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허균 지음 / 돌베개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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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 미술과 문화재에 대한 좋은 책을 많이 낸 저자의 책이다. 읽으면서 그냥 대단하다, 재미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책 한 권 안에 방대한 내용을 집약적으로 넣어 설명하다보니 당연히 생기는 문제는 좀 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이 책 수준의 완성도를 보이는 책은 또 없을 것 같다. (잠깐, 이 책은 전문적으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나는 입문자 용 서적으로서의 완성도를 말했다) 이 책 읽기  직전에 너무도 빈약한 내용을 불심 운운하며 때우고 있는 책을 읽었기에, 내가 지금 좀 인심 후한 독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 책은 종교문화나 예술 관련한 내용을 다루면서 교리 나열과 저자의 개인적 신앙 고백으로 때우려는 허접한 책은 절대 아니니, 믿고 읽으시라.

 

절, 그러니까 사찰은 신자 아니면 주로 여행시에 들렸다가 산책 겸 돌아보고 절 아래 식당가에서 산채비빔밥이나 먹고 가는 문화 유적지나 관광지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사찰은 기본적으로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다. 여러 상징을 통해 불법을 설명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고 불국의 이상세계를 신자에게 보여주는 곳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장엄(莊嚴)을 구현하는 사찰 조형물과 장식문양의 상징 의미를 설명한다. 미술과 신화와 종교와 역사를 오가는 내용도 알차지만, 저자 스스로 전국 250여 군데 사찰을 답사하며 찍었다는 사진도 충실하다. 사찰을 다루는 다른 서적처럼 불국사면 불국사, 해인사면 해인사, 이렇게 한 사찰의 사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꼭지에는 그 주제에 대한 사진만 모여있다. 가령, 연꽃이라면 보광사, 통도사, 범어사,,, 의 연꽃 사진만 실려 있다. 사진과 본문글을 보며 이해하고, 다른 사찰의 같은 소재를 다룬 사진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루고 있는 상징은 이렇다. 연꽃, 용, 귀면, 비천상, 길상과 만덕, 토끼와 자라, 물고기, 가릉빈가, 주악인물상, 십이지신상, 태극, 원상, 심우도, 불단, 단청, 천장의 꽃, 문살, 닫집, 불상, 광배, 불상의 자세·수인·지물, 탑, 탑의 층수, 사사자상, 부도, 봉발대, 사물, 전각과 문루, 불전과 존상의 배치, 석가탑과 다보탑,다리, 계단. 어디를 펼쳐 읽어도 재미있다. 구입해서 책장에 구비해놓고 두고두고 사찰 방문할 일 생길 때마다 궁금한 부분 찾아 읽기 좋은 책이다.

 

 

연꽃은 인도의 고대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고대 인도 브라만교의 신비적 상징주의 가운데 혼돈의 물 밑에 잠자는 영원한 정령 나라야나의 배꼽에서 연꽃이 솟아났다는 내용의 신화가 있다. 이로부터 연꽃을 우주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 세계연화사상이 나타났다. 세계 연화사상은 불교에서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 화생의 의미로 연결되었다.

- 본문 12 ~ 13쪽에서 인용

 

심청전을 처음 접한 이후로, 왜 심청이가 연꽃에 들어가는지가 계속 궁금했다. 보광사의 판벽화 <연화화생도>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어서 연화화생이 또 궁금해 미치겠는거다. 그래서 찾아 읽은 책인데, 연화화생에 대한 깊은 이론은 없었지만, 연화의 상징  외에도 많은 것을 읽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난 용과 귀면(키르타무카)이 다른 것인지도 몰랐다. 책에 의하면 용은 불국정토로 인도하는 사찰의 수호신이다. 대웅전 앞에는 용의 머리, 뒤에는 용 꼬리 장식이 있는 것은 사찰 건물 자체가 용화화선이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부석사에 용이 있고, 의상대사를 사모한 중국소녀가 용이 되어 의상대사의 귀국선을 등에 지고 가는 거였나보다. 반면 용처럼 생겼지만 용 아닌 귀면은 사악한 자를 물리치고 참배객을 지키는 벽사의 구실을 한다,,,,이런 내용을 알아가는데 미친듯이 재미있다. 왜 절에 <토끼전>에 등장하는 토끼와 자라 조형물이 있는지도 그동안 궁금했는데, 그 친구들은 바닷속 불국정토로 향하는 거였다니!

