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리뷰해주세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
E. 벤저민 스키너 지음, 유강은 옮김 / 난장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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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연예인들의 입을 통해 '노예계약'이라는 말을 간혹 들어는 봤어도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 만인이 평등하다고 믿고사는 오늘날 대명천지에 불쑥 노예제를 끄집어내다니 무슨 영문인가 싶었다. 노예제와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나 우리 나라의 경우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던 때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실제로 노비제도와 같은 노예제가 있었다고 봐야한다. 미국의 경우도 19세기 중반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아프리카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노예무역이 성행했었고, 해상무역이 활발하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포르투칼,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등 유럽인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에 관한 역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계속해서 거꾸로 올라가다보면... 고대에는 말할 것도 없겠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인 벤저민 스키너는 역사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노예제'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강요나 사기를 통해, 생존을 넘어선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강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 (p.16)' 이 세가지 조건 모두를 충족 하는 이들을 노예라고 규정짓고 세계 곳곳을 직접 뛰어다니면서 경험하고 조사한 내용들을 알리고자 하였다. 가장 먼저 아이티에서 노예 한 명을 사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가를 직접 보여주었고 수단에서는 내전으로 고통받는 것도 모자라 민병대에 의해 노예가 된 사람들을 인터뷰 했다. 몰디브와 루마니아, 러시아에서는 인신매매를 통해 성노예가 된 여인들을 만났고 인도에서는 대를 이은 채무관계로 인해 노예신분까지 대물림 되고 있는 상황을 고발하는 등 노예제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노예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노예들의 삶은 슬픔과 불의로 가득 차 있다 - 그러나 또한, 스키너가 보여주듯이, 유머와 기쁨의 색조를 띠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과 똑같다. 자유인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p.11)"  

 

2005년 국제노동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아시아에만 1,000만명의 강제 노역자가 존재한다고 하니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현대판 노예들은 하루 18시간 이상 강제 노동에 시달리며,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거기에다 끊임없이 고문당하고 학대를 받는다. 특히 물리적 폭력에 무방비 상태인 어린이와 여성의 경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처해있다. 노예들도 인간이다. 우리와 똑같은 피가 흐르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너무나 단순한 사실인데 어쩌면 인간이 인간에게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의문,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그 나라의 관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며 노예들은 왜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은 노예제가 심각한 나라일수록 경제가 어렵다는 사실, 주로 제 3세계인 경우가 많다. 오랜 내전으로 빈곤하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국제적인 원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해당 나라의 관료들은 노예제가 있어서도 안되며 절대 존재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현장을 목격하고 사람들을 인터뷰한 자료를 내밀어도 무조건 아니라고 우겨댄다. 국민들도 교육 수준이 낮아 자신들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노예 상태에 처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기위해 노예제를 정당화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부 노예들은 비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유가 예속보다 더 두렵다고까지 말한다.     

 

 솔직히 책을 읽은 후에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다만 '노예제'에 대해 '인권문제'로 접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저자의 경험상 '노예 되사기'는 결과적인 면에서 회의적인 사실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국가들을 압박해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국가 대 국가의 정치적인 문제와 뒤얽히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어느 나라든지 '구호'나 '원조'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보다 자국의 이익이 예상될 때만 움직이려 하고있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외면받고 있다.  

 

 인권 문제로 넘어왔으니 말인데 사실상 이 책에서는 아프리카의 조혼풍습이나 아랍의 강제결혼, 인도의 살인적인 지참금이 가져오는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도 한때 인신매매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떠올랐었고, 정신지체 장애자들에게 행해졌던 가혹행위 때문에 전국민이 충격을 받은 것도 최근 일이다. 성매매 금지법 통과 때 관련 여성들이 오히려 반대 집회를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다. '노예제' 라고 해서 상당히 불편한 마음이었는데 이미 알고 있었던 부분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당황스럽다. 

