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게 자신이랑 무슨 상관이랴.
시루는 무표정한 얼굴로 장부를 사이트에 저장했다. 손님이 저주를 원하면 자신은 만들어 주면 그만이다. - page 12
'장시루'
민속학자인 엄마가 출장지에서 가져온 궤짝에 숨겨져 있던 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두께가 한 뼘은 넘을 정도로 두꺼운,
일부러 불길하게 보이려고 연출한 건지, 아니면 양을 잡는 김에 아까우니 피도 써 버리자는 구두쇠 정신인 건지 모르겠지만, 피로 쓴 듯한 붉은 글과 그림이 가득한
이 책의 첫 장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볼 법한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스티커로 저주를 거는 방법
왠지 이 책이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 같았던...!
그래서 시루는 다크웹에서 저주 마켓을 운영하며 돈을 받고 타인의 저주를 스티커로 만들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루는 스티커를 떼고 다니는 남학생 '소우주'를 만나게 됩니다.
"왜 너한테 스티커가 보이지?"
"아! 너 스티커 주인이 아니라 스티커 제작자구나? 요즘 학교에 스티커가 많이 보여서 혹시 우리 학교 학생이나 선생님이 만드는 건가 싶었는데……. 너였구나." - page 88
소우주도 저주 책을 가지고 오면서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이 책을 만든 분이며 시루가 가지고 있던 책에는 없던 내용을 전해주었는데...
"맞아.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주 스티커는 떨어져서 땅으로 스며들어. 저주 스티커에 깃든 부정적인 에너지가 땅에 흡수되는 거지. 부정적인 에너지가 축적되다가 더 이상 땅이 품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거야. 작게는 진도가 낮은 지진이나 규모가 작은 해일이 일어나고, 크게는 산사태, 폭풍, 대형 산불, 신조다 큰 지진이 발생해." - page 93
처음엔 믿지 않았던 시루도 자신이 일으킨 저주들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게 발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두려워지기 시작하는데...
저주의 악순환을 멈추고 재앙을 막기 위한 시루와 우주.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정말 몰입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단순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묻지 않고
선과 악의 경계를 뛰어넘어 작동하는 감정들과, 그 감정이 어떻게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지를 끈질기게 추적하며 우리에게도 질문을 건넸습니다.
맞다. 나도 그랬다.
누군가의 분노를 먹고 살았고, 어디선가 일어난 비극을 기회 삼아 스티커를 팔았다. 돌아온 피해가 내 몫이 아니라는 이유로 눈을 감았고, 그저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를 만드는 일에만 집중했다. 내가 반만해를 벌하는 건, 정말 '정의'일까? 어쩌면 그건 내 죄책감을 지우려는 위선이 아닐까? - page 241
누구나 살아가면서 상처받고 싫은 감정이 증오가 되거나 원망으로 변하곤 합니다.
그럴 때 저자는 우리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부딪쳐야지. 부딪쳐도 깨지지 않도록 널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지금은 이 아이가 입김만 불어도 날아가게 생겼잖아. 네가 널 지켜 줘. 땅에 딛고 선 두 다리에 힘주고 눈에도, 가슴에도, 손가락에도 힘을 빡 주고 계속 널 지켜 내는 거야. 널 욕하고, 때리고,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거야. 처음에는 힘들 수 있어. 하지만 갈수록 나아질 거야. 약속해. 오늘부터 널 지켜 내는 연습을 하면 시간이 지나 네 앞에 어떤 멍청이가 나타나도 너는 깨지지 않을 수 있어." - page 204
마음이 부서지려고 할 때,
나쁜 마음이 날 잡아먹으려고 할 때,
내가 날 지켜줘야 한다고
그러면서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그 손...
어른인 저도 따스하게 느껴졌었습니다.
덕분에 제 마음도 조금은 단단해졌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위한 저주 스티커, 구매하시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젠 당당하게
"아니요!"
를 외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