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느 메디치의 딸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박미경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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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백작과 삼총사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또 다른 작품인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은 그의 특기인 궁중암투와 치열한 권력투쟁이 세심하게 묘사되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구교와 신교가 대립하던 시기의 프랑스

종교의 화합을 위해 가톨릭의 대표인 프랑스의 국왕 샤를르 9세의 동생인 마르그리트 드 발로아와 신교도 즉 위그노의 대표인 나바르의 왕 앙리 드 나바르의 국혼이 결행된다.

마르그리트는 궁내 제일 가는 미녀지만 앙리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이를 알면서도 마르그리트는 결혼을 허락할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당시에는 결혼과는 별개로 연인을 두는 경우가 많았고 무엇보다 두 사람의 결혼으로 서로가 이익을 얻는 게 많았기 때문인데 결혼식이 끝나고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는 이때 결혼 조약을 깨고 가톨릭에서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을 포함, 거리의 위그노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른바 대학살의 밤이었다.

나바르의 왕 앙리 역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갓 결혼한 마르그리트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이 모든 것이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되었던 음모였으며 사건의 뒤에는 아들의 뒤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철의 여인 카트린느 왕후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식인 딸의 미래를 희생하는 것쯤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로 냉혈한이었다.

또한 당연하게도 자신의 딸인 마르그리트가 자신의 편에 설 것이라 예상했지만 마르그르트 역시 마음속에는 깊은 권력에의 의지가 있었고 자신이 결혼한 앙리가 죽으면 자신은 아무런 힘도 권한도 없는 그저 미망인이 될 뿐이란 것 재빠르게 계산한 후 앙리의 편에 베팅을 한 것이다.

그녀의 이런 계산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앙리는 마르그리트와 전략적으로 동지가 되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카트린느 황후는 거칠 것이 없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잔인하고도 치밀하게 음모를 펼치고 덫을 놓아 앙리와 마르그리트 그리고 신교도들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사실 카트린느가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그녀 나름의 사정이란 게 있는데 점술을 상당히 신뢰하는 그녀에게 자신의 핏줄이 아닌 앙리가 새로운 권좌에 앉는다는 예언은 믿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꿔야 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국왕이자 자신의 아들인 샤를르 9세는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을 뿐 아니라 25살을 넘지 못한다는 운명을 가지고 타고났기 때문에 반드시 다음 왕좌 역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앙주가 이어받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들들의 사이는 좋지 못해 남보다 못한 사이... 서로에게 약간의 틈이라도 보여선 안된다.

이렇게 이야기 전반이 왕후가 음모를 꾸미고 이에 위기에 처했다가 자력으로 혹은 조력자의 도움으로 앙리가 위기를 탈출하는 모습이 그려져있는데 중간중간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비롯해 주변국의 정세를 곁들이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물론 이야기 전체가 음모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건 아니고 당연하게도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로맨스는 피어난다.

지금의 로맨스와는 조금 다르지만 삼총사에서 보인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이 여기에서도 보이는데 갓 결혼한 마르그리트를 보고 단숨에 사랑에 빠져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다 생각하는 라 몰 백작의 조건 없는 사랑은 현재의 관점에선 불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것에 어느 정도 관용적인 분위기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삼총사에도 보인 남자들 간의 뜨거운 우정 역시 여기에도 나오는데 라 몰 백작과의 의리로 어떤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코코나 백작의 종교를 넘어선 우정은 당시에 어떤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는지를 알려준다.

읽으면서 드는 의문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은 카트린느 메디치인데 왜 제목이 그녀가 아닌 그녀의 딸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원제 대로인지 문득 궁금해질 만큼 이야기의 주체는 카트린느 메디치와 그녀의 숙적 앙리의 대결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역사적 사실과 매력적인 스토리의 결합으로 아주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탄생한 듯... 뒤마가 왜 당대에 그렇게 인기가 있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게 해준다.

책 속에 나오는 기발한 독약이 진짜 가능한지 문득 궁금해지고 점성술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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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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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떨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가?

