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합
다지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주 옮김 / 모모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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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글자도 놓치지 마라

모든 것이 복선이며 단서다!

라는 소개 글을 보자마자 아... 이건 바로 서술 트릭을 이용한 작품이구나 생각해서 나는 속지 않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글을 곱씹듯이 읽어내려갔다.

어딘가 작은 단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반드시 범인이 누군지 찾겠다 생각했지만 역시!!!

끝내 범인을 찾지 못한 건 물론이고 속을 확률 100%의 반전 미스터리라 장담한 출판사의 의도대로 완벽히 속아 넘어갔다.

그리고 범인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 나도 모르게 앞으로 다시 돌아가 문제의 지점을 다시 읽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진짜 범인을 찾아낸 사람도 있겠지만은... 마지막에 가서 범인이 드러난 순간에 느꼈던 허탈감과 당혹감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범인의 정체에 무릎을 치게 된다.

사실 이야기의 전체를 아우르는 건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살인사건 혹은 사건이 중심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방심한 탓도 있겠지만은 소설 속 대부분은 전쟁이 끝난 후의 일본의 분위기를 갓 중학생이 된 남녀 학생 세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마치 우리의 문학작품 소나기의 일본 버전이랄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 소녀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풋풋한 감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슬쩍슬쩍 비치는 어른들 세계의 잔인함이나 비정함이 서로 대비되어 별다른 잔인한 묘사가 없으매도 그 냉정한 기운이 느껴진다.

세상은 전쟁이 갓 끝난 후 무너진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선 방탕하고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실존 인물이 자 소설 속에서 자신의 회사를 좀 더 능률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유럽이나 소련까지 건너가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 익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고시바 이치도 회장이라면 세상을 흥청망청하며 마음대로 낭비하듯 살아가는 사람이 주인공 세 사람 중 하나인 가오루의 삼촌이라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중 이치조 회장과 연이 닿은 여성인 아이다 미치코는 뚜렷하게 뭔가를 하지않지만 그 존재감이 분명해서 그녀의 이후 횡보가 궁금증을 불러오게 하는 데 소설 속에는 베를린에서의 일화 이후엔 홀연히 사라졌다.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결정적인 뭔가를 쥐고 있는 히든 키라는 걸 모두가 눈치챌 수 있도록 했지만 도대체 어디에서 모습을 드러낼지 좀처럼 꼬리를 잡을 수 없도록 했을 뿐 아니라 쉽게 착각하도록 곳곳에 엉뚱한 단서를 던져 놓았다.

이렇게 여기저기에 작은 단서를 놓고 사람들을 유인해 단서를 눈앞에 두고서도 단서인 지 모르도록 하는 것...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앞으로 가 다시 확인하게 하는 게 바로 서술 트릭이 가진 매력이자 힘이고 그런 트릭을 멋지게 활용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게 한다.

살인사건이 없다면 순수문학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서정적인 묘사와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풋풋한 감정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는 흑백합은 그 대비의 차이가 큰 만큼 밝혀지는 진실이 크게 다가온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본다면 확실히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내용은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지만 그런 내용을 오히려 서정적인 필체와 묘사로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사건을 중심으로 본다면 다소 밋밋하고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품고 있는 내용만큼은 절대로 심심하지않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잔잔하게 흘러가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강하게 뒤통수를 맞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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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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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 모여사는 조용한 동네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여자들의 실종사건

단순하게 생각하면 일단 가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우선되고 그게 아니라면 배우자의 알리바이를 조사한다.

누군가가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면 연인이나 배우자를 조사한다는 이런 공식은 슬프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는 법칙과도 같다.

이 책 사라진 여자들에서도 그런 순서로 사건 수사가 진행되지만 아무런 증거 하나 없이 홀연히 사라진 세 명의 여자들 중 성인인 두 사람은 안타깝지만 죽은 채로 발견된다.

두 사건 중 첫 번째 사건은 출산을 한 아내를 두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고 또 다른 결정적 증거가 나와 아내 살인범으로 검거되어 실형을 받는 것으로 또 한 번 세간의 속설을 입증했다.

하지만 두 번째 사건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다.

