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물살 생일을 맞은 그녀에게 오늘은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
사귀던 남자와는 사소한 말다툼으로 말도 하지 않는 상태고 자신의 알바를 대신해준다 약속했던 친구는 아파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결국 자신의 생일날 처량하게도 일을 하게 된 그녀
날씨까지 치적 치적 비가 오는 바람에 더더욱 우울하기만 하다.
이렇게만 끝났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날의 생일을 다른 이에게 말할 것도 없었겠지만 그녀는 여기에다 더더욱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 당신에게 꼭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무슨 소원을 빌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이뻐지고 싶다거나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다소 뻔한 소원을 말하리라.
그런데 그녀는 조금 달랐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식당의 주인을 그날 만나게 된 것만도 특별한데 그녀에게 그가 이런 이상한 제안을 해온 것이다.
원하는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겠다는...
마치 스무 번째 생일이라는 특별함을 축하라도 해주듯이 요정처럼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겠다니... 꼭 서프라이즈 선물 같기도 하다.
게다가 그녀가 그런 선물을 받기 위해서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생일날 남자친구도 없이 축하해주는 사람도 없이 그냥 일하면서 보내는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마치 그날 밤 환상적인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묘한 분위기로 이끌어가고 있는 하루키
그래서 독자들도 그날이 특별한 날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소원을 빌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그녀는 뭘 소원으로 빌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하지만 역시 작가는 평범하게 그 소원을 들려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 소원이 이뤄졌는지 아닌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묘한 분위기로 마치 뭔가 원하는 걸 들어줄 것 같은 그 사장은 진짜로 남의 소원을 들어줄 능력이 되는 사람인 건지 아니면 생일날 일하는 그녀를 재밌는 방식으로 위로해준 건지...
강렬한 일러스트와 글 속에서 묻어나는 갓 성인이 된 그녀의 어딘지 뚱한 느낌, 특별할 것 없는 일을 특별한 듯이 그려낸 하루키의 글이 잘 어울려 약간 판타지 같은 느낌도 나서 괜찮았다.
이런 생일을 보낸다면 오래 기억에 남을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뷔작인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빼어난 작품 단 한 권으로 깊이 각인되게 한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간이 나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어딘지 우아한 듯 수려한 필체로 중년의 남자가 홀로 서기하는 일상을 그리고 있는데 사건사고가 있거나 뭔가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읽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이혼으로 인해 원하지 않던 홀로서기를 하게 된 이 남자 오카다 다다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흔한 이혼남의 모습을 하지 않고 왠지 생활감이 묻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은 그를 우아하다고 평한다.
편리한 시설이 완비된 아파트 같은 건 마다하고 공원이 낀 오래된 주택을 세 얻고는 잘 아는 건축가에게 부탁해 집을 편리하게 리모델링 하며 느긋하게 솔로생활을 하는 것부터 일반적이지 않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도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나름의 고집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런 점들이 매사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소비하는 전처와 맞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늘 계획한 대로 밀고 나가고 모든 일에 거침이 없었던 전처와의 생활에 익숙했던 다다시는 홀로되면서 모든 일에 서툴고 속도도 느리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솔로 생활에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요즘 말로 아날로그형 인간에 가까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직장 경력이 오래되어 풍족하진 않아도 여유롭게 생활할 정도의 자금력이 있는 것과는 별도로 자신이 사는 곳의 안락함과 적당한 문화생활을 즐기기를 원할뿐 별다른 물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느긋하게 솔로생활을 즐기는 게 가능했던 것인데 이런 여유로움도 잠시, 우연히 들른 곳에서 얼마 전 헤어진 불륜 상대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스가와라 가나와 조우하면서 달라진다.
그녀와의 첫 만남부터 두근거림을 느꼈고 만나는 동안 자신과 너무나 달랐던 아내와의 성향과 달리 자신과 무척이나 비슷한  취향과 성향의 그녀와는 이별조차 자신이 원하던 바가 아닌 오랜 기다림에 지친 그녀가 떠나간 것이어서 어느 정도 미련이 남아있던 상태였기에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이 계속 이어지길 은밀하게 바라지만 그녀는 그런 기미조차 없이 그저 반가운 친구처럼 대할 뿐이었다.
이 남자는 이런 때조차 적극적으로 대시하거나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주변에서 원할 때 도움을 줄 뿐...
모든 것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이렇게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관조적인 성향이 강한 이 남자를 주변에서는 우아하다고 평가한다.
스스로도 생각보다 솔로생활이 즐겁기만 한 남자는 옛 연인과 다시 예전의 연애 감정을 되살리면서 하루하루 여유롭게 보내던 생활이 생각보다 만족스러워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셋이서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그녀에게 같이 살기를 권유하지만 그녀는 선뜻 승낙하지 않는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아픈 아버지를 간호하며 사는 거보다 자신과 함께하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남자는 의아해진다.
