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러티
콜린 후버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들의 입소문으로 아마존 차트를 역주행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는 베러티는 먼저 읽은 사람들의 평이 좋아 더 궁금하게 한 책이었다.

작가의 이름이 어딘지 익숙하게 느껴져 찾아보니 그녀의 책을 이미 몇 권인가 읽었었다.

아마도 스릴러 장르가 아닌 로맨스 소설로 읽은 터라 금방 같은 작가로 연결 짓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암 투병하던 엄마를 여읜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동안 모은 돈이 바닥나 살던 집에서도 퇴거명령을 받은 상태인 로웬의 직업은 스릴러 작가였다.

그런 그녀에게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와 출판사를 방문하던 날 눈앞에서 끔찍한 사고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피해자의 피를 뒤집어쓴 그녀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친절을 베풀었고 그 사람을 다시 만난 건 출판사와의 계약 장소였다. 마치 운명처럼...

어쩌면 이 부분에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거란 건 이미 예견된 부분이기도 하다.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그녀에게 내밀어진 계약은 사고를 당해 집필할 수 없는 유명 작가인 베러티의 시리즈 작품을 이어서 집필해달라는 것이었고 당장 돈이 급한 그녀가 물리칠 수 없는 거액의 조건을 내밀었지만 로웰이 결정적으로 이 계약을 받아들인 데에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당사자이자 베리티의 남편인 제레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 베리티가 사는 저택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왜 베리티가 왜 글을 쓸 수 없는지를 알게 된다.

그녀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였고 비록 이미 남의 남자지만 자신에게 친절한 잘생긴 남자와 엄마의 죽음으로 세상에 혼자 남겨진 미모의 여자가 한 집에서 기거한다면 서로에게 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

여기에다 베리티가 쓴 자서전을 우연히 손에 넣은 로웰은 그녀의 원고를 읽다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자서전 속의 그녀는 남편인 제레미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여자였고 그 사랑이 지나쳐 자신이 낳은 아이들마저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방해물로 여길 정도였다.

어쩌면 그 자서전이 그녀로 하여금 유부남인 제레미에게 끌리는 데 면죄부를 준 건지도 모른다.

전체적인 내용은 엄청난 반전이 숨어있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넘친다기보다 로맨스에 살짝 스릴러적인 요소가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로 의지할 데 없는 두 사람이 끌리게 되고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방해물로 존재하는 사람이 바로 아내인 베러티지만 그녀는 결정적으로 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아닌 끔찍한 악녀의 모습이었기에 오히려 지탄받아야 할 두 사람의 사랑에 당위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로웰과 제러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는 부분에선 성적 긴장감이 흐르고 집안에서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집안 전체에 순식간에 긴장감을 불러오는 인물인 베러티에게선 뭔가 비밀스러운 냄새가 나고.... 그리고 이 들 관계를 결정적으로 뒤바꿔 놓은 장치로 자서전이 등장한다.

이런 플루트는 고전인 제인 에어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다 작가는 장기인 로맨스 부분을 제대로 섹시하고 에로틱하게 묘사하고 있어 로맨틱 스릴러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섹시하면서도 은밀하고 거짓과 비밀이 넘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가득하다.

이 책이 왜 그렇게 입소문으로 역주행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볼루션 - 어둠 속의 포식자
맥스 브룩스 지음, 조은아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무서운 게 많다.

우리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온갖 종류의 짐승들이며 괴물들, 인간이 아닌 존재인 뱀파이어, 늑대 인간 그리고 이제는 좀비까지...

물론 이런 존재들도 충분히 무섭지만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공포감을 느끼는 존재는 아마도 미확인 존재...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만큼 두려움을 불러오는 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 데볼루션은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가장 공포를 느끼는지를 제대로 알고 쓴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전작들을 보면 그런 내 짐작이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월드 워 Z라는 좀비물로 유명한 작품을 쓴 작가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충분히 분위기만으로도 공포심을 불러일으켰고 여기에다 어디에도 피할 수 없는 일종의 밀실 상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극강의 공포를 끌어왔다,

레이니어 화산이 폭발하면서 주변 도시를 비롯해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지고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

눈앞에 시급한 문제들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됐을 때 화산 주위를 조사하던 중 피투성이 잔해만 남은 곳에서 한 여자의 일기가 발견된다.

그곳은 친환경 공동체인 그린루프였고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었다.

화산이 폭발한 뒤 사람들이 떠난 것인 줄 알았지만 발견된 일기에는 끔찍한 진실이 숨어있었다.

