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의 작업실>을 리뷰해주세요
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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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혼자 숨 쉴 공간이었다. 멍하게 면벽하고 시간 죽이는 것도 작업이다. 나만의 비밀 공간에 틀어박히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현대인의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p.28)" 

 
가끔씩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다. 좀 더 솔직해 지자.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곤 한다. 내가 꿈꾸는 공간은 창작 활동을 위한 작업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나를 짓누르는 것들로 부터 숨고 싶은, 도피처 같은 공간이다. 사무실에서 스트레스 받을 때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 숙제 봐주느라 진땀 흘릴 때, TV 볼륨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 끼니 걱정 하느라 신경쓰일 때도 혼자만의 공간을 떠올리면 '해야만 하는 일들'을 보다 유쾌한 기분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겐 말그대로 로망이자 꿈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작업실을 가진 저자가 마냥 부럽다. 지상으로부터 단절된 지하에 자리한 널직한 공간을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로 꾸미고 '줄라이홀'이라 이름 붙혔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자신의 세계로 초대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책은 총 네가지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데 먼저 줄라이홀에 대한 소개, 커피, 음악(LP판), 오디오 이야기로 이어진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작업실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커피와 음악에 대해서는 뭐랄까... 완전 마니아 수준이다. 그가 소개하는 각종 커피 중에서 낯익은 것은 하나도 없었을 뿐더러 커피와 관련된 기계들은 어렵고도 신기했다.  

 
 그 와중에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으니 커피를 상온의 물로 우려내는 '워터드립' 에 관한 것이다. 옛날 네델란드의 뱃사람들이 세계를 재패하던 시기에 일일이 커피를 끓여낼 수 없어서 고안된 것이라는데, 커피 한 잔 우려내는데 최소 4시간에서 8시간이 걸린단다. "커피를 마신다기 보다 바다의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다. (P.109)" 라고 표현한 말이 딱 어울린다. 뭐든지 빨리빨리인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으로 완성된 커피이기에 그만큼 가치있는 것은 아닐까. 일회용 커피 믹스 한 잔이면 기분이 좋아지는 나조차도 더치맨의 커피 만큼은 왠지 솔깃해 진다. 

 
 음향 장비 시설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자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산 너머 산이다. ^^;; 작업실 구경시켜 준다고 초대받아 갔더니 듣도 보도 못한 기계들에 둘러싸여 강의를 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엔 작은 사이즈이면서 성능 좋은 기기들이 얼마나 많은텐데 굳이 골동품 수준의 것을 값비싸게 사서는 땜질하고 난리를 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마니아의 귀는 일반인의 것과 다르긴 한가보다. 저자는 80년된 '고물딱지'에 대해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천재들의 작품' 이라고 말하며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괜찮은 제품이 나왔다는 소식(물론 중고다)에 먼길 달려가서 지름신을 맞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지구 위의 작업실'은 부러움으로 시작해서 부러움으로 끝나 버린 독서다. 줄라이홀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에, 누구나 탐 낼 만은 하지만 비용이나 열정면에서 도저히 엄두도 못내겠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라고. 글쎄다. 멀쩡한 집 놔두고 어디에다 작업실을 차릴 것이며,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무슨 돈으로... 하는 생각이 머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중요한 것은 바쁜 일상에서 가끔씩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아닐까 싶다. 심리적으로 만족하고 넉넉해 지는 것 뿐만 아니라 작은 공간이라도 나만의 스타일로 표현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주부들이 주방 용품이나 기기에 관심이 많은 것도 이해해 주어야 할 부분이고, 남편들이 서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시간을 존중해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각같아서는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방 하나를 비워 나만의 공간으로 선포하고 책으로 벽을 쌓은 뒤 파묻히고 싶다. 당장 시도할 수 없다고 해서 불가능하다 단정짓는 것은 우습다. 나의 꿈, 나의 로망이 언젠가는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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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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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을 따라 걷는 소년이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안개에 휩싸인 상황인지라 내 딛는 한 걸음 마다 위태롭기만 하다. 이런 설정 왠지 불길하다. 짧은 순간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내 설마가 현실이 된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기차와 마주서는 소년, 그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첫장면에서 느꼈던 충격에도 불구하고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기 위해서는 좀 더 마음을 굳게 먹었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게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중략)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p.165)"

 
책 읽는 내내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더니, 책을 덮은 후에도 먹먹함이 가시질 않았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을 접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너무나 리얼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배가 되었던 것이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읽었던 문학 작품들이 여러 면에서 '어렵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답이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머리만 쥐어뜯다가 그냥 묻어야만 했던 기억... 이번 작품도 만만치가 않다. 
 