 

 문득 앞에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금 떠올린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그 나라의 관료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노예들은 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가?' 관료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벽'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지금껏 진실을 외면하면서 '무관심'을 '무지'로 포장하려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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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던 - 나의 뱀파이어 연인 완결 트와일라잇 4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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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온통 그 생각 뿐이다. 올초에 우연히 '트와일라잇'을 읽고는 연이어 '뉴문', '이클립스'까지 참 행복했다. 그리고 <브레이킹던>을 기다리는 동안 목빠지는 줄 알았다.  '내 다시는 완간되지 않은 시리즈에 빠지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만큼 몇달의 시간이 힘겨웠던 기억이 난다. 막상 책을 손에 쥐고 보니 오히려 담담해 지는 것이 이걸 하루만에 다 읽어야 할지 아껴가며 두고두고 봐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 마음이지만 종잡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고민도 잠시 첫장을 펼치는 순간 그냥 빠져들고 말았으니 더 설명하면 무엇하랴. 
 
 '트와일라잇'의 주된 스토리는 만남이다. 100년만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달은 뱀파이어와 평범한 소녀의 만남, 네가 누구든 어떤 존재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당찬 벨라의 모습에서 나도 한번 물려봤으면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던... ;; 뉴문은 '이별'이다. 벨라가 아무리 사고를 끌어당기는 자석이라고는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을 접어두고 여전히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였으므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벨라는 살기위해 거의 생존 본능으로 제이콥과 어울리게 되고, 벨라가 죽은 줄 알고 자살하려던 에드워드를 구하기위해 이탈리아까지 달려간다. 그 결과 '이클립스'에서는 속터지는 삼각관계가 펼쳐졌다. 제이콥을 사랑하지만 에드워드를 더 사랑한다는 말로 독자를 경악시켰던 발칙한 벨라, 에드워드의 청혼을 받아들임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되었을지 몰라도 내 마음 속엔 여전히 앙금이... 지켜보겠쓰으~ ==;;  
  
보통의 경우는 누구랑 누구랑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여곡절을 겪은 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드래요, 하고 끝나기 마련인데 <브레이킹던>은 벨라의 결혼으로 스토리가 시작된다. '트와일라잇'에서 부터 집요하게 변신을 요구하던 벨라는 에드워드가 직접 그 일을 해주기를 바랬고, 에드워드는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결혼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는 벨라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것을 단 하나라도 잃지 않게 하려는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자 벨라는 결혼 후 변신 이전에 진정한 허니문을 조건으로 걸고 마침내 '빅딜'이 성사된 것이다. 이 둘은 완전 '협상 커플'이다. 한 사람은 더 주지 못해서 안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주목받거나 선물 받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그래도 결국은 다 받을 거면서...  ^^;;
 
[스포 주의] 화려한 결혼식을 마치고 에스미섬에서 꿈같은 신혼여행을 보내던 두 사람은 예기치 못한 임신에 당황한다. 신혼여행 중에 당연히 벨라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켈런가를 찾아온 제이콥도 임신한 벨라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벨라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자라는 태아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르네즈미를 낳고, 변신도 성공한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르네즈미를 '불멸의 아이 - 뱀파이어의 규칙을 지킬 수 없는 위험한 존재' 로 규정한 볼투리가 전병력을 이끌고 켈런가로 쳐들어 온다. 제이콥이 르네즈미에게 각인된 사건으로 새로운 관계가 성립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무리는 불투리에 함께 맞서기로 하고, 평소 친분있던 뱀파이어들에게 증인이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벨라는 자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며 속상해 하다가 '방어능력'이 있음을 알게되고, 쉴드를 자유롭게 조종하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르네즈미를 제이콥과 함께 피신시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둔다. 결전의 날, 볼투리는 르네즈미가 아무런 위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꼬투리를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늑대인간과 벨라의 능력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그들은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수세에 몰리고, 겨우 체면을 유지한 상태로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에드워드는 모두에게 벨라의 능력에 대해 말하고 벨라는 늘 그랬듯이 부끄러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벨라는 자신을 감싸던 쉴드를 완전히 끄집어 냄으로써 에드워드가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를 처음 만났던 날, 제임스에게서 구해준 일, 결혼식, 에스미섬, 변신 후 처음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등 벨라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없이 행복했던 순간들을 펼쳐보인다. 그리고 '영원히 행복하게'라는 말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스포 종료]
 
