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손님 - 오쿠라 데루코 단편선
오쿠라 데루코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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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로 단행본을 낸 여류 탐정소설가일 뿐 아니라 일본에서 존재감이 큰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은 오쿠라 데루코의 단편집인 심야의 손님은 작품의 출간 연도를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탐정소설 즉 추리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인데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헤치는 부분은 비슷하지만 오늘날의 추리소설처럼 트릭이 복잡하다거나 사건 자제가 어렵거나 하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지만 요즘 책과 같은 느낌을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 전반에 느껴지는 사회적 분위기나 사건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고찰은 요즘 작가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중심에는 대부분 아름다운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들이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불구하고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있고 그 여자를 둘러싸고 오해와 질투 그리고 복수의 피바람이 부는 것이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연상되는데 아마도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속성은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공포의 스파이와 마성의 여자 그리고 심야의 손님이었는데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세 편에서는 인간의 탐욕과 질투, 복수 그 광기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확 달라진 듯한 남편이 어느 날부터 몹시 불안에 떨다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아내는 불안에 떨다 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하지만 집안의 사정 때문에 대놓고 수사를 할 수 없는 처지

죽음을 목전에 둔 시아버지 앞에 조만간 나타나지 않으면 유산은 모두 시동생에게 돌아갈 처지라 남편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그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탐정은 집 주변을 둘러보고 사라진 남편의 방에서 그 흔적을 찾아 사건의 진상을 드러내게 되는 공포의 스파이는 전후라는 시대적 배경과 전쟁에서 포로가 된 뒤 요즘 말로 보면 심각한 외상 후 장애를 입었지만 가문의 명예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는커녕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남자를 상대로 은밀하고 치밀하게 덫을 놓았던 범인의 모습에서 인간의 탐욕과 비뚤어진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마성의 여자에서는 영매라는 독특한 존재를 등장해 작가가 당시 심령 세계에 심취했음을 보여준다.

한때는 열렬히 사랑해 남의 부인이었던 여자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취했고 그녀의 영매로서의 능력 덕분에 화도 피하고 직장에서도 잘나가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보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내가 남편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밖에서 여자도 만들지만 아내는 그런 모든 것까지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후에 벌어지는 일까지 모두 알고 있으며 자신은 절대로 죽어서도 그를 놓아주지 않을 거라 말하고는 웃는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남편이나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선 여유롭게 웃음 짓는 모습이 광인같이 느껴져 섬뜩하다.

그 부부가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안 보고도 뻔하지만 작가는 사랑의 집착과 광기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급하게 탐정을 찾는 의뢰인을 찾아 저택을 방문했지만 이미 사건은 벌어진 뒤...

하지만 그 집에는 죽은 피해자와 그의 양녀만 있었을 뿐이라 당연히 경찰은 양녀를 구속하지만 이 사건의 뒤에는 엄청난 사연이 있었고 탐정이 그 사연을 파헤치면서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다.

길지 않은 글이라 읽기에도 부담 없고 짧은 글에도 캐릭터의 면면을 입체감 있게 표현해 사건에 대한 설득력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서 나온 글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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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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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비채에서 이우일 작가와 그 가족의 책이 몇 권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언제나 이 가족의 책을 읽을 때면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이 너무 부럽게 느껴졌었다.

포틀랜드에서의 일상 이야기, 하와이에서의 이야기 등등...

일단 이우일 작가도 그렇고 가족들이 어딘가에 소속된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라서 가능한 생활이기도 하지만 이걸 차지하고서도 가족 구성원의 성향이 비슷하고 가치관이 서로 크게 차이 나지 않아서 가능한 듯하다.

프리랜서라는 게 얼핏 생각하면 시간의 제약이 없어 자유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래서 고용의 불안이나 경제적으로 힘들 수도 있기 때문에 가족 간에 뜻이 다르면 큰 난관에 부딪칠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가족들이 낯선 곳에서 생활하며 그곳 생활에 적응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일반 사람들은 쉽게 할 수 없는 부분이라 더욱 부럽고 멋지게 느껴지는 듯한다.

그런 점에서 가족 간에 별다른 의견의 충돌이 없는 이 가족은 행운아들일 수 있다.