그린루프는 레이니어 화산이 폭발한 후 도시로 가는 길이 끊겨 오갈 데 없이 갇힌 신세였고 통신마저 끊겨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이 자랑하는 최첨단 통신이며 장비들이 무용지물이 된 상태였고 그런 그들을 노린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부터 그 존재를 눈치채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부턴가 그들의 사는 곳으로 사슴이며 토끼가 들어오는 일이 잦더니 어느 날은 푸마가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하려 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누구도 이런 사태를 보고 위기감을 느끼기는커녕 푸마를 무기로 공격해 아이를 구한 사람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케이트는 하이킹을 하고 오다 마주친 낯선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이 본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스스로도 자신이 본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들에게 식량 제한을 권하고 텃밭 가꾸기를 비롯해 이런저런 제안을 해온 모스타르의 말을 따라 무기를 만들고 차근차근 대비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낸 그것들...

퇴비 통을 뒤지고 뒷마당을 어슬렁거리는 그것들은 어느새 조금씩 공동체의 영역을 침범하며 대범해져 가지만 사람들은 눈으로 보면서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자신들 속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마어마한 덩치와 그 덩치에서 나오는 괴력으로 단숨에 사람들을 제압하기 시작한 그것들과의 전쟁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개체들 간의 영역 다툼이었다.

낯선 괴생명체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조금씩 조금씩 영역을 확장해가며 사람들에게 접근해오는 그것들과 눈앞에 뻔히 보면서도 현실을 부정하기 바쁜 허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과의 싸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도저히 겨룰 수 없는 힘의 차이는 공동체 사람들의 학살로 이어지고 일방적인 이 전투가 그것들의 승리로 끝나갈 때쯤 드디어 사람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이룩한 기술의 발전이나 문명이란 게 얼마나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볼루션은 케이트의 일기를 통해 그곳 공동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보니 처음부터 확 몰입한다기 보다 서서히 달궈지다 인간 대 그것들과의 목숨을 건 전투에서 긴박감이 최절정에 달한다.

특히 사람들을 공격한 그것의 존재를 단순히 괴수나 괴물이 아닌 우리도 익히 아는 전설 속의 거인인 빅풋 혹은 사스 콰치라 불리는 존재를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작가의 전략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힘만 세고 난폭한 종이 아닌 인간과 유사한 종인 유인원의 등장은 어느 정도 지능이 있고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울 수 있는데 여기에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하는 괴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운명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 대부분인 공동체에 전쟁을 치러본 적이 있는 모스타르라는 치트키를 넣어둠으로써 이 싸움의 결말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도록 만들었고 둘 사이의 전쟁을 빅풋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닌 둘 사이의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쟁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공포스럽다기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영상으로 보면 더 좋을듯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밤 여행자 1~2 - 전2권
자오시즈 지음, 이현아 옮김 / 달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문득 낯선 시대로 떨어진다면...?

판타지 소설을 즐겨보는 사람에게 타임 슬립 타임 워프 같은 소재는 이제 너무 흔하디흔한 설정이라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 현대에서 불만족스럽게 살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지금보다 훨씬 더 과거로 간 후에 벌어지는 일들이란 대체로 문명화되고 기계화되어 모든 것에서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불편하고 힘들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그 시대의 사람들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점에선 몇 점 아니 수십 점 앞서서 게임을 시작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마치 전능하다 싶을 만큼의 힘을 발휘한다.

처음에는 이런 설정 즉 모든 걸 알고 미리 대비해 엄청난 능력자처럼 보이는 게 흥미롭고 신기했지만 몇 편의 성공 후 너도나도 이런 설정을 빌려와 비슷한 스토리가 봇물처럼 나오다 보니 이제 식상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비슷한 설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 밤 여행자 역시 한 사람은 1937년에서 느닷없이 2015년의 상하이로 오고 다른 사람은 반대로 2015년의 현대에서 전쟁이 발발한 1937년의 상하이로 타임 슬립한다는 점에선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단지 밤 10시면 어디에 있든 2015년으로 오고 새벽 6시면 다시 1937년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설정을 둔 이유나 왜 그렇게 되는지 타임슬립의 원리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왜 두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역시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맞춰 열심히 상황을 맞춰갈 뿐이었다.

그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와 깜빡이는 현관의 등을 갈았을 뿐인데... 정신 차려 보니 같은 집이지만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달라졌음을 알게 되는 성칭랑

같은 날 법의관으로 사건 현장을 조사하다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온 쭝잉은 집에서 낯선 사람의 향기를 느낀다.