왜 승낙하지 않는 걸까? 그녀는 자신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할 즈음 그녀의 홀로된 아버지와 뜻하지 않은 동거를 하게 되는 상황이 닥치게 되고 타인과 공간을 함께한다는 게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떨어져서 가끔 만날 때보다 애틋한 마음이 줄어든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그녀와의 생활이 생각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이미 이 모든 일을 예견했던 걸까?
그때야 비로소 그녀와 함께한다는 건 이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남자는 불혹이 훨씬 넘은 나이에서야 타인과 생활하는 것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우아한 생활을 버리고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함께할 수 있기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누명을 쓰고 세상으로부터 쫓기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아오야기
평범한 택배원으로 일하다 몇 개월 전부터 이상한 일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회사에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그만두고 실직자의 길을 걸어오던 평범한 미혼 남자였던 그에게 어느 날 오랜만에 대학 친구가 연락을 해온다.
가장 빛나던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 모리타는 그에게 이상한 말을 하면서 그에게 어서 도망치라 종용한다. 그가 총리 암살의 누명을 쓸 거라는 그의 말은 진실이라 믿기엔 너무 터무니없었지만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한 듯 총리의 퍼레이드 차량이 폭발하고 일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마치 그의 목에 방울이라도 걸려있는 것처럼 그의 행적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뒤를 쫓는 경찰과 특별 수사팀들은 주위에 보는 사람이 적다면 총도 거침없이 발사할 뿐 아니라 그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의 피해쯤은 예사로 여기는 무서운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으로 인해 친구들이 피해를 보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는 아오야기지만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처지에 처하게 된 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쫓기는 와중에도 분명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한다.
처음 이 책을 읽은 게 2008년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그 당시 읽으면서도 참 재미있게 풀어냈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퍼레이드 중 한나라의 수장이 암살된 것이라든가 당시 소속된 당에서 돌풍처럼 나타나 단숨에 선거에 승리한 모습, 거기다 젊은 피라는 것까지 많은 것에서 케네디 암살을 생각나게 하지만 이사카 코타로는 음모론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것보다 거대 집단에 대응하는 소시민의 모습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어 더 아기자기하달까...
미혼에다 제법 잘생긴 얼굴의 아오야기는 몇 년 전 아이돌 가수를 강도로부터 구해내 화제가 되고 전국적으로 제법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라 그들이 생각하기에 표적으로 삼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의 사진도 쉽게 구할 수 있어 조작이 가능하고 거기다 생각보다 어리숙하고 순진해서 접근해오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 없이 남을 쉽게 믿고 받아들이는... 좋게 말하면 착하고 나쁘게 말하면 속여먹기 딱 좋은 타입이랄까
어쨌든 이 아오야기를 우리나라 대표 미남 배우 강동원이 맡아 영화를 개봉한다고 해서 다시 한번 읽었는데 확실히 가독성도 좋고 작가 특유의 유쾌함과 엉뚱한 유머가 잘 돋보이는 작품인 것 같다.
어리숙하게만 보이던 아오야기지만 주변에서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많고 적극적으로 그를 도와주는 사람을 보면 비록 가진 건 없어도 그가 살아온 삶이 제대로 된 삶이었던걸 알 수 있다.
친구로부터 시작해 전 연인이었던 히구치,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까지 모두가 그의 도망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 정보를 왜곡하고 비틀어도 반드시 그 비틀림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타나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사방에서 감시하고 도청하며 포위해오는 거대 권력의 음모로부터 탈출해가는 아오야기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책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비틀스의 골든슬럼버의 멜로디도 생각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
고다마 지음, 신현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상당히 원색적인 느낌을 주는 제목의 이 책을 보면서 왜 하필 이런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제목으로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마치 성을 주제로 코믹하게 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책은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과의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는 단절된 삶을 살았던 여자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탄하지 않았던 부모의 삶을 보면서 자란 여자는 자신이 자란 곳의 폐쇄된 환경이 너무나 싫었고 자신에게 늘 윽박지르듯 화를 내고 무시하는 엄마에게 기죽어 살아서인지 자신의 목소릴 내기엔 너무 소심한 성격으로 자랐다.
그래서 대학 입학을 계기로 고향을 떠나온 게 너무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남과 어울리기 힘든 자신에게 친밀하게 다가온 남자 선배와 같은 곳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었다.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그 선배에게 마음이 끌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자신에게 만나자고 하는 말이 사귀자는 뜻인 줄도 몰랐을 정도로 그녀는 세상 물정이라고는 몰랐었고 사람과의 관계에 서툴고 미숙한 타입이었다.
십 대 때에도 누군가와 사귀기는 했지만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상대방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그냥 사귀는 것처럼 된 것과 달리 선배와의 만남은 그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 만큼 그녀에게 그는 첫사랑이나 다름없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의 것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녀가 이런 성격이 된 데에는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늘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변덕이 심한 엄마에게 기죽어 자란 탓도 컸다.
거기다 부모의 늘 위태롭고 불안불안한 부부관계를 보면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게 그녀가 남편과의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도 하나 없는 그녀는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남편의 외도에도 침묵하게 되지만 답답한 속마음을 온라인상에 털어놓다 만나게 된 생판 모르는 남자와는 관계가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무너지듯 일탈하기 시작한다.