우선 겉으로 보기엔 부부간의 관계도 좋고 메러디스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해 한 명을 남겨두고 다른 한 명만 데리고 가출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사건 수사가 진행될수록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최근 그녀에게는 말 못 할 고민거리가 있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그녀의 죽음은 자살로 종결한다.

문제는 메러디스가 사라졌을 때 함께 사라진 아이 딜라일라의 흔적을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서에 쓰인 글... 안전하지만 절대로 딸을 찾을 수 없을 거라 장담한 듯 쓴 글처럼 깜쪽같이 사라져 버린 어린 여자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죽은 것도 아니고 생사조차 모른 채 사라진 아이를 찾으며 기다리는 일만큼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는 일이 있을까

평범하지만 화목했던 조시의 가정은 한순간에 모든 것이 풍비박산 난 채 시간이 흘렀고 조시 역시 하루하루 무너져내리고 있을 즈음 그토록 기다리고 바라마지않던 딸이 돌아왔다.

어둠을 뚫고 자신을 가둬둔 채 짐승처럼 양육했던 사람들의 손길을 피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를 구한 딜라일라...

그녀의 귀환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었다.

폭우가 쏟아져 마을의 전기마저 끊긴 집이 발생할 만큼 어수선했던 그때 평범한 주부이자 출산도우미로 일하던 조시의 아내 메러디스가 딸 딜라일라를 데리고 사라지게 되기까지의 순서와 11년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났지만 오랫동안의 학대로 인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딜라일라를 발견한 이후 사람들이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그 날밤 사건의 진상이 뒤집어지는 과정을 세심하면서도 치밀하게 그려놓은 사라진 여자들은 작가의 전작인 디 아더 미세스를 뛰어넘는 작품이었고 전작에 비해 훨씬 더 긴장감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일견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생활하던 사람이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맞으면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의 모습을 서늘하면서도 공포스럽게 그려낸 사라진 여자들은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의 시선이 아닌 사건 당사자 혹은 사건 당사자의 곁에서 지켜본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다소 혼란스럽고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훨씬 더 드라마틱한 연출은 물론, 각자가 보는 시선 속에서 스쳐가듯 나오는 증언 중에 수많은 복선이 깔려있다.

그래서 많은 것을 계산하고 세심하게 안배하지 않으면 자칫 지루할 수 있거나 아니면 어수선한 전개를 보일 수 있지만 작가는 과감하게도 이런 실험적 모험을 했고 그 의도는 성공했다.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으로 그려서 훨씬 더 입체감 있었고 진상이 드러났을 때 느끼는 반전의 묘미가 더 강력하게 느껴졌다.

복잡하고 다중적인 인간의 심리와 내면의 묘사 역시 탁월해 만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잘 짜인 스토리 몰입도 높은 전개 그리고 마지막의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고 작가의 다음 작품을 얼른 만나보고 싶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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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 - 한쪽 눈만 뜨고 학교에서 살아남기 미래주니어노블 12
롭 해럴 지음, 허진 옮김 / 밝은미래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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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발달하고 모든 것이 발전하는 요즘에도 여전히 암은 인류가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질병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인구 중 50대 이후 사망률 1위가 암으로 인한 사망이라니...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암으로 생을 마감하는 게 더 이상 뉴스가 아닌 세상이다.

주위에도 둘러보면 암 투병 중이거나 암으로 인해 죽음을 맞은 사람도 많아져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해졌어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건 바로 어린아이들에게 생기는 암 즉 소아암에 관련된 부분이다.

이 책 윙크는 바로 그런 아이... 아직 어린 나이에 눈에 생긴 희귀암으로 투병하는 소년의 이야기이자 작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경험을 담아 쓴 글이어서인지 책 속의 소년 로스가 겪는 여러 가지 심경의 변화가 휠씬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평범한 7학년 로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긴다.

눈에 희귀암이 생겨 자칫하면 적출 수술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남은 눈마저 실명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날은 그야말로 로스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날이었다.

