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 우리는 히말라야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나?
이수지 지음 / 위즈플래닛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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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하얀 눈으로 뒤덮인, 인간은 그 곳을 정복하고자 하지만 자연은 쉽게 길을 터 주지 않는 곳.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오지만 저에겐 그저 바라만 보는 곳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곳을 여행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미국인 남편과 떠난 이 부부.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히말라야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나?

이 문구 역시 그냥 나온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 부부, 좌충우돌 히말리야기에 동행하려합니다.

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인도의 서쪽 끝인 라자스탄에서 동쪽 끝인 다르질링까지 오려면, 기차를 갈아타느라 대기하는 시간이 아예 없다고 해도 꼬박 이삼일은 걸리는 여정이다. 그 먼 길을 무엇 때문에 왔느냐는 내 물음에 아저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설산을 보러요." - page 12

아마도 히말라야를 가고자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아닐까!

그저 산이 보고 싶어서.

그 산을 보고, 걷고, 오르고 싶어서.

이 단순하고도 명쾌한 대답으로 시작된 히말라야의 여행.


히말라야.

역시나 쉽게 인간들에게 발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도, 이들과 같이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도.

마크가 가슴팍에서 작은 술병을 꺼내 뚜껑을 땄다. 한 모금 짧게 넘기더니 옆에 앉은 네이트에게 병을 건넨다. 그 다음은 독일 커플, 앤, 페트라, 더스틴. 나도 한 모금 들이켰다. 작고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것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갔다.

"사진 한 장 찍을게요. 이게 우리 생의 마지막 사진이 될 거야...." - page 33


추위와 두려움, 무서움.

그 공포 속에서도 이들에게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위안이 있었기에 그렇게 조금씩 히말라야에 발을 내딛기 시작하자 히말라야 역시도 그들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여행을 보면서 왜 그토록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가고 싶어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곳을 향하는 발걸음이 결국 나를 향한 발걸음이라는 것을.

조금만 용기를 내면 담장 너머의 것들을 볼 수 있다. 직장을 갖고 승진을 위해 애쓰는 것이 유일한 삶의 방식은 아니라는 것. 정형화된 삶이 조금 덜 불안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더 의미 있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 필요할 땐 돈을 벌지만, 평생 여행하기를 고수하는 삶의 방식 또한 가능하다는 것. 좀 더 불안하고, 위험하고, 불편하지만, 누군가는 오답이라고 하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 방식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모두, 그저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애쓰는 존재라는 것. 누구도 절대적으로 틀리지도, 옳지도 않다는 것. - page 139

그들의 발걸음을 보고 있노라면 요즘 티비에서 방영 중인 <스페인 하숙>에서의 순례자들이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담긴 의미.

잠시나마 감상에 젖어봅니다.


결국 그녀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30분에 한 번꼴로 등장하는 절벽과 경사지고 좁은 벼랑길.

자신의 인생 최악의 날이라며 공포에 흐느끼던 중 저 멀리서 누군가가 보입니다.

"나마스떼"

우리 앞으로 다가온 포터들이 인사를 건넸다. 나마스떼. '내 안에 깃든 성스러운 신성이 당신 안에 깃든 성스러운 신성께 경배합니다.' - page 248

이렇게 다가온 포터들로 인해, 그들이 건넨 인사로 인해 두려움 속 날카로운 조각이 하나 녹아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몽 같던 시간이, 차가운 저 길이, 이제는 과거가 되어 추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여행은 끝이 나고 돌아가는 길.

이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Wait. You can cross. It opens. You are OK. (기다려요. 넘을 수 있어요. 열릴 거예요. 괜찮아요.)" - page 332

 


선뜻 떠날 수 없는 그곳을 향한 이 부부의 용기에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단돈 300루피에서 행복을 살 수 있었던 그곳.

'나마스떼'를 외치며 용기를 주는 이가 있던 그곳.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야 비로소 열리는 그곳.

잠시 히말라야라는 작은 꿈을 꿔봅니다.


이 불량한 부부.

다음엔 어느 곳을 여행할지 기대가 되는건 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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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쉬워지는 주말여행 교과서 여행 시리즈
김수진.박은하 지음 / 길벗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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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혼자일 땐 다가오는 금요일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불금'이라며 밤새 놀 궁리에 마냥 즐겁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금요일이 무서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초롱초롱 눈망울로 저를 바라보면 물어봅니다.

"엄마! 우리 어디가요?"