이번에 낸 에세이 파도 수집 노트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도타기의 즐거움이나 파도를 타면서 느끼는 일상이 역시 그림과 재치 있는 글로 재밌게 표현되어 있었다.

하와이에서 처음 파도타기를 배운 후 그 즐거움에 흠뻑 빠져 수십 년간 장롱면허였던 작가가 운전을 하게 된 사연을 보면서 얼마나 재밌으면 그렇게 겁내던 운전대를 다 잡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나 역시 운동은 절대로 멀리하는 사람이라 그저 파도를 타기 위해 그렇게 오랜 습관을 버리고 일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게 쉽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는데 책을 읽어보면 작가가 파도타기에 느끼는 애정이 찐애정임을 글에서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남들이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에도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몰두할 수 있는 취미를 찾은 작가가 부럽기도 했다.

영화나 TV에서 가끔씩 넓은 바다에 서핑을 타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볼 때마다 멋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저 그뿐... 그 서퍼들 사이에서도 룰이 있고 파도를 타는데도 순서가 있어 눈치를 잘 봐야 제대로 된 파도를 탈 수 있다던가 아니면 어딜 가든 그곳 토박이들의 텃새가 있다는 글은 의외였다.

특히 하나의 파도에 한 사람만 탈 수 있다는 건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어 의아했는데 자칫 서로 부딪치면 부상을 당할 수 있다는 설명에 납득이 갔다.

이런 사소한 걸 몰라 부상을 당하거나 혼자서 파도를 타다 위험에 빠진 아찔한 순간이 있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남은 인생을 파도만 타다 죽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푹 빠져 있는 작가는 우리가 평소 살고 싶다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배우기를 서퍼들의 천국인 하와이에서 배운 작가가 우리나라 파도에 익숙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재밌었고 마음에 드는 파도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자신이 파도를 타는 모습을 누군가가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글은 실실 웃음이 났다.

성숙한 어른 같고 대단해 보이던 작가도 좋아하는 것에는 우리와 별다를 것 없다는 반가움이랄지...

특히 사시사철 따뜻한 하와이와는 달리 계절에 따라 수온의 변화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파도를 타려면 계절에 맞는 슈트는 필수지만 그 슈트를 입고 벗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라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처럼 어디서든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느껴져 참 인생을 멋지게 사는구나 느껴졌다.

파도를 타면서도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이 한층 성숙되게 느껴져 공감이 갔다.

에세이답게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 유쾌함이 느껴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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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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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으면 오히려 뭘 써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 책 킹덤이 그랬다.

일단 너무 애정 하는 작가의 신작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해리 홀레 시리즈가 아님에도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어둡고 우울함 가득한 허무의 향기가 짙게 느껴져 요 네스뵈 특유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돌이 구르는 것처럼 처음엔 천천히 그리고 뒤로 갈수록 엄청난 속도로 굴러가면서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몰입감을 보여준다는 것 역시 이 책의 매력이었다.

주인공은 두 남자 로위와 칼이고 이 둘은 형제다.

한 살 터울의 두 형제는 여느 형제와 다른 점이 있었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함과 결속력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둘을 연결하는 건 무엇보다 두 사람이 아직 미성년일 때 부모가 눈앞에서 집 앞 도로의 위험한 예이테스빙엔 에서 떨어지는 차 사고를 당해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는 사고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게 이유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두 사람의 관계적인 측면 역시 둘의 남다른 가족애에 한몫한다.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몸을 가진 동생 칼은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사람들을 유쾌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여자친구나 아내 때문에 칼을 질투하는 남자가 많아 어디서든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칼이 문제에 휘말리거나 곤란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일을 나서서 해결해 주는 사람이 바로 형 로위였다.

로위는 칼처럼 주변 사람에게 인기가 있거나 반짝거리는 빛과 같은 존재가 아닌 혼자 있기를 즐기고 말도 별로 없는 유형이지만 동생의 뒤에서 그를 보살피며 책임을 다하고 칼을 돌보는 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해왔다.

