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영화를 탐닉해온 음식 평론가인 '이용재'
<조선일보>에 4년간 연재해온 동명의 칼럼 중 엄선한 글들을 1년 넘게 다듬고 엮어
이처럼 익숙한 영화도 음식을 렌즈 삼아 더 재미있게, 나아가 더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는 에세이 58편을 한데 모았다. <필름 위의 만찬>은 영화 혹은 음식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영화를 본 이들에게는 음식 위주 재감상의 동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며, 안 본 이들에게는 세심한 팸플릿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 page 9
영화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소개된 영화를 거의 보지 않은 저에게는 앞으로 찾아볼 영화 목록을 제시해 주었고
보았던 영화에서는
'어? 이런 음식이 있었나?'
'이걸 이렇게까지 의미를 확대할 수 있다고?!'
음식이 단순히 배경을 채우는 장식이 아닌,
캐릭터의 심리·관계·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보다 장면의 현실감과 몰입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화 속 음식에 관한 뒷이야기 그 이상의 다채로운 지식과 정보를 다루고 있어 저에게는 마치
'영화 잡학사전'
과도 같았습니다.
포문을 열어준 건 <황해>였습니다.
많은 영화 가운데서 음식이 주인공과 벌이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영화로
이런 퍼포먼스는 앞으로도 만나기 힘들다고 하였는데...
신스틸러 할 만한 음식 셋 - 김, 황해 정식, 감자-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초인에 가까울 정도로 열렬히 먹어가며 끈질기게 살아남은 구남이 고향을 앞에 두고 죽어야만 했는지, 그에게 몰입한 나머지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중국으로 향하는 먼 뱃길, 무엇보다 허기에 지쳐 결국 굴복해버린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배를 탄 이후로 그가 무엇을 먹었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 page 21
처절한 대서사적 먹방을 보여주었던 구남.
그의 마지막 식사는 무엇이었을까...
괜스레 가슴이 찡하면서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영화 <신세계>를 또 다른 시선으로 해석했던...
"먹어, 먹어. 여기 송아지 고기 아주 연하고 좋아. 게다가 이거, 한우야 한우."
이중구(박성웅 분)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수하에게 음식을 권한다는데...
저자는 이 장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고 합니다.
아니, 왜...?
송아지 고기라고? 그것도 한우라고? 송아지 고기를 먹는 행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한우로는 구하려야 구할 수도 없다. 한우는커녕 육우조차도 송아지 고기는 식용으로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송아지 고기 판매처가 딱 두 군데 나오는데 모두 호주산이다. 어차피 허구니까 상관없거나, 실제로 한우 송아지 스테이크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치자. 스테이크의 초라한 풍모는 이중구가 발산하는 허세와는 격이 전혀 맞지 않는다. - page 133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죽기 좋은 날이군."
위스키 한잔을 끝으로 이중구는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뻔히 알면서 미련하게 '칼춤'을 춘 대가를 치른 셈이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이중구는 송아지 스테이크를 탐욕해 벌을 받은 것이다. 말이 안 된다고? 너무 가혹하다고? 그래도 신의 손에 의해 죽은 셈이니 조폭의 파벌 싸움에서 밀려 맞아 죽은 것보다는 차라리 낫지 않을까. 어쨌거나 소고기는 먹을지언정 송아지 고기까지 탐하지는 말자. - page 136
음...
솔직히 영화들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렇게 색다른 시선을 이야기해 주셔서 그 영화를 봤을 때 나의 감흥이 살짝 떨어지기는 했지만...
피식!
신선했었습니다.
(그래도 만약 내 친구가 같이 영화를 보고 저렇게 이야기한다면... 친구야, 잘 가, 안녕......)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는 <왕과 사는 남자>였습니다.
어린 왕 이홍위가 노산군으로 강등된 뒤 유배길에 오르게 됩니다.
처음에 노산군은 먹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 목숨을 끊을 시도마저 하지만 차츰 마음이 열리면서 광천골 사람들이 준비한 밥상을 받아 열심히 먹는데...
한편 음식도 꾸준히 등장하지만 의외로 이야깃거리가 잘 우러나지 않는다. 상당 부분 존재가 희미하달까? 밥상이 자주 등장하지만 내용물을 카메라가 그다지 열심히 잡아 보여준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런 가운데 분위기 전환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끼니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어진다. '과연 저 시대에 저렇게 먹었을까?'라는, 고증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 page 370
그렇게 음식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어느새 죽음을 위한 음식 '사약'에 대한 이야기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 초반에서 보여주는 사육신들처럼 원래 중죄를 지은 자는 교수 혹은 참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사대부의 경우 마지막 순간까지 품위를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사약을 내렸다. 죽는 사람 입장에서도 '신체발부 수지부모'에 입각,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체를 온전히 지키고 죽는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렇기에 죽을 사(死)자가 아닌 내릴 사(賜)자를 쓰는, 말하자면 선택 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죽음의 음식이 사약이었다. - page 372
왕위에 올랐던 몸으로 차마 사약을 받을 수 없다며 엄흥도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위탁했던 노산군.
또다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나왔습니다.
오감으로 즐길 수 있었던 영화 이야기.
"당신은 무엇으로 영화를 기억하나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크게 음식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음식이, 소품이, 음악이 허투루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다 영화가 감상이 아닌 분석이 되는 건 아닐까......
뭐,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겠지만 관람자가 아닌 감독의 시선으로 확장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