다행히 최고의 의사를 만나 안구적출은 피했지만 수없이 많은 방사선치료를 받아야 했고 무엇보다 최악은 사람들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괜찮냐고 자꾸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삭이 암 투병을 하면서 점점 멀어져 가는 걸 지켜보는 것 역시 마음 아픈 일이지만 가장 친한 친구 중 또 다른 친구인 애비는 곁에서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줘 많은 위안이 된다.

책에는 로스가 암에 걸려 힘든 방사선 치료를 수없이 많이 하는 것도 힘들지만 또래의 친구들이 자신을 마치 전염병을 옮기는 사람처럼 거리를 두고 심지어는 연민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게 심적으로 힘들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또래 중 누군가는 로스의 병을 농담처럼 비웃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밈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배포하면서 즐거워하는 잔인함을 보인다.

매일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두려워하며 힘든 치료를 받는 자신이지만 누군가에겐 그런 자신의 고통이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느꼈을 로스의 외로움과 고통스러운 마음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특히 그 또래의 잔인함에 대해 알기에 소설 속의 그 장면은 충분히 현실적이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마냥 어둡고 슬프지만은 않다.

이런 와중에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새로운 취미를 가지게 된 로스가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의 감정을 실어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과 로스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 지켜봐 주고 용기를 내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수시로 변하는 로스의 감정 묘사도 그렇고 치료 과정의 세심한 묘사도 그렇고... 작가의 투병 경험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외로운 투병기를 울면서 견디고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도움으로 이겨내는 로스의 모습이 사뭇 사랑스러웠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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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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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도 그런 글이 있지만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을 성염색체 단 2가지 유형으로 즉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 건 과연 맞는 걸까

솔직히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명제 앞에 머리가 띵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2가지 성염색체에 의해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온 건 아닐까

그 둘 사이에 또 다른 유형이 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주장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그런 가능성조차 염두에 두지 않는 건 잘못된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걸 오류로 인정한다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 외사랑 역시 그런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때 다른 제목으로 나온 적이 있는 게이고의 초기작 중 하나로 오래전 읽었을 때도 엄청 인상적으로 다가왔었는데 다시 읽어봐도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해마다 11월 세 번째 금요일이면 대학 때 같은 팀으로 활동했던 미식축구부원들이 모이는 날이다.

쿼터 백이었던 데쓰로와 친구들이 술자리 모임을 파하고 돌아갈 즈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당시의 매니저 히우라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폭탄 발언을 듣게 된다. 자신은 언제나 여자인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남자였다는 고백

목소리부터 모든 것이 남자로 변한 히우라의 모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히우라는 자신의 현재 쫓기는 중이며 누군가를 살해했음을 고백하면서 마지막으로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히우라가 자수하게 되면 이제까지 그녀가 남자가 되기 위해 했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건 물론이고 사람들의 호기심에 노출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남녀를 떠나 자신들의 친구가 그런 형편이 되는 걸 두고 보지 못한 데쓰로와 아내 리사코는 히우라의 자수를 막고 히우라를 돕기로 결심하지만 친구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었던 히우라는 잠적한다.

그런 히우라를 찾기 위해 행적을 조사하면서 이제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 즉 그런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뿐 더러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해 비록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지만 완벽한 남자 혹은 여자로 바꿔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이런 추적을 데쓰로만이 아닌 경찰 역시 하고 있어 어느새 모두가 그들을 쫓는 중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문제까지 드러날 처지가 되면서 자칫하면 그들이 공들여 쌓은 네트워크가 붕괴되고 말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히우라는 모습을 드러내 데쓰로에게 그만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이미 많은 것이 드러난 상태일 뿐 만 아니라 또 다른 친구의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면서 일대 반전을 맞는다.

사실 처음 시작은 모두가 여자로 알고 있던 친구가 남자가 되어 모두에게 나타난다는 소재에 그저 흥미를 가졌을 뿐인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고민과 갈등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많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제까지 거기에 대해선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이 겪는 고통이 그토록 깊은지에 대해 자각하지 못했었고 요즘은 젠더 문제에 있어 예전보다 훨씬 더 열린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고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오픈된 상태라 이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 해결점은 찾지 않았나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쓴 게 1990년대지만 자신이 가진 정체성과 다른 육체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왜 사람을 남녀로만 구분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탁월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부분이다.

