눈속임으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보이는 쇼를 공연했다고 한다. 또 삼장을 태우는 용마 같은 경우도 근거가 있다. 용과 암말이 관계해서 태어난 용마에 대한 전설이 실크로드에 흔하다고 한다. 어쩜 생각보다 <서유기>는 사실적인 소설일 수도 있겠다.  

 

이런 세세한 사실을 저자는 어떻게 알고 썼냐고? 당근 출토된 문서다. 둔황 막고굴을 제외하고도 모래에 묻힌 옛 도시나 요새의 방에서 발견한 문서들이다. 그동안 실크로드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방에 문서들이 쌓여 있었는지가 궁금했는데 이 책에서 답을 찾았다. 이하, 이 글을 읽는 친구분들도 이 책의 특징을 맛보시라고 길게 인용한다.

 

세그 라톤은 관측소나 봉화대에 파견 근무하지 않을 때는 미란 요새 동쪽 끝에 마련된 숙소에서 지냈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작은 방이지만, 그는 여기서 식사도 하고 잠도 잤다. 이 전초기지에는 쓰레기나 하수를 처리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걸 어디로 가져가겠는가? 병사들은 방구석에 그냥 던져두었다가, 방이 너무 지저분하고 악취가 나서 도저히 숙소로 쓸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그 방을 변소로 이용했다. 이윽고 인간의 배설물과 그 밖의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차면 그 방을 버리고, 성벽 안쪽을 따라 방들을 새로 지어서 숙소로 사용했다. 오물로 채워진 방들의 틈새로 잠식해 들어온 모래는 사막의 건조한 기후화 함께 악취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쓰레기가 썩는 것을 막아 주는 보존제 구실도 했다. 이는 1천년 뒤에 그곳을 발굴한 고고학자들에게는 고맙기도 하고 달갑지 않기도 한 상황이었다.

- 본문 86쪽에서 인용

 

이렇게 이 책은 열 명의 사람들의 열전 식 구성에서 인생을 읽을 수도, 당시의 생활문화사를 읽을 수도 있는 멋진 책이다. 문장도 격조있고 품위있다. 강추.

 

번역은 안록산을 안루산이라 하는등, 현지 중국발음으로 인명과 지명을 표기했다. 중원을 중위안이라 하기도 한다. 이건 좀 심하다.  (그런데 이 출판사의 다른 중국사 책들을 봐도 다 현재 중국어발음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원칙은 있는 것 같다. 표기가 오락가락하지는 않는다. ) 책 뒤편에 참고 문헌과 화보 출처, 동시대 지배자 연표까지 잘 실려 있다. (샤를마뉴와 하룬 알 라시드, 당 현종이 거의 동시대 인물이라니, 하고 즐겁게 읽게 해 주시는 센스!) 중간중간에도 본문 내용과 관련있는 둔황 벽화 사진이 실려 있다. 성의있게 잘 만든 책이다. 여튼,  이산 출판사의 책은 다 신뢰가 간다.

 

책을 다 읽고 리뷰까지 썼지만 여전히 아랫배가 아프다. 이번에는 아프다기보다 설렌다. 내 아랫배에는 대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궁도 있다. 그러기에 이 책처럼 멋진 책을 낳고 싶어서 지금 나는 몹시 설렌다. 일단은, 이 책의 기를 쏙쏙 흡수해 버리겠다. 원양이 따로 있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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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2-2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어야짓! ㅎㅎ

자유도비 2015-02-27 11:03   좋아요 0 | URL
라리슈카 이야기, 참 좋았어요. 저에겐 배울 점이 많은 유익한 독서였어요.
아아, <이 언니를 보라> 쓰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현장법사
샐리 하비 리긴스 지음, 신소연.김민구 옮김, 이주형 감수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뉴욕 타임즈 기자가 쓴 대당서역기>에 실망해서인지 이 책을 집어 들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읽어 갈수록 이 책만의 개성이 느껴진다. 사실 원전 <대당서역기>에 나온 현장의 취경 루트나 세세한 설명은 중국인 학자가 쓴 <현장 서유기>만 못하다. 그런데 현장의 위업에 반하거나 주눅들린 상태가 아닌, 드라이한 서술이며 서구 지식인의 한계가 아니라 장점이 보이는 서술이 꽤 읽기 흥미롭다. (현장과 논쟁 배틀하는 쪽을 외도, 이단이라 표기하지 않고 힌두교 자이나교의 한 부파, 하는 식으로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등등의 점에서 현장에게 반한 상태가 아니라고 이 리뷰에 썼음)

