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서점 2 - 긴 밤이 될 겁니다
소서림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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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등 유럽권에서도 후속작 문의가 쇄도하며, 전 세계 독자들을 애타게 했던 이 책.

저는 이번을 계기로 알게 되었습니다.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점주인

그 이야기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도 다시 서점을 찾는 손님의 이야기

이를 환상적이면서도 따듯하게 그려낸 <환상서점>

그 두 번째 막이 시작되었습니다.

긴 밤을 지나 길 잃은 자들의 서점이 다시 문을 열었다.

그들에게 남은 '영원'이라는 난제,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나 또 다른

어둠으로 끌어들이려는 서점의 본신本身!

환상서점 2

겉에서부터 신비로운 기운이 흐르는 장소.

주인을 닮아 차분한 분위기에 이야기로 가득한 서점.

이곳은

길 잃은 자들의 휴식처이자 갈 곳 없는 영혼들이 발을 디딜 자리, 땅에 묻히지 못한 이야기가 비로소 잠을 이룰 안식처이기도 하고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서점을 지켜왔고, 그 시간 동안 한 사람만을 기다린 '서준'과 그 남자와 이별하고 다시 재회하게 된 '허연서'가 머무는 곳

입니다.

그리고 이 둘에게는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었으니...

비록 영원이란 족쇄가 시시때때로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지만, 서주는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지금이 좋았다. 잃는다는 상상조차 두려울 정도였다. - page 18 ~ 19

"앗, 차가워!"

연서의 머리 위로 떨어진 물방울.

고풍스러운 서점의 천장, 대들보와 기와지붕의 골격이 멋스럽게 어우러진 사이, 그곳에서 물이 새고 있었는데...

이런 사태가 일어날 때면 침착함을 잃지 않던 서주가 이번엔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놀랠까? 아무리 잘 관리했다고 하들 여긴 오래된 건물인데. 오백 년 전부터 몇 번을 거듭 고쳤다지만, 낡을 대로 낡았을 터였다. 그 긴 시간 동안 누수가 한 번도 없었을까? - page 20

궁금해진 연서.

그런 연서에게 이 서점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려던 찰나,

"귀한 분이 오셨군요."

마마, 즉 천연두를 관장하는 역신 '각시손님'이었습니다.

과거 역병으로 사람들을 휩쓸었던 각시손님과 역병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냈던 한 의원 사이에서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그려지고 난 뒤 각시손님은 떠나기 전 한 마디를 건네는데...

"오늘 초대해 주어 고마웠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네."

초대장...?!

긴 세월에도 아직 귀신이 되지 않았으니, 서로 만나기를 청합다(千秋未鬼 相面願求)......

서점의 평소 같지 않은 결함, 정체 모를 초대장.

이는 서점의 본신 '도깨비'의 짓이었습니다.

책무덤에서 태어난 '책도깨비'

그에겐 가질 수 없었던 것이 있었는데...


영원을 무기 삼아 서점을 멸하고 그들을 어둠으로 끌어들이려는 서점의 본신.

연서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서점을 잃고 싶지 않아. 그리고 저 가여운 도깨비를 구해주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며 분한 듯 소리 질렀다. 끝을 코앞에 두고 이렇게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 - page 207

과연 어떤 결말을 맺을지...

모든 걸 퇴색시키는 절대적인 시간, '영원'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감내하기엔 너무 큰 짐인데...

"영원은 모든 걸 퇴색시킵니다. 기쁨, 슬픔, 분노,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모든 마음을 재로 만들어요. 무감각, 그게 영원입니다. 지나치게 오래 사는 건 좋은 게 아니에요. 걸음을 떼지 못하고 홀로 남을 뿐."

"그래서 내가 남기로 했잖아요. 또 내가 힘들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 그런 거라면......"

"그뿐 아니라."

...

"사랑만으로 영원을 견딜 수 있을까 싶어서." - page 62

그래서 연서는 서주에게 이런 질문을 건넵니다.