 

어줍잖지만, 중세 가톨릭 관련 책을 좀 읽은 기억으로 비교해보자면, 가톨릭 교회 건물이나 사찰 건물이나, 건물의 장식을 통해 문맹인 대중 신자들에게 교리를 설명하려하는 점은 같은 것 같다. 그동안 서구 유명 성당은 엄숙한 마음으로 압도당해 보면서 우리 전통 사찰의 장식 요소들은 색채가 알록달록하다거나 미신적 요소가 있다고나 하며 편견을 과시하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좀 불편했는데, 이제 이 책을 읽고 나니 단순히 불편한 것을 넘어서 더 생각해볼 거리를 얻게 되어 기쁘다.

 

*** 연화화생에 대해 읽을 논문을 알려주신 알라디너 00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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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3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8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쿠자누스 2016-04-24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용산 박물관에서 제목에 혹해서 구입하고서는 지금껏 묵혀둔 책인데 `탁월한 선택`이었군요.

자유도비 2016-05-08 01:01   좋아요 0 | URL
불교 신앙과 상관없이, 책장에 구비해놓고 두고두고 궁금한 부분 찾아보기 좋은 책이었어요.
 
Through the Labyrinth (Hardcover) - Designs and Meanings over 5,000 Years
Hermann Kern / Prestel Pub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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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Kern(1941 ~ 1985)의 1982년작 <Labyrinthe. Erscheinungsformen und Deutungen. 5000 Jahre Gegenwart eines Urbilds>의 영어번역본이다. 독어로 나온 초판에 영어판 편집자들과 감수자들이 최근 20년간의 미궁 연구 역사를 간략히 더한 내용이다. 각 장의 반 정도에는 끝에 Addendum이 달려 있어 케른의 입장을 정리하거나 반론을 소개하기도 한다.

       

뮌헨의 박물관 큐레이터로서 다수의 성공적인 전시회를 기획한 헤르만 케른은 오랜 기간 미궁을 연구하여 198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전시회를 연다. 여기에서 선보인 카탈로그는 무려 434쪽이었고 550편의 도판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 카탈로그를 바탕으로 독일 뮌헨에서 출판한 이 책은 전세계 미궁연구자들의 기본 필독서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이 책의 저자인 헤르만 케른, 칼 케레니, 얀 피퍼가 거의 미궁학의 3대 거장인 듯. 

     

책은 전체 19장으로 나뉘어 있다. 미로Maze와 미궁Labyrinth의 개념 차이 등 미궁 관련 기초 사항이 워밍업으로 나오는 1장을 지나면 2장에서 크레타의 미궁 이야기가 나온다. 에반스 경의 발굴로 크노소스의 복잡한 궁전이 미궁이다,,,, 라는 상식 아닌 상식이 퍼져있지만 미궁이 크노소스 궁전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나는 사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전설을 아테네와 크레타의 역사에서 풀어가는 부분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는데 그 내용은 많지 않았다. 저자는 미궁이 실재한 건물이 아니라 크레타의 미노스 왕을 물리친 테세우스가 춘 학춤의 모양이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아리아드네의 실은 그 춤의 대형을 땅바닥에 그려 놓은 선이었다고. 저자는 프레이저의 설을 빌려, 9년마다 아테네의 처녀총각을 바쳐야한 이유를 9년마다 왕권 갱신 의식을 치르며 도전자를 받아야했던 미노스 왕의 의식에서 찾는다. 흥미롭다.

 

 

이어 3장에서는 이집트 등 고대의 미궁을 소개하고 4장에서는 청동기시대 미궁 암각화를, 5장에서는 트로이 미궁을, 6장에서는 로만 모자이크에 나타난 미궁을 소개한다. 도판 자료가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각 도판 아래에도 깨알같은 설명이 달려 있어서, 화보가 많다고 휙휙 넘겨 쉽게 읽을 수만은 없는 책이라는 것이 함정. 

 

7장과 8장에서 또 내가 관심가진 부분이 나온다. 중세 유럽 필사본에 그려진 미궁과 교회 미궁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이다. 고대 그리스의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도상은 이교적이지만 민중들의 심상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에 카톨릭 교회의 달력과 교리 설명에 사용된다. 미궁은 죄 많은 현세, 도시에 비유된다. 어두운 중앙에 있는 미노타우로스는 사탄, 테세우스는 악을 물리치고 부활하는 그리스도다. 신도들은 교회 바닥에 그려진 미궁도를 따라 걸으며 신앙인의 자세를 묵상하고 재생을 경험하게 된다.

