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9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젯밤 발카르카의 비에 젖은 거리를 걸으며 비로소 나는 내 가족 중 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실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권 p.11)


'현존하는 최고의 카탈루냐 작가, 자우메 카브레'(Jaume Cabré 1947~)가 2011년 발표한 <나는 고백한다>(Jo Confesso)의 첫 문장은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시작한다. 

비 내리는 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가는 길에 삶의 중요한 무언가를 깨닫는 62세의 아드리아 아르데볼.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그는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 소설은 평생을 사랑한 한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자신의 내밀한 고백이다. 


골동품 상점을 운영하며 물건을 사고 파는 일에만 집중하는 아버지와 말이 없는 차가운 어머니 밑에서 외로운 유년을 보내던 아드리아는 아버지의 금고 속에 있는 바이올린 '비알'에 관심을 가진다.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후, 열세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대학자가 되어 학문적으로 명성을 얻지만 사랑하는 연인 사라와의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삶의 행복과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던 중 바이올린 '비알'에 얽힌 역사와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아드리아는 아버지가 병적으로 집착한 수집욕이 과거의 끔찍한 범죄와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비알'에 얽힌 역사를 추적해 나간다. 이 소설은 바로 이 '비알'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과 그에 얽힌 여러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600년이라는 시간을 넘나들며 인간에 의해 자행된 '악'을 여러 형태로 보여주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중세 스페인의 종교 재판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다. 14세기의 기독교만이 절대 진리라는 믿음이 20세기에는 아리아인만이 위대한 인종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나타났듯이 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속 나타남을 작가는 보여준다. '악'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중세 종교 재판이나 나치의 잔악무도한 범죄처럼 인간들의 실질적인 행위 속에서 발현되었고,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평범한 인간들의 일상 속에도 악은 도사리고 있음을 소설은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14세기 종교의 얼굴로 나타난 악이 20세기 인종주의의 얼굴로 나타났듯이 악은 그 모습을 조금씩 바꾸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소설 속 드라고 그라드니크 수사는 캐속을 벗어버리고 소총을 들고 직접 악과 싸우기로 결심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런 악의 속성, 악은 바로 '인간에 의존'한다는 악의 본질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드리아는 축적된 악의 역사가 자신의 삶을 흔들고 있음을 느끼고 '악이란 무엇인가' 고민한다. 


[악이 머무는 곳을 찾고 싶었으며,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까? 악이란 왜곡된 인간 의지의 결과물일까? (...) 악이란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신이 존재한다면 악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 앞에서 냉담한 그의 태도는 논란이 될 만하다. 신학자들은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더욱 아름다운 말로 치장할수록 본질적으로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3권 p.327)]


아드리아의 고민처럼 악이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다. 악은 다양한 인간의 여러 행동들을 통해서 드러나고 인간은 이런 악으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600년전의 악이 20세기의 아드리아의 삶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악은 쌓이고 쌓여서 어떻게든 그 모습을 드러낸다. 


[최초의 모래 알갱이는 눈을 간지럽힌다. 그리고 손의 가시가 되더니 뱃속에서 불덩이로 변하고, 호주머니에서 걸리적 거리기까지 하다가 좀 더 나쁜 운과 만나 양심의 가책에 무게를 더한다. 모든 것, 그러니까 모든 삶과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라, 이처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해한 모래 알갱이로부터 시작되는 거였어. (2권 p.123)]



묵직한 주제와 독특한 서사 기법이 인상적인 <나는 고백한다>는 작가가 소설 속에서 아드리아의 입을 빌려 말하듯이 '살아있는 경험의 진실'(2권 p.343)로 쓴 훌륭한 문학이다. '악'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관념적, 학술적으로 풀어낸 것이 아닌 문학이라는 예술적 상상을 동원해 구체적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예술적 아름다움을 맛보고 난 후의 삶은 예전과 달라"(2권 p.309)라고 말한 아드리아의 말처럼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준다.


대단한 소설이다. 구체적 사건과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악의 보편성과 구체성', 그 '악'을 예술은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 서사와 구성의 독창성 등 자우메 카브레라는 작가는 어쩜 소설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쓸 수 있을까, 읽으면서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천 피스짜리 직소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랄까... 빨리 퍼즐을 맞추고 싶어 안달이 나면서도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질 때마다 느껴지는 그 짜릿함은 이 소설의 굉장한 매력이다. 