"응? 그냥 집에 있을건데......(말끝을 흐리며...)"

"그럼 난 심심해서 울지도 몰라!"


그렇게 시작된 인터넷 폭풍검색.

검색만으로도 금요일 밤이 저물어가고.

다음날 아침.

아이는 들뜬 마음으로 나가기를 보챕니다.


매번 이런 패턴이 되니 이젠 검색을 해도 한계가 있고 어디를 가야 아이에게 도움이 될지도 잘 모를 지경에 이르렀을 때!

구세주처럼 등장하였습니다.

교과서가 쉬워지는 주말여행


듬직한 두께를 보니 그저 흐뭇하기만 합니다.

이젠 검색은 안녕~!

이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나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선 <지역별 1박 2일 여행 코스>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전국을 돌아다니는 계획을 짜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이 부분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다가오는 여름방학이 두렵지 않게 된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영역별로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두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사회&역사 영역

몸으로 체험하고 배우는 과학&자연 영역

책 잘 읽는 아이로 키우는 언어&문학 영역

창으력을 키우는 오감 자극 예체능 영역

아이와 함께 온몸으로 노는 체험 학습지


첫 여행지는 바로 '국립 민속박물관'이었습니다.

솔직히 아이와 처음 갔을 때 큰 흥미를 느끼지 않고 그저 뛰다가 온 곳.

그래서 이번엔 아이와 손을 맞잡고 '알차게'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가고자 하는 곳과 관련된 책 추천이 있었고, 그곳에서 아이가 배워야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간략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가기 전 읽을 책 추천은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무작정 찾아가서 이해하는 것보다 우선 사전지식을 가지고 그곳에 대한 이해가, 추억이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주변의 여행지도 추천되어 있었기에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체험 학습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체험만으로 만족하고 끝낼 수 있는 것을 여행을 마치고 아이와 같이 대화를 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을 그리거나 간략하게 적는다면 나중에 교과서에서 배울 때 자신이 경험했던 것과 비교도 할 수 있고 또다른 감흥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꼭! 아이와 작성을 해야겠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는 '자기주도여행'을 위해선 다음의 단계별로 따라하면 되었습니다.

STEP 01 아이와 함께 여행지 선택하기

STEP 02 사전 조사하기

STEP 03 세부 일정 계획하기

STEP 04 아이 기준에서 여행하기

STEP 05 여행 후 복습하기

STEP 06 체험 학습 보고서 쓰기

이렇게 실천한다면 아이도 만족스럽고 부모도 만족하는 여행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책의 뒷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여행 계획부터 마무리까지 아이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세요.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이 책을 아이와 함께 보면서 여행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우리 아이의 밝은 미소가 벌써부터 그려지니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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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어도 추억이니까 - 마음이 기억하는 어린 날의 소중한 일상들
사노 요코 지음, 김영란 옮김 / 넥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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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노 요코'.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딱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백만 번 산 고양이』.

때론 황당하고 이기적이었던 그가 하얀 고양이를 만나 '사랑'을 알게 되고 '가족'을 탄생시키면서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눈을 감은 그 고양이.

지금은 어린 아이들이지만 나중에 같이 읽고 공감하기 위해 두고두고 간직한 책이자 아이들에게 전하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녀와의 인연은 '에세이'였습니다.

저는 일명 '뭐라고'하는 시리즈-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친구가 뭐라고-를 읽으면서  시크하지만 섬세한 그녀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곤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그녀는 추억을 들고 다가왔습니다.

보잘것없어도 추억이니까


왠지 책 표지의 저 고양이.

그녀의 줄무늬 고양이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무래도 저 고양이가 시크하지만 담담히 그녀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그랬던 것인냥 들려줄 것 같았습니다.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와 정착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남몰래 눈물도 훔칠만큼 가슴 찡한 이야기도 있고 달콤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그녀가 그동안 전한 에세이에서의 이야기가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지면서 마침내 그녀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곤 하였습니다.


첫 이야기부터 가슴 한 켠이 아려왔습니다.

<업둥이>

이웃집에 새카맣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짧은 단발머리에 희고 갸름한 턱선, 그리고 늘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웃는, 선택받은 아이라 생각한 업둥이 여자아이 '히사에'.

그런 히사에는 그녀가 일곱 살 때-다롄에 살 때-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예쁜 아이는 빨리 죽는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때 나는 예쁘지 않아서 죽지 않겠구나 싶었다. - page 11

어린 요코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그녀에게 특별한 동화 <인어공주>에 관한 이야기는 전쟁 후 가난한 그녀에게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일까.