 

이어  9장부터 15장까지는 미궁의 역사와 관련한 짤막한 이야기들이 도판과 함께 소개된다. 잔디미궁이나 개인 상징으로 사용한 미궁, 정원 미궁, 사랑의 미궁, 게임, 미로로의 변화 등등. 전반적으로 미궁이 세속화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Troy Town과 Maiden's Dance를 설명한 16장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 등 서북부 유럽에 많이 보이는 치석 미궁, 이를 이용한 구혼 과정, 풍년을 비는 의식에서 유래한 처녀의 춤 등등이 소개되어있다. 기독교 전래 이전 태양 숭배나 유럽 농민들의 샤머니즘을 엿볼 수 있어 내겐 재미있었다. (소설 <테스>에서 엔젤과 테스가 스쳐가는 그 오월제 축제의 춤 장면과 관련해서,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파 봐야겠다. )

 

17장 역시 만만찮게 흥미롭다. 저자는 미궁 도상이 지중해 연안이나 유럽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도 마하바라타에 등장한 차크라 비유하라는 진형이나 미궁을 자궁과 연관시켜 주술로 사용하는 것, 필사본 삽화나 사원의 부조는 물론 타투 도안까지 인도에서 미궁은 무궁무진하게 발견된다.  저자는 지중해의 미궁 이미지가 인도에 등장하는 이유를 알렉산더에서 찾고 있다. 뭐 간다라에서 헬레니즘,, 그런 이치다. 이어 미궁 도상은 동진하여 아프가니스탄, 자바, 수마트라 등 인도의 영향을 받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여러 문양으로 등장한다. 버들고리 바닥의 문양 같은 것에서도. 그런데 미궁 도상은 놀랍게도 태평양을 건너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서도 발견된다. 보편적이지는 않다. 미국 서남부에서만 발견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유럽 선교사의 영향으로 추측하고 있다. 여튼, 호피 족의 경우 인도와 마찬가지로 미궁을 자궁으로 보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 장 마지막에 붙은 Addendum은 케른 사후 20년간 더 진행된 전세계 미궁 연구를 추가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페루 나스카 평원의 미스테리 도형까지 소개한다. 어이쿠,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강강술래는 없을까? 테세우스의 Crane Dance와 비슷한데?)

 

18장과 19장에서는 청동기 시절부터 5000년의 역사를 가진 미궁 도상이 놀이동산의 미로 공원이나 예술가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창조되는 오늘날을 소개한다. 제주도의 김녕 미로공원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미로 디자이너 애드리언 피셔도 비중있게 소개된다.

 

전체적으로 그리 무시무시하게 어려운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역사책은 아니다. 역사, 신화, 고고학, 도상학 쪽 기본 용어 몇 개만 처음에 사전 찾아보면 이후부터는 술술 읽을 수 있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여기 있는 내용이 배경 자료로 필요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그동안 읽은 책 들 중, 미궁 관련 지식을 다루는 부분은 거의 이 책을 통째로 번역만 해서 베꼈다는 것을 알고 분노하게 되실 것이다. 

  

책은 꽤 크다. 펼치면 A3 용지 크기 정도인데 한 쪽에 58행이 깨알같이 인쇄되어 있다. 총 369쪽이다. 다 읽고 나니 노안이 온 것 같다. 그러니, 다들 읽으시라. 나만 늙을 수는 없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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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세계를 바꾸다 - 마법, 향신료, 노예, 자유, 과학이 얽힌 세계사
마크 애론슨.마리나 부드호스 지음, 설배환 옮김 / 검둥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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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관련한 역사서들 중에, 나는 이 책이 가장 읽기 편했다.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설탕과 권력>보다 설탕 자체의 역사에 집중한 서술이어서 읽기 깔끔하다.

