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부 종합병원의 신경과는 어두컴컴한 지하에 있습니다.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오세~요!"
괴상한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몹시 뚱뚱한 중년 의사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1인용 소파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습니다.
살갗이 흰 바다표범 같은 용모에 가운 명찰에는 '의학박사 · 이라부 이치로'라고 씌어 있는데...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 역시도 왠지 보통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들이었습니다.
뾰족한 물건만 보면 오금을 못 피는 야쿠자 중간 보스,
어느 날부턴가 공중그네에서 번번이 추락하는 베테랑 곡예사,
장인이자 병원 원장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정신과 의사,
프로 입단 10년째인 베테랑 3루수가 1루 송구를 두려워하는 프로야구 선수,
자신의 작품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인기 작가.
이처럼 아이러니하고 황당무계한 강박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한 명씩 찾아오면 이라부와 황금콤비를 이루는 간호사 '마유미'가 환자를 결박해놓고 다짜고짜 주사부터 찌르고 보는 막가파식 치료법이 시작됩니다.
"자, 입 다물고 주사부터 한 대 맞자구!"
그리곤 이라부는 환자들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다는 미명 하에,
예사로 일어나는 야쿠자들의 담판 현장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갖은 훈수를 두기도 하고,
하마 같은 몸으로 공중그네 서커스에 도전하기도 하고,
일탈충동에 시달리는 환자와 의기투합하여 육교에 기어 올라가 이정표를 슬쩍 고쳐놓기도 하는 등
황당무계하고 제멋대로의 치료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기적처럼 치유되어버리고 우리는 이들을 바라보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받게 됩니다.
"아~자!" 아이코는두 계단씩 뛰어 올라갔다. 밖으로 나가서도 내쳐 달렸다.
"야호~옷~"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 page 306
그래!
이 느낌!
신선했기에 유쾌했었음에!
그때의 재미있었다는 감정이 다시 올라왔었습니다.
사실 최근에 『라디오 체조』를 읽었을 때 이 느낌이 사라져 조금 당황하곤 하였습니다.
재미보다는 위로였달까...
시간이 흘러 나도 변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조금은 실망감도 있었는데 다시 이 시리즈의 첫 권을 읽으니 그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차근히 한 권 한 권 읽어봐야겠습니다.
상상을 불허하는 엽기 의사 '이라부'.
"선생님. 저는 카운슬링을 받으러 온 건데요."
"소용없다니까. 이야기해서 낫는 거면 의사가 뭔 필요야." - page 210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완전히 터무니없는 말 같기도 하고...
의심스럽지만 그가 툭! 던진 말 한마디에, 그가 하는 행동을 통해 공감과 심심치 않은 위로를 받게 되는데...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든다.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은 앞으로도 여러 번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들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 page 304 ~ 305
덕분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 지도 모르겠습니다.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적극적인 노력 없이 공허한 일탈충동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우울증과 강박증에 빠지고 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위트와 풍자로 포착한 '오쿠다 히데오'.
마냥 웃을 수만은 없지만 그럼에도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가끔 지치고 힘들 때면 저도 조심스레 문을 두드려봐야겠습니다.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