 

책은 현장법사의 취경 여행과 귀국 후 번역 작업을 연대 순으로 설명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거기에 불교 교리 관련 설명이나 수행법, 당시 국제 정세, 불교 예술 등등 현장이란 인간을 이해하는 인프라에 해당하는 배경 지식을 깔아준다. 중앙 아시아와 인도 제 국가들에 대한 객관적 설명은 <대당서역기>를, 현장의 개인적 업적은 <자은전>을 기본으로 다룬다. 지도, 건축물 평면도, 불교 예술품 사진 등 도판도 충실하고 현지인명과 지명도 현지발음과 중국한자표기를 병기한다. 물론, 실라바드라를 계현법사라고 하는 식으로 우리식 한자발음으로 표기한다. 원칙이 있는 편집이다. 읽다가 표지를 넘겨 출판사를 다시 확인할 정도로 맘에 들었다. 뭐, 단순 오타가 있긴 하다만.

 

특히 이 책의 저자는 불교 예술품 관련 설명이 장기. 아래 인용 문단을 보시라. 그동안 나는 현장법사가 왜, 어떻게 인도 등 여행지의 설화를 채집, 기록했는지가 궁금했는데 이 책 덕분에 풀렸다.

 

탁실라 인근에는 부처가 전생에 자신의 목을 잘라 머리를 보시한 이야기를 기념하는 스투파가 있었다. 현장은 이 지역의 특정 유적을 본생담의 무대와 결부시키는 것에 상당한 열의를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본생담은 돈황 석굴 등 중국과 인도 도처에 벽화로 그려지거나 돌로 조각되었으므로, 현장도 시각적으로 묘사된 본생담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 본문 97쪽에서 인용

 

간다라 부조에 나타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이해하려면 불교의 문헌 기록의 전통을 알아야 한다. 현장의 기록은 설화로 가득한데, 불교 설화는 종종 불교미술의 주제로 애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서술은 설화의 배경 무대가 되는 곳의 지리적 위치를 확인해 줄 뿐만 아니라 설화가 갖는 의미를 파악하게 한다. 특히 대인도 제국에서 이러한 설화가 기원한 장소를 찾는다는 것은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불교미술은 종종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였는데, 역사적인 부처뿐만 아니라 과거불의 생애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사원의 상방을 장식한다. 승려들은 미술이 설화에 생명을 주고 설화가 미술에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알았으며, 사람들은 그 양자로부터 신앙을 배운다.

- 본문 288쪽에서 인용

 

그외, 현장은 아더 왕 같은 중세 기사 문학의 영웅처럼 불교 서사시의 영웅이다(37쪽)라거나, 인도의 카니슈카 왕을 인도의 클로비스 왕이라고 표현(95쪽)하거나, 불전 부조를 예배하는 것을 가톨릭 신자들이 사순절 둥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본문 101쪽)고 서술하는 것 등등, 서구인 독자를 대상으로 와닿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모든 시도가 다 재미있다. 덕분에 동서양 역사와 문화를 넘나들며 지적 자극을 받게 된다.

 

이 책에서는 중국인이 쓴<현장 서유기>와 다른 서구인의 시선이, <뉴욕 타임즈 기자가 쓴 대당서역기>와 다른 불교 전공자의 시선이 곳곳에 느껴진다. 충실히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격조있고 임팩트 있는 문체다. 아무래도 내 입장이 뭐 그런지라, 내용 이해보다 글 쓰는 입장에서 주의깊게 본 책이다. 배울 점도 많고 재미도 있었다.

 

참, 요전에 설화 속 현장을 모세와 비교해서 쓰고 혼자 대발견한 것마냥 좋아했는데, 이분이 이 책에 이미 써 놓으셨더라. 이 부분은 읽으면서 좀 허무했다.  