 

책은 설탕의 단맛을 추구하는 인간의 역사에서 시작한다. 2부, 3부로 가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과 노예제, 아이티 혁명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 뿐만 아니라 설탕 덕분에 맥주 대신 홍차를 마시게 된 영국 노동자들과 산업혁명의 관계 이야기도 나온다. 4부에서는 노예제 폐지 이후 설탕 생산에 투입된 계약 노동자 문제를 다룬다. 묘하게, 저자들의 가족사와도 얽힌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서인도제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과 노예제의 역사를 고발한 점이다. 더불어서 그 역사가 아이티 독립혁명과 이후 역사에 미친 영향도 잘 보여준다.

 

신세계로 아프리카인들을 보낸 노예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설탕 농장의 사망률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종종 노예제를 미국의 특정한 문제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보낸 노예의 4퍼센트만이 북아메리카로 보내졌다. 이는 노예 가운데 96퍼센트가 카리브 해와 브라질, 여타 남아메리카로 갔고 대부분 설탕 관련 노동에 종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아메리카의 노예 인구는 부모가 아이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장수하면서 점차 증가했다. 노예 약 50만 명이 이곳으로 보내졌고 노예해방 당시 아프리카게 미국 노예는 400만 명이 있었다. 그러나 설탕 섬들에서는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건너왔지만 해방 당시 겨우 67만 명이 있었다. 혹독한 노동량 때문에 설탕은 일종의 살인마였다. 이 모든 죽음과 이 모든 무자비함과 이 모든 학대는 단 한 가지 목적, 곧 "새하얀 금"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 본문 78쪽에서 인용

 

위의 인용처럼, 카리브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조건은 가혹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이티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미국 목화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난 노예들과 달리, 아이티의 노예들은 높은 사망률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최근 도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 중에는 고국에서 전사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부분의 연관성도 볼만했고, 아이티 독립 이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쿠바로, 미국 남부로, 하와이로 이전해감에 따라 아프리카인 대신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인도인 계약 노동자들이 현대의 노예로 사탕 수수 농장에서 일하게 된 맥락도 책에 잘 서술되어 있다.

 

책 괜찮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같은 식으로, 커피나 차의 역사를 다루면서 서구 제국주의 진출사 위주로만 서술하는 후진 책이 아니다. 얇지만 핵심을 올바르게 다루고 있기에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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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기괴 명화
나카노 미요코 지음, 김정복 옮김 / 두성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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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나카노 미요코의 다른 저서인<서유기의 비밀 : 도와 연단술의 심벌리즘>을 읽어가면서 여러번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얼마나 쟝르 파괴, 크로스오버로 공부하고 읽으면 이런 것까지 보고 쓸 수 있는 것일까? 검색해보니 저자는 서유기 전문가이자 중국 도상학 전문가로 인정받는 대가였다. 그 방면으로 총 30여 종의 저서가 있는데 국내 번역 소개된 책은 단 두 권이다. 이미 한 권은 읽었으니 다음 책을 고르기 위한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책 내용은 소개하거나 요약할 방법이 없다. 저자는 동서양의 그로테스크한 그림들을 놓고 관련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선 전체 그림을 소개하고 자신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을 확대한 그림을 또 제시한다. 손오공 캐릭터에 영향을 끼친 인도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원숭이 장군 하누만이 타이 방콕 왓 프라께우 사원 벽화에 어떻게 그려졌는지, 힌두교 창세 신화인 <유해교반도>가 20세기 현대 회화에 어떻게 재해석 되어 그려졌는지, 사람과 온갖 요괴의 목이 열매로 열리는 나무의 그림과 그 해석,,, 등등 동양 신화에 해박한 저자의 장기자랑이 책을 읽고 그림을 보는 내 눈앞에 펼쳐진다. 저자의 목소리는 내비게이션처럼 날 그로테스크하지만 매력 넘치는 세계로 안내하고, 신화와 전설, 종교와 상상과 현실의 박학/잡학 다식 박람강기의 세계를 접한 나는 문화적 충격에 빠졌다.

 

기가 막히게 세밀한 묘사력 때문에 아기 머리가 식물에 열매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 너무도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지금 무심결에 '그로테스크'라고 썼습니다. 보통 '흉하다''기이하다''이상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이 말은 원래 식물에 인간이나 동물을 곁들인 장식무늬를 듯합니다.

- 본문 72쪽에서 인용. 카를로 크리벨리가 1482년에 그린 <카메리노의 세폭 제단화> 설명 부분.

