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관하여
남원정 지음 / 렛츠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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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아마 '사랑' 다음으로 찾아오는 감정이기에 더 애틋하면서도 아련함을 느끼곤 합니다.


여기 '그리움'에 대한 소설집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저 역시도 '그리움'의 시작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움에 관하여』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인생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자, 변한 것 중 하나는, 흥미로운 일이 그다지 없다는 게다. 흥미가 사라진 자리는 그저 따분하지만, 안온하기도 한 일상의 조용한 반복만 계속될 뿐이다. - page 8

어느 중년 남자의 고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과거로의 회상을 통한 '그리움'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흔적'이었습니다.


눈부신 젊음은 야속하게도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기억은 오래도록 그날의 행복을 기록해 두었다. - page 12


낮은 집들과 좁고 구부정한 길들이 엮어낸 소박한 정물화 같은 곳에 장식 하나 없이 무채색의 마름모꼴 모양을 하고 있는 성당을 향해 가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반해버렸고, 그날 이후 빠짐없이 일요 미사에 참석하며 신부의 강론을 좋아하게 되면서 이 남자의 일요일은 소박한 기쁨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지켜봄'이 지속 가능할지 나로선 당최 알 길이 없었다. 사랑은 시간 속의 고뇌였다. 나의 행동과 생각을 강제하고, 숙명적이라는 착각을 요구하고 독점하고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가방을 어깨에 메고 몸을 틀어 계딴을 올라 나의 곁을 스쳐 갔다. 계단참에 엉거주춤 선 채, 그녀가 흘리고 간 기억 자락을 주워든다. 그녀의 얼굴에는 젊음이 발산하는 도도함이 서려 있다. 창백한 살결은 우아했고 짙은 눈의 미세하고도 온전한 떨림은 연민을 자아낸다. - page 16


하지만 그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그녀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군대에 가게 되고 뜻하지 않은 혼자만의 이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군대에서도 여전히 성당을 다니며 신부의 강론을 듣는 그의 모습에서도 그리움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연이란 이런 것일까......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는 것일까......

그와 그녀는 다시 재회를 하게 됩니다.

알고보니 그녀 역시도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음에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움도 간직하게 됩니다.

그녀의 졸업과 다가온 마지막 순간임에......


다시 그는 현재로 돌아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얼마 전 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확진까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지만, 나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삶의 무수한 자국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그냥 술술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해가 갈수록, 또렷한 듯 보이던 것들도, 어느 추리 소설에서처럼 내 머릿속 뇌가 꾸미고 부풀리고 왜곡하여 만든 가상세계로 치장된 모습들도, 급속히 나를 떠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그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나는 단 하나의 느낌으로만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그녀의 눈, 코, 입, 얼굴형, 뒷모습 등을 정말이지 아무것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느낌만이 가득하다. - page 29


다른 소설에서의 '그리움'도 저마다의 색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앞세 읽었던 <그리움에 관하여>에서는 '그레이' 색이었다면 <마젠타 입술>에서는 '진한 와인'색이었습니다.

왜 나는 제주도로 도망치듯 왔는가? 이곳을 밖의 세상으로 기억하는가? 나의 의지는 미약하고 그만큼 외부로 향한 불안한 탈출은 언제나 원점으로 회귀하곤 하였다. 내가 어디에 머물던 그 물리적 가치에 중심을 쏟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변방이고 변방에 있다고 그 변방이 외부의 중심으로 다가서지는 않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슬픔과 무기력, 걱정과 고정관념 그리고 자학이 뒤섞인 혼란 상태로 머물렀다.


"서로를 옭아매게 될 거야. 결국에는..."

마음이 회오리친다. 나는 포켓 속에서 담배를 더듬어 꺼낸다. 끝이 지저분하게 너덜너덜한 담배. 조심스레 펴서 불을 붙인다. 여자의 잇새에 아스파라거스 조각이 끼었다. 어지간히 익어버린 체념. 나는 체념한다. 고로 존재한다. I give up, theregore I am. - page 108


그리고 마지막 소설 <당신의 뜻대로>에서 울려퍼지던 이 음악, <If it be your will>.