 

참참, 북인도를 수세기동안 지배해왔던 많은 군주들이 이방인이었고,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어떤 종파를 지지할지 결정해야만 했다(113쪽)는 대목을 보니, 교리논쟁배틀이 군주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에 더 깊은 내용은 없었다. 아는 분, 알려 주십사.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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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기자의 대당서역기
리처드 번스타인 지음, 정동현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서유기> 완역본 전집을 읽으면서, 서유기 관련한 책들은 검색해서 나오면 다 읽어보고 있다. 그동안 역사서, 해설서나 기행서 등등 여러 서적들을 만나보았건만 <서유기>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대당서역기>의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기행서적만큼 읽으면서 기이한 느낌을 받은 책은 다시 없을 것 같다.

 

진짜다. 이 책 기이하다. 정체, 즉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 <대당서역기>를 설명하거나 답사하는 책도 아니고, 자신의 여정 견문 감상에 충실한 기행문도 아니다. 지금도 가기 힘든 지역인지라, 확실한 여행 정보가 있기라도 한다면 좀 모를까? 그러나 그런 것도 없다. 여행 전후 필자의 변화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분량은 자그마치 520쪽이 넘고, 글씨는 빡빡하다. 절판이어서 먼 지역의 도서관까지 가서 구해 읽었는데(그것도 서고에 있어서 줄 서서 사서분께 신청해서) 내 노력과 시간을 들인만큼 뭐 남거나 건진 게 없다.

 

책 상세 설명 페이지에 의하면 "뉴욕타임스 기자인 저자와 당나라 승려 현장의 시간을 초월한 긴 모험. 중국 동부의 서안을 출발.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에 도착,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오는 긴 여행은 당나라 승려 현장이 진리를 찾아 인도록 갔다가 되돌아온 그 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었다." 라는데, 그게 다다. 걍 그 길을 따라 가고, 중국사 전공인 자신이 아는 것(글쓴이는 그 대단하신 패어뱅크 교수의 제자임)과 현장에 대한 것, 자신의 사적 소회를 좀 풀어 놓는다. 자기 이야기도 하다 만다. 오래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서 인지, 글 안에 자신을 숨기는 문체에 익숙한 것 같다. '1. 팽생 몇 번의 봄이 지나가는가''7.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병' 이런 제목은 멋지게 달았지만 별 내용 없다. 낚시 제목이다.  마지막 장 제목은  '21. 여행 끝에 도달한 진리'이지만, 난 글쓴이가 뭔 진리에 도달했는지 모르겠다. 걍 50넘게 방황하던 것을 정리하고 한 여성과 결혼해서 정착하기로 했다는 것?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 그게 다인가? 그걸 꼭 현장의 취경 여행길을 따라 개고생하며 다녀 봐야 도달하게 되나?

 

집은 필수이다. 집은 좋다. 집은 끔찍하다. 집에 대한 두려움이 50대가 되어서도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미혼에 아이도 없는 남자는 반쪽짜리 남자라는 탈무드의 질책이 마음 한구석에 걸리기는 한다.
이제 여행의 최종 도착지가 보이는 감숙성 끝자락을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두려움의 정체를 깨달았다. 집은 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성 안에서 사람은 나이를 먹고 늙어 죽는다. 집에서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늙어간다. 하지만 여행 길에서 시간은 멈춘다. 아니 멈추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바쁘게 움직이느라 시간의 흐르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처는 이것을 이해했다. 부처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삶의 실체를 알고 나자,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떠나 방랑의 세월을 보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리고 오늘날 남루하고 약간 미친 듯한 힌두 성인들처럼 방랑의 삶을 시작했다. 집은 궁극적인 집착이고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 집착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부처가 죽고 제자들이 첫 불교 집회를 열기 위해 독수리 산봉우리에 모인 후, 지도자 카시야파는 부처의 사촌이자 부처가 가장 아낀 애제자 아난다가 그들 사이에 좌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난다는 다음날 아침 되돌아와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야 문을 통과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집은 원시의 끈이다. 나는 이 여행, 이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이젠 너무 늙어서 앞으로 여행을 계속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큰 모험을 하고 싶었다. 가보지 못한 가장 먼 미지의 땅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중국 맞은편의 안개 자욱한 푸른 산맥에서 도로를 바라보면서, 미지의 모험은 이미 지나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정시에 서안으로 되돌아가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본문 495쪽에서 인용 

 

인용해보자면, 위와 같다. 뭔가 느낌이 오는가? 나만 이상한가? 그럴 수도 있겠다. 아마 내가 이런 스타일의 먹물 남자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이 시시했는지도 모르겠다. 페르귄트이건 오뒤세우스이건 성진이건 이 글의 필자인건, 세상을 맘껏 떠돌며 즐기다가 늙고 힘빠진다음에야 이런 말을 하며 돌아오는 남자들은 내겐 다 시시해 보인다. 똥인지 된장인지 손가락으로 찔러 먹어봐야만 아나?