 

일본 역사 학자들의 특징일까, 자신의 전공 분야를 세세하고 깊이있게 전문 서적으로 쓰면서도 다른 분야와 연결해 자신이 공부하다가 알아낸 곁다리 지식을 흥미로운 대중서적으로 풀어내는 이러한 능력은? 무슬림의 예배용 양탄자의 문양을 보고 이슬람 건축 양식을 말하다가 하늘을 나는 양탄자 전설로 날아가는 이런 아스트랄함이라니! 아, 사부님, 저를 제자로 거두어 주시옵소서, 하고 무조건 들이대고 싶어지누나!

 

결론적으로, 책 내용 자체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책을 쓰는 자세와 세상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  관찰의 일상화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요긴하게 써 먹을 참고자료 서적 목록을 얻어내어 기뻤다. 물론, 원서여서 좀 덜 기뻤다.

 

이 책의 그림과 관련한 배경 지식이 많은 분들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신화 전설이나 미술사에 좀 약하신 분들은 또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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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박물관이 왜 필요했을까 박물관학총서 1
류정아 외 지음, (사)한국박물관학회 엮음 / 민속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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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역사를 간단하게 빨리 볼 수 있는 책이다. 박물관의 정의, 명칭의 유래로부터 시작해서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근대 박물관의 역사를 거쳐 일본 중국 등 서구 박물관을 도입하려 했던 나라들의 역사를 소개하고 제국주의 시절 약탈한 문화재 반환 문제로 마무리한다. 전체적인 구성이 좋다. 읽다보면 통사식으로 다 연결이 된다. 굳이 내용 요약 소개할 것도 없다. 이런 경우는 목차를 리뷰에 옮겨 놓는 편이 나중에 찾아보기 훨씬 쉬우니, 목차를 옮겨 놓기로 한다.

 

- 목차 -

무엇을 박물관museum이라고 하는가∥최종호
동서양 ‘박물관博物館(museum)’ 명칭의 어원과 용례∥서원주
세계 각 지역에서 박물관 기능을 한 기관들∥박윤옥
수집행위의 인류학적 기원과 상징적 가치∥류정아·김현경
지리상의 발견과 유럽의 수집문화∥이은기
시민혁명과 박물관∥박윤덕
동아시아의 박람회와 박물관∥하세봉
일본의 박람회와 박물관∥권혁희
중국의 박물관과 박물관학∥오일환
제국주의와 식민지 한국의 박물관∥국성하
제국주의와 영국 및 인도의 박물관∥서원주
제국주의 시대의 프랑스 박물관∥신상철
미술품의 위작과 도난∥이연식
도굴 미술품의 불법 여정∥김미형
박물관과 문화재 반환∥이보아

 

관심있었던 부분은 서구 제국주의와 박물관의 관련성이었다. 17세기 서구 근대 박물관의 출발은 절대왕정 시기 수집한 예술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교육적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계몽주의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이래 서구의 박물관은 제국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본국의 박물관 뿐만 아니라 식민지에 설립한 박물관도 그랬다. 영국이 인도에 설립한 박물관은 인도의 문화 유산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식민지 보호국으로서의 자신들의 선량한 지배 의도를 선전했다. 또, 약탈 문화재를 전시하는 방법에도 제국주의적 의도를 담았다. 다윈의 진화론을 인류 문명 발전 과정에 적용하여 각 문명권의 발전 수준을 비교하여 전시했다. 물론 가장 발전한 단계는 서구 문명이었다. 이렇게 서구 박물관은 계몽주의적 성격과 제국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지녔다.

 

반면, 함포외교에 문호를 연 중국과 일본이 경우, 동도서기적 관점으로 서구의 박물관 제도를 도입한다. 정부 주도로 산업 박람회를 개최하고 그 전시물이 바로 박물관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 비서구권 박물관 역사의 특징이 보인다. 그외 지역에서 마을의 공동 유산을 마을 창고에 보관, 전시하는 형태의 박물관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실, 읽어가면서 너무 쉽고 내가 예상했던 내용들이 나왔다. 서술은 요약 위주여서 건조하다. '세이난 전쟁이후 일본 메이지정부는 박물관,,,,이런 식이다. 세이난 전쟁에 대해 설명은 없다. 각 나라 근대사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좀 힘들게 읽힐 수도 있을법하다. 그러나 박물관 나들이를 즐겨하는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단, 여러 저자가 나눠 쓴 책이라, 질적 편차가 좀 있다는 것은 감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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