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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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의 추천이 있었던 이 소설.

하지만 두께감과 러시아 배경이라는 것이 쉽사리 손길이 가지 않았던...

그러다 이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신사분의 이야기가 어떨지...

시대의 잔혹함도 진정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추억을 지울 수 없다는 걸 알려주는 위대한 소설. 한 사람의 매력, 지혜, 철학적 통찰로 가득한 이 책은 독자에게 끝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_《커커스리뷰》

모스크바의 신사



1922년 6월 21일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 경마 클럽 회원, 사냥의 명인인 서른세 살의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내무 인민위원회 소속 긴급 위원회에 출두하게 됩니다.

이그나토프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당신의 증언을 모두 고려해 보면 우린 그 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를 썼던 명민한 영혼이 자기 계급의 부패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굴복했으며, 지금은 한때 자신이 지지했던 바로 그 이상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소. 이를 근거로 한다면 우리로서는 당신을 이 방에서 내보내 수감하는 게 온당할 것이오. 하지만 당의 고위직 중에는 혁명 이전 단계 영웅의 범주에 당신을 넣는 사람들이 있소. 그래서 위원회의 의견은,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그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다음 사건.

그리하여 백작은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평생 나갈 수 없다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고 스위트룸에서 허름한 하인용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감옥이자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호텔.

백작은 그 속에서 활약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 백작은 생각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거야.

사실 지구는 지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동시에 태양 주위를 돈다. 은하수도 돈다. 더 큰 바퀴 속의 작은 바퀴인 셈이다. 천체는 돌면서 시계의 작은 망치가 내는 종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자연의 소리를 낸다. 그 천체의 종소리가 울리면 아마 거울은 불현듯 자신의 보다 더 진정한 목적에 맞게 일할 것이다. 즉, 우리 인간에게 자신이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그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백작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수염을 깨끗이 깎아줘요." 그가 이발사에게 말했다. "깨끗이 밀어줘요, 친구." - page 65 ~ 66

호텔 잡역부 아브람, 호텔 식당 지배인 안드레이, 호텔 식당 주방장 에밀, 호텔에서 생활하는 어린아이 니나 등 호텔 내 사람들과 동료로 지내며 꼬마 숙녀의 놀이 친구, 유명 배우의 비밀 연인, 공산당 간부의 개인교사, 수상한 주방 모임의 주요 참석자(그리고 호텔 총지배인의 눈엣가시)로서 백작은 새 삶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시간이 흘러 성숙한 여성이 된 니나.

뭔가 개인적인 용무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는데

"죄송해요, 알렉산드르 일리치. 전 시간이 별로 없어요. 2주 전에 우리는 이바노보에서 소집되어 농업 계획의 미래에 대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회의 첫날, 레오가 체포되었어요.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그 사람이 루뱐카에 구금되어 있다는 걸 알았지만, 면회를 허락하질 않네요. 전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나 않을지 두려웠어요. 그러다가 어제, 그 사람이 5년의 교정 노동형 판결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오늘 밤 세보스틀라크행 기차에 태운다더군요. 전 거기까지 쫓아갈 거예요. 그래서 제가 거기 정착할 때까지 소피야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요." - page 368

남편, 딸, 체포, 루뱐카, 교정 노동...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충격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지만 백작은 니나의 부탁을 들어주게 됩니다.

하지만 니나는 그 달에도, 그해에도, 아니 영영 메트로폴 호텔에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소피야의 아버지가 된 백작.

소피야로 놀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다친 소피야를 안고 호텔 밖을 나가게 되고 소피아가 더 멋진 삶을 살아가기 위해 스파이가 되기도 하는 등 백작의 삶은 한층 다양해지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그렇게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펼쳐진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의 이야기.

저마다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역사의 모든 전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그 말이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람은 예술이나 상업, 또는 사고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갈림길마다 매번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들이야. 마치 '삶'이란 것이 그 자체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받을 요량으로 때때로 그들을 불러낸 것처럼 말이지. 소피야,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이제까지 인생이 나로 하여금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장소에 있게 한 것은 딱 한 번뿐이었어. 바로 네 엄마가 너를 이 호텔 로비로 데려온 날이란다. 그 시간에 내가 이 호텔에 있었던 것 대신에 러시아 전체를 통치하는 차르 자리를 내게 준다 해도 난 절대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 page 656 ~ 657

뭉클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사의 품격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를 통해 참 많은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 page 609

정말 잊지 못할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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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28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이유로 읽기를 미루고 있는데 꼭 읽어봐야겠군요.
심지어 뭉클하기까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