처음에는 서사기법이 너무 자유분방해 한 100페이지까지는 책을 뒤적이며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현실에서 갑자기 14세기로 갔다가 18세기, 20세기, 현재를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하는데, 문장 줄이 바뀌지도 않고 갑자기 시간과 시점이 바뀐다. 1인칭 화자가 나와 독백을 하다가 갑자기 3인칭 화자가 등장하여 전체적 상황을 설명하고, 한 문단 심지어 한 문장 안에 다른 시공간과 시점이 섞여 있어서 처음엔 '이게 뭐지?' 당황했다. 그러나 뭐든지 자꾸 읽고 들으면 이해되고 들리듯이 이 소설의 구성과 서사에 익숙해졌고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놀라운 소설이고, 읽으면 반드시 큰 보람과 뿌듯함을 안겨 줄 소설이다. 


부실한 글을 마치려고 하는데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와 한 마디 더 하려고 한다. 


["악이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면 인류는 끝장난 거야." (3권 p.35)]


그래, 악은 반드시 대가를 치뤄야 하는데 무엇으로 치뤄야 하는가...이미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데 말이다. 소설 속 부덴 박사처럼 '악을 어떻게 바로 잡을지 생각해 보'는 수밖엔 없는가. 그저 속죄하고 또 속죄하는 수밖에는 없는가. 그러나 분명한 건 소설 속 고해 신부의 말처럼 천국에 그를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용서란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악은 계속될 것이다. 악은 인간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늘 있어 왔고 그것이 악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악...이 소설이 미완성으로 끝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인간은 누구나 "Jo Confesso"를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살아야 한다.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악을 실행할 수 있기에...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2-02-06 11:1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세 권의 시리즈네요.
천국과 지옥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악‘때문이지요.

coolcat329 2022-02-06 13:44   좋아요 5 | URL
천 페이지가 넘는 대작인데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악‘이라는게 그만큼 끝도 없이 되풀이된다는 뜻 아닐까 싶어요.

새파랑 2022-02-06 11: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이 책 다 좋다고 하셔서 저도 읽으려고 사놓았는데 어렵다고 하셔서 쉽게 접근을 못하고 있습니다 😅 몇일동안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10일은 잡아야 할까요?

coolcat329 2022-02-06 13:47   좋아요 5 | URL
아...저는 1월에 개인적으로 일이 많아서 1권을 읽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다 읽는데 열흘도 넘었습니다.ㅠㅠ
저를 기준으로 삼으시면 안되구요 ㅎㅎ
새파랑님은 버지니아 울프도 여러 권 읽으셨잖아요. 제 생각엔 포크너나 울프보다 쉬울 거 같아요. 새파랑님은 일주일 안에 다 읽으실 거 같은데요. 😚

청아 2022-02-06 11: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3권짜리라 계속 미뤄두고 있었는데 빨리 읽고 싶어지는 리뷰네요! 모르고 악을 행할 수 있다는 점도 무서운듯 해요😳

coolcat329 2022-02-06 13:50   좋아요 6 | URL
그쵸? 세 권짜리는 선뜻 손이 가질 않아요. 이 책 워낙 기대를 했기에 저도 올해를 시작하며 읽은건데 이렇게 묵직하면서도 입체적인 소설은 처음인거 같아요. 후회 안 하실 거에요.^^

scott 2022-02-15 22:28   좋아요 2 | URL
미미님 이 책 첫 장 읽자 마자 빛의 속도로 완독 하실겁니다 ^ㅅ^

청아 2022-02-15 22:37   좋아요 2 | URL
앗! 스콧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여름 오기전에 도전하겠습니다ㅎㅎ🤭

페넬로페 2022-02-06 15:4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으며 같은 경험을 한 것이 참 신기해요. 저도 이 책 읽으며 쿨캣님과 비슷한 경험과 과정을 거친 것 같아요.
너무 방대한 내용이라 리뷰대신 백자평으로 대신했는데 이렇게도 알차고 훌륭한 리뷰를 쓰신 쿨캣님, 대단하세요^^
수고 많으셨어요^^
언젠가 다시 읽어야 할 책 중, 하나입니다~~

coolcat329 2022-02-06 18:55   좋아요 5 | URL
와~저와 비슷하셨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
저도 다 읽고 어떻게 써야 하나 막막했는데 작품해설이 도움이 됐습니다. 1권 반 정도 다시 읽었는데 더 재밌더라구요~두 번 읽으면 더 좋은 책입니다.