If it be your will

To make us well - Leonard Cohen <If it be your will> 중에서

이 가사가 유독 인상깊었습니다.


책을 덮고나니 저에게 이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노영심의 <그리움만 쌓이네>.

원곡은 다른 이가 불렀지만 유독 가수 노영심만의 창법으로 부른 이 노래가 저의 '그리움'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
아 나는 몰랐네 그대 마음 변할 줄

난 정말 몰랐었네
오 나 너 하나만을 믿고 살았네
그대만을 믿었네
오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 노영심의 <그리움만 쌓이네> 중에서


제 추억 속에 고이 접어두었던 기억들을 하나 둘 꺼내어 봅니다.

사랑, 이별, 추억, 그리고 그 사람.

어느 새 희미해졌지만 나 역시도 누군가에겐 그리움일테니 너무 쓸쓸함에 빠지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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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개뿔
신혜원.이은홍 지음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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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 책은 읽어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니!

머리보다는 마음이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유쾌한 만화지만 결코 유쾌할 수 없었던 우리의 현실 이야기.

평등은 개뿔

 


책을 받는 순간 그저 '공감' 꾸~욱이었습니다.

하! 지! 만!!

이 책을 바라본 남편은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너무 당당하게 외치는 이 한 마디!

"난 그래도 남들과는 달리 잘하고 있잖아.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애들도 잘 보고!"

음......

"그...그런 것 같네!"

라고 겉으론 외치지만 정작 속에서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말이야 방구야!!!"


평등하기로 소문난 결혼 30년 차 부부가 털어놓는 '평등'의 이야기는 어떨지 궁금하였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가정에서 남부럽지 않은 사랑으로 차별없이 자랐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우리가 알던 세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로소 깨닫게 되는 '여자'와 '남자'의 사회적 의미.


그래도 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도 거의 없었고 주변에서 칭찬과 질투가 넘칠만큼 평등한 부부로 살고 있었습니다.

라고 하기엔 예상치 못한 장애물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약속을 합니다.

남자 여자 남편 아내. 그런 고정관념이 적어도 우리 사이엔 없었으면 해.

난 네가 페미니스트가 되면 좋겠어!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받드는 사람이 아니라 여성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 page 65

 


사실 아직도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색안경을 낀 사람들이 있곤 합니다.

이는 페미니스트가 잘못 변질된 의미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만의 우월함이 아닌 '평등'의 의미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시작임을 깨달아야겠습니다.


저 역시도 부부에겐 정해진 역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사랑해서 부부로 결실을 맺은 것이고 그로인해 서로의 역할을 정하는 것이지 남자는 이것을 해야하고 여자는 이것을 해야한다는 고정관념으로 각자의 역할을 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도 서로 무엇을 할지 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굳이 정해진 역할이 아닌 공존하며 살아가기에 지금까지도 큰 싸움없이 지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평등'을 이루기 위해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대화'의 중요성.

그리고 사회적 시선이 아닌 서로를 향한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남편에게도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보았습니다.

만화였기에 술술 읽으면서도 뭔가 깨달음이 있었나봅니다.

살며시 다가와서는

"혹시나 그동안 여자를 힘들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 있었다면 미안해. 그리고 앞으론 같이 잘 해 보자!"

어멋!

이 남자!

사람을 심쿵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도모르게 눈물이 쪼르륵 흐르면서 이렇게 답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미안했어. 그리고 서로 잘 하자!"


부부들에게 꼭 한 번은 읽어보아야할 책이라는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혹시나 싸우게 될 때면 이 책을 꺼내 읽으면서 '이해'를 마음 속에 새겨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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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는 즐거움 - 배고픈 건 참아도 목마른 건 못 참아
마시즘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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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에 많이 아팠었습니다.

물 한 모금조차 넘기기가 힘들어 결국 링거를 맞으며 근근히 버텼던 며칠.


그리고 기운을 차리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물 한 잔 쉼없이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배고픔?

그것보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침마저도 삼킬 수 없는 그 고통!

이를 해소시켜준 것은 다름아닌 '물', '마시는 것' 이었습니다.


그 기쁨을 최근에 느꼈기에 이 책의 제목에

눈길이 혹~!

손길이 훅~!

그래서 읽게 되었습니다.

