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의 작업실>을 리뷰해주세요
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요한 건 혼자 숨 쉴 공간이었다. 멍하게 면벽하고 시간 죽이는 것도 작업이다. 나만의 비밀 공간에 틀어박히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현대인의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p.28)" 

 
가끔씩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다. 좀 더 솔직해 지자.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곤 한다. 내가 꿈꾸는 공간은 창작 활동을 위한 작업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나를 짓누르는 것들로 부터 숨고 싶은, 도피처 같은 공간이다. 사무실에서 스트레스 받을 때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 숙제 봐주느라 진땀 흘릴 때, TV 볼륨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 끼니 걱정 하느라 신경쓰일 때도 혼자만의 공간을 떠올리면 '해야만 하는 일들'을 보다 유쾌한 기분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겐 말그대로 로망이자 꿈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작업실을 가진 저자가 마냥 부럽다. 지상으로부터 단절된 지하에 자리한 널직한 공간을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로 꾸미고 '줄라이홀'이라 이름 붙혔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자신의 세계로 초대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책은 총 네가지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데 먼저 줄라이홀에 대한 소개, 커피, 음악(LP판), 오디오 이야기로 이어진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작업실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커피와 음악에 대해서는 뭐랄까... 완전 마니아 수준이다. 그가 소개하는 각종 커피 중에서 낯익은 것은 하나도 없었을 뿐더러 커피와 관련된 기계들은 어렵고도 신기했다.  

 
 그 와중에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으니 커피를 상온의 물로 우려내는 '워터드립' 에 관한 것이다. 옛날 네델란드의 뱃사람들이 세계를 재패하던 시기에 일일이 커피를 끓여낼 수 없어서 고안된 것이라는데, 커피 한 잔 우려내는데 최소 4시간에서 8시간이 걸린단다. "커피를 마신다기 보다 바다의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다. (P.109)" 라고 표현한 말이 딱 어울린다. 뭐든지 빨리빨리인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으로 완성된 커피이기에 그만큼 가치있는 것은 아닐까. 일회용 커피 믹스 한 잔이면 기분이 좋아지는 나조차도 더치맨의 커피 만큼은 왠지 솔깃해 진다. 

 
 음향 장비 시설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자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산 너머 산이다. ^^;; 작업실 구경시켜 준다고 초대받아 갔더니 듣도 보도 못한 기계들에 둘러싸여 강의를 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엔 작은 사이즈이면서 성능 좋은 기기들이 얼마나 많은텐데 굳이 골동품 수준의 것을 값비싸게 사서는 땜질하고 난리를 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마니아의 귀는 일반인의 것과 다르긴 한가보다. 저자는 80년된 '고물딱지'에 대해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천재들의 작품' 이라고 말하며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괜찮은 제품이 나왔다는 소식(물론 중고다)에 먼길 달려가서 지름신을 맞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지구 위의 작업실'은 부러움으로 시작해서 부러움으로 끝나 버린 독서다. 줄라이홀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에, 누구나 탐 낼 만은 하지만 비용이나 열정면에서 도저히 엄두도 못내겠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라고. 글쎄다. 멀쩡한 집 놔두고 어디에다 작업실을 차릴 것이며,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무슨 돈으로... 하는 생각이 머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중요한 것은 바쁜 일상에서 가끔씩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아닐까 싶다. 심리적으로 만족하고 넉넉해 지는 것 뿐만 아니라 작은 공간이라도 나만의 스타일로 표현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주부들이 주방 용품이나 기기에 관심이 많은 것도 이해해 주어야 할 부분이고, 남편들이 서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시간을 존중해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각같아서는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방 하나를 비워 나만의 공간으로 선포하고 책으로 벽을 쌓은 뒤 파묻히고 싶다. 당장 시도할 수 없다고 해서 불가능하다 단정짓는 것은 우습다. 나의 꿈, 나의 로망이 언젠가는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