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법사
샐리 하비 리긴스 지음, 신소연.김민구 옮김, 이주형 감수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뉴욕 타임즈 기자가 쓴 대당서역기>에 실망해서인지 이 책을 집어 들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읽어 갈수록 이 책만의 개성이 느껴진다. 사실 원전 <대당서역기>에 나온 현장의 취경 루트나 세세한 설명은 중국인 학자가 쓴 <현장 서유기>만 못하다. 그런데 현장의 위업에 반하거나 주눅들린 상태가 아닌, 드라이한 서술이며 서구 지식인의 한계가 아니라 장점이 보이는 서술이 꽤 읽기 흥미롭다. (현장과 논쟁 배틀하는 쪽을 외도, 이단이라 표기하지 않고 힌두교 자이나교의 한 부파, 하는 식으로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등등의 점에서 현장에게 반한 상태가 아니라고 이 리뷰에 썼음)

 

책은 현장법사의 취경 여행과 귀국 후 번역 작업을 연대 순으로 설명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거기에 불교 교리 관련 설명이나 수행법, 당시 국제 정세, 불교 예술 등등 현장이란 인간을 이해하는 인프라에 해당하는 배경 지식을 깔아준다. 중앙 아시아와 인도 제 국가들에 대한 객관적 설명은 <대당서역기>를, 현장의 개인적 업적은 <자은전>을 기본으로 다룬다. 지도, 건축물 평면도, 불교 예술품 사진 등 도판도 충실하고 현지인명과 지명도 현지발음과 중국한자표기를 병기한다. 물론, 실라바드라를 계현법사라고 하는 식으로 우리식 한자발음으로 표기한다. 원칙이 있는 편집이다. 읽다가 표지를 넘겨 출판사를 다시 확인할 정도로 맘에 들었다. 뭐, 단순 오타가 있긴 하다만.

 

특히 이 책의 저자는 불교 예술품 관련 설명이 장기. 아래 인용 문단을 보시라. 그동안 나는 현장법사가 왜, 어떻게 인도 등 여행지의 설화를 채집, 기록했는지가 궁금했는데 이 책 덕분에 풀렸다.

 

탁실라 인근에는 부처가 전생에 자신의 목을 잘라 머리를 보시한 이야기를 기념하는 스투파가 있었다. 현장은 이 지역의 특정 유적을 본생담의 무대와 결부시키는 것에 상당한 열의를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본생담은 돈황 석굴 등 중국과 인도 도처에 벽화로 그려지거나 돌로 조각되었으므로, 현장도 시각적으로 묘사된 본생담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 본문 97쪽에서 인용

 

간다라 부조에 나타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이해하려면 불교의 문헌 기록의 전통을 알아야 한다. 현장의 기록은 설화로 가득한데, 불교 설화는 종종 불교미술의 주제로 애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서술은 설화의 배경 무대가 되는 곳의 지리적 위치를 확인해 줄 뿐만 아니라 설화가 갖는 의미를 파악하게 한다. 특히 대인도 제국에서 이러한 설화가 기원한 장소를 찾는다는 것은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불교미술은 종종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였는데, 역사적인 부처뿐만 아니라 과거불의 생애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사원의 상방을 장식한다. 승려들은 미술이 설화에 생명을 주고 설화가 미술에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알았으며, 사람들은 그 양자로부터 신앙을 배운다.

- 본문 288쪽에서 인용

 

그외, 현장은 아더 왕 같은 중세 기사 문학의 영웅처럼 불교 서사시의 영웅이다(37쪽)라거나, 인도의 카니슈카 왕을 인도의 클로비스 왕이라고 표현(95쪽)하거나, 불전 부조를 예배하는 것을 가톨릭 신자들이 사순절 둥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본문 101쪽)고 서술하는 것 등등, 서구인 독자를 대상으로 와닿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모든 시도가 다 재미있다. 덕분에 동서양 역사와 문화를 넘나들며 지적 자극을 받게 된다.

 

이 책에서는 중국인이 쓴<현장 서유기>와 다른 서구인의 시선이, <뉴욕 타임즈 기자가 쓴 대당서역기>와 다른 불교 전공자의 시선이 곳곳에 느껴진다. 충실히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격조있고 임팩트 있는 문체다. 아무래도 내 입장이 뭐 그런지라, 내용 이해보다 글 쓰는 입장에서 주의깊게 본 책이다. 배울 점도 많고 재미도 있었다.

 

참, 요전에 설화 속 현장을 모세와 비교해서 쓰고 혼자 대발견한 것마냥 좋아했는데, 이분이 이 책에 이미 써 놓으셨더라. 이 부분은 읽으면서 좀 허무했다.  

 

참참, 북인도를 수세기동안 지배해왔던 많은 군주들이 이방인이었고,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어떤 종파를 지지할지 결정해야만 했다(113쪽)는 대목을 보니, 교리논쟁배틀이 군주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에 더 깊은 내용은 없었다. 아는 분, 알려 주십사.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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