그렇게 1937년을 살아가던 변호사 성칭랑과 2015년을 사는 법의관 쭝잉이 상하이 699번지의 집을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밤 여행자는 읽으면서 작가가 로맨스 소설을 쓰면서 그저 장식처럼 타임슬립이라는 걸 가져온 게 아니라는 걸...많은 조사를 한 후에 쓴 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1937년은 중국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시기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일 전쟁이 발발하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난징대학살이 벌어지던 시기의 상하이라는 것도 그렇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나 배경이 실제 1937년에도 있었을 뿐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실존하는 건물과 장소라는 점도 그렇다.

그런 대변혁의 시기에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성칭랑은 사실 엄청난 부를 대대로 소유하고 많은 직원을 거느린 성가 집안의 사생아였다.

당연히 형제자매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은커녕 멸시받고 천대받기 일쑤였으며 심지어는 공관에서 일하는 하인들도 그를 업신여겨 제대로 주인 대접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상하이에서 일본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가족과 가족의 재산을 지켜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서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이 집안에서 그의 자리는 없다.

쭝잉 역시 거대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두었지만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이 외로운 처지라는 점에서 성칭랑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쭝잉은 재혼한 아버지가 뒤늦게 얻은 외아들과 특이체질이 같다는 이유로 필요할 때 마음껏 써먹을 수 있는 도구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녀에게도 집안에서 그녀의 자리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가족이 있지만 가족으로부터 사랑은커녕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어디에서나 아웃사이더로서 외로움을 가슴 깊이 간직한 두 사람이 양 시대를 오가면서 목숨을 건 위험을 겪고 서로 의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고 젊은 남녀가 그렇게 서서히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있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마음에 담아 가는 과정이 현대의 빠른 사랑법이 아닌 1937년의 사랑법을 따라 서서히 마치 물감에 색이 스며들듯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여기에 쭝잉의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 숨어 있는 비밀을 밝혀가는 과정을 담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 밤 여행자는 이제까지 중국 로맨스 소설은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여겼던 내게 새롭게 인식되게 한 책이었다.

로맨스 소설에 있어 남주인공이 차지하는 위치가 지대한만큼 책 속에 나오는 성칭랑이라는 남자가 가지고 있는 매력 즉,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젠틀맨이라는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여주인공인 쑹잉 역시 처음엔 제대로 된 발언을 하지 못하고 부당한 일에도 참기만 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다가 뒤로 갈수록 제 목소릴 내고 스스로 위험한 걸 알면서도 뛰어드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변해가는 것 역시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섞어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로맨스 소설답게 로맨틱하게 그려진 밤 여행자

별 기대 없이 읽어 더 마음에 든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도 그렇고 표지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고 소개 글에 쓰인 스코틀랜드 호러 스릴러의 정점이라는 말에서

엄청 무섭고 섬뜩할 거라는 내 예상을 완전히 뒤집은 책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암울하고 뭔가 곧 사건이 벌어질 듯한 긴장감을 내내 유지시켜 끝내는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심리 스릴러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듯하다.

일단 살인사건은 벌어진다.

그것도 처참할 정도로 잔혹하게...

배를 칼로 갈라놓은 시신의 상태가 마치 웃는 듯하다고 표현하는 글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스코틀랜드의 루이스 섬에서 누군가에 의해 난자된 듯한 시신이 발견되고 얼마 전에 발생한 살인사건과의 유사성 때문에 그때 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핀이 루이스 섬으로 급파된다.

사실 핀에게 이곳은 낯설지 않은 곳이다.

그가 18년 전에 떠나온 곳이자 다시는 발을 디디고 싶지 않은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그의 상태는 최악이다.

얼마 전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그에게 고향으로의 귀환은 오랜 악몽과도 같았고 이 사건을 담당하는 현지 경찰들 역시 그를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연쇄살인의 가능성 때문에라도 사건을 맡지 않을 수 없었고 부검을 지켜보면서 그는 누군가의 모방 살인임을 깨닫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분명 잔혹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걸로 했지만 들여다보면 사건 수사는 뒷전이고 핀이 왜 고향을 떠나야만 했는지 이곳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이야기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이곳 주민들 대부분은 조상부터 대대로 나고 자라 이곳을 떠나지 않고 뿌리를 내리는데 핀은 왜 고향을 떠난 걸로 부족해 십수 년이 지나는 동안 발길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 의문에 대해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씩 풀어나가지만 분명 어느 시점에 무슨 일이 생긴 건 맞는데 그게 무슨 일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힌트도 주지 않는다.