스토리 전개가 정말 빠르다. 8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어떻게 읽어는지도 모를 정도로 크고 작은 사건들과 에피소드들이 넘쳐난다. 에드워드라는 캐릭터가 흥미로운 것은 1차세계대전 당시의 고리타분한 사고를 가졌음에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벨라가 했던 말처럼 그의 잘 생긴 얼굴 이면에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려는 노력, 끝없는 이타심 등 내면적인 부분이 여심을 사로잡는다. '브레이킹던'에서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뱀파이어들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에드워드의 존재감이 조금 약해진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벨라가 에드워드 보다 더 강해지면서 (변신 직후 인간의 피가 남아있는 동안 한시적이긴 하지만) 전보다 더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지금까지 벨라에게 감정이입을 시킴으로써 대리만족을 누려오다가 벨라가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가 되어 버리자 방향을 잃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신랑(신부)은 신부(신랑)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겠습니까?" 항상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죽음이 우릴 갈라 놓을 때까지" 이 말도 '사랑의 끝', '유한성'을 나타내는 말이라서 싫다. 누군가로 인해 눈에 콩깍지가 씌여지면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그렇기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라는 대답이 나와줘야 되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판타스틱한 러브스토리가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폭팔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도 기존의 뱀파이어 이미지를 바꾸었다는 측면도 있지만, '불멸의 사랑' 이라는 이상적인 러브스토리를 실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원나잇 스텐드가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이혼율이 솟구친다는 21세기 오늘날에도 첫사랑의 설렘을 기억하고픈,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믿고싶다. 해커때문에 단단히 화가 나셨다는 스테프니 여사께서 이젠 독자들 생각도 좀 해 주시기를...  이젠 <미드나잇선>만이 희망이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그리고 우리는 작지만 완벽한 우리의 한순간을 이어나갔다. 영원히 행복하게. (p.821) 라는 말처럼 앞으로도 행복한 순간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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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지음, 이주혜.장인선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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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하는 남편이 그런다. 우리집 담벼락에 기대 담배피는 아이들 보고도 아무 말 못하는 것이 현실이리고 말이다. 어린 애들한테 험한 경우를 당하는 것이 두려운 것보다 앙심을 품고 가족들한테 해코지 할까봐 겁난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사회가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요즘은 청소년 범죄 연령도 점점 더 낮아지고 수법도 잔인해 지는 것 같다. 최근에는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자신들은 미성년자라서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랬다는 말을 함으로써 청소년 범죄 처벌 수위에 논란을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우리 사회,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 아이들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정말 고민된다.

 

<보이 A> 이 책은 영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소년 범죄를 모티브로 집필되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10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라는 것은 어느 사회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일 것이다.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민심은 사건의 단편적인 면만 보게 될 것이고 진정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을 놓치게 만든다. 작가는 소년 A의 어린시절부터 감옥에서의 생활, 잭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가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았다.    

 

소년 A는 '잭'이라는 이름을 직접 골랐다. 평범하면서도 멋있다는 것이 이유다. 어쩌면 어린 시절, 그의 진짜 이름이 서류철에 묻혀 버리기 전부터 그가 원했던 것은 그저 평범한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께 사랑받고,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든지, 선생님께 관심을 받는 것들 말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보통의 아이들이 가졌던 것들 중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소년 B와 함께 있을때만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공범 B와 구분하기 위해 A라고 불렸던 소년은 15년의 세월동안 죄값을 치른 후 사회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잭으로 살아 갈 것이다.  

 

 두려움으로 시작한 새 삶은 잭에게 너무나도 큰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집, 직장, 동료들, 친구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는 위험에 처한 친구를 위해 몸을 던질 줄도 알고, 꺼져가는 한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소년은 A였던 과거를 뒤로하고 영웅 잭이 되었다.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삶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소년 A가 여전히 위험한 존재이며 사회에 복귀되더라도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A는 여전히 용서할 수도, 보호할 가치도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집요한 추적자가 되어 A를 뒤쫓고 있었다.   