 강인호는 안개로 유명한 무진시의 농아 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된다. 그런데 첫날 부터 학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당황한다. 사립학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놓고 금품을 요구하는 교장, 학생이 자살했다고 하는데도 너무나 조용한 학교, 농아 학교의 교사라면서 수화를 못하는 선생님들, 학생들에 대한 강압적이고도 부당한 대우 등 도대체 어디서 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듣게 됨으로써 엄청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는 내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정의감을 외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아이들의 편에 서기로 한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p.246)"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유명한 이유는 그게 천지창조 이래 한번 일어난 일이라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 안해요? (p.254)"

 
 진실을 밝혀내는 것과 동시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줄 알았다면 내가 너무 순진한 것일까. 피의자들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오히려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을 도우려는 이들까지 수세에 몰리에 되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당하고 또 당하는 것이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고 외치며 흥분했던 마음은 이미 산산조각 나버렸지만 
어짜피 현실을 담아내려 했으니 전개도 현실적으로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사건의 전말을 인터넷에라도 터뜨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조차도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 권력과 돈 앞에는 민심도 흔들리더라. 과연 '진실의 힘' 이라는 것이 있긴 한 것일까? 
 

 책을 읽을수록 강인호라는 인물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가 소망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안정된 직장과 가족이 모두 함께 사는 것. 그러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등이다. 재단의 비리와 폭력앞에서 정의감에 불타는 모습도 특별하다기 보다는 평범해 보였고, 농아 학교 아이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다. 결국 무진을 떠나게 되지만, 그런 결말 조차도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무엇보다 '암흑의 도가니' 였던 무진에도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 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도가니>는 거울이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 사람들을 늘씬하게 비추는 옷가게 거울이었으면 좋으련만 '도가니'는 너무나 선명해서 마음이 불편하다. 가
진자의 횡포와 권력의 비리, 불합리, 부조리, 이중성 등 온갖 종류의 '악'을 보여준다. 더구나 법을 수호해야 할 사람들이 법을 어기고, 아이들을 돌봐야 할 사람들이 아이들을 유린하고, 사랑을 부르짖던 사람들이 거짓을 말하기에 더욱 충격이다. 학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다. 웃음을 주고 기분 전환을 가져다 주는 소설도 필요하지만 '도가니' 처럼 사회적인 문제를 들추는 소설도 반드시 필요하다. 여전히 마음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공지영 작가가 큰 일을 해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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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희망이다>를 리뷰해주세요
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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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경제 회생에 대한 절박함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일단 경제만 살려다오~ " 당시 많은 국민들은 두 손을 꼭 쥐고 눈을 질끈 감았었는데 우선은 먹고 살만해야 도덕도 따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노 전 정권에서 국민을 위해 뭔가 정책을 펼치려 해도 힘을 실어주는 이가 없다며 고민하던 것을 보아온 터에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부정부패 척결하고, 확실하게 경제를 살려줄거라고만 믿었다. 그땐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불도저가 국민을 향해 달려들거라고는 말이다. --;;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되지 않아 한미 FTA와 관련하여 촛불에 불을 당기게 만들더니 개발지역의 서민들을 사지로 내몰고, 급기야 전직 대통령 투신이라는 엄청난 결과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문제는 어떤 결정을 하고 추진하든지 국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끌어안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국민들이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하고, 아파할 때 보듬어 주지는 못할망정 오뎅 몇 개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다니... 휴~ ;; 쏟아내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다치기 싫으니까.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라며 소주잔 들이키는 이들에게 말한다. '거꾸로, 희망이다' 라고... 글쎄다. 이미 술 기운이 오른 사람에게는 자칫 시비로 이어질 말인지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의 지성 12인이 입을 모아 주장한 말이니 터무니 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예로부터 지식인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민중의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하면서 이끌어 왔었다. 오늘날 처럼 고학력을 자랑하는 시대라 해도 마찬가지다. 너나없이 '답이 없다.'며 한탄하는 이들에게 현실을 바로 보도록 도와주고 나아갈 길을 고민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막연하게 알고 있던 '미국발 경제위기'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두려움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현 정권을 비난하고 투기하는 사람을 비난하면서도 당장 내 문제로 이어지면 한 몫 잡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는 지적에 괜시리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 지기도 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민 단체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반성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금 겪고 있는 위기는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에서 내면의 치유가 시작되며, '경제 회복 보다 자기 회복' 이라는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현재를 '혼돈의 시대'라 규정한 무거운 주제에 비해 시종일관 유쾌하게 진행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2인씩 조를 이루어 강연했던 것을 바탕으로 씌여지다보니 인터뷰 형식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강연장의 분위기까지 옮기려했던 노력이 엿보여서 좋았다. 강연도 마찬가지고 책도 마찬가지다. 돌아서서 당장 저녁 반찬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내일이면 없던 직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미래를 위한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끝.