실수를 했을 때와 같은 의도치 않았지만 내 행동이 때와 장소에 맞지 않았을 때를 제외하곤 나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인식했을 때 혹은 내 가족이 남들과 달라서 그들로부터 멸시하는 눈초리를 받았을 때 부끄러움을 넘어 모멸감을 느낀다.

이 책 부끄러움의 저자인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만을 어떤 미사여구나 과장 없이 그대로 글로 옮기는 작풍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소설 형식을 따왔지만 엄밀히 말해서는 소설이라 할 수 없고 스스로도 소설이라 칭하지 않는다.

스스로 경험한 일을 약간의 과장이나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기는 일은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자신을 비롯해 글 속에 등장하는 가족 모두는 사람들 앞에서 숨길 수 없이 발가벗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것도 상대방은 옷을 입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일생 중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인 12살 때의 그날의 일은 이제껏 나온 책 속에는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아빠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며 자신이 겪은 일들을 마치 고해성사하듯 쓴 글에서조차...

그만큼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지만 그래서 더욱 그날의 일을 쉽게 끄집어 낼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버지가 엄마를 죽이려고 시도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부끄러움은 그게 실화이자 그녀가 12살 어린 나이에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이 그대로 전달된다. 잘 벼린 낫으로 엄마의 목을 겨눈 그날의 아빠는 자신이 잘 알던 평소의 아빠가 아니었고 평범한 가족이라 생각했던 그녀의 일상이 무너진 그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깊이 각인되었으며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계기가 된다.

식당과 식품점을 겸한 곳에서 생활하는 자신을 그때까지 별다르게 인식하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이 다니는 사립학교 학생들과 자신의 처지의 극명한 차이를 깨닫게 되면서 부끄러움을 처음 느끼게 된다.

사람들과 욕을 하면서 싸우고 늘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처지라 잠옷 같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남들에게 속살을 보이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는 엄마의 상스러움은 분명 그녀의 학교 학생들의 부모에게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그제서야 서서히 눈에 들어오고 자신의 위치를 극명하게 깨달으면서 같이 공부하지만 그들과 자신의 처지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자각한다.

이윽고 그런 자각은 그녀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안겼고 그전까지는 자신 역시 그들과 같은 사립학교 학생으로서 다른 사람과 사물을 바라봤다면 그 차이를 인식하고서부터는 그렇게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 마을 사람들과 자신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없게 되었음을 불현듯 벼락처럼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도 그때의 부끄러움은 사리지지 않고 더욱 큰 자리를 차지해 스스로를 가두는 역할을 한 게 아닐지...

솔직히 평범하고 행복했던 소녀가 처음 자신이 사는 환경의 위치를 깨닫고 친구들과의 부와 신분의 차이를 문득 느끼는 대목에선 그녀가 느꼈을 그 곤혹과 외로움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그게 지극히 현실적이라 슬프기도 했다.

처음 읽어본 작가의 글은 솔직하고 담백해서 그녀가 느꼈을 충격과 부끄러움이 더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미화를 하거나 우회적인 표현을 써도 될 것을 꾸밈없이 쓴 글은 분명 작가 자신이나 그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에게도 대미지가 컸을 것 같은데 돌아가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하는 작가의 우직함이랄지 고집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작가의 다른 책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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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은, 여름
안 베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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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애 마지막이 될 라일락을 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자는 불치병인 루게릭 환자이며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만큼 자신의 자유를 사랑했고 또 그랬던 만큼 자신의 삶 역시 사랑했다.