 

"피곤하다고 말했지만 잭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를 괴롭히는 거짓과 위선의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게 불편하기만 했다. 마치 거짓과 위선 위에 누워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짓과 위선이 벼룩처럼 그의 살갗을 따갑게 했고 온 신경이 등 쪽에 솔려서 결국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p.262)"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을 묘사한 부분이다. 잭의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죄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가 겪어야 할 부분, 그가 갚아야 할 부분이 아직도 남았음을 알고 있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에게 과거를 털어놓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너무나도 큰 고통이다. 운명의 그 날, 소년은 스스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었을까? 소녀의 삶을 빼앗는 순간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멈추었을까? 그가 치러야 할 댓가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사람들이 범죄자들에게 편견어린 시선을 가지는 것은 재범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사랑과 배려와 인내를 배워야 할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시간 동안 더 많은 범죄자들과 어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기 때문에, 또한 슬픈 현실을 뒷받침 해주는 '통계 자료들' 때문에 편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에 동정을 보내고, 살아온 인생에 마음아파 해줄 수는 있어도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없에 주지는 못한다. 두려움은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지나친 자기 방어는 결국 과격함으로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이 없다. 책을 좋아하고 특히 문학이라는 분야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가끔씩 작품성과 현실의 벽 사이에 끼여 꼼짝할 수 없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범죄자 특히 성범죄자의 주거지는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과연 그들을 편견없이 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책을 덮을 때 까지도 잭의 진짜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소년은 '보이 A' 그리고 '잭'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그 사실이 내내 가슴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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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은 없다 - 2008 대표 에세이
김서령 외 41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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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 마 이것들아~ 내가 살아온 인생을 책으로 쓰면 츄럭 100대로도 모자란다. 내가 열 여덟에 느그 할배한테 시집을 와가지고..." 라디오에선 그저 옛노래 한 곡 흘러나왔을 뿐인데... 할매 또 시작이다, 언니가 내게 눈짓을 보내며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일어설 타이밍을 놓쳐버린 나는 두 사람 몫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결국 한 시간 넘게, 50번만 들으면 100번이 될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먹고살기 힘들어 만주로 떠날려다가 그나마 가진 재산 사기당한 이야기, 6/25 때 고향 떠나 피난 간 이야기, 고릿보개 넘기느라 소나무 껍질, 칡뿌리 뽑아 먹던 이야기~ 너무 많이 들어서 거의 외울지경이다. ^^;; 

 

그땐 그랬다. 내가 겪지 않은 이야기,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수필이 좋아졌다. 그것도 무게감 있는 내용보다는 개인적이고도 소소한 일상에 촛점이 맞추어진 경수필을 더 좋아한다. "너는 나중에 수필가가 되렴~" 초등학교 때, 일기장 검사를 하시던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후에 수필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면 이상하게 들리려나? 수필가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글 쓰는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수필은 위대했다. 한 없이 수줍기만 하던 한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꿈이 생겼으니 말이다.     

 

수필이 좋은 이유는 정형화된 형식이 없고 주제가 자유로워 편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잡탕이어야 한다. 잡식성이어야 한다. (p.5)" 라고 주장한 저자의 생각에 100% 공감한다. 수필에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고 규격화 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 글은 더이상 수필이 아니다. 왜냐면 수필은 '인간극장'이기 때문이다. 연출가가 있고 편집도 하지만 대본은 없다는 것. 허구가 아닌 저자의 경험과 생각, 느낌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생생한 리얼다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더라도 '논픽션'이라고 하면 감동이 배가 되는 것처럼 수필은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기에 더 큰 울림이 있다.  