눈이 부시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인어공주의 이야기는 할일이 없어진 한창때의 아버지가 땔감도 없이 곤궁했던 겨울, 배를 곯은 자식들에게 줄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아니었을까. 러시아인이나 중국인에게 옷가지를 팔러 가서, 수수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아내를 기다리면서 아버지는 콧물을 훌쩍이며 안데르센을 읽어 주는 일밖에는 정말로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일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는 가끔 <인어공주>를 읽었다. 여섯 살때 느꼈던 통증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때와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진정으로 여섯 살의 통증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수많은 레코드판을 태우며, 시커먼 페치카에 기댄 채 콧물을 훌쩍이며 굶주린 자식들에게 안데르센을 읽어 주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다른 통증이 나를 훑고 지나간다.

인어공주는 아프다. - page 22 ~ 23

물거품으로 사라지던 인어공주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그 인어공주와 줄무늬 고양이가 서로 닮아보이는 건 왜인지......


그녀의 어린 시절은 마냥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밖에서 애들과 싸우거나 괴롭힘을 당해도, 눈물이 맺혀도 울지 않으려 애를 쓰곤 하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중학교에 올라가자, 때리거나 얻어맞는 일 따위는 없어졌지만 오히려 <탱자나무 꽃이 피었어요>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는 시늉을 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오랫동안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게 싫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 시절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죽이고 울었지만 또 다른 내가 나를 달래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편이 인간다운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고개를 흔들며 눈을 부릅뜨고 참던 나는, 인간답지 않았을까. - page 96 ~ 97

그녀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탱자나무'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의 '제제'와 '라임오렌지나무-밍기뉴'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나'.


그녀의 삶을 대하는 태도.

아마 이 이야기로 요약되는 것 같았습니다.

신주쿠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 뒤로 우리는 다시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문득문득 생각났다. 어떤 때는 몹시 화가 나기도 했다. 웃기지 마.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딴 건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면 네가 부러워하는 가난 속에서 살면 되겠네. 부자란 지금은 불행해도 금세 행복해지는 법이니까.

어쩔 때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무슨 연유로 헤어져야만 한다면 얼마나 괴로울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불행에도 가능한 공감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가난을 불행이라 여긴 적은 없었다.

나에게 가난은 다투기도 하고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는 친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것은 아니지만. - page 199


책을 읽고나서 나의 어린 시절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돌이켜 본 그때의 이야기들이 더 특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추억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힘들고 지칠 때 꺼내어 위로를 얻고 살아가나 봅니다.

나에게도 지난 추억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과도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Zion. T의 <꺼내 먹어요>를 들어봅니다.

힘들어요
아름다워서
알아봐줘요 나를
흘려 보내지 마요 나를
사랑해줘요 날, 날
놓치지 마요 - Zion. T의 <꺼내 먹어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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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사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김정완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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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라하면 '여성'이 살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천으로 몸을 휘감은 '히잡'은 더운 나라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몸을 감았어야하는지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더한 것은 '차도르'로 눈만 빼꼼히 나온 옷은 그야말로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을 대변해 주는 의상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전쟁이 끊이지않는, 위험한 곳이라는 점.

군인들이 총을 가지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라든지, 탱크가 지나가는 모습은 티비에서 종종 보이곤 하였기에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중동'이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거부감'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의 힐링 편지가 제 앞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사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살았던 곳, 리야드의 디큐.

그곳이 낯설지 않았던 것은 우리에게 '미세먼지'가 있었다면 그곳엔 '모래바람'이 있었습니다.

서로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의 얘기는 아니지만 그 모래바람이 전한 이야기는 저의 편견 중 하나를 깨주었습니다.

사우디의 모래입자는 너무 가늘어 머릿결에 한 번 착 달라붙으면 감아도 감아도 여전히 끈적입니다. 빗질은커녕 손가락도 안 들어가는데 물탱크에서 나온 물은 결코 차가워지지 않았습니다. 안개와 구분이 안 되는 먼지바람까지 겪고 나니 온몸을 가리는 아바야가 현명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모래바람이 가져다준 생각의 반전이 사우디의 생활에 뒤늦은 너그러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매번 히잡으로 머리를 가리지는 않았지만 식은 밥 대하듯 함부로 다루던 아바야를 세탁소에 맡겨 곱게 다림질해서 입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문화 상대주의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임은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page 39


그녀가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아직도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과 시선이 부끄럽게만 느껴졌습니다.