 
(여기서부터는 사족입니다. 책 읽으면서 겨우 마음을 다잡았더니... 요즘 속 뒤집는 소식이 있지요.)

 
며칠 전부터 인사 청문회 소식을 접해보니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울렁증이 도지는 것만 같다. 이건 인사 청문회인지 비리 청문회 인지. 우리 나라에 이렇게도 인재가 없나 싶어 마음이 답답하다. 그때는 모두가 그런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에 라는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스스로 깨끗하지 못하다면 아예 청문회장에 나오질 말았어야 했다. 지명하는 사람이나, 좋다고 욕먹어 가면서도 나오는 사람이나... ㅠ.ㅜ;; 사실상 인사에 관해서는 이번 정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국회의원들 조차 뽑아만 놓으면 다들 똑같아 지니 마음이 답답하다. 

 
서민의 마음은 도대체 누가 알아주나? 그래도 희망인 것이 맞나?
'거꾸로, 희망이다'를 외쳐주신 이분들을 국회로 보내면 세상이 바뀌려나? 허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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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즐거움>을 리뷰해주세요
노년의 즐거움 -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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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이야기로 시작하고 싶었다. 내 기억으론 그 영화를 봤을 때가 분명 대학 새내기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개봉일을 검색해보니 아무리 계산해도 고2때 쯤 봤다는 결론이 나온다. 휴~;; 옛날 이야기 끄집어 낼때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뭔가 앞뒤가 들어맞질 않으니 아주 그냥 미치겠다. 그래도 일단 10대 후반쯤이라고 말해두고 밀어부쳐 볼란다. 영화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하니까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꺼내려는 이야기는 그날 사람들한테 치여가면서 줄을 서있다가 만난 한 커플에 관한 느낌이다. 

 

남자분은 바바리 코트를 입은 로맨스 그레이였다. 대학 교수님이거나 은퇴한 교장선생님 쯤 되어보이는, 인자함이 넘쳐 보이는 얼굴이었다. 옆에 서 계시던 분은 첫느낌이 '곱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기품이 넘치는 부인이셨다. 그 나이의 어머님들이 즐겨하시는 진주목걸이나 알 굵은 반지 대신 심플해 보이는 가방과 스카프가 멋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주위에 다정함을 과시하는 젊은 커플이 많았음에도 노년의 커플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난생 처음으로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나이든다는 것이 너무나 아득하다가도 슬플 것만 같았었는데 말이다. 

 

<노년의 즐거움> 이 책은 "인생은 60부터~" 라는 말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황혼이 황홀한 것 처럼 인생도 노년이 아름다워야 하며, 누구나 그런 노년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노년은 지난 세월 동안의 경험과 지혜가 최고점에 달하는 시기이다. 노숙老熟, 노련老鍊, 노장老壯의 세 가지 빛을 가진 노년, 자신에게 당당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노년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책은 총 4장으로 되어있는데 첫번째 장에서는 '노년의 얼굴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위대한 인물들의 초상은 젊은 날이 아닌 노년이 것이 많았는데 완숙미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라는 점이 설득력 있다.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외모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보톡스라도 맞아서 주름을 쫙쫙 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오해다.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 것만 같은 인자함 그런 것이 바로 노년의 여유이고 노년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 장에서는 '노년을 위한 5금과 5권'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5금은 잔소리와 군소리를 삼가라, 노하지 마라, 기죽는 소리는 하지 마라, 노탐을 부리지 마라, 어제를 돌아보지 마라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노파심이 커진다고들 한다. 살아온 인생에 대해 이런저런 아쉬움이 생겨서일까 자녀들이나 후배들에게 자꾸만 당부하고픈 맘이 생긴다. 또한 뜻한 바가 맘대로 되지 않으면 노하기도 하고 쉽게 기가 죽기도 하고, 이유없이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그래서 노인들을 변덕스럽다고, 아이 같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노년의 5금은 자신과 가족,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잊지 말아야 할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5권으로 꼽은 유유자적, 달관, 소식, 사색, 운동은 노년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해 꼭 실천해야 할 사항이다. 