 

그나마 흥미로왔던 것은 저자가 여행할 당시의 국제 정세가 잘 드러나 있다는 것. 중국, 파키스탄 등 국경을 넘나들며 각각 자국의 정치적 입장을 체화한 사람들의 모습을 덤덤히 묘사하고 있는 점은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장점을 보여준다. (파키스탄이 최초로 핵무기 실험을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저자는 1998년에 여행한 것 같다. ) 흉노족에게 황제는 '성 외교'로 목숨과 나라를 건지면서 중국 처녀를 흉노족의 통치자에게 바쳤다(본문 91쪽)라는 식의 가차없는 표현은 신선했다. 화번공주, 혼인정책, 기미정책 등으로 표현하는 동양권 작가의 표현만을 보다 보니, 속이 후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한편으로 보면,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권의 역사를 서구 지식인이 좀 색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읽는 재미가 있긴하다.

 

하지만 엘긴 등 서구 유물 약탈자들을 옹호하는 듯한 서술이나 돈황 벽화를 보고 사실적인 공간 논리가 부재(509쪽)하다고 평하는 등 서구 제국주의 지식인의 무식한 시선도 종종 보인다. 그리고 실크 로드를 통한 불교 미술사를 말하면서 신라와 석굴암은 빼고(아마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중국에서 바로 일본으로 넘어간다. 최고 활판인쇄본을 말하면서도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모른다. 기타 등등 내가 보기에는 반편이 지식인이 쓴 책 같다.

 

그리고, 책의 내용만큼이나 번역도 만만찮게 시시하다. 역자는 걍 영어를 그대로 한글로 옮겨 놓으셨다. 그래서 '반초'는 '반차오'이고 '구마라습(혹은 구마라십, 구마라집)'은 '구마라즙'이다. 심지어 진시황제는 '첫 황제'이고 '대안탑'은 '큰 야생 기러기 탑'이다. 내가 알기로, 번역하시는 분들은 초벌 번역 후에 관련서적 여러 권을 대조하며 용어를 가다듬고 학계의 일반적 용어로 바꿔 쓴다고 들었는데, 이 분은 안 그러셨나보다. 그리고 편집실에서는 초고 들어온 것을 그대로 검토 없이 책으로 내었나보다.

 

이래저래, 여러 면으로 이 책에 내가 들인 에너지와 시간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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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 유적 - 인도로 떠난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강희정 외 지음 / 사회평론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서유기>를 읽다보니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관심이 갔다. 자연스레 현장을 비롯한, 목숨을 걸고 인도로 불경을 가지러 간 구법승들이 궁금해졌다. 각각의 기록을 읽으면 되지만, 이 분야 지식이 없는지라 그 기록이 갖는 역사적 의의나 어느 정도 사실성이 있는지의 여부 등을 알지 못하니 그냥 <대당서역기>만 읽어도 수박 겉핧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우선 정리하자면, 이 책은 현장, 혜초 등 구법승들이 남긴 기록과 그들에 대한 기록, 기록에 언급한 인도의 유물과 유적을 답사, 연구한 방대한 기록이다. 8인의 전문가들께서 동아시아 구법승들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계속 중간 정리를 해 주고 계셔서 두꺼운 분량이지만 그리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 분야에 관심 있다면 구입, 서재에 비치하여 두고두고 들춰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구법승들 관련 문헌 정리, 도표, 지도 등등 이 책을 딛고 더 뻗어나갈 자료가 풍부하다. 문헌 자료 뿐만 아니라 보드가야, 날란다 등 현지 유적 답사 자료도 알차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이 책을 읽지 못했다. 솔직히, 한글을 깨쳤으니 글자만 읽은 셈. 역사 배경은 좀 알겠는데 불교 철학 나오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자은전>이 최종적으로 성립되는 688년까지도 여전히 유가론학파와 유식학파의 분파의식은 지속되었으며, 여기에 자은학파와 서명학파의 갈등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본문 58쪽에서 인용)'는 서술을 접하면 유가론과 유식학파의 불교철학적 입장이 각각 뭔지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나는 그저 글자의 음만 읽게 된다. 그래서 내가 관심있는 현장 관련 부분만 이 리뷰에 메모해 두겠다.