약한 인간이 살아내는 세상이기에 누구든 마음속의 낙인 하나 있을 터인데 사랑하는 나라, 한국 사회에서 찍어준 이혼의 낙인은 너무도 선명해서 아릿하고 뭉근하게 아팠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품위와 위엄마저 도매금으로 몰수해가던 시선과 매일 부대끼는 삶, 금붕어처럼 눈만 끔벅이며 그나마 쌓아왔던 사회적 관계까지 모두 사라지게 했던 이혼, 무서웠던 세상 속에서 하얗게 지새워야 했던 많은 밤과 숨죽이고 있어야 했던 많은 낮이 감당하기 벅차서 한국을 떠나 사우디에 와서까지 많은 밤을 악몽에 시달려야 했음을 이제는 고백합니다. 자기연민과 자괴감이 구색을 갖추어 따라오기에 더 몹쓸 단어, 이혼. 한국사회의 구박대기가 되기에 충분했던 사람이 낯선 곳에서 예고 없이 낯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니 여러 생각이 날실과 씨실이 되어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했습니다. - page 90 ~ 91


그래서 그녀의 사우디에서의 생활은 보다 적극적이었고, 열린 마음이었으며 누구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인종과 문화의 다름뿐 아니라 인격의 다름마저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곳, <여성 전용 공간, 알마나힐>.

이곳은 리야드의 유일한 여성 헬스센터로 체육관 수업 시간표의 귀퉁이엔 이런 당부의 말도 적혀있다고 합니다.

1. 선글라스 끼고 운동하지 마시오.

2. 운동 중 통화하지 마시오.

3. 운동화 신고 오시오. - page 129

이는 사우디 여성들은 운동은 처네로서의 명예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교육하는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무엇을 입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쥬디스'는 그녀에게 요가 강사 공부를 제안합니다.

"못해." "왜?" "할 수 없는 이유를 대봐. 말 못하잖아. 그러면 할 수 있다는 말이지." - page 134

그렇게 그녀는 사우디와 영국을 오가며 영국 정부가 인정하는 퍼스널 트레이너 자격증을 취득하게 됩니다.

가입 절차가 힘들었던 공공 체육관에서도, 입회비가 터무니없이 비쌌던 알마나힐 헬스센터에서도 동양 여자는 유일하게 저 혼자였지만 운동으로 친구를 만나고 운동으로 사우디 여인들의 삶에 한발짝 더 다가가고 마침내 운동으로 제 자신이 구원받았습니다. '열사의 끝, 그 영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 것이라는 시인의 예언이 제게도 왔고 그것은 머리도 마음도 아닌 몸의 의지였습니다. 한 번도 진심으로 곁을 내주지 않았던 몸이 어느새 제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 page 136


'사막'이 전한 이야기 중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만난 우정도 아니지만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다는 동질감으로 사우디에서 처음 만난 까무잡자바한 동양 여자에게 속사정을 털어놓게 만든 곳, 그곳이 바로 사막이었습니다. 음예 공간의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었습니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는 삶이 허약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했지만 세상의 끝이라 느껴지는 지점에서 뜻밖에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 page 284


사막에서 주워온 화석들을 파티오에 늘어놓고 하염없이 쳐다보면 수천 년을 지나온 지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 삶에도 지층 한 개는 생겼을 것 같습니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화석의 고르지 못한 표면에 남아있는 모래처럼 제 안에서도 저렿게 악착같이 달라붙는 집착과 고집이 있으리라 짐작하면서 시간과 함께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감사, 가주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에 나른한 행복감이 밀려들었습니다. - page 293 ~ 294


제가 알던 '사우디'와는, '사막'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더 내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기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결국 그곳엔 '사람'이 있었고 '인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의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사막에서 온 편지를 읽지 않았다면 저 역시도 그 본모습을 모른채, 편견과 색안경으로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사우디'의 모습을 본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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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맛 - 고요하고 성실하게 일상을 깨우는 음식 이야기
정보화 지음 / 지콜론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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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떠오르는 맛, '상큼'.

'여름'이면 떠오르는 맛, '화끈하게 맵고 뜨거움'.

'가을'이면 떠오르는 맛, '아련함'.

그리고 '겨울'이면 떠오르는 맛, '따스함'.


