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관련된 소재는 일단 읽기 전부터 호감을 갖는다.
대체로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상 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이번엔 또 어떤 맛있는 요리를 맛있게 표현해 줄까 하는 기대감도 갖게 되고...
물론 때로는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누군가를 독살하거나 혹은 그로테스크한 재료로 생각지도 못했던 끔찍한 요리를 선보이는 책도 간간이 있지만 대부분의 음식을 소재로 하는 책은 정감 어린 글로 추억이 있는 음식 혹은 따뜻한 음식 하나로 마음이 전해지는 이야기처럼 힐링 소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도 제목부터 표지 그림에서 풍기는 이미지로 봐서 음식으로 위로받고 힐링 되는 소설일 거라 예상했는데 이런 내 예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대학교 절친 5명이 모여 취업하지 않고 IT 기술을 접목한 의료 스타트업 그랜마를 창업했다.
처음의 고난을 거쳐 이제 회사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반 위에 순항하는 중이지만 어느새 회사의 분위기는 처음과 달리 진지해지고 살벌해져있었다.
이에 CEO인 다나카는 청소와 요리를 맡아 해줄 사람을 구하게 되고 새로 들어온 가사도우미 가케이로 인해 회사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해간다.
일단 사무실로 쓰는 아파트의 환경이 깨끗해져 분위기가 밝아진 건 물론이고 늘 바빠 도시락이나 편의점의 음식으로 한 끼를 때웠던 때와 달리 음식 솜씨도 좋은 가케이가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도 열게 되는 사람들
그중에는 처음 창업할 때와 달리 뚜렷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자신이 이 회사에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딜레마에 빠진 사람도 있었고 겉보기엔 늘 밝아서 아무런 근심이 없어 보이지만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안정적이 된 지금의 회사가 아닌 새로운 곳에서 다시 한번 변화해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직원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 팀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CEO 역시 남모를 비밀이 있었다.
처음 창업할 때의 마음과 달리 어느새 조금씩 변해버린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네 친구들의 고민은 어쩌면 처음처럼 서로 터놓고 대화를 하면서 풀었더라면 지금의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경이 변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변해가는 상황을 모른 척 외면하면서 사무실의 긴장감이 고조될 즈음에 나타난 가케이로 인해 하나둘씩 바뀌기 시작하는 데 이렇게 된 데에는 가케이가 만든 음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만약 이때 가케이와 그녀가 만든 음식이 없었더라면 이 팀의 운명은 여느 팀처럼 회사를 매각해서 서로 돈을 분배하고 각자의 갈 길을 가는 걸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서로 함께 모여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
어쩌면 이 별거 아닌 것 같은 행위가 서로의 마음을 열고 대화로 이끄는 힘이 될 뿐만 아니라 서로가 생각하고 있었던 거를 말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결국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걸 털어놓고 의견을 모으는 가운데 등장인물 속에 끊임없이 이름은 오르내리지만 등장하지 않는 한 친구가 있다.
그는 어쩌면 그랜마를 창업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자 나머지 네 사람의 마음속 지주 같은 절대적인 사람인 것 같은데 그가 왜 분신 같은 회사를 두고 훌쩍 떠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건지 의문이 생길 즈음
행방불명이 된 그의 여동생이 불현듯 회사를 찾아오면서 분위기는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듯한다.
어딘지 비밀스럽고 뭔가 무거운 듯한...
여기에 처음부터 직원들에게 거침없이 다가와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딱딱해진 마음을 녹이고 무장해제시켰던 가케이에게 비밀이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미스터리로 변화한다.
과연 그녀의 비밀은 뭐였을지 그리고 사라진 창업자는 어디서 뭘하고 있는건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음식이야기도 재밌었지만 함께 창업할 정도로 친했던 대학 동창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갈등이 현실적이어서 더 공감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