"당신을 이곳에 남게 만드는 건 영원인가요, 아니면 다시 찾아올 나인가요?"

그리고 난 뒤 연서는 이 말을 건네는데...

"잊지 마요.. 과거의 당신을 구한 건, 당신 스스로였다는 거."

이 소설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음침하고 기묘했지만 왠지 모르게 위로받게 된 이야기.

옥토, 저승차사 외에도 전통적인 캐릭터들이 더해져 K-판타지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이 소설.

왜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던 대목이었습니다.

소설은 또다시 우리에게 기약을 두었는데...

다음에는 어떤 이들이 이곳에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줄지...!

또다시 돌아올 연서를 기다리며

저는 앞서 읽어보지 않았던 1권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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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서점 2 - 긴 밤이 될 겁니다
소서림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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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판타지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이 소설. 다음 편도 빨리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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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팅쌤 코바늘 키링 야채 편 - 작고 귀여운 캐릭터 키링 20종으로 코바늘 시작!
신은영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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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코바늘을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코바늘도 종류대로 사고

시작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1년이 지나고...

아이와 함께 쇼핑을 하다 보니

뜨개 한 야채 인형 키링이 눈에 띄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보자마자

"엄마!

코바늘 배운다면서 배웠어?

나 저거 만들어주세요~"

아......

이제는 진정 배워야 할 때인가 봅니다.

유튜브를 검색하면서 기본을 배우던 중!

'니팅쌤'을 알게 되었고

아이가 말했던 그 작품 영상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구독을 누르고 배속을 최대한 느리게 해서 보았지만...

어! 렵! 다!!

그러다 책으로도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냉큼!

벌써부터 다 만들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는데...

묵혀두었던 코바늘과 자투리 실들을 가지고 직접 해 보았습니다.

내가 직접 만드는 손뜨개 키링

뜨개가 처음이어도, 코바늘이 처음이어도

니팅쌤과 함께 키링 만들기로 쉽고 재밌게 뜨게 해요!

니팅쌤 코바늘 키링 야채 편


사실 영상을 보면서 배울 땐 도안이 필요 없었습니다.

몇 코 뜨세요~

사슬뜨기 몇 번, 짧은뜨기 몇 번처럼 일러주시기에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데...

그래도 코바늘을 할 줄 안다면 도안 정도는 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저도 이번에야 도안 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캐릭터 키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주제는 '야채 캐릭터'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채 20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야채 모형만이 아닌 야채 특징에 따라 MBTI가 있었습니다.

제 MBTI인 ISTJ는 '감자'

우리 첫째 따님의 ESFP는 '옥수수'

둘째 따님의 ENFP는 '완두콩'

처럼 나중에 키링을 만들게 되면 MBTI에 맞게 만들어 선물하기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저는 찐 초보라...

아직 야채에 팔, 다리를 붙여주는 작업은 고난도로 느껴져 첫 장에 소개된

따뜻한 수호자 ISFJ '고구마'를 해보려 합니다.

누구나의 집에는 각종 뜨개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희 집에는 뜨개실이 딱 두 개가, 그것도 길이가 짧은 것이 존재하네요.

(이것도 누가 남긴 것인지...)

아무튼 책 속에 있던 만드는 법 영상 QR코드를 찍어 영상과 함께 책을 펼쳐 시작하였습니다.

1단, 2단...

8단까지는 어찌어찌해서 떴는데...

색이 바뀌는 구간이 나오자마자 멘붕이...!

그런 저를 위해 <과정 사진>에서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해서 만들어낸 저의 첫 작품!

부끄럽지만 소개해 보려 합니다.

실이 짧아 길이도 짧고...

뭔가 건방져 보이는...

원래대로 만들었다면 비슷했을까요...?!

그래도 첫 작품이라 개인적으로는 너~무 뿌듯하네요!

이렇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걸 보니...

어?!