늘 자신의 탓을 하던 엄마의 영향으로 모든 잘못된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그녀의 태도는 결국 스스로 그렇게 원하던 교사로서의 긍지도 잃게 되고 한순간 모든 것을 놔버리는 절망의 끝에 선다.
부부관계도 할 수 없는 이런 이상한 상태인데도 이상하게 남편은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원하던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 온몸이 뒤틀리는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음에도 그녀의 곁에 머무르는 남편은 어쩌면 나름 대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가장 가깝고 친밀한 사람과의 관계가 불가능한 그녀를 연민하는 건지...
어쨌든 모든 힘든 과정을 거치고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된 그녀는 그렇게 불같던 성정의 친정엄마조차 부드럽게 변한 걸 보면서 조금씩 편안해져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녀를 보면서 어쩌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조차 자신의 속마음과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소통의 단절, 관계의 단절은 지금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은 사람이 사랑했던 연인을 잊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다시 돌아온다면...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달의 영휴
얼핏 소재만 봐서는 영원한 사랑 혹은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로맨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나이차가 얼마 되지 않을 때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추려면 두 연인의 죽음이 비슷한 시기에 이뤄져 둘 다 다시 만날 소원을 간직한 채 비슷한 시기에 다시 환생을 하고 전생의 기억을 간직하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렇게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전생의 인연이 이 생에서 다시 이어지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조건을 잊어버린 채 그저 단순히 전생의 연인을 잊지 못한 한 사람이 다시 태어나 그 사람을 찾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달의 영휴는 그래서 로맨스보다 판타지에 가깝고 어찌 생각하면 슬쩍 무섭기도 한 내용이다.
몇 번을 죽어서도 다시 그 연인을 찾아가는 여자 루리를 보면서 왜 난 지고지순한 사랑을 느끼는 게 아닌 고집과 집착 그리고 독선을 느끼게 된 걸까?
일단 그녀 루리와 오래전 연인이 된 미스미의 처음 만남은 아름다운 우연으로 시작되었고 첫눈에 서로에게 끌려 사랑을 나누게 되는 과정은 풋풋하기 그지없지만 루리가 미스미보다 연상인 건 둘째치고 이미 결혼한 기혼자라는 게 첫 번째 그들의 불운이었다.
게다가 미스미의 경우는 루리가 첫사랑이자 첫 여자이고 한창 좋아서 그녀의 조건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빠져있을 때 느닷없이 그녀의 죽음으로 사랑이 끝을 보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오랜 세월 그녀를 잊지 못하고 마음속 깊이 그녀를 간직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루리는 왜 그렇게 미스미를 못 잊고 몇 번을 다시 태어나 그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지 솔직히 그녀의 절실한 마음이 확 와닿지 않았다.
일단 그녀의 죽음 역시 사고사인 것 같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자살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의 죽음은 왠지 그녀 스스로 선택했다는 의심이 든다.마치 다시 태어날 걸 염두에 둔...
하지만 미스미는 자신이 다시 그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것만 생각했지 그동안 세월이 흘러 미스미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게 두 연인의 두 번째 불운이다.
루리 자신은 다시 태어나 스스로 전생을 기억하지만 그녀가 다시 태어난 걸 모르는 미스미는 나이를 먹고 그 나이대의 사람이 하는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걸 전혀 예상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그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만 가지고 막무가내의 선택을 하는 루리
남들이 볼 땐 아직 어린 소녀와 중년의 남자라는 겉모습 따윈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루리는 자신의 심정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변을 괴롭힐 뿐 아니라 자신과 같이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루리로 인해 가장 큰 데미지를 입은 사람이 바로 마사키라는 인물이다.
그는 다시 태어난 루리를 유일하게 알아보지만 아무도 그녀가 전생의 죽은 아내였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어린 소녀에게 수상한 눈길을 보내는 변태 성욕자로 오인받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데 다시 태어난 연인이 아무리 전생에 열렬한 사랑을 했고 그 마음이 변치 않았다 해도 지금 현재 두 사람의 겉모습이 나이차가 많다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심각한 범죄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아름다운 사랑, 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사랑을 느끼기 보다 오히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 사람이 당연히 기다려줄 거라 믿고 그 사람에게 달려가는 루리의 맹목적인 사랑이 살짝 무섭게 느껴졌다.
그렇게 몇 번을 다시 태어나 그를 만나고 싶었다면 왜 현실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어 그녀의 절실함에 공감하지 못했달까
그녀의 선택으로 몇 번이나 환생해서 그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 열망은 주변 사람의 이해는커녕 오히려 그녀 곁의 사람을 불행을 빠뜨리게 하는 걸 보면 루리의 맹목적인 방법은 좀 이기적인 게 아닐까?
뭐... 이렇게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는 나 자신이 너무 속물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독성도 좋고 소재도 독창적이어서 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는지는 알겠지만 영원한 사랑 지고지순한 사랑에 목말라하는 지극히 일본적인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