단지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부모 모두를 잃고 누구의 보호도 없이 자란 핀에게 이곳의 환경은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지만 그것 외에는 뚜렷한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아주 어린 나이에도 조숙하게 여자친구를 사귀는가 하면 친구의 아버지가 그의 대학 입시를 도와주는 등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좁은 지역에서 별다른 놀 거리가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답게 일찍부터 성이 깨어있고 음주 문제와 폭력이 난무한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부모가 없는 핀은 좋은 먹잇감 중 하나였고 어쩌면 그런 환경이 그가 섬에서의 탈출을 꿈꾸도록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죽은 피해자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누군가가 그에게 원한을 품고 살의를 느낄 수는 있지만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할 정도로 악의와 원한을 품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왜 모방 살인을 저지른 걸까

범인의 흔적을 찾아가며 읽어내려가다 보면 사건 수사보다 핀의 과거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마을에서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새끼 새를 때려잡는 야만적인 사냥의 시기에 뭔가 일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살인 사건 이후로 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지만 섬이라는 특성에서 오는 고립감 그리고 거친 자연에서 오는 황량함 그 속에서 아무런 비전도 희망도 없이 술과 폭력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의 모습에서 무력감과 더불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않을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서서히 좁혀오는 듯한 숨 막힘과 숨겨왔던 비밀이 마침내 드러나는 순간 긴장감도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진실이 드러난 순간 읽는 내내 미묘했던 그 분위기가 그제서야 이해되고 사이사이의 빈틈이 마침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분위기만으로 읽는 내내 긴장하게 했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리의 살의 - JM북스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 읽은 책이 산더민데도 대여에다 페이백은 못 참아서 얼마 전에 지른 책을 이번에 드디어 읽었다.

제목에서 유리가 뭘까? 사람 이름일까 궁금했는데 그냥 그대로의 유리를 의미했다.

일본어는 우리와 조금 달라 소유격인 ~의 ** 이런 식의 말을 사람이 아닌 다른 물체나 기타 등등에도 사용해서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소 어색할 수 있다는 걸 이런 제목을 볼 때마다 느낀다.

어쨌든 사람도 아닌 한낱 물체가 살의를 느끼는 걸까 하고 궁금했는데 주인공의 상태가 어찌 보면 금방이라도 깨질듯한 유리와 같다는 의미에서 이런 제목을 붙인 게 아닐까 문득 생각했다.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온몸이 피투성이고 손에는 피 묻은 칼이 들려 있었으며 곁에는 누군지 모르는 남자가 죽어있었다.

그녀는 조건반사적으로 경찰에 전활 걸어 자신이 누군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는 신고를 하고 경찰에 의해 조사를 받는다.

여기서 문제는 그녀는 자신이 경찰에 신고전화를 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조사 과정을 통해 그녀에게는 오래전 교통사고로 인한 심각한 기억장애가 있다는 게 밝혀진다.

그리고 문제의 피해자는 공교롭게도 그녀의 부모를 무차별 살해한 범인이었고 이내 이 사건은 복수 사건이라 규정해 엄격한 조사를 받지만 어떤 질문에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까맣게 모르는 그녀를 상대해야 하는 경찰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진짜 기억인지 장애가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녀의 곁에서 꾸준히 보살펴주는 남편의 증언과 주치의의 증언을 통해 그녀의 기억장애가 진짜임을 확인받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사람을 살해한 사실은 변하지 않아 구치소에 수감된다.

이야기는 매번 그녀가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해가는 그녀의 심리묘사에 치중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녀가 진짜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증명한다.

이런 부분을 보면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 메멘토가 연상되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 자신이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죄명으로 재판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

이럴 때 대부분 자신의 죄를 인지하지 못하는 피의자의 곁에 있는 사람 역시 의심스럽기 마련이고 남편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알리바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그를 의심하도록 한 것은 아내의 지인이라는 사람의 등장 이후부터다.

자신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를 왜 재판까지 가도록 그냥 놔뒀는지 왜 변호사를 얼른 붙여주지 않았는지 조목조목 의심스러운 정황을 따지는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아... 그러고 보면 남편의 행동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하구나 하는 인식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나부터도 아내가 진짜 범인을 죽인 게 맞는 건지 그녀의 기억장애가 거짓으로 꾸민 건 아닌지에 모든 초점을 두고 읽다 보니 남편의 어디가 수상한지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부분을 친절하게도 아내의 지인 입으로 깨우쳐주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한다.

등장인물도 몇 안 되고 상황 자체도 뻔해 자칫하면 지루하거나 너무 진부한 양상을 띌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쓴 걸 보면 작가는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첫 문장부터 시선을 사로잡았고 가독성도 좋아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는데 이 뻔한 구도에서도 작가는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소재도 독특해서 더 인상적이었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