정원에 핀 라일락을 보면서 자신의 상황과 상관없이 꽃은 피고 질 것이며 올해에도 그리고 그 꽃을 바라봐 줄 자신이 없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라일락은 필 것이란 걸 깨달으며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는 감정을 절제해서 더 가슴에 와닿는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자신의 상태에 매일매일 절망하면서도 하루라도 더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삶과 자유를 사랑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가 아닌 벨기에로 가서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수많은 청원과 기자들과의 회견이 있었고 그런 그녀의 죽음 이후 나온 이 책은 당연하게도 많은 반향을 일으켜 그녀의 사후 존엄사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가 되는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존엄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얼마 전 스위스로 가서 스스로 삶을 중단한 사람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제는 우리도 존엄사,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봐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치료에 의미가 없고 치료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라면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하도록 강요할 수 없고 또 그 고통받는 모습을 그냥 지켜봐야만 하는 환자 가족을 위해서라도 원하는 사람에겐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기에 저자가 스스로 인간답게 살고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하고자 한 결심에 동의한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까지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한다면... 그리고 그런 자신의 치욕을 감당해도 더 이상 나을 가망은 없고 그저 손놓고 죽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지가 살아있을 때 원하는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조금씩 주변 사람들과 안녕을 준비하는 그녀의 담담한 모습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장례식에서 훌쩍이거나 작게 속삭이며 엄숙하게 애도하는 걸 바라지 않았던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여행을 통해 이별을 준비했고 그곳에서도 슬프지만 유쾌한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런 그녀의 바람을 친구들과 가족 역시 말없이 동참해 그녀의 작은 파티에 우울함과 비탄은 보이지 않고 그저 추억과 지금 현재를 즐기려고 하는 성숙된 모습만 보일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을 힘들여 해내고 기분 좋아하는 모습도 어제는 할 수 있었던걸 오늘은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느꼈던 절망감과 체념도 그리고 문득문득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과 나눌 수 없는 절대 고독의 심정도 자극적이지 않고 덤덤하고 간결한 필체로 그때의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어 그녀가 느꼈을 그 기쁨 그 슬픔 그 외로움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아가면서 언젠가가 되었던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순간이 온다면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가 생각하면 나 역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한 상태로 죽고 싶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연명장치에 의해 생명이 유지되고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녀의 선택에 찬성하게 된다.

인간답게 죽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고 묵직하게 와닿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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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박각시
줄리 에스테브 지음, 이해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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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거리를 짙은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채 높은 하이힐을 신고 밤 사냥에 나서는 롤라

그녀는 거리의 포식자다.

여자들은 그녀의 모습을 경계하고 남자들은 힐끔거리며 그녀를 보고 욕망한다.

이렇게 거리의 여자처럼 하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롤라는 평소엔 평범한 모습을 한 직장인이지만 퇴근 후 밤이면 새로 태어난 것처럼 화장과 야한 옷차림으로 무장을 한 채 그녀의 손에 들어올 사냥감을 찾아 나선다.

장소도 상관없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도 않은 채 원하는 걸 취하고 나면 그녀는 그녀의 사냥감들에게서 손톱을 잘라 기념으로 가져와 작은 병에 모으고 그걸 보면서 안도하고 불안감을 잠재운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가질 수 있고 남자들로 하여금 욕망에 떨릴 수 있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롤라는 왜 이런 생활을 하는 건지 그녀의 거친 삶이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녀는 돈을 원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니라 그녀의 내면 깊숙이 숨겨져있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남자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녀에게는 스무 살 어릴 적 깊이 사랑했던 연인이 떠나가는 헤어짐의 고통을 맛봐야 했고 그보다 더 어릴 적 자신에게 깊은 사랑을 주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트라우마로 남아있었기에 누구든 깊이 마음을 주고 사랑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누구도 상처를 주는 것을 거절하는 방법으로 일회성의 만남을 하고 자신이 먼저 상대방을 유혹해 원하는 걸 취하고 나면 거침없이 떠나버림으로써 누군가에게 버려질 수도 있는 걸 방지한다.

이제껏 그녀에게 먼저 다가온 유일한 남자인 너에게 버림받았던 기억은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흉터가 되어 더 이상 누군가의 접근은 용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먼저 접근해 유혹을 해 온 남자가 생기면서 사랑에 절대적 강자로 군림했던 롤라는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사랑에 빠진 여느 여자들의 모습처럼 변해간다.

이 사람이 또 떠나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은 집착과 광기의 행태로 상태를 구속하고 그녀의 그런 과도한 집착이 상대로 하여금 진저리를 치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어찌할 수 없는 그녀는 사랑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와도 같았고 그런 천진함에 매혹당했던 남자 도브는 점점 여느 여자들의 모습과 닮아져가는 그녀에게 시들해진다.

어쩌면 롤라는 사랑의 속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처음의 뜨거운 열정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곧 일상이 되어 처음의 반짝거림도 두근거림도 사라져버리면 누군가는 편안함과 익숙함에 안주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두근거림을 찾아다닌다.

