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노 하나 씨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지요?"
"얼른 시립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 마츠노 사치코 씨가 중태에 빠졌습니다." - page 11
평범한 회사원 '마츠노 하나'에게 어머니 '마츠노 사치코'가 화재로 인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수술실 앞에서 숯덩이가 된 어머니.
힘겹게 하나를 향해 손을 뻗고는 떨리는 입술로
"하…… 하나야."
"응 엄마, 나야."
"하나야…… 윤동주를…… 세일백화점의 운동주 회장을 찾아가……."
"어?"
"진실을…… 알아내. 이 모든 일을…… 되돌려." - page 13 ~ 14
이 말을 남긴 채 떠나간 어머니.
하나는 일본으로 이주하기 직전인 열 살 무렵에 서울에서 겪은 화재 사건을 상기하며 이번 일이 단순 사고나 혐오범죄가 아님을 직감하고
윤동주에 관련된 기사를 찾던 중 대학 시절 교환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친구가 된 기자 '맹준호'도 세일그룹과 관련해 취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갑작스럽게 이런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며칠 전 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유언은 세일백화점의 윤동주 회장을 찾아가서 모든 것을 들으라는 말이었고…….'
이 문장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주 작은 단서라도 좋으니 윤동주에게 닿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게 되고
맹준호는 그녀를 도와주기 시작합니다.
그의 도움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과거 세일백화점의 미인 대회 우승자였음을 알게 되고...
엄마와 윤동주는 도대체 무슨 사이였던 걸까. 기사에 따르면 하나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알고 지내온 것이 분명한데 하나는 왜 그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걸까. 엄마는 도대체 왜 숨을 놓는 마지막 순간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렸을까.
혹시 그녀가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일까? - page 47
하지만 사건을 파헤칠수록...
하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밝혀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일까? 시작은 단순했다. 그저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과 그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새로운 사건이 튀어나왔다. 엄마와 하나 자신이 굴지의 대기업가 얽혀 있다는 것, 그리고 총 세 차례의 화재가 벌어졌다는 것. 뭔가 알아냈다 싶으면 사건은 또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그때마다 예상치 못한 얼굴들과 마주하게 됐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시원에는 가닿지 못한 채 가장자리만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을 그러모으다 보면 결국 온전한 진실에 가닿게 될까? 진실을 알고 난 뒤에도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엄마는 왜 한국으로 건너가, 윤동주를 만나라 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알고, 무엇을 얻기를 바란 걸까. - page 189 ~ 190
끝내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 자신의 익숙한 삶으로 돌아갈 것인지 고민하다 끝내 안식을 얻지 못한 채 캐리어에 담겨 온 어머니의 유해에 시선이 머물게 되는데...
그러다 마주하게 된 빛바랜 양장 노트 몇 권.
'요코하마'라는 글자가 적힌 노트엔 재벌가의 성공 서사 뒤의 담합과 부패, 축적된 재화에 대한 장부였고
표지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앞선 장부들과는 다르게 빼곡한 문장들이 있던 노트엔 엄마가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이 있었는데...
그 모든 세월의 뒤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었다. 무대 위에선 나를 처음 발견해준 사람, 나와 같은 종류의 어둠을 지녔다고 고백한 사람, 나에게 복수라는 이름의 미래를 건네주고, 동시에 내가 쌓아 올린 잔혹한 성의 주인이 되어준 사람. 내 가장 찬란한 순간과 가장 추악한 순간, 그 모든 장면을 함께 했던 바로 그, 사람.
...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미움이라고 부를 수도, 종국엔 증오라고까지 부를 수 있을 그 시간들을. 자꾸만 되뇌게 된다.
그 모든 죄와 사랑의 한중간에 함께했던 그 이름을, 지금도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을 당신의 이름을 조용히,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불러본다.
동주. - page 302
아버지 윤창국에 대한 증오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빼앗고자 했던, 그리하여 결국 왕관을 썼던 동주.
하지만 이 왕관은 지푸라기와도 같았고...
내 머리 위에 얹힌 왕관이, 세상에서 가장 호화롭다 믿었던 그 왕관이, 실은 지푸라기로 엮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손을 대기만 해도 바스러질 만큼 허술하게 꿴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어. - page 337
이제 이 왕관은...
"지푸라기로 만든 왕관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때?"
"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간절하고 애달픈, 더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엮여서 만들어진 왕관이라고. 아주 가볍고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매우 질기고 단단한, 그런 왕관."
"지푸라기 왕관이라……." - page 345
이 세상에 소외된 이들에게 삶의 불씨가 되어주는데...!
우리의 현대사의 민낯과 함께 그려졌던 여자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
간절함이 누군가에겐 구원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었던...
그렇게 허상을 쫓아 살아가다 재가 되어버린 이들...
가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당연한 결과였다고 여겨야 하는 걸까...
또다시 이들의 이야기는 저에게도 한 줌의 재가 되어 흔적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읽고 난 뒤...
타고 난 뒤의 재는...
누구의 몫이 되는 걸까...
아직 저는 그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마지막 장을 차마 덮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이 책을 덮어줄 것인가......
그 사람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