사실 로위가 이러는 건 칼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기도 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칼이 자신을 필요로 했을 때 동생이 처한 상황을 눈앞에서 뻔히 보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어 모른 척 외면해야 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수치심일 것이다.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과 수치심은 끝내 그가 극복하지 못한 것 중 하나였고 그가 끝내 칼을 외면하지 못한 이유였다. 피로 맺어진 가족이 그 어떤 가치나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고 배운 덕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둘은 모든 면에서 마치 빛과 그림자와 같은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칼이 밝은 쪽, 인기 있는 쪽이라면 로위는 뒤에서 말없이 칼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책임져주는 관계

하지만 이런 굳건했던 둘의 관계도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남자들의 문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듯이 이번에도 여자가 이 둘의 끈끈한 관계를 꼬이게 한다.

두 사람의 특별한 가족애가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는 이유로 벌어진다는 점은 다소 의외이긴 한데 평소 작가의 작품에서처럼 그 관계 역시 건강한 관계가 아닌 서로를 파멸로 몰아가는 관계라는 설정을 보면 납득이 갔다.

칼이 똑똑한 머리를 내세워 미국으로 대학 공부를 하러 떠나면서 두 사람에게도 공백기가 생겼지만 그렇게 떠났던 칼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로위의 예상처럼 온갖 문제 역시 돌아왔다.

칼은 조용하지만 쇠락해가는 동네에 호텔을 지어 마을 사람 모두를 부유하게 만든다는 꿈같은 프로젝트를 가지고 금의환향했고 덕분에 마을은 모처럼 활기를 띠지만 로위의 예상대로 이내 문제에 봉착한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난관에 부딪치는 건 예견된 결과이지만 오로지 칼만 그걸 몰랐던 것 같다.

대책 없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피곤한 일들이 발생하는지를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칼 역시 뚜렷한 근거 없이 희망적인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지금 이 마을의 상황이 어찌해볼 수 없을 정도로 쇠락해가고 있던 중이라 사람들은 칼의 이야기에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매료되어 이 일에 빠져들었다는 점에서 그들 역시 이 계획의 공범들이라 할 수 있다.

모두의 희망과 기대를 걸었던 호텔 공사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그동안 가려뒀던 문제들이 표면 밖으로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칼이 저지른 짓을 로위가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 역시 더 크고 어두운 법이듯이 이번엔 수습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로위에겐 칼의 문제를 냉정하게 처리할 수 없게 된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누구도 찢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형제애에 여자가 끼어들면서 둘의 관계에도 틈이 생긴다.

게다가 이제껏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 생각해 모든 일에 냉정하고 침착함을 유지했던 로위에게도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는 것이 약점이 되어 로위는 처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실패할까 두려움을 느낀다

위태롭기 그지없는 거짓말과 사고로 위장한 살인사건...

그리고 언제 들킬지 모르는 두 사람의 행각을 지켜보는 내내 아슬아슬하고 긴장감이 넘쳐 어떻게 위기를 넘길지

아니 언제 범행이 발각될지 숨죽여가며 읽느라 밤새는 줄 몰랐을 지경이었다.

엄청난 몰입감으로 700페이지가 넘는 동안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끝장나게 재미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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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부스지마 최후의 사건 스토리콜렉터 97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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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말솜씨로 용의자에게서 자백 진술을 얻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부스지마

당연하지만 그의 범인 검거율은 월등하다.

그럼에도 그와 함께하는 형사팀 중 그를 좋아하거나 우러러보며 따르는 사람은 없다.

따르기는커녕 꼴 보기 싫어하고 심지어는 한대 패고 싶다고 생각을 하는 동료도 있다.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실력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공평하게도 범인이나 증인 혹은 동료 모두에게 깐죽거리며 밉살스러운 말솜씨로 상대방의 혈압을 올리고 상대의 심리를 파악해 빈틈을 파고들어 안정을 무너뜨린다. 범인이다 싶으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그가 자백 진술을 잘하는 이유기도 하고... 그야말로 그에게 걸리면 모조리 녹다운 상태가 된다.

그런 부스지마의 레이더에 수상한 사람이 포착된다.

관내에 연이어 폭발사고가 나고 길가는 여성의 얼굴에 염산을 테러하고 퇴근길의 직장인들에게 묻지마 식 총격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사건의 위험성과 상관없이 대부분 사회 부적응자나 자신감이 결여되고 유아적 사고를 하는... 이른바 루저 같은 사람들이 한 짓임을 부스지마는 단번에 파악하고 용의자를 추려 범인 검거에 앞장서지만 그들을 수사하면서 이들의 뒤에 누군가가 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진정한 범인은 이 들 뒤에 숨어 몇 마디의 말과 위로로 현혹시켜 그들로 하여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한 바로 그 사람... 이른바 교수라는 불리는 사람이란 걸 깨닫는다.

