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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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이 사랑했던 연인을 잊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다시 돌아온다면...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달의 영휴
얼핏 소재만 봐서는 영원한 사랑 혹은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로맨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나이차가 얼마 되지 않을 때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추려면 두 연인의 죽음이 비슷한 시기에 이뤄져 둘 다 다시 만날 소원을 간직한 채 비슷한 시기에 다시 환생을 하고 전생의 기억을 간직하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렇게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전생의 인연이 이 생에서 다시 이어지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조건을 잊어버린 채 그저 단순히 전생의 연인을 잊지 못한 한 사람이 다시 태어나 그 사람을 찾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달의 영휴는 그래서 로맨스보다 판타지에 가깝고 어찌 생각하면 슬쩍 무섭기도 한 내용이다.
몇 번을 죽어서도 다시 그 연인을 찾아가는 여자 루리를 보면서 왜 난 지고지순한 사랑을 느끼는 게 아닌 고집과 집착 그리고 독선을 느끼게 된 걸까?
일단 그녀 루리와 오래전 연인이 된 미스미의 처음 만남은 아름다운 우연으로 시작되었고 첫눈에 서로에게 끌려 사랑을 나누게 되는 과정은 풋풋하기 그지없지만 루리가 미스미보다 연상인 건 둘째치고 이미 결혼한 기혼자라는 게 첫 번째 그들의 불운이었다.
게다가 미스미의 경우는 루리가 첫사랑이자 첫 여자이고 한창 좋아서 그녀의 조건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빠져있을 때 느닷없이 그녀의 죽음으로 사랑이 끝을 보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오랜 세월 그녀를 잊지 못하고 마음속 깊이 그녀를 간직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루리는 왜 그렇게 미스미를 못 잊고 몇 번을 다시 태어나 그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지 솔직히 그녀의 절실한 마음이 확 와닿지 않았다.
일단 그녀의 죽음 역시 사고사인 것 같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자살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의 죽음은 왠지 그녀 스스로 선택했다는 의심이 든다.마치 다시 태어날 걸 염두에 둔...
하지만 미스미는 자신이 다시 그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것만 생각했지 그동안 세월이 흘러 미스미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게 두 연인의 두 번째 불운이다.
루리 자신은 다시 태어나 스스로 전생을 기억하지만 그녀가 다시 태어난 걸 모르는 미스미는 나이를 먹고 그 나이대의 사람이 하는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걸 전혀 예상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그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만 가지고 막무가내의 선택을 하는 루리
남들이 볼 땐 아직 어린 소녀와 중년의 남자라는 겉모습 따윈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루리는 자신의 심정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변을 괴롭힐 뿐 아니라 자신과 같이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루리로 인해 가장 큰 데미지를 입은 사람이 바로 마사키라는 인물이다.
그는 다시 태어난 루리를 유일하게 알아보지만 아무도 그녀가 전생의 죽은 아내였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어린 소녀에게 수상한 눈길을 보내는 변태 성욕자로 오인받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데 다시 태어난 연인이 아무리 전생에 열렬한 사랑을 했고 그 마음이 변치 않았다 해도 지금 현재 두 사람의 겉모습이 나이차가 많다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심각한 범죄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아름다운 사랑, 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사랑을 느끼기 보다 오히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 사람이 당연히 기다려줄 거라 믿고 그 사람에게 달려가는 루리의 맹목적인 사랑이 살짝 무섭게 느껴졌다.
그렇게 몇 번을 다시 태어나 그를 만나고 싶었다면 왜 현실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어 그녀의 절실함에 공감하지 못했달까
그녀의 선택으로 몇 번이나 환생해서 그의 곁으로 가고자 하는 열망은 주변 사람의 이해는커녕 오히려 그녀 곁의 사람을 불행을 빠뜨리게 하는 걸 보면 루리의 맹목적인 방법은 좀 이기적인 게 아닐까?
뭐... 이렇게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는 나 자신이 너무 속물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독성도 좋고 소재도 독창적이어서 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는지는 알겠지만 영원한 사랑 지고지순한 사랑에 목말라하는 지극히 일본적인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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