아마 우리나라에 살고 있기에 4계절마다의 맛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만나게 된 책에서 저자 '정보화'씨는 이렇게, 조심스레 입을 떼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곱씹으며 이 계절을 통과한다. 그리고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이 서 있는 이 계절도 조금 더 풍요로웠으면 좋겠다. - page 9

계절의 맛

 


그렇게 이야기는 '봄'부터 시작하여, '여름', '가을'을 거쳐 '겨울'을 맛을 찾아 떠나고 있었습니다.


봄의 맛에서 '계란밥'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계란밥'이 '봄'과 관련이 있었던가...... 라며 의아했었지만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아침의 '기상'.

꽃들에게도 '기상'을 알리는 계절이 '봄'이었다는 사실을......

그녀의 기상부터 시작되어 등굣길까지의 전쟁 아닌 전쟁같은 모습은 제 어릴 적을 회상하게도 하였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엄마의 시계는 왜 30분, 많으면 1시간이나 빨리 돌아가서 나를 일찍 깨우는지......

"지금 안 일어나면 지각이야!"

아마 모든 엄마들에게 학생을 대하는 지침서 중 하나인가 봅니다.

그리고 일어나선 꾸역꾸역 먹게되는 밥.

특히나 저의 '계란밥'은 그녀와는 조금 다른, 마지막 참기름 한 방울, 그 꼬신 참기름 냄새의 유혹은 짜증내던 내 마음도 계란처럼 몽글몽글하게 그렇게 무너뜨리게 됩니다.

이 밥을 김과 함께 싸 먹으면......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맛!

아는 맛이기에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 또 공감하였습니다.

계란밥은 역시 작은 그릇보다는 큰 그릇이 더 어울린다. 국그릇에 가볍게 계란밥을 담고 작은 종지에 깍두기도 담아낸다. 벌써 깍두기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몇 개 안 되는 깍두기 때문에 흥이 깨질까 싶어 종지에 빨간 국물도 졸졸 부어 놓았다. 깍두기 냄새를 맡으니 갑자기 식욕이 확 당긴다. 근사한 아침 식사가 완성됐다. 오늘은 왠지 집밖을 나서면 등굣길 아침 풍경이 펼쳐질 것만 같다. - page 43


계절마다의 담긴 음식 이야기는 가끔 그 계절과 상관없을 듯한 음식들도 있었지만 그 음식에 담긴 일상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아! 맞아!'

라고 공감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음식이야기 후엔 음식 만드는 과정이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기에 앞서 읽은 이야기와 함께 상상의 요리를 하며 맛을 음미하곤 합니다.


읽으면서 꼭 그 시간에, 그 곳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었습니다.

<목요일 밤 열 시에 당기는 맛/ 출출할 때 쌀국수 한 그릇>

이 이야기는 고된 하루를 보낸 직장인들이 출출함이 밀려오는 밤 열 시에, 목요일에 오는 쌀국수 트럭에서의 한 그릇.

마치 포장마차에서의 국수나 우동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쌀쌀한 바람이 있어야 더 맛있어지는 맛!

시원한 바람이 분다. 차분해진 공기가 습하지 않고 고슬고슬하다. 하물며 쌀쌀한 기운마저 돈다. 마치 베트남 여행 중에 들렀던 달랏의 날씨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기분이 났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야외에서 쌀국수를 먹을 수 있는 노상이 많지 않아 그날의 기억이 더 진하게 올라왔다. - page 158

사실 쌀국수 뿐만아니라 거리의 노상이 많이 사라진 것이 현실입니다.

포장마차의 추억은 그저 옛드라마에서의 모습으로 남는......

지친 이들을 달래주던, 위로의 장소이기도 한 그곳이 조금은 남아서 우리에게 따스한 국물 한 잔을 선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국물까지 깔끔하게 마시고 나니 배가 빵빵하게 부르다. 행복이 별건가 싶어지는 순간이다. 다들 이 행복을 맛보기 위해 목요일 밤 열 시, 불 켜진 이 트럭으로 모이는 게 아닐까. - page 159


'음식'이 전하는 위로.

아마도 그 속엔 '엄마의 손길'이 있었기에, 내 '인생'이 담겨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많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놓고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걸 -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 중에서


뜬금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제가 '엄마'가 되어보니 조금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리고 엄마가 해 준 음식들이 그리웠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엄마에게 찾아가서 예전처럼

"밥 주세요!"

외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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