각각의 사건과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단계 그리고 추적해서 체포하고 범인의 입으로 자백하는 과정 모두에 깊이 관여하는 부스지마 형사의 활약이 눈부시다.

특히 일본에서 흔하지 않은 총격 살인 사건이나 폭발물을 이용한 사건에서 모두가 예상한 용의자의 전형 즉 테러 혹은 테러리스트를 용의자에서 과감하게 배제하고 사회에 불만을 가진 부적응자나 자의식만 강한 유아기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등 남과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부스지마가 뛰어난 형사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모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범인들의 뒤에 숨어있는 그림자인 교수의 정체를 찾아 밝혀내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 형사 부스지마 최후의 사건은 시치리 표 소설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뛰어난 가독성에 독특한 캐릭터 그리고 사건에 녹아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는 것까지...

정교하고 복잡한 트릭이나 심오한 심리묘사 같은 정통적인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시치리 식 가벼운 문체와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작품이 될 듯...

그나저나 형사가 적성에 딱인듯한 부스지마가 형사를 때려치우고 작가가 된다니...

작가 부스지마는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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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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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제품이든 그게 뭐든 간에 우선적으로 보이는 겉모습이 많은 걸 좌우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 책이 그랬다.

제목부터 표지에서 느껴지는 게 왠지 나로 하여금 적당히 엉뚱하고 기괴한 유머가 있는 B급 공포영화를 연상케 했고 내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처음 읽어갈 때까지도 내 짐작이 맞구나 하는 가벼운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읽어내려갈수록 웬걸... 이건 어쭙잖은 유머와 공포가 섞인 그런 작품이 아니었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게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고 그래서 내 옆집에 살인마 혹은 이상한 사람이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마음속 깊이 내재한 채 살아간다.

그 많은 공포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웃집 살인마를 보면 이런 내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을 듯...

이 책도 처음에는 조용하다.

아니 조용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운 동네에 이웃집 노인을 방문한 조카가 등장하면서 이상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지만 그 수상한 이웃 남자가 일단 제법 잘 생긴 남자에다 백인이라는 이유로 별 의심을 받지 않는다.

그 남자 제임스가 이상하다는 걸 처음 감지 한 사람이 바로 옆집 여자인 퍼트리샤다.

이들이 사는 동네에서 조금 벗어난 곳 즉 주로 가난한 흑인들이 생활하는 동네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연속적으로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이 벌어지던 시기에 제임스와 차종이 비슷한 차가 그 동네에 드나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상함을 감지하지만 거주지가 분명한데다 매력적인 백인 남성인 제임스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퍼트리샤의 남편은 오히려 늘 일상을 지루하게 여기며 시간이 남아도는 주부들이 모여 살인사건이 나오는 해롭기만 한 책들을 읽는 북클럽에 다니는 아내를 빗대어 과대망상에 빠진 거라고 비난한다.

게다가 제임스는 그런 퍼트리샤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어 어느새 남자들 사이에 주요 멤버가 되었고 북 클럽 멤버들의 집을 자유롭게 방문할 정도로 환대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와 오랜 시간 함께했던 북클럽 멤버마저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 되자 이제는 그녀 스스로 자신이 본 게 진짜일까? 하는 의심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그녀는 정말 현실과 환상을 구분 못하는 과대망상에 빠진 걸까?

내 이웃집에 수상한 사람이 산다는 다소 흔한 소재지만 이 소재를 가지고 작가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인종 간의 차별적 시선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재료를 첨가해서 살인의 장면이 나오거나 하지 않음에도 분위기만으로 호러스럽게 끌고 간다.

어쩌면 퍼트리샤가 느꼈을 공포 즉 내가 분명 본 사실인데도 가장 가까운 남편을 비롯해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 공포와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외로움이 더 피부에 와닿았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이 위험에 처한 게 보이는 데도 어디에도 도움을 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공포...

작가는 이웃집의 그 누군가가 가져오는 두려움보다 이런 데서 오는 공포와 차별이 더 무서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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