얄라알라 2022-02-06 16: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021년 북플에서 뜨거운 찬사 올라왔던 걸 기억하는데, 다시 2022 coolcat님께서도 소개해주시네요. 100페이지까지 왔다갔다 페이지 사이를 오가며 읽으셔서 100페이지까지가 유독 손 떄 탄 책으로 인증될 지 모르겠네요^^

coolcat329 2022-02-06 18:57   좋아요 3 | URL
하도 여기저기 많이 뒤적거리며 펼쳐봐서 책이 새 책 같지가 않습니다. ㅎㅎ
이 책은 꼭 내용 정리를 해가며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레삭매냐 2022-02-07 10: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언능 읽어야 하는데...
1권 수배해서 읽다가 한눈 팔고
있네요 아주 씨게.

coolcat329 2022-02-07 11:20   좋아요 2 | URL
아 1권 읽으시다가 루이스 사폰으로 가신 거군요 ㅋㅋ
저는 레삭매냐님의 그런 모습이 참 재미있고 뭐랄까 활력이 느껴져 좋습니다. 😆

물감 2022-02-11 07: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렇게나 좋담서요? 다들 만점주시네요, 궁금하게요ㅎㅎ근데 분량의 압박이...

coolcat329 2022-02-11 11:06   좋아요 3 | URL
만점을 안 줄 수가 없는 책이에요. ㅎ 세 권이라 부담이 가지만 좋은 책이니 올 초에 집어 들었습니다. 물감님도 꼭 읽어 보시길요~😊

scott 2022-02-15 22: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권으로 넘어 가면 속도가 붙고
3권을 시작하면
완독후에 아쉬워서 1-2-3권 앞 뒤 뒤적이게 됩니다 !ㅎㅎ
민음이 이 책에 오타가 안나와서 신기 ^ㅅ^
 
호텔 뒤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텔 뒤락 Hotel du Lac>은 애니타 브루크너(Anita Brookner 1928~2016)가 1984년 네 번째 발표한 소설로 '18세기 소설의 전범'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작가에게 부커상을 안겨 준 작품이다. 발표한 그 해에만 5만부 이상이 판매 되었고, 1986년에는 BBC 드라마로도 제작,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호텔 뒤락>의 주인공은 로맨스 소설 작가 이디스 호프이다. 나이는 서른 아홉, 미혼으로 사람들은 그녀가 버지니아 울프를 닮았다고 한다. 작가로서 나름 성공한 그녀는 집도 있고 납세 의무도 잘 지키며 요리도 꽤 잘한다. 원고는 늘 마감일이 되기 전에 보내주고 책이 잘 팔려도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않는 '신뢰할 만한 성품'을 지닌 조용하고 착실한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20세기 초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자기만의 방'과 일정 수입이 있는 그런 여성이다. 


그런데 이런 그녀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디스는 죄도 뉘우치고 머리도 식힐 겸 제네바 호숫가에 자리 잡은 '호텔 뒤락'으로 친구들에 의해 떠밀리다시피 해서 오게 된다. 

성수기가 지난 구 월의 끝자락,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호텔에서 이디스는 몇 명의 여인들을 만나게 된다.

사별한 남편이 남긴 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주위의 관심을 끌려는 퓨지 부인, 엄마인 퓨지 부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딸 제니퍼, 거식증에 걸려 집안의 고귀한 혈통을 잇지 못해 남편에 의해 강제로 호텔로 보내진 모니카, 못된 며느리 눈치보느라 자신의 아름다운 저택에서 살지 못해 호텔을 전전하는 보뇌이유 백작부인.

