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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어도 추억이니까 - 마음이 기억하는 어린 날의 소중한 일상들
사노 요코 지음, 김영란 옮김 / 넥서스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사노 요코'.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딱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백만 번 산 고양이』.
때론 황당하고 이기적이었던 그가 하얀 고양이를 만나 '사랑'을 알게 되고 '가족'을 탄생시키면서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눈을 감은 그 고양이.
지금은 어린 아이들이지만 나중에 같이 읽고 공감하기 위해 두고두고 간직한 책이자 아이들에게 전하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녀와의 인연은 '에세이'였습니다.
저는 일명 '뭐라고'하는 시리즈-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친구가 뭐라고-를 읽으면서 시크하지만 섬세한 그녀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곤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그녀는 추억을 들고 다가왔습니다.
『보잘것없어도 추억이니까』
왠지 책 표지의 저 고양이.
그녀의 줄무늬 고양이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무래도 저 고양이가 시크하지만 담담히 그녀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그랬던 것인냥 들려줄 것 같았습니다.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와 정착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남몰래 눈물도 훔칠만큼 가슴 찡한 이야기도 있고 달콤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그녀가 그동안 전한 에세이에서의 이야기가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지면서 마침내 그녀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곤 하였습니다.
첫 이야기부터 가슴 한 켠이 아려왔습니다.
<업둥이>
이웃집에 새카맣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짧은 단발머리에 희고 갸름한 턱선, 그리고 늘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웃는, 선택받은 아이라 생각한 업둥이 여자아이 '히사에'.
그런 히사에는 그녀가 일곱 살 때-다롄에 살 때-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예쁜 아이는 빨리 죽는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때 나는 예쁘지 않아서 죽지 않겠구나 싶었다. - page 11
어린 요코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그녀에게 특별한 동화 <인어공주>에 관한 이야기는 전쟁 후 가난한 그녀에게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일까.
눈이 부시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인어공주의 이야기는 할일이 없어진 한창때의 아버지가 땔감도 없이 곤궁했던 겨울, 배를 곯은 자식들에게 줄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아니었을까. 러시아인이나 중국인에게 옷가지를 팔러 가서, 수수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아내를 기다리면서 아버지는 콧물을 훌쩍이며 안데르센을 읽어 주는 일밖에는 정말로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일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는 가끔 <인어공주>를 읽었다. 여섯 살때 느꼈던 통증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때와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진정으로 여섯 살의 통증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수많은 레코드판을 태우며, 시커먼 페치카에 기댄 채 콧물을 훌쩍이며 굶주린 자식들에게 안데르센을 읽어 주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다른 통증이 나를 훑고 지나간다.
인어공주는 아프다. - page 22 ~ 23
물거품으로 사라지던 인어공주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그 인어공주와 줄무늬 고양이가 서로 닮아보이는 건 왜인지......
그녀의 어린 시절은 마냥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밖에서 애들과 싸우거나 괴롭힘을 당해도, 눈물이 맺혀도 울지 않으려 애를 쓰곤 하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중학교에 올라가자, 때리거나 얻어맞는 일 따위는 없어졌지만 오히려 <탱자나무 꽃이 피었어요>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는 시늉을 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오랫동안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게 싫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 시절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죽이고 울었지만 또 다른 내가 나를 달래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편이 인간다운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고개를 흔들며 눈을 부릅뜨고 참던 나는, 인간답지 않았을까. - page 96 ~ 97
그녀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탱자나무'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의 '제제'와 '라임오렌지나무-밍기뉴'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나'.
그녀의 삶을 대하는 태도.
아마 이 이야기로 요약되는 것 같았습니다.
신주쿠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 뒤로 우리는 다시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문득문득 생각났다. 어떤 때는 몹시 화가 나기도 했다. 웃기지 마.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딴 건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면 네가 부러워하는 가난 속에서 살면 되겠네. 부자란 지금은 불행해도 금세 행복해지는 법이니까.
어쩔 때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무슨 연유로 헤어져야만 한다면 얼마나 괴로울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불행에도 가능한 공감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가난을 불행이라 여긴 적은 없었다.
나에게 가난은 다투기도 하고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는 친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것은 아니지만. - page 199
책을 읽고나서 나의 어린 시절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돌이켜 본 그때의 이야기들이 더 특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추억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힘들고 지칠 때 꺼내어 위로를 얻고 살아가나 봅니다.
나에게도 지난 추억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과도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Zion. T의 <꺼내 먹어요>를 들어봅니다.
힘들어요
아름다워서
알아봐줘요 나를
흘려 보내지 마요 나를
사랑해줘요 날, 날
놓치지 마요 - Zion. T의 <꺼내 먹어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