 

3세기부터 11세기말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는170여명의 구법승들이 인도로 향한다.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이 정도이다. 학자들은 이들을 700여명으로 추정한다. 그럼 여기에서 궁금해진다. 동아시아 구법승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왜 떠나야만 했던가?  본문 설명에는 이렇다. 

 

동아시아 불교란 한역 경전을 매개로 하는 한자 문화권의 불교를 가리킨다. 즉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경전이 한역되고 이것이 한자문화권인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로 전해짐으로써 동아시아 불교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역'은 단순히 번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도와 중국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적 배경 및 정치, 사회적 제 조건의 차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인도 불교의 중국적 변용은 필연적이다. 서력 기원을 전후하여 인도 불교는 이미 원시불교와 부파불교를 지나 대승불교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인도 불교가 순차적으로 중국에 전해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교란되고 때로는 역전된 채 중국에 전해지기도 하였다. 이 역시 위진남북조의 정치, 사회적 분열상과 겹쳐지면서, 중국 불교 나아가 동아시아 불교는 매우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동아시아 불교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목숨을 걸고 서역으로의 여행을 시도한 승려들이 바로 구법승이다.

- 본문 43쪽에서 인용

 

그랬구나. 단순하게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국가의 언어로 중역된 불경의 원전을 구해 제대로 공부하여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종교적 열망만이 아니었구나. 당시 국제정치적 상황도 큰 변수였구나. 또 새로운 이야기도 읽었다. 현장의 <대당서역기>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 이들 구법승들이 취경길에 남긴 기록과 행적, 그들이 가져온 불경과 불교 미술품은 불교사는 물론 동서교류사 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인도의 불경과 미술품이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 영향을 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문화란 상호 교류되는지라, 이들 구법승이 호신불로 가져간 불교 미술품이 현지 인도의 불교 예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이 책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은 내가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현장 관련 자료의 의의를 객관적으로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현장관련 3대 문헌자료는 <대당서역기> 12권, <속고승전> 중 권4 <현장전>, <자은전>이다. 그런데 최근 647년 무럽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현장전 초고 필사본이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현장 입적 후 탈고된 기존의 <속고승전> 중 <현장전> 내용과 상당한 부분에서 다르다고 한다. 갈수록 현장을 영웅시하고 업적 미화, 신화화가 이뤄진 과정이 보이는데 이는 현장의 제자 파벌 유가파 법상종 중심으로 중국 불교를 재조직하는 과정을 반영한다고. 그리고 현장의 방대한 불경 번역 사업 이후 중국 불교는 신역불교와 구역 불교의 사상적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양 진영의 사상 투쟁을 극복하는 것이 동앙시아 불교의 과제가 되었다고 하니,,, 여튼 그저 <대당서역기>만 읽고 와~ 대단하다~ 하고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현실의 디테일은 이렇게 다르다.

 

그래서, 이 책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독서는 역시 다각도로 접근해서 해야한다"는, 책 전체 주제와 상관없는 독후감을 남기며 이 질 낮은 리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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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의 발자취를 따라서 / 스가와라 아쯔시 저, 양기봉 옮김 / 보림사 /1987년 10월

 

리뷰로 쓸 수 없는 책이다. 28년전에 나온 책이며 오래전에 절판되었기 때문에 검색해도 안 나온다.

 

<서유기>에 관심이 생겨 자연스레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 관련한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현장의 취경여행에 꽂혀서 그 길을 따라 간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사막의 발자국처럼 냇물의 징검다리처럼 내 앞에 펼쳐지는 이미 떠난 자들의 흔적,,,, 그 중 한 권으로 <현장 서유기>의 역자이자 문지사 <서유기>의 번역자이신 임홍빈선생님이 추천하는 책이 스기와라 아쯔시 저 <서유기의 발자취를 따라서>였다. 그런데 구할 방법이 없었다. 검색해보니 우리나라 도서관 중 국립중앙도서관 한 곳에만 있었다. 그것도 종이책이 아니라 DB구축, 전자도서 시스템으로. 검색하다보니 이 책을 예찬한 리뷰도 한 편 만났다. 읽고 싶어 미치겠는데 방법이 없어 막막했다.