 

<약산은 없다> 이 책에는 2008년도 에세이스트에 소개된 300여 편의 수필중 42편을 '엄선'해서 수록하였다.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글~ 제대로 된 '잡탕'을 맛볼 수 있다. ^^ 리 땅 지키기위해 농촌으로 내려갔지만 투기바람이 불어 이웃마저 배신하는 현실, 자식들 대학시험 치르는 날 고행하듯 찬바람 맞고 서있던 모정, 스물 아홉에 큰 뜻을 품고 가출하였다가 결국 고래만 잡고 3박 4일만에 귀가한 이야기, 자신에게 혹은 친구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내 마음도 숙연해지는 것 같았다. 이처럼 유년에 대한 그리움과 젊은 날의 추억, 크고 작은 일상이 주를 이룬다.    

 

 수필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학이다. 이 말에 대해서는 누구나 생각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많지만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참 어렵기 때문이다. 내용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그저 수다스런 말로 그쳐서는 아니될 것이기에 드러나지 않게 주제를 심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수필이 참 쉬워보인다는 것이다. 고음 파트를 힘 들이지 않고 노래하는 가수처럼 심오함이 느껴진다. 문득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글 한 줄 쓰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인간극장'이요, '수필'의 한 장면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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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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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크게 떠~!!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구~!! 작년인가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눈이 팽팽 돌았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요리조리 스토리를 얽어 놓고는 능청스럽게 빠져나가 버리더니 마지막에 연이어 반전에 반전을 터뜨리는통에 사람 어리둥절하게 만들던, 나 완전 바보된 기분이었지. ^^;; 이번에는 그냥 당하지 않을거다. 검은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것 같은 표지를 보면서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는다.    

 
 일가족이 사라졌다. 식지 않은 아침상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의 생사 여부는 물론이고 누가 이들을 데리고 갔는지, 그날 아침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다. 르포라이터인 이라가시 미도리는 미스테리한 행방불명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사건의 진실을 조사하기위해 마을을 찾는다. 마을 사람들은 5년전 마을의 양대 명문가 중 하나였던 요시가와 가문의 일가족이 살해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다키자와 가문에 '구로누마'의 전설이 적용된 것이라고 말한다. 신이 이따금씩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람들을 감춘다는, 깊이를 알 수 조차 없다는 검은 늪... 사건도 그렇게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신인작가인 후루타 도모아키는 전철을 타고 귀가하던중 여장한 남자로부터 치한이라는 누명을 쓰고 구타를 당하게 된다. 억울함을 풀기위해 남자의 집까지 미행한 후루타는 그 남자와 닮은 의문의 여인이 사람을 해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후루타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추리소설로 쓰기로 결심하고 그(혹은 그녀)의 주위를 맴돌게 되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부녀자 연쇄 폭행범'으로 몰리게 되었음을 깨닫고는 당황스러워 한다. 이처럼 소설의 흐름은 초반부터 크게 두 줄기로 흘러간다. 두 사건 사이에는 어떠한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기에 어느 지점에서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지켜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짐작대로 그 부분이 소설의 절정이기도 하고 말이다. ^^
 

 솔직히 중반부를 넘어선 지점까지도 도무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억나는 것은 명문가였던 다키자와 가문이 쇠퇴하는 과정이다. 그래도 한때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던 집안인데 그 속은 온통 감추고픈 것들 투성이다. 명문가의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하나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한 것 처럼 비도덕적인 행위를 덮으려는 노력때문에 결국은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루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부터 경찰을 찾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집착'에 사로잡혀 상대를 뒤쫓는 인물이 되고 만다. 두 사건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구로누마, 검은 늪이다.   

 
같은 작가여서 그런지 <행방불명자>와 <도착의 론도>는 여러 면에서 비교될 수 밖에 없다. '서술트릭'이라는 서술기법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마지막에 휘몰아치듯 반전이 이어지는 결말이 그렇다. 눈 크게 뜨고 절대 속지 않으려 애썼는데...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하겠지. "그건 니 생각이고~ 난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다시 한번 읽어봐~" 라고 말이다.  책을 덮고 나서야 깨달았다. 맨 첫장에서 부터 작가의 의도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맨 첫장부터...;; 나 또 바보 된 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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