이디스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 여인들을 보며 때로는 부러움의 시선으로 때로는 동정심, 저속함, 경멸의 감정을 느끼며 그들 안에 내재한 각기 다른 결핍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정한 삶 속에서 어떤 길을 선택을 해야하는지 고민하는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디스는 나름 성공한 작가로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여성이다. 그러나 부모의 불화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가정적인 사람'과 함께 하는 안정된 결혼 생활을 갈망한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 다른 어떤 힘이 있어도 사랑 없이는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고 심지어 꿈도 꿀 수 없어요. (...)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행복이란 저녁이면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걸 알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온종일 햇볕 따가운 정원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거예요. 매일 저녁 그 사람이 올 거라고요." (p.114,115)]


그녀의 소설에서는 '내성적이고 잘난 체하지 않는 여자가 남자 주인공을 차지'한다. '반면에 그런 여자들을 경멸하며 남자 주인공과 격정적인 연애를 했던 유혹녀는 사랑의 난투에서 좌절하고 물러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내성적인 여자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 이상적인 남자와 사랑이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그녀의 현실에서는 찾아오지 않는다. 현실은 유부남과의 밀회가 전부일 뿐, 그녀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이디스는 어떤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호텔 뒤락에 오게 되었을까? 호텔에서 만난 다양한 사연의 여성들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안정된 결혼은 그녀의 삶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해 줄 유일한 방법일까? 

'결코 단 한 번도 내 것이 되어본 적이 없었던, 그럼에도 내가 그렇게 원했던 유일한 삶'(p.212)을 위하여 이디스가 선택한 길은 무엇일까?


호텔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몇몇의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며 어려운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작가의 우아한 문체가 좋았고, 별 내용이 없는 듯한 이야기가 묘하게도 재미있었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꿈꾸는 우리는 모두 '이디스'가 아닐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1-15 08: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들어본 작가입니다 ㅜㅜ
주인공이 이디스 여서 이디스 워튼이 떠오르네요.주인공 이름을 이디스 울프로 했더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게다가 문학동네꺼니까~!!

coolcat329 2022-01-15 10:07   좋아요 3 | URL
저도 처음 들어본 작가에요. 이디스 울프도 어울리네요. ㅎ

레삭매냐 2022-01-15 0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디스 호프가 무슨 잘못을 저질
렀는지 알려면 책을 닐거야...

문득 사서 읽다만 피터 니콜스의
<록스 호텔> 생각이 나네요.
전혀 1도 상관 없는 -

coolcat329 2022-01-15 10:06   좋아요 3 | URL
네 ㅋ 근데 호텔 들어간 책들만 모아 놔도 재밌을거같네요~

scott 2022-01-25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묘하게 재밌다니
이 책 찜! ㅎㅎ
부커상 수상작들 중 은근히 숨겨져 있지만 좋은 작품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ㅅ^

coolcat329 2022-01-25 19:46   좋아요 2 | URL
네~저는 부커상이 퓰리처보다 더 좋더라구요.🤗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나서 번역이 부자연스러운거 같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으로 읽어보니 훨씬 잘 읽히고 이해도 잘 돼서 결국 개정판 새 책을 샀다. 혹시 몰라 킨들 미리보기로 원문도 비교 해봤는데 번역이 많이 아쉽다.
읽으면 어떻게든 읽겠지만 제대로 음미하며 재미있게 읽고 싶은 책이라 미안하지만 이렇게 글을 남긴다. 절판된 책이지만 혹시 중고로 구입하실 분들 참고하시면 좋겠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1-13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2-01-13 23: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렇군요. 저는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읽었는데 술술 읽혔거든요.

coolcat329 2022-01-14 08:21   좋아요 3 | URL
네 개정판이 훨씬 자연스럽고 이해도 잘 돼더라구요. 개정판이 있는지 몰랐어요.ㅠ

바람돌이 2022-01-14 0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애니 프루도 읽고싶은 작가인데 기억해둬야겠네요. 그나 저나 저는 이책 영화로만 봤는데 영화도 정말 좋았습니다.

coolcat329 2022-01-14 08:22   좋아요 3 | URL
영화 봤는지 안봤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책 다 읽으면 영화도 보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2-01-28 14: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제작을 영화로 먼저 보고 나중에 책으로 읽었어요. 너무 슬픈 이야기입니다. 수작이에요.