남녀가 아닌 어떤 성을 가졌던 어떤 모습을 하던지 그저 겉으로 보이는 걸로 구분 짓지 말고 인간으로 대하면 되지 않나 하는...

다소 어둡고 복잡하고 딱딱할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와 여기에 소설적 재미를 넣고 미스터리 형식을 빌려 사람들로 하여금 재밌게 읽으면서 그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 아닐까 싶다.

역시 개인적으론 작가의 요즘 작품보다 예전 작품이 더 좋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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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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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회적 문제를 날카로운 비판과 은유로 고발해오던 작가 무라타 사야카

단순히 사회현상과 사회문제를 고발하기 보다 여기에다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고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소설적인 재미를 곁들여 디스토피아를 그려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편의점 인간도 그렇고 소멸 세계에서도 그렇고 상당히 충격적이고 자극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문제는 그 내용이 터무니없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오싹하게 느껴진다.

이 책 지구별 인간도 그 범주에서 그렇게 멀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스스로 마법 소녀라고 칭하는 나쓰키를 처음 봤을 땐 어딘가 지능이랄지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아이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든지 할아버지 집에서의 이야기를 보면 남과 조금 다를 뿐 상상력이 풍부하고 제법 통찰력도 있는... 흔히 말하는 4차원의 사고를 가진 아이 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나쓰키의 일상은 학대받는 아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언제나 감정 과잉인 상태에서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나쓰키를 대하는 엄마와 그런 아내를 보면서 모른 척 외면하는 방관자 아빠 그리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학교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을 동생에게 퍼붓는 언니... 스스로를 쓰레기통으로 칭하는 것만 봐도 이 집안에서 나쓰키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가족들의 학대는 나쓰키로 하여금 낮은 자존감을 가지게 했고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도록 만들었는데 그런 나쓰키의 위치와 감정을 재빨리 간파한 어느 누군가는 자신의 성적 만족감을 위해 나쓰키를 이용한다.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고립되고 힘들어지지만 그런 나쓰키를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던 사촌 유우와 좀 더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나쓰키는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하지만 두 사람은 둘만의 결혼을 한다면서 가족들을 충격에 빠뜨린 그날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만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져갈 즈음 지금의 남편인 도모오미를 만난다.

도모오미 역시 폭력적인 집안에서 정서적으로 학대를 받아 성과 번식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과 혐오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집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이 필요했었고 이런 조건들이 맞아 나쓰키와 가정을 이뤘다.

서로 접촉하지 않은 채 그저 한 집안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면서 만족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런 평범한 일상도 잠시... 도모오미 역시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아 결국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되고 휴식을 취할 겸 해서 나쓰키의 할아버지 집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릴 적 유일하게 이해해 주던 유우를 만나 셋은 마침내 자신들에게 출산을 강요하고 공장처럼 모든 걸 똑같이 규격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이 세계를 거부하기로 결정한다.

자신들은 지구별 사람이 아닌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이기에....

그들 세 사람이 살기로 결정한 뒤부터 이야기는 파격적이고 충격적으로 흘러가지만 오히려 그들의 모습이 점점 더 안타깝고 슬프기까지 했다.

결국은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 세계가 그들에게 가하는 폭력에 끝까지 저항하는 그들은 결국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지만 세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그냥 닥치는 대로 살면서도 별다른 걱정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다.

그런 모습 즉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고자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더 두렵고 공포스럽게 느껴질 수 있음을 알기에 이들이 결국 파멸하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조금의 다름도 인정하지 않는 획일화된 사회에서 남과 다르다는 게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 그리고 출산에 관한 문제조차도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 필요에 의한 강요를 받는 지금의 모습을 날카로우면서도 충격적으로 그리고 있는 지구별 인간은 처음엔 흥미롭게 읽다 뒤로 갈수록 강해지는 충격파에 다 읽고 난 뒤 정신이 멍함을 느꼈다.

어쩌면 작가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주제...모든것에서 획일화를 강요하고 개인에게 출산을 의무처럼 느끼도록 강요하는 지금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걸 작가는 스스로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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