마시는 즐거움

 


"마시자!"

금요일 밤부터 시작하여 신나는 주말까지 외치고 또 외치는 이 말!

푹푹 찌는 여름이면 어김없이 외치는 이 말!

책을 펼치기도 전에 왠지 책과 함께 음료 한 잔을 쫘~악! 마셔야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래서 크게 한 잔 들이키고 읽어내려갔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음료를 고르는 것일까?' - page 6

딱히 고민해 본 적 없었기에 무심결에 나온 대답은 그야말로 '그냥!' 이었습니다.


하! 지! 만!!

여기서 우린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야기'.

하나의 음료에는 역사적인 사건부터 개인적인 추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에 매료될수록 음료를 고르는 이유와 취향이 단단해진다. - page 6

그동안 음료를 허투루 마셨던 것에 진심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드립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놓쳤기에 내 취향마저 모른 채 그냥 목을 축이기에만 급급했었습니다.

이제라도 그 이야기를 알고 마시며 이렇게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진정 원하던 한 모금이야!"


저의 일상의 시작인 '커피'.

이에 대해 <폴란드의 신현준, 전쟁에서 커피를 구하다>에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스만튀르크 병사들이 오늘날 오스트리아 수도 빈 성문 밖에 있는 상황.

방어하는 입장인 빈 시민들은 자신들의 왕이 지원군을 이끌고 온다고...... 연락이라도 받으려면 성문 밖 15만 명의 적군을 뚫고 가야 하는데......

이때 등장한 이!

게오르크 콜시츠키라는 남자. 그는 자신은 빈 시민이 아닌 폴란드 출신의 상인이라고 했다. 오스만튀르크에 다녀온 이력도 밝혔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가 봐도 그를 오스만튀르크 출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배우 신현준을 '중동 왕자'로 착각하듯이 말이다. - page 95

음......

누구라도 오해했을 법한 비쥬얼을 지닌 그에게 빈 시민들은 도시의 운명이 걸린 편지를 맡기게 되고 그 사실을 몰랐던 오스만튀르크 사령관은 그에게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고 자신들의 부대 비밀까지 누설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로인해 우리의 신현준인 '콜시츠키'는 무사히 편지를 전달하고 결국 지원군인 폴란드 부대가 맹렬히 공격해 오스만튀르크 군대를 뿔뿔이 흩어지게 합니다.

혼비백산으로 도망간 그들이 남긴 것 중 파란색 자루.

이때 콜시츠키가 말한다. "이거 제가 가져도 되나요?" "아, 버릴 건데 가지시죠." - page 100

그렇게 콜시츠키는 오스트리아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차리고 사람들의 입맛을 저격하기 위한 커피 제조 방식을 개발해 최초의 드립 커피를 탄생하게 됩니다.

한 잔의 여유를 주는 커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전쟁 속에서 영웅처럼 나타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매력이 터졌던 부분, <제 5 장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 음료의 모든 것>.

여기엔 '하이트' vs '카스', '참이슬' vs '처음처럼', '오란씨'와 '써니텐' vs '환타', '커피믹스', '갈아만든 배', '베지밀'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읽는 재미는 배로, 교양은 덤으로, 한국인의 진정한 한 모금을 알려주곤 하였습니다.

특히나 '커피믹스'는 한국을 빛낸 최고 발명품 5위라고 하니 마실 때마다의 자부심은 필수!

압도적인 간편함, 그리고 해외의 인스턴트커피와는 비교가 안 되는 맛이 큰 이유였다(수십 년간 커피믹스 시장에서 내부 경쟁을 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자국으로 돌아갈 때 커피믹스를 사갔다느니, 커피에 민감함 외국인이 커피믹스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다느니 등 두말하면 입이 아픈 에피소드도 많다. 커피믹스에 연예인 사진이 들어가게 된 사연도 재미있다. 외국인들에게 노란색으로 위장한 가짜 커피믹스가 판매되었기 때문이라고. - page 303 ~ 305


웃고 즐기며 읽다보니 어느새 책은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무슨 음료 좋아해?" - page 328

이젠 이 질문이 단순하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난 어떤 음료를 좋아하는지, 그 음료와 나 사이엔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그리곤 외칩니다.