han22598 2022-02-03 08: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번역은 창작의 다른 이름인 것 같아요. 영어를 모르던 시절에는 ㅋ 그저 모르는 언어를 옮겨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하며 읽었던 것 같은데...지금은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일 이상이라는 것임을...매우 심하게 깨닫고 있어요..번역가님들에게 무한한 감사를.ㅎ

얄라알라 2022-02-03 18:42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 백석 시인을 주인공 삼은 [일곱 해의 마지막] 읽고 난 후, 백석 시인이 옮겼다는 러시아 문학서들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제2의 창작물일 것 같아서.

han님께서는 번역 능숙하게 하실 것 같아요. ^^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1967~)는 영국 런던, 인도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인도계 미국작가이다. <축복받은 집>은 그녀가 1999년 출간한 첫 소설집으로 그해 오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단편소설로는 이례적으로 퓰리처상까지 수상했으니, 첫 작품으로 굉장히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이후 <그저 좋은 사람>,<저지대>등을 발표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축복받은 집>에는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인도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두 편을 제외하고 모두 미국에 사는 인도 이민자들의 삶을 담고 있다. 인도계 작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소설에는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미국에 사는 인도 이민자들이 주로 등장하지만 라히리는 자신의 소설이 '이민자 소설'로 불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글로 쓰기 마련이기에 작품 속 인물들이 인도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미국의 교육을 받고 미국인으로 자란 작가가 자신이 이방인으로서 겪은 삶을 작품으로 보여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보여지는 인도인들의 문화와 역사는 낯설지만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 낯섦은 익숙함으로 바뀐다. 소통의 어려움과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 공허한 관계는 국적과 인종을 떠나 모든 인간 관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이 소설집 속 9편의 이야기는 이러한 인간 관계에서 나타나는 소통의 부재와 이해심 부족, 그로 인한 갈등과 고독의 문제를 다룬다. 미국 이민자로서 겪는 인도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확장된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이 <축복받은 집>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아이를 사산한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가슴 속에 지닌 채 서로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일시적인 문제>, '남편도 아이들도 사랑하지 않는,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이미 삶에 대한 사랑을 상실해버린 여인'(p.110)과 역시 아내와 대화 없이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관광 안내인 카파시를 통해 끝내 소통할 수 없는 인간 관계를 보여준 <질병 통역사>, 자신의 몸을 따뜻한 온기로 달아 오르게 했던 "당신은 섹시해요"라는 남자(불륜남)의 말이 사실은 상투적이며 공허한 사랑의 밀어였음을 깨닫는 여자의 이야기 <섹시>, 고국 인도를 떠나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한 여인이 겪는 고독과 어려움을, 혼자서도 잘 지내는 11살 미국 소년과 대비해서 심리적으로 잘 보여준 <센 아주머니의 집>,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결혼한 젊은 부부의 갈등과 이해의 어려움을 담은 <축복받은 집>은 인간 관계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두 번째 이야기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에서는 미국에서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세시)의 독립을 위한 내전을 지켜보며 그곳에 두고 온 가족을 걱정하는 피르자다 씨와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인도인 가족의 따뜻한 정이 열 살 소녀의 시선으로 묘사되는데 다 읽고 나면 뭔가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맨 마지막 작품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었다.

인도인 남성이 인도, 영국을 거쳐 세 번째 대륙인 미국에 정착해 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이민자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힘들지만 평범한 삶이 그것을 겪는 개인에게는 달에 가는 것보다 더 큰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다음은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데 9편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가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싶다. 


아들이 좌절할 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네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고 말해준다. 그 우주 비행사들은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겨우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이다. 나는 이 신세계에서 거의 삼십 년을 지내왔다. 내가 이룬 것이 무척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도 아니고 내가 최초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中 (p.309)


단편 소설집으로 유명한 줌파 라히리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9편의 작품이 대체로 다 좋았지만 읽기 전의 기대가 너무나 컸었기에 살짝 그 기대에는 못 미쳤다. 원제는 세 번째 작품 <질병 통역사 Interpreter of Maladies>가 표제작인데, 국내에서는 좀 더 느낌이 좋은 제목인 <축복받은 집>으로 바뀌어 출간되었다. 

