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검고 커다란 것.
본래 인간이 아니었던 존재, 그렇다고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닌 것.
하지만 삿된 것들과는 달리 악의 없이 존재하는 것.
바로 '괴이'
어쩌다 길을 잃고 저승에 굴러들어 와 죽은 것, 삿된 것과 함께 엉겨 살던 괴이들을 이끌 존재 '귀구'가 등장하자 염라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껴 천신의 이름을 빌려 조건을 붙이는데...
'저승의 것, 특히 명부만큼은 절대 손대지 말 것'
16○○년 모월 모일 밤
다리 위에 한 여자가 서 있습니다.
"기다려. 나도 곧 따라갈 테니."
어렵게 자랐지만 성실했고 체격 또한 건장했던 하나뿐인 동생이 대감마님의 검에 손을 댔다는 주인집 도련님의 모함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내가 죽어서라도 꼭……."
이 여자 앞에 어둠보다도 검은 것이, 벌건 눈을 번쩍 뜨곤 여자를 빤히 쳐다보며
"내가 복수해 줄게."
...
"대신…… 나한테 줄래? 네 껍데기."
여자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에 됩니다.
"네 이름이 뭐야?"
"……단야."
"기대해도 좋아."
이른 아침부터 고시원을 나서는 '강연준'의 발걸음이 분주합니다.
어릴 때부터 연준을 덮친 불운은 그에게서 부모를 앗아 갔고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서글픔이나 우울함에 빠질 새도 없이 친척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아 학업을 마쳤지만 언제부턴가 앞길이 보이지 않은...
연준을 도와주던 친척들이며 지인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연준의 사건 사고에 휘말려 하나둘 그를 멀리하게 되고
연준 자신조차도 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귓가의 들려온 목소리
'더 이상 버티기 힘들 때 나를 찾아오렴.'
어릴 적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친척들의 손에 이끌려 찾아갔던 호암사로 향하지만 자신의 기억과는 다른 호암사였고
법호 스님 대신 헌승이라는 사람이 그를 맞이해줍니다.
그러다 헌승으로부터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연준.
"건방진 놈."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하찮은 잡귀로도 존재하지 못하게 해주마."
펑 소리와 함께 지귀의 몸이 터져버렸고
지귀가 빠져나간 헌승의 몸은 힘없이 축 늘어지고 순식간에 바스러지더니 가루처럼 날려 그 형체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떠는 연준에게 여자가 다가가
"내가 먹어줄게, 너."
...
"네 불운을 없애려고 그 첩첩산중까지 간 거 아니야? 그거 내가 해주겠다고."
제 불운을 떼어 먹어주겠다는 여자.
연준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여자를 따라가게 되는데...
'귀구부동산'
이곳은 인간세계에 살고자 하는 괴이들에게 인간의 껍데기를 구해다 주는 것으로
"스스로 생을 버리려는 순간 그 인간의 이름은 희미하게 저승명부에 나타나기 시작해. 정말로 죽음이 목전에 다다랐을 때야 명부에 제대로 오르지. 그만큼 생은 자기 의지에 달린 거야."
...
"그러니 명부에 이름이 완전히 오르기 전에 계약해서 껍데기를 받고, 그 혼은 내가 좋은 곳에 모셔다드리는 걸로."
...
"거기까지 간 사람들은, 우리 표현대로 하자면 생의 불씨가 다 꺼졌다고 해. 그 불씨를 다시 살려내는 건 웬만한 노력으론 불가능한 일이고."
...
"사는 건 힘들잖아. 난 그들을 최대한 돕는 것뿐이야."
연준은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인간의 껍데기를 얻은 괴이들이 벌이는 기기묘묘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러다 연준은 자신이 불운했던 이유를...
그리고 단야와 자신의 우연이 아닌 인연을 알게 되는데...
과연 앞으로 펼쳐질 이들의 이야기...!
그 아이를 구한 게 정말 옳은 일이었을까. 만약 제가 내려왔던 결정들이 옳은 게 아니었다면……. 그저 오만하고 독단적인 판단이었을 뿐이라면……. - page 230
삶을 포기하려는 인간
인간의 '껍데기'를 가지고서라도 인간이 되고픈 괴이
이들을 중개하는 수상한 부동산
이곳에서 펼쳐진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낯선 우리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면서 상처를 주고
행복을 바라면서 욕망에 휘둘리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실패하고 후회하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를 묻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대화가 인상적이었는데...
"연준."
차귀가 떠난 곳을 바라보던 단야가 연준을 불렀다. 단야는 연준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솔직해지는 건, 참 힘들어. 그렇지?"
남에게는 솔직해지라 하면서도 연준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단야는 그런 모순된 연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물어왔다. 다행히 딱히 대답을 바라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래, 참 힘들어." - page 162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라도 솔직했다면......
조금은 맘 편히...
인간다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왜 우린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 비로소 깨닫는 것일까...
"인간이란 게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있다 한들 눈앞에 보이는 무언가를 붙들고 싶어 하니까요. 얼굴이 나온 사진이든 이름이 적힌 위패든, 혹은 추억이 담긴 물건 무엇이든." - page 210
무엇이든 붙들고 싶어 하는 그 마음...
결국 인간도 그랬지만 귀이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욕심을 내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며, 다른 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혼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음에,
서로를 이해하려 태도를 보며...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괜스레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인간일까......?
아니, 그전에 나는......?
힐긋 쳐다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