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 음영이 그려진 평면적인 묘사법.
예전의 저에겐 그저 스쳐 지나갔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의 그림에 공감을 넘어 위로를 받게 되었을까...
1961년, 생의 말년을 맞은 호퍼는 <햇빛 속의 여인>을 그렸다. 그의 후기작 중 완성도가 높은 그림이자, 니비슨을 모델로 한 대표 작품이다.
그림 속 여인이 햇살 아래에 홀로 서 있다. 그녀는 벌거벗은 채 창문을 바라본다. 여전히 호퍼 특유의 쓸쓸함이 없지 않지만, 이제는 그보다 강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용기와 희망의 공기다.
...
아쉽게도 세상은 당분간 더 삭막해지고, 더 딱딱해지기를 반복할 듯하다. 그럴수록 호퍼의 존재감 또한 커질 게 분명하다. 공감과 위로로 공허함을 씻기 위해, 그 자리를 담담한 용기, 차분한 희망으로 채우기 위해. 그의 그림을 이제라도 품어야 할 이유이지 않을까. - page 41
그 시대에 그랬듯이 지금의 우리도 그의 그림으로부터 위로와 해소감을 넘어 '그럼에도 살아가자'는 식의 격려까지 받아보는 건 어떨지...
그리고 이 화가의, 이 명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리야 레핀'
러시아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로 꼽히는, 특히 인물과 인물 사이 감정선을 예민하게 표현하는 예술가.
주로 혁명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지만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처럼 투사와 투사의 가족 사이 복잡한 심리를 담아낸 입체적인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이야기.
사실 이 그림 또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입체적인 그림이다. 그저 엉켜버린 가족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그린 듯하지만, 그것으로 해석을 끝낼 수 없는 작품이다. 그가 특히나 공을 들인 부분은 물감으로 정성껏 펴 발라 칠한 햇살이었다. 이러한 빛은 그림의 분위기가 암울해지지 않도록 힘껏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 광경에서 깨달은 바 있는 혁명가가 이제라도 다른 면을 보인다면, 그리고 가족들 또한 다시 한번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면, 꼬이고 막힌 관계 또한 햇빛에 눈 녹듯 풀릴 수 있음을 기대하게 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 사이 맺어진 사랑이란 또 무엇인가. 그것은 산산조각 나도 다시 꿰맞출 수 있는 끈끈한 존재가 아니던가. - page 267
가족과의 사랑도 필사적인 노력으로 가꿔야 하는 것을.
샘솟는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불행이 멀리서도 착실히 찾아오는 것을.
가까운 이에게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 거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 행동해 각별함을 전해야 함을.
저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