인도 이민자들을 주인공으로 인간 관계 속에서 허덕이고 길을 잃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갈등, 그 안에 보이는 작은 희망과 회복을 줌파 라히리만의 매우 차분하고 깔끔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집 <축복받은 집>, 데뷔작이지만 데뷔작 같지 않은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2-01-13 13: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글 읽어 내려가니 하나하나 다시 생각나요~~
저도 ‘세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 너무 좋았어요. 인용하신 문장도 넘 좋았고요^^
다시 감동이 밀려옵니다~~

coolcat329 2022-01-13 14:15   좋아요 5 | URL
마지막 이야기 정말 감동적이더라구요. 페넬로페님도 좋아하는 이야기군요!

새파랑 2022-01-13 16: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리뷰도 남겼고 좋았었는데 쿨캣님 리뷰 읽으니 조금씩 기억이 나네요~!! 약간 낯선 느낌이 드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 다시 읽어보고 싶어 지네요~!!

coolcat329 2022-01-13 16:35   좋아요 4 | URL
네~단편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또 새롭고 좋더라구요~새파랑님은 줌파 라히리 많이 읽으셨죠? 저는 이제서야 읽었네요😚

새파랑 2022-01-13 16:38   좋아요 4 | URL
제가 찾아보니 저도 세권밖에 안읽었더라구요 😅
<그저 좋은 사람>을 까먹고 있었습니다 ㅋ

mini74 2022-01-13 2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작가분 다른 책들 찾아봤던 기억 납니다. 묘하게 정서가 닮은 거 같아요 ~

coolcat329 2022-01-14 09:34   좋아요 2 | URL
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하고 가라앉은 느낌이 인상적이었어요.
 
프랑스 중위의 여자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작가 존 파울스(John Fowles 1926~2005)는 1926년 영국 남부 에섹스(Essex) 주의 해안 도시 리온씨(Leigh-on-Sea)에서 태어나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종전 후 옥스포드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프랑스와 그리스 등지에서 교사로 일했고, 1952년 귀국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63년 발표한 <콜렉터>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파울스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 주었고, 1966년 발표한 <마법사>는 '히피 세대들의 필독서'로 떠오르면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파울스는 런던을 떠나 영국 남서부 라임 레지스(Lyme Regis) 지방으로 이주하여 글쓰기에 전념하는데, 이곳이 바로 그의 최고의 작품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1969년 발표한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파울스의 모든 소설들 가운데 가장 큰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전후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불리며 현대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1981년에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 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로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대영제국이 가장 번영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1867년 3월, 영국 남서부 라임 마을, 춥고 세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아침, 귀족 가문의 찰스 스미스슨은 약혼녀이자 부유한 사업가의 외동딸인 어니스티나 프리먼과 함께 성벽을 따라 걷다가 방파제 끝, 세찬 바람 속에서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사라 우드러프라는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된다. 찰스는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다가가지만 자신을 꿰뚫어 보는 그녀의 얼굴에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여성이라면 얌전하고 순종적이며 다소곳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시대'에 그녀의 얼굴은 자신을 찔러 죽이는 '창'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그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인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찰스는 아마추어 생물학자로서 화석을 채집하기 위해 외진 숲을 돌아 다니다 사라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몇 번의 만남과 마을의 소문을 통해 사라의 사연을 알게 된다. 

그 사연이란, 어느 날 폭풍으로 난파된 프랑스 선박이 근처 해안으로 표류해 오고, 마을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던 사라는 구조된 프랑스 중위를 간호하게 되었는데, 그 프랑스 장교와 부도덕한 밀애를 나눴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죄인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정조를 잃고 실연당한 여자로 생각, 심지어 정신 이상자로 몰아세우지만 사라는 그런 주위의 비난은 무시한 채 스스로 '남에게 따돌림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던 것.