 

세번째로는 '노년의 즐거움' 이다. 흔히들 노년에 무슨 낙이 있을까 하며 한탄하는 경우가 많은데 노년이야말로 진정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시기이다. 노익장을 과시한 역사속 문학가,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87세의 최고령 마라토너의 열정은 젊은 이들조차 감히 따라할 수 없을 만큼의 열정을 뿜어내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저자가 걷고 있는 노년을 에세이 형식으로 들려준다. 그 자신이 노년 중에서도 중반을 넘어선 위치에 서있으나 그 모습이 어찌나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이는지... 말그대로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노년에 대한 감상적인 접근이라기 보다 학문적 접근이라는 비중이 크다. 노년에 대한 현실(사회적인 문제를 그대로 가져오거나 때론 문학적인 표현을 인용하기도 한다.)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년에 대한 현실이 너무나 '리얼'해서 가끔씩은 김이 팍팍 샌다. 다시말해 "노인을 이런식으로 비하해서는 안된다"라고 예를 들고 "바른 표현은 이렇게 쓴다." 라는 설명이 있다고 하면 바른 표현은 덤덤한데 비하하는 표현은 엄청 거슬리면서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것이다. --;; 결과적으로 이런 노년을 살아야 겠다는 각오 보다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황스러웠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고 노인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이 그랬던 것 처럼 노인 문제에 있어서도 정부만 믿고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30대 직장인으로서 체감하는 것을 말하자면 국민연금 공제액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나는데 비해 수령 연령은 높아지고 금액도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재테크 관련 책에서 공통으로 말하는 것도 가계 지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교육비의 경우 '반드시' 상한선을 긋고 노후를 대비하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고향으로 내려가 텃밭 일구는 소박한 삶을 꿈꾸더라도 텃밭 조차 가지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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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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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에 빠져 살았던 때가 있었다. 다들 공감하겠지만 추리소설이란 장르가 은근 중독성이 있어 한번 읽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빠져 나오기가 힘들어 진다. 그런데 이놈의 몹쓸 추리력이라니... --;; 지금까지 암호 한번 풀어본 적 없고, 범인을 맞춘 적도 없다. ^^;; 몰입해서 읽다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도 터지는 소리'를 낼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라는 제목처럼 용의자가 두 사람으로 좁혀진다면 확율은 50% 라는 말씀~ 추리가 안되면 찍기라도, 'O' 아니면 'X' 라는 말이지. 아자아자~!! 
 

 이즈미 야스마사는 지방에서 교통 경찰로 근무하고 있다. 어느날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여동생 이즈미 소노코와 통화하면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하소연을 듣게 된다. 동생이 걱정된 야스마사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도쿄에 갔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소노코의 싸늘한 주검이었다. 하늘이 무너질듯한 상황에서, 직업적인 냉철함으로 현장을 둘러보던 야스마사는 동생의 죽음이 '자살로 위장한 살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분노에 휩싸인다. 그는 범인이 놓친 부분까지도 완벽하게 수습하여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한 뒤, 직접 범인을 찾아 응징할 것을 다짐한다. 

 
 야스마사는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두 사람으로 좁혔다. 범인은 소노코의 전 남자친구 츠쿠다 준이치거나 소노코의 동창이면서 친구인 유바 가요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결국 치정관계로 얽힌 살인 사건인 것이다. 삼각관계라니... 어찌보면 좀 식상한 소재이긴 하다. 그런데 두 용의자로부터 동기를 밝혀내고 사건 당일을 추리해 가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다. 게다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창조해낸 명탐정 가가형사가 등장한다는 사실. 처음부터 소노코의 죽음에 의문을 품었던 가가형사는 사건의 정황과 야스마사의 목적까지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발휘한다. 야스마사의 치밀함에 놀랐던 독자는 가가 형사의 추리력에 또 한번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야스마사라는 인물에 대해 한번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동생의 죽음에 관한 의문점을 경찰에게 알리고 정식으로 수사를 요청했어야 했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그 자신이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라는 점에서 의아스럽기도 했지만 소노코가 하나 뿐인 혈육이라는 점과 어린시절 실수로 동생에게 남긴 흉터 등에 대한 설명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불합리성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가 하는 생각과 함께 어쨌거나 가가 형사와 맞붙을 만한 적수로서는 꽤 괜찮은 캐릭터라는 결론이다.  
 

 결말은 한 마디로 충격이다. 반전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누가 범인인지 콕 찍어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 범인이 절규했다. 범인이 아닌 쪽도 비명을 울렸다. (p.344)" 라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으니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만 범인을 알게 된다는(?) --;; 출간당시 누가 범인이냐고 출판사로 문의가 쇄도 했다더니 빈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봉인 된 '추리안내서'에서 범인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 흠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가위질 하면서 덜덜 떨었다. ^^;; 

 
 기존의 추리 소설의 경우, 사건이 터지면 탐정이 나타나서 퍼즐을 맞추고 범인을 밝혀낸 후, 상세한 설명을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데 이 책의 경우는 마지막까지 야스마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가가 형사는 그림자처럼 존재하면서 중요한 부분만 짚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탐정의 뒤만 따라다니게 놔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설에 동참하도록 유도한 점이 단연 돋보인다. 일본 소설 특유의 기발함이 내용면에서 뿐만 아니라 편집과 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신선하게 와닿는다. 

 
형사는 가가 형사요~ 범인은 가가 가가? 했더니 가가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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