왠지 이 책에 소개된 20가지 야채들을 모두 만들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기는데요!

언젠가 저 사진처럼 멋지게 만들 수 있겠죠...!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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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이정미 옮김 / 윌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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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백세 시대를 맞았지만...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래서 이 책을 보자마자 눈길이 갔습니다.

100년을 살아낸 할머니.

그녀가 처방은 어떨지...

잠시 저도 마음을 기대고자 합니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마주한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전해 온 이야기

"힘들고 지치는 날, 약국으로 오세요.

100살 할머니가 이야기를 들어드릴게요."

100세 할머니 약국

도쿄의 번화가 한 모퉁이에 1923년에 문을 연 약국.

이곳에는 약국과 똑같은 세월을 살아온 '히루마 에이코' 씨가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무더위가 찾아오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도

어김없이 이곳에 선 지 75년.

동네 사람들은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면

어쩐지 힘이 솟는다고,

올 때마다 악수를 하며 기운을 받아 간다고,

그녀가 건네는 손과 말 한마디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약과 함께 넌지시 건넨 이야기가 여기 이 책에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뭐 그리 특별한 이야기랄 게 없는데요.

저는 그냥 평범한 약사라서요."

특별할 게 없어도

마주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전해 온 이야기이기에...

'다정함' 가득한 처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가만히, 천천히 읽어보기를 권해 봅니다.

그래야

'괜찮아'

'넌 혼자가 아니야'

며 어깨를 토닥여주며 스스로를 안아줄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는데...

'피곤해'

되돌아보면 한 게 별거 없는데...

최근에 몸이 안 좋아지면서 입만 열면 무기력함을 토로했는데...

'피곤해'처럼 나도 모르게 입버릇같이 나오는 말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보내오는 메시지입니다. 자꾸 '피곤해', '귀찮아', '싫어', '힘들어' 같은 말이 나온다는 건 몸으로 치면 미병(未病, 병은 아니지만 병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간 단계) 상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대로 그냥 뒀다가는 무언가 탈이 나고 말 거라는 일종의 신호라고 할 수 있지요.

몸은 똑똑히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몸과 마음의 소리에 좀 더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 page 33 ~ 34

'피곤해'라는 말에 반응해서

사실은 지치지 않았는데도 몸이 말에 대꾸라도 하듯이 실제로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에

활기를 잃지 않기 위해 피곤하다는 말을 쓰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유독 '함께'라는 말에 와닿았었는데...

특히나 팬데믹 이후 외로움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함께 어울려 사는 존재입니다. 내가 건강할 때는 누군가에게 손을 빌려주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지요. 저는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야 합니다. 내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하지요.

다만, 때로는 나를 위한 말이 듣기에 불편한 경우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꼭 필요한 순간에 진심으로 직언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것 역시 잊으면 안 되지요. - page 103 ~ 104

"오늘은 어제와 다른 새로운 인생의 시작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하루를 연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곤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다루고,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시간을 소중히 다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강약'과 '장단'이 있는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고

차곡차곡 쌓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도 깊어져 간다고 합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백 년을 살아도 좋은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어진 이 시간을, 이 생을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요!

그 누구보다 다정한 100세 할머니 히루마 에이코 씨가 전한 안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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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경성 2 -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뚫고 피어난 불멸의 예술혼 살롱 드 경성 2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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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경성』을 만났을 때 너무 좋았었습니다.

'우리'의 화가들이 소개된다는 점이 이끌렸었고

그중에서도 식민지 암흑기와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예술을 향한 우리 예술가들의 집념과 열정을 엿볼 수 있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화가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살롱 드 경성』의 후속작.

과연 이번엔 어떤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다룰지 기대하며 읽어보았습니다.

난세의 구한말 우리 고유의 미를 지켜낸 한국화의 거장들과

개화의 물결 속 첫길을 낸 근대미술의 선구자들까지

우리 예술의 명맥을 잇고 마침내 세계로 뻗어 나간

위대한 화가들의 고뇌와 분투를 만나다!