"전 수치심과 결혼했어요. (...)어떤 모욕이나 비난도 저를 자극할 수 없어요. 그 경계를 넘어선 곳에 저 자신을 두고 있기 때문이죠. 전 아무것도 아니고, 이젠 더 이상 인간도 아니에요. 그저 프랑스 중위의 창녀일 뿐......" (p.231)


찰스는 이런 사라를 보며 연민과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도움을 주겠으니 이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 것을 제안하지만 사라는 이곳을 떠나는 것은 수치심과도 결별하는 일이 된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찰스가 새 삶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이며 거듭 설득하자 사라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찰스는 가엾은 여인에게 자신이 도움을 줬다는 뿌듯함과 함께 '자유 의지'를 운운하며 그녀와의 사적인 만남이 한 순간의 불장난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도움을 주고 받으며 스쳐 지나가는 사이로 일단락 된 듯 보이는데, 찰스가 백부로부터 호출을 받고 잠시 라임을 떠난 사이 사라는 사라지고 설상가상으로 찰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던 백부가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어 저택과 작위를 상속 받지 못하게 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돈만 많은 집안 딸 답게 약혼녀 어니스티나가 보여주는 숙녀답지 않은 태도는 찰스를 실망시키고 사라가 남겨놓고 간 편지는 찰스를 더욱 심란하게 만든다. 


"간청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 주세요. 오늘 오후와 내일 아침에 기다리겠습니다. 안 오시면,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p.269)


책을 읽다보면 전지적 화자는 찰스의 행동과 생각을 좇아갈 뿐 사라의 내면은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사라에 대해 계속 의문이 생긴다. '이 여자는 왜 이러는 걸까? 이상한 여자네...수상하네...'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찰스는 사라에게 끌리면서도 자신의 신분과 체면, 약혼녀 어니스티나를 생각해서 사라를 이성적으로 멀리하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이미 깊숙이 들어온 사라의 존재를 감정적으로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다. 찰스는 사라의 부탁대로 그녀를 만나러 가고 이야기는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은 찰스가 자신의 실존적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소설 맨 앞에 '모든 해방은 인간 세계의 회복이며 인간 자신에 대한 인간관계의 회복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소설 전체의 제사(epigraph)로 씀으로써, 이 소설의 주제가 인간의 자유와 해방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라를 만나기 전 찰스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였다. 일하지 않고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적당한 교양과 과학적 지식까지 겸비한, 거기다 신흥 부유층 딸과의 결혼을 앞두고 재산도 더 불릴 수 있는 그야말로 미래가 창창한 그런 신사였다. 

그러나 우연히 사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찰스는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낡고 진부한 신사계급의 껍질이 깨지는 것을 경험한다. 

찰스는 결국 파혼까지 해가며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선택하지만 그 사랑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사랑이기에 그에 따른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낡은 사회적 관습을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욕망과 만나는 과정은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의 실존주의와도 연결된다.


이 소설은 1867년의 이야기를 1967년에 살고 있는 화자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다가 중간에 갑자기 작가가 일인칭 시점으로 개입하는데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니스티나는 같은 세대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그녀는 1846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던 날 세상을 떠났다.(p.40)]


[나는 모른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모두 상상이다. 내가 창조한 인물들은 내 마음 바깥에 존재한 적이 없다.(...) 물론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아는 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알랭 로브그리예와 롤랑 바르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p.128)]


1876년의 이야기를 하면서 히틀러가 나오고 롤랑 바르트가 나온다. 또한 갑자기 일인칭 '나'가 불쑥 나와 소설의 이야기로부터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이런 서술 방식은 소설 내내 계속 된다. 

급기야 소설 후반부에 가면 작가가 소설 속 인물로 두 번이나 등장, 기존 소설의 형식을 벗어난 과감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다음과 같다. 


[지금 너를 이용해 먹을 수 있을까? 지금 너를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것은 바로 전지전능한 신-그런 불합리한 존재가 있다면-의 시선이다. 우리가 흔히 신의 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야비하고 의심 많은(누보로망 이론가들이 지적했듯이) 도덕적 특질을 가진 시선이다. 이 시선을 나는 찰스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그 사내의 얼굴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그 사내의 얼굴은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얼굴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고, 내가 바로 그 사내라는 것을 인정하겠다.(p.526)]


이어서 등장 인물들에게도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며 한 가지 결과를 작가가 정하지 않고 두 가지 결말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총 세 가지 결말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찰스의 상상이고 나머지 두 개는 위에서 말한 찰스가 처한 딜레마를 아예 없애고 두 가지 결말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작가는 왜 마지막 한 가지 결말을 제시하지 않고 여러 결말을 제시하는 소설을 썼을까? 

