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살의 - JM북스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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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읽은 책이 산더민데도 대여에다 페이백은 못 참아서 얼마 전에 지른 책을 이번에 드디어 읽었다.

제목에서 유리가 뭘까? 사람 이름일까 궁금했는데 그냥 그대로의 유리를 의미했다.

일본어는 우리와 조금 달라 소유격인 ~의 ** 이런 식의 말을 사람이 아닌 다른 물체나 기타 등등에도 사용해서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소 어색할 수 있다는 걸 이런 제목을 볼 때마다 느낀다.

어쨌든 사람도 아닌 한낱 물체가 살의를 느끼는 걸까 하고 궁금했는데 주인공의 상태가 어찌 보면 금방이라도 깨질듯한 유리와 같다는 의미에서 이런 제목을 붙인 게 아닐까 문득 생각했다.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온몸이 피투성이고 손에는 피 묻은 칼이 들려 있었으며 곁에는 누군지 모르는 남자가 죽어있었다.

그녀는 조건반사적으로 경찰에 전활 걸어 자신이 누군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는 신고를 하고 경찰에 의해 조사를 받는다.

여기서 문제는 그녀는 자신이 경찰에 신고전화를 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조사 과정을 통해 그녀에게는 오래전 교통사고로 인한 심각한 기억장애가 있다는 게 밝혀진다.

그리고 문제의 피해자는 공교롭게도 그녀의 부모를 무차별 살해한 범인이었고 이내 이 사건은 복수 사건이라 규정해 엄격한 조사를 받지만 어떤 질문에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까맣게 모르는 그녀를 상대해야 하는 경찰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진짜 기억인지 장애가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녀의 곁에서 꾸준히 보살펴주는 남편의 증언과 주치의의 증언을 통해 그녀의 기억장애가 진짜임을 확인받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사람을 살해한 사실은 변하지 않아 구치소에 수감된다.

이야기는 매번 그녀가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해가는 그녀의 심리묘사에 치중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녀가 진짜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증명한다.

이런 부분을 보면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 메멘토가 연상되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 자신이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죄명으로 재판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

이럴 때 대부분 자신의 죄를 인지하지 못하는 피의자의 곁에 있는 사람 역시 의심스럽기 마련이고 남편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알리바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그를 의심하도록 한 것은 아내의 지인이라는 사람의 등장 이후부터다.

자신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를 왜 재판까지 가도록 그냥 놔뒀는지 왜 변호사를 얼른 붙여주지 않았는지 조목조목 의심스러운 정황을 따지는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아... 그러고 보면 남편의 행동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하구나 하는 인식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나부터도 아내가 진짜 범인을 죽인 게 맞는 건지 그녀의 기억장애가 거짓으로 꾸민 건 아닌지에 모든 초점을 두고 읽다 보니 남편의 어디가 수상한지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부분을 친절하게도 아내의 지인 입으로 깨우쳐주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한다.

등장인물도 몇 안 되고 상황 자체도 뻔해 자칫하면 지루하거나 너무 진부한 양상을 띌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쓴 걸 보면 작가는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첫 문장부터 시선을 사로잡았고 가독성도 좋아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는데 이 뻔한 구도에서도 작가는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소재도 독특해서 더 인상적이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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