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에 사는 여인
밀레나 아구스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에 목말라하던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가씨 때부터 남자들의 구애에 목말라했던 그녀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하지 않은 채 나이 들어가는 그녀를 구해 준 건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홀아비였고 그가 바로 자신의 할아버지였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작품이었더.

우선은 우리에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작품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성애의 장면들이 상당히 노골적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장면이 야하거나 천박하다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당히 뛰어난 미모를 가졌으며 손으로 하는 갖가지 재주에 뛰어났던 할머니가 그 당시 많은 여자들이 그러하듯 남자들로부터 구애를 받지 못한 이유는 나중에 등장하는 데 그녀가 자신의 구혼자들에게 연애편지를 썼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모두의 지탄을 받다 못해 가족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당시에는 그녀처럼 자신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애를 하고 싶다 밝히는 여자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런 행위를 부끄럽게 여겼던 것인데 단지 그녀는 남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알고 싶고 해보고 싶은 마음이 뜨거운 여자였다는 게 비극의 시작이었던 것

이렇게 모두의 외면을 받던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녀를 구출한 건 역시 곤란한 처지에 있던 할아버지의 등장이었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전쟁으로 많은 것들을 눈으로 보고 경험을 해서 더 이상 기대치가 없었기에 그녀를 받아들였을 뿐 그녀를 사랑하거나 그녀에게 구애한 게 아니었고 그녀는 사랑한다는 감정을 절실히 알고 싶은 마음이 뜨거운 여자인데 남편은 이를 충족시킬 마음도 의지도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선 아이조차 태어나지 못하고 그녀의 오랜 지병인 신장결석이 악화되어 온천으로 요양을 간 날 그녀의 눈에 들어온 한 남자가 있었는데 이는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된다.

그는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재향군인이었는데 그녀를 단숨에 매료시켰을 뿐 아니라 사랑에 빠지게 할 만큼 매력적인 남자였으나 불행히도 그에겐 이미 아내와 딸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막장 드라마의 소재 같지만 소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미 결혼을 한 남녀가 낯선 곳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아닌 손녀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이야기에서 빈 곳을 메우다 보면 처음의 이야기와 상당히 다른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할머니의 유일한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손녀

그녀에게 할머니란 존재는 자신을 키워줬을 뿐 아니라 부모보다 더 친근하고 사랑하는 존재였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할머니는 엉뚱하고 현실 파악을 잘 못할 뿐 아니라 가끔은 스스로를 자학하는 정신이 아픈 병자라는 것인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손녀의 판단도 그리고 사람들의 판단도 이해가 된다.

손녀의 눈에 비치는 할머니는 남편으로부터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이룰 수 없어 괴로워하다 끝내 다른 곳에서 사랑을 찾은 외로운 여인이자 가슴이 뜨거운 여인이지만 타인의 눈에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는 정신이 이상한 여자로 보일뿐 만 아니라 자학행위를 통해 사람들의 그런 심증에 확신을 더해주는 행동을 하는 몹시도 혼란스러운 여인임이 분명하기에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을 틀리다 말하기도 힘들다.

평범한 그 사람들의 눈에는 그녀는 마치 달나라에 사는 여인처럼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열정을 말할 수 없었던 시대에 살기엔 그녀의 할머니는 너무 뜨거운 열정을 가졌다는 게 비극이었고 완고하고 고지식해 보이는 삶을 살면서 자식에게도 그런 삶을 강요했던 외할머니의 삶에서도 한때는 뜨겁고 찬란한 사랑이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묵묵히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았던 외할머니의 삶도 조금은 납득이 되었다.

모든 것이 수동적인 여인의 삶을 살기엔 너무나 뜨거웠던... 시대를 잘 못 태어났던 여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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