그것은 독자인 우리에게도 생각해 보라는 뜻이 아닌지, 또한 소설 속 이야기를 빅토리아 시대로만 한정하지 말고 현대까지 연결되는 인간 실존의 문제임을 이런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정말 많은 주제와 빅토리아 시대 충돌하던 가치관 등을 다루면서 즐거운 책읽기를 선사한다. 마르크스주의와 다윈의 진화론, 매튜 아널드의 실존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빅토리아 시대를 재구성한 작가의 글을 내 지적 수준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방대한 지식이 집약된 소설이라는 점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무엇을 써야 하나, 참 힘들었다. 작가가 남녀의 사랑 이야기 외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 모든 것을 머리로 흡수하여 글로 정리하려니 참 내 능력으로는 벅찼다. 그러나 이 책은 다시 읽고 싶을 정도로 (지적이고 실험적인 면에서)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 텍스트이자 전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람있었고, 존 파울스의 다른 책들을 다 읽고 싶어졌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2-01-07 21: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오.... 드디어 파울스의 세계로 들어오셨군요!
<마법사> 절대 놓치지 마세요. 명작입니다.

coolcat329 2022-01-07 22:43   좋아요 3 | URL
네~~정말 신박한 소설을 만났습니다.
<마법사> 사겠습니다. 골드문트님이 극찬하신 글 읽은 기억이 나네요.
편한 밤 되세요☺

얄라알라 2022-01-07 2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존 파울스 소설 직접 읽으신 coolcat님께서 보람느끼셨다는 말씀을 리뷰 후반부에서 보니, 아주 공감됩니다. 깊이 읽으셨기 때문에 더 보람있으시겠어요.

저는 희미하게 제목만 들어본 작품은 coolcat님 덕분에 줄거리 알아가네요.

방금 전 본 <Don‘t look up>에서의 메릴 스트립도 굉장히 카리스마 뿜뿜 멋진데 1981년 영화에서는 또 다른 매력도 있겠어요^^

coolcat329 2022-01-07 22:56   좋아요 3 | URL
소피의 선택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옛날 메릴 스트립 정말 아름다워요.
이 책 절판됐던데 현대 고전인만큼 개정판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방금 돈룩업 보셨군요. 메릴 스트립도 나오는지는 몰랐는데 더 보고 싶네요~^^
북사랑님 좋은 밤 되세요~

얄라알라 2022-01-07 2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돈룩업 최고네요^^ 고양이라디오님 페이퍼 읽고, 봐야지봐야지 하다가! 지금 감동먹고 기후 위기 책 뽑아왔어요. 결국 헐리우드판 그레타 툰베리 영화인가? 하면서. coolcat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를^^

바람돌이 2022-01-08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열린책들 세계문학판으로 다시 나와있어요. 저도 보고싶어서 검색해보니 나오네요. 같은 역자인걸로 봐서 개정판인지 아니면 세계문학전집으로 넣으면서 판형을 바꾼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책이 계속 나오는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 저도 존 파울스의 세계로 들어가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 ^^

coolcat329 2022-01-08 11:53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열린책들세계문학 상,하권으로 나눠서 2009년인지 개정판이 있긴한데 한 권으로 다시 나오면 좋을거 같아요~^^

새파랑 2022-01-08 0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거 같은데 들어가보니 품절이라는 ㅜㅜ 그런데 바람돌이님 답글보니 개정판이 있나 보네요 ^^ 사랑이야기에 다양한 결말이라니 재미있을거 같아요~!!

coolcat329 2022-01-08 11:56   좋아요 2 | URL
상,하권으로 있어요~~^^
사랑이야기에다 빅토리아시대 공부도 됩니다~^^

coolcat329 2022-01-08 11:58   좋아요 3 | URL
상,하권으로 있어요~^^사랑이야기 외에 빅토리아 시대 공부도 된답니다~^^

mini74 2022-02-10 1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클캣님 글 읽고 영화 찾아서 본 ㅎㅎ 축하드립니다 *^^*

새파랑 2022-02-10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다 샀어요 ㅋ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ㅎㅎ 축하드려요~!!

coolcat329 2022-02-11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