이제껏 롤라가 거리의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익숙함이 스며들 기회를 주지 않았고 스스로 선택한 사람만을 취했기 때문이 아닐까

롤라는 사랑에 목말라하면서도 사랑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처 받은 영혼이었고 그런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지극히 그녀다웠다.

마치 한편의 예술영화를 본듯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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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에 사는 여인
밀레나 아구스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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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에 목말라하던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가씨 때부터 남자들의 구애에 목말라했던 그녀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하지 않은 채 나이 들어가는 그녀를 구해 준 건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홀아비였고 그가 바로 자신의 할아버지였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작품이었더.

우선은 우리에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작품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성애의 장면들이 상당히 노골적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장면이 야하거나 천박하다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당히 뛰어난 미모를 가졌으며 손으로 하는 갖가지 재주에 뛰어났던 할머니가 그 당시 많은 여자들이 그러하듯 남자들로부터 구애를 받지 못한 이유는 나중에 등장하는 데 그녀가 자신의 구혼자들에게 연애편지를 썼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모두의 지탄을 받다 못해 가족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당시에는 그녀처럼 자신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애를 하고 싶다 밝히는 여자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런 행위를 부끄럽게 여겼던 것인데 단지 그녀는 남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알고 싶고 해보고 싶은 마음이 뜨거운 여자였다는 게 비극의 시작이었던 것

이렇게 모두의 외면을 받던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녀를 구출한 건 역시 곤란한 처지에 있던 할아버지의 등장이었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전쟁으로 많은 것들을 눈으로 보고 경험을 해서 더 이상 기대치가 없었기에 그녀를 받아들였을 뿐 그녀를 사랑하거나 그녀에게 구애한 게 아니었고 그녀는 사랑한다는 감정을 절실히 알고 싶은 마음이 뜨거운 여자인데 남편은 이를 충족시킬 마음도 의지도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선 아이조차 태어나지 못하고 그녀의 오랜 지병인 신장결석이 악화되어 온천으로 요양을 간 날 그녀의 눈에 들어온 한 남자가 있었는데 이는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된다.

그는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재향군인이었는데 그녀를 단숨에 매료시켰을 뿐 아니라 사랑에 빠지게 할 만큼 매력적인 남자였으나 불행히도 그에겐 이미 아내와 딸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막장 드라마의 소재 같지만 소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미 결혼을 한 남녀가 낯선 곳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아닌 손녀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이야기에서 빈 곳을 메우다 보면 처음의 이야기와 상당히 다른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할머니의 유일한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손녀

그녀에게 할머니란 존재는 자신을 키워줬을 뿐 아니라 부모보다 더 친근하고 사랑하는 존재였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할머니는 엉뚱하고 현실 파악을 잘 못할 뿐 아니라 가끔은 스스로를 자학하는 정신이 아픈 병자라는 것인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손녀의 판단도 그리고 사람들의 판단도 이해가 된다.

손녀의 눈에 비치는 할머니는 남편으로부터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이룰 수 없어 괴로워하다 끝내 다른 곳에서 사랑을 찾은 외로운 여인이자 가슴이 뜨거운 여인이지만 타인의 눈에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는 정신이 이상한 여자로 보일뿐 만 아니라 자학행위를 통해 사람들의 그런 심증에 확신을 더해주는 행동을 하는 몹시도 혼란스러운 여인임이 분명하기에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을 틀리다 말하기도 힘들다.

평범한 그 사람들의 눈에는 그녀는 마치 달나라에 사는 여인처럼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열정을 말할 수 없었던 시대에 살기엔 그녀의 할머니는 너무 뜨거운 열정을 가졌다는 게 비극이었고 완고하고 고지식해 보이는 삶을 살면서 자식에게도 그런 삶을 강요했던 외할머니의 삶에서도 한때는 뜨겁고 찬란한 사랑이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묵묵히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았던 외할머니의 삶도 조금은 납득이 되었다.

모든 것이 수동적인 여인의 삶을 살기엔 너무나 뜨거웠던... 시대를 잘 못 태어났던 여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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