"마시러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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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조앤
제니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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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의심하겠어? 우린 여자잖아."

이 문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여성 스파이'

그와 관련된 책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코엘료의 소설 『스파이』.

네덜란드 출신의 여성 스파이로 알려진 '마타 하리'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스파이로 활약을 하였던 그녀의 삶은 국적 하나 분명치 않은채 기구한 삶을 살다 비극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나는 내가 언제나 전사였으며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나의 전투를 치러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전투들은 삶의 일부였습니다. - page 158


그리고 긴 여운을 남긴 이 이야기는 책을 덮고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남곤 하였습니다.

불행히도 오늘 일어난 일은 어제도 일어났고 내일 또 일어날 것입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거나, 아니면 인간을 이루는 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육체는 쉽게 지친다 해도 영혼은 언제나 자유로우니, 언젠가는 우리가 세대를 거듭하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 지옥의 수레바퀴에서 헤어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비록 생각이 늘 제자리에 머문다 해도 그보다 더욱 강한 힘이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 page 209~210


​이번에 읽게 된 이 소설 역시도 KGB를 위해 가장 오래 일한 스파이 '멜리타 노우드'의 실화라하니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였습니다.

레드 조앤

 


첫 문장은 이러했습니다.

그녀는 사인을 안다. 들을 필요도 없다. - page 13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부고 기사에는 '윌리엄' 이었습니다.


여든이 넘은 나이의 그녀 '조앤'.

결국 자신의 최후에 대해서도 예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찾아온 정보 요원들로 인해 그녀의 오랜 기억으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잠재적 에너지를 내뿜었던,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나이, 열여덟 살의 그녀의 이야기부터......


"각자 자신의 능력에 맞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 page 28

아버지의 말처럼 대학을 진학하고보니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시선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그곳에서 만난 그의 연인 '레오'와 그의 사촌인 '소냐'와 관계를 가지면서 '공산주의'사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레오는 그녀에게 그녀가 있는 연구소에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정보에 대해 누설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그녀는 이는 잘못된 것임을 알고 단호히 거절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연구소에서 행하는 일이 결국은 무차별 공격하는 무기가 될 것임을 알기에 그녀는 자신이 옳다는 신념 하나로 '스파이'를 행하게 됩니다.


물론 사람들은 설명하려 애쓰겠지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눈부신 섬광의 사진이, 먼지가 솟아 역류하면서 땅을 할퀸 뒤 도시 위로 피어오른 거대한 버섯구름의 사진이 신문에 실릴 것이다. 기사는 너무 뜨거워서 몇몇 사람들은 그냥 사라져버렸다고, 먼지와 재와 파편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어마어마한 파멸의 진상을 진실로 전달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존재한다 해도 인간의 공감력으로는 그토록 큰 고통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 상상력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 이상은 숫자에 불과하다. - page 289


그녀도 결국은 한 '사람'이었음에 가슴 한 켠이 아린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잡히는 게 무서울까? 그렇다. 물론 무섭다. 잠시 멈추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겁에 질린다. 조앤은 잡힌다해도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게 무슨 뜻인지도 잘 안다. 그녀를 잡으러 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말해봐요. 당신처럼 착한 여자가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린 겁니까? 분명히 누가 당신을 끌여들였겠지요. 그게 누구인지만 말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녀가 아는 이름은 레오와 소냐밖에 없으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앤은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일단 저지른 일은 절대 돌이킬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되돌릴 수는 없다. 이것으로 끝이다. - page 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스파이'가 된 그녀의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만 말해주세요. 미안하긴 하세요? 후회하세요?"

조앤은 잠시 침묵을 지킨다. 심자아이 세차게 뛰어 박동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난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 상황에서는."

"스파이가 되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정보를 러시아와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히로시마가 있었으니까. 공평해져야만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 page 420 ~ 421


책을 읽고나니 코엘료의 소설과도 너무나 닮아있기에 자꾸만 두 권의 책을 놓고 그녀들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귓가에, 가슴 속에 맴돌곤 하였습니다.

'스파이' 이기 전의 그녀의 평범했던 일상을 이어갔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그랬다면 평범한 사랑하며 진정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그녀로 하여금 변하게된 이 세상.

