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곱슬머리에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하던 그, '김정운'.

사실 그가 쓴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 문구가 사로잡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행복은 결코 오지 않는다

요즘 저 역시도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정리를 하고 있었기에 그의 이 한 마디가 유독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서의 그의 이야기.

그 속엔 과연 그의 '진정한 그'가 담겨 있을지 궁금하였습니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슈필라움'.

'공간'을 뜻하는 독일어 '라움'으로부터 '놀이'와 '공간'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 공간'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슈필라움'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다. - page 6

그에게 '슈필라움'은 여수의 '바닷가 작업실', 그리고 '미역창고'였습니다.

여수라는 낯선 공간에서 혼자 좌충우돌하면서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이라고 정의 내렸다.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말로 내 아이덴티티'라는 이야기다.' - page 12


그곳에서 그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면서 자신만의 '슈필라움'의 의미와 그로인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성찰이 이야기되고 있었습니다.


우선 '시선'에 대한 그의 이야기 속엔 우리의 '훔쳐보기'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온 사회가 관음증이다. 소셜 미디어는 내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의 주인들에게 어제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시로 알려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시시콜콜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 노출증이다. 관심이 없는데도 자꾸 보라고 한다. 결국 훔쳐보고야 만다. 관음증과 노출증은 동전의 양면이다. - page 32

그랬습니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지인들의 일거수를 알게되고 보게되는,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의 일거수까지도 알기도 합니다.


시선은 곧 마음이다. 내 시선이 내 생각과 관심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 눈의 흰자위가 그토록 큰 이유는 시선의 방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흰자위와 대비되어 시선의 방향이 명확해지는 검은 눈동자를 통해 인간은 타인과 대상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함께 보기'다.  - page 34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물의 눈과 우리의 눈이 달랐음을.

우리의 눈이.

우리의 흰자위와 검은 눈동자의 의미를.

'함께 보기'위한 것임을.

이런 함께 보기를 요청하는 '리더'가 우리에겐 있을까......

'훔쳐보기'는 '함께 보기'가 어려울 때 흥행한다! - page 36


그리고 의미심장했던 이야기, '공황장애'.

요즘들어 연예인들이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곤 합니다.

"저는 공황장애입니다."

오늘날 스타가 되려면 팬들의 폭력적 '가학 놀이'의 희생양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연예인들의 느닷없는 '고통 내러티브'는 바로 이런 대중의 '감정 폭력'에 대한 '항복 선언'이다. '나도 정말 힘들게 먹고살고 있으니 제발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호소다. 해당 연예인들의 '공황장애'가 '꾀병'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 느닷없이 '공황장애'를 내놓고 고백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정신장애'는 모두가 숨기려고 했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 page 156 ~ 157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날것의 '감정 폭력'이 흥미로운 것이다. 전혀 낯선 형태의 '감정 혁명'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소셜 미디어의 규칙 없는 감정 과잉과 감정 폭력이 지속되면 어떤 형태로든 '감정의 문명화 과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감정의 근대적 자기 강제가 프랑스 펵명에서 시작되었다면, 가상공간과 현실 공간이 융합되는 21세기의 '감정 혁명'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대단한 나라'에 살고 있다. - page 161

왠지 씁쓸한 이야기.

하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듣게되는......

그래서 더 안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그 외에도 '민족'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감정'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가 던진 키워드를 가지고 우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좇아 읽다보면 어느새 우리가 살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끔 해 주었습니다.


그에게 슈필라움은 한 마디로 '외로움'이었습니다.

요즘도 혼자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 외롭고 낯선 공간에서 내가 정말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어리석은 일이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며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습니다. 진짜 외로워야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 내 자신에 대해 진실해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 page 279 ~ 280

결국 인간은 외롭다는 말이 떠오른 대목이었습니다.

그 외로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도 어렵다는 것을 또다시 느끼곤 하였습니다.


책을 읽고나니 나만의 공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공간이 있어야 오롯이 나를 관찰할 수 있고 내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는 곳.

언젠간 그처럼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될 그날을 꿈꾸며 지금은 나만의 작은 공간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려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