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리움에 관하여
남원정 지음 / 렛츠북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그리움'
아마 '사랑' 다음으로 찾아오는 감정이기에 더 애틋하면서도 아련함을 느끼곤 합니다.
여기 '그리움'에 대한 소설집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저 역시도 '그리움'의 시작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움에 관하여』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인생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자, 변한 것 중 하나는, 흥미로운 일이 그다지 없다는 게다. 흥미가 사라진 자리는 그저 따분하지만, 안온하기도 한 일상의 조용한 반복만 계속될 뿐이다. - page 8
어느 중년 남자의 고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과거로의 회상을 통한 '그리움'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흔적'이었습니다.
눈부신 젊음은 야속하게도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기억은 오래도록 그날의 행복을 기록해 두었다. - page 12
낮은 집들과 좁고 구부정한 길들이 엮어낸 소박한 정물화 같은 곳에 장식 하나 없이 무채색의 마름모꼴 모양을 하고 있는 성당을 향해 가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반해버렸고, 그날 이후 빠짐없이 일요 미사에 참석하며 신부의 강론을 좋아하게 되면서 이 남자의 일요일은 소박한 기쁨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지켜봄'이 지속 가능할지 나로선 당최 알 길이 없었다. 사랑은 시간 속의 고뇌였다. 나의 행동과 생각을 강제하고, 숙명적이라는 착각을 요구하고 독점하고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가방을 어깨에 메고 몸을 틀어 계딴을 올라 나의 곁을 스쳐 갔다. 계단참에 엉거주춤 선 채, 그녀가 흘리고 간 기억 자락을 주워든다. 그녀의 얼굴에는 젊음이 발산하는 도도함이 서려 있다. 창백한 살결은 우아했고 짙은 눈의 미세하고도 온전한 떨림은 연민을 자아낸다. - page 16
하지만 그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그녀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군대에 가게 되고 뜻하지 않은 혼자만의 이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군대에서도 여전히 성당을 다니며 신부의 강론을 듣는 그의 모습에서도 그리움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연이란 이런 것일까......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는 것일까......
그와 그녀는 다시 재회를 하게 됩니다.
알고보니 그녀 역시도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음에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움도 간직하게 됩니다.
그녀의 졸업과 다가온 마지막 순간임에......
다시 그는 현재로 돌아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얼마 전 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확진까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지만, 나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삶의 무수한 자국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그냥 술술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해가 갈수록, 또렷한 듯 보이던 것들도, 어느 추리 소설에서처럼 내 머릿속 뇌가 꾸미고 부풀리고 왜곡하여 만든 가상세계로 치장된 모습들도, 급속히 나를 떠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그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나는 단 하나의 느낌으로만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그녀의 눈, 코, 입, 얼굴형, 뒷모습 등을 정말이지 아무것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느낌만이 가득하다. - page 29
다른 소설에서의 '그리움'도 저마다의 색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앞세 읽었던 <그리움에 관하여>에서는 '그레이' 색이었다면 <마젠타 입술>에서는 '진한 와인'색이었습니다.
왜 나는 제주도로 도망치듯 왔는가? 이곳을 밖의 세상으로 기억하는가? 나의 의지는 미약하고 그만큼 외부로 향한 불안한 탈출은 언제나 원점으로 회귀하곤 하였다. 내가 어디에 머물던 그 물리적 가치에 중심을 쏟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변방이고 변방에 있다고 그 변방이 외부의 중심으로 다가서지는 않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슬픔과 무기력, 걱정과 고정관념 그리고 자학이 뒤섞인 혼란 상태로 머물렀다.
"서로를 옭아매게 될 거야. 결국에는..."
마음이 회오리친다. 나는 포켓 속에서 담배를 더듬어 꺼낸다. 끝이 지저분하게 너덜너덜한 담배. 조심스레 펴서 불을 붙인다. 여자의 잇새에 아스파라거스 조각이 끼었다. 어지간히 익어버린 체념. 나는 체념한다. 고로 존재한다. I give up, theregore I am. - page 108
그리고 마지막 소설 <당신의 뜻대로>에서 울려퍼지던 이 음악, <If it be your will>.
If it be your will
To make us well - Leonard Cohen 의 <If it be your will> 중에서
이 가사가 유독 인상깊었습니다.
책을 덮고나니 저에게 이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노영심의 <그리움만 쌓이네>.
원곡은 다른 이가 불렀지만 유독 가수 노영심만의 창법으로 부른 이 노래가 저의 '그리움'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
아 나는 몰랐네 그대 마음 변할 줄
난 정말 몰랐었네
오 나 너 하나만을 믿고 살았네
그대만을 믿었네
오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 노영심의 <그리움만 쌓이네> 중에서
제 추억 속에 고이 접어두었던 기억들을 하나 둘 꺼내어 봅니다.
사랑, 이별, 추억, 그리고 그 사람.
어느 새 희미해졌지만 나 역시도 누군가에겐 그리움일테니 너무 쓸쓸함에 빠지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