그녀의 바람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지 세상에 물으며 책과는 인사를 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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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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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머리에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하던 그, '김정운'.

사실 그가 쓴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 문구가 사로잡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행복은 결코 오지 않는다

요즘 저 역시도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정리를 하고 있었기에 그의 이 한 마디가 유독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서의 그의 이야기.

그 속엔 과연 그의 '진정한 그'가 담겨 있을지 궁금하였습니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슈필라움'.

'공간'을 뜻하는 독일어 '라움'으로부터 '놀이'와 '공간'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 공간'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슈필라움'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다. - page 6

그에게 '슈필라움'은 여수의 '바닷가 작업실', 그리고 '미역창고'였습니다.

여수라는 낯선 공간에서 혼자 좌충우돌하면서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이라고 정의 내렸다.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말로 내 아이덴티티'라는 이야기다.' - page 12


그곳에서 그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면서 자신만의 '슈필라움'의 의미와 그로인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성찰이 이야기되고 있었습니다.


우선 '시선'에 대한 그의 이야기 속엔 우리의 '훔쳐보기'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온 사회가 관음증이다. 소셜 미디어는 내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의 주인들에게 어제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시로 알려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시시콜콜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 노출증이다. 관심이 없는데도 자꾸 보라고 한다. 결국 훔쳐보고야 만다. 관음증과 노출증은 동전의 양면이다. - page 32

그랬습니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지인들의 일거수를 알게되고 보게되는,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의 일거수까지도 알기도 합니다.


시선은 곧 마음이다. 내 시선이 내 생각과 관심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 눈의 흰자위가 그토록 큰 이유는 시선의 방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흰자위와 대비되어 시선의 방향이 명확해지는 검은 눈동자를 통해 인간은 타인과 대상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함께 보기'다.  - page 34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물의 눈과 우리의 눈이 달랐음을.

우리의 눈이.

우리의 흰자위와 검은 눈동자의 의미를.

'함께 보기'위한 것임을.

이런 함께 보기를 요청하는 '리더'가 우리에겐 있을까......

'훔쳐보기'는 '함께 보기'가 어려울 때 흥행한다! - page 36


그리고 의미심장했던 이야기, '공황장애'.

요즘들어 연예인들이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곤 합니다.

"저는 공황장애입니다."

오늘날 스타가 되려면 팬들의 폭력적 '가학 놀이'의 희생양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연예인들의 느닷없는 '고통 내러티브'는 바로 이런 대중의 '감정 폭력'에 대한 '항복 선언'이다. '나도 정말 힘들게 먹고살고 있으니 제발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호소다. 해당 연예인들의 '공황장애'가 '꾀병'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 느닷없이 '공황장애'를 내놓고 고백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정신장애'는 모두가 숨기려고 했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 page 156 ~ 157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날것의 '감정 폭력'이 흥미로운 것이다. 전혀 낯선 형태의 '감정 혁명'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소셜 미디어의 규칙 없는 감정 과잉과 감정 폭력이 지속되면 어떤 형태로든 '감정의 문명화 과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감정의 근대적 자기 강제가 프랑스 펵명에서 시작되었다면, 가상공간과 현실 공간이 융합되는 21세기의 '감정 혁명'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대단한 나라'에 살고 있다. - page 161

왠지 씁쓸한 이야기.

하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듣게되는......

그래서 더 안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그 외에도 '민족'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감정'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가 던진 키워드를 가지고 우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좇아 읽다보면 어느새 우리가 살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끔 해 주었습니다.


그에게 슈필라움은 한 마디로 '외로움'이었습니다.

요즘도 혼자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 외롭고 낯선 공간에서 내가 정말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어리석은 일이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며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습니다. 진짜 외로워야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 내 자신에 대해 진실해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 page 279 ~ 280

결국 인간은 외롭다는 말이 떠오른 대목이었습니다.

그 외로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도 어렵다는 것을 또다시 느끼곤 하였습니다.


책을 읽고나니 나만의 공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공간이 있어야 오롯이 나를 관찰할 수 있고 내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는 곳.

언젠간 그처럼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될 그날을 꿈꾸며 지금은 나만의 작은 공간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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