 

그러다, 이번 부산 강연길에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더불어 <아날학파>등 귀한 절판본 역사서들도 득템했다) 부산 지역 도서관에서 폐기 처리되었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온 책이었나보다. 1987년 10월 초판 인쇄, 2800원. '~습니다'가 아니라 '~읍니다'로 표기된 평서형종결어미라니! (잠깐, 이 대목에서, 오버 좀 하겠다. 아! 남자만 운명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었어! 현장법사는 천축국에 가서 날란다 사원에서 강연하고 불경을 구해 왔지만 나 껌오정은 부산에 가서 강아지똥 서원에서 강연하고 절판된 책들을 구해 왔어! 이건 나의 취경 여행이야!  자, 손오공은 어디 있지? 료마는? 오버 끝. )

 

이 책은 일본의 불교문화역사 전공자인 스기하라 아쯔시 교수가 1978년 현장의 <대당서역기> 경로를 따라 현지답사한 기록이다. 인종, 풍속, 종교, 지리, 산업, 문화 등등 관찰한 내용을 사진이 아니라 직접 스케치한 그림으로 실은 점이 특이하다.  현장의 일생, 당시 당나라의 국제 관계, 불교 문화 관련 설명이 기본 <대당서역기>의 내용과 같이 등장한다.

 

책에는 현재 남아있는 고대 목간 자료들은 건조 기후 덕분에 주로 만리장성 서쪽 관문인 옥문관과 근처 봉화대 주변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라든가, 고창국 귀족들이 먹었던-아마 현장도 대접받아 먹었을 말린 과일이며 비스킷 이야기,,,등등  정식 역사서에서 읽을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예를 들자면 아래 부분,

 

현장이 통과했던 대여행의 코스는 오늘날의 이른바 '비단길'에 해당된다. 비단길이란, 19세기에 독일의 지리학가 리히트호헨이 붙인 이름이다. 비단을 운반했던 길이기는 하나 그 비단은 단지 무역품이란 의미보다, 화폐와 마찬가지 의미로 쓰였던 물건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 본문 18쪽에서 인용

 

저자는 이렇게 서술하면서 현장이 여행 경비로 비단을 준비하거나 조각을 잘라 지불했을 경우를 상상한다. 이 점은 그동안 나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쌀과 면포가 화폐로 쓰였기에 면포의 경우만 상상했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에, 실크 로드가 실크를 운반할뿐만 아니라 실크 조각을 여행 경비로 뿌리고 다니는 로드였다니. 지금도 사막을 여행하면 그 옛날의 비단 조각들이 건조 기후 덕분에 색이 하나도 바래지 않은 채 발견된다고 한단다. 아아, 사막에 나부끼는 천 년 전의 비단 조각들이라니! 상상력 돋는다. 이렇듯 이 책에는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오밀조밀 실려 있다. <현장 서유기>를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다. 아, 재미있다. 

 

답사 당시 현지 상황도 곁들여 있는데, 이 내용 역시 겨우 30여년 전이지만 1300여년전 현장의 여행 당시 상황만큼이나 내겐 아득하니 멀게 느껴진다. 아마 지금 당장 내가 이 길을 따라 여행한다면 현장의 취경여행 당시 상황은 물론, 스기하라 교수의 답사여행 당시 상황과도 굉장히 다를 것 같다. 현장의 <대당 서역기>에는 바비얀 석불의 얼굴이 멀쩡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스기와라 교수의 이 책에는 이미 바비얀 석불의 얼굴 부분이 파괴되어 있다. 지금은,,,, 몸체도 다 파괴되어 있지 않은가.

 

현장의 여정과 달리, 바미얀(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책이 끝나서 아쉽다.  

 

 

- 이렇게 책 본문 곳곳에 약간 엉성한듯한 지도와 그림이 있는데, 모두 저자 스기하라 교수가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한다. 표지 역시 저자분 작품. 표지디자인도 삽화도 일본 원서와 똑같이 냈다고 한다.

 

- 일본 원서를 찾아 보니, 한국번역판과 표지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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