살롱 드 경성 2

"지금 이렇게 살아남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죄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한'이 우리들에게 남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노년의 이응노가 파리에서 한 일본인 작가에게 한 말로부터 이 책은 시작되었습니다.

한때 의병에 참여했던 많은 유생들이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를 당하자 목숨을 끊었고

그 후로도 3·1운동 중 일제에 항거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

한반도 바깥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

제2차 세계대전 중 끌려가 죽은 학도병들,

분단 조국에서 어이없이 숙청된 지식인,

암살된 정치인,

한국전쟁의 폭격 속에서 죽어간 동포들까지

이응노는 20세기를 관통하면서 삶의 한가운데에서 이들의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을 것이고

그래서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법정에 섰을 때, 그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도 이 법정에서 일본인 법관들 앞에 죄인처럼 서 있었을 장면이 갑자기 떠올라 엉엉 울어버렸다고 회고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죄도 없이 죽어간 사람들...

그중에서도 예술가들도 많았는데...

이들의 작품, 이 한 많은 예술가들의 ㅈ가품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근대미술관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그들의 한을 헤아리며 우리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더해 주었습니다.

마치 이응노의 <군상>이 전하듯이

이들 군중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이들은 다 함께 시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춤을 추는 듯 보이기도 한다. 저항하고 분노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기쁜 것 같기도 하다. 입을 벌린 채 돌진하는 이들의 소리는 기쁨의 함성인가? 고통의 절규인가? 이들에게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각기 다르지 않은, 마치 한 덩어리의 감정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기쁨과 슬픔이 더 높은 차원에서는 실제로 하나인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중요하고 확실한 것은 그러한 감정이 무엇이든 이들은 무언가를 향해 '다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그림은 모두 제목을 '평화'라고 붙이고 싶어요. 저 봐요. 모두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민중 그림 아닙니까?" - page 268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장은 1800년 후반에 태어난 한국화 거장들을

일제강점기 전통 한국화의 맥을 잇고자 고군분투했던 오세창, 고희동, 이상범, 안중식 등의 이야기를

2장은 예술혼 하나로 시대와 개인의 불운을 이겨낸 화가들을

물감을 입으로 씻어가며 붓을 놓지 않았던 박생광, 어둠 속 불상을 그린 전화황 등의 이야기를

3장은 새로운 예술의 길을 개척한 이들을

김종영의 조각, 유강열의 공예, 천경자의 독자적 회화 세계 등의 이야기를

4장은 세계로 뻗어 나간 화가들을

파리 예술계에 입성한 남관, '살롱 드 메'를 밟고 유럽에서 한국의 정신을 전파한 이응노 등의 이야기를

총 23명의 작가 이야기가 묵직한 울림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리곤 하였습니다.

그 시대에 예술가들이 느꼈던 불안감, 연약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그럼에도 꿋꿋이 나아갔던 불꽃같은 예술혼에

몸과 마음이 벅찼다고 할까...

나의 나약함에, 어리숙함에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이 깊었던 '박생광' 화가.

1904년 러일전쟁이 한창일 때 태어난 박생광.

진주고등농림학교 재학 시절, 그가 그림에 놀라운 재능이 있음을 알아본 일본인 교사가 그의 일본 유학을 도왔고

도쿄에서 꽤 저명한 화가였던 오치아이 로후의 신임을 받아, 그의 화숙에서 조교로도 일했습니다.

이중섭, 김환기 등이 활동했던 자유미술가협회에 작품을 출품했고

간혹 조선에 다녀가긴 했지만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일본에서 20년 넘게 살았던 그.

해방 후 귀국했지만 사회적으로 일본색을 탈피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채색화 자체가 죄악시되었던 탓에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1974년 70세의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본에 가 3년간 수련과 제작 활동에 집중하고 돌아와 드디어 자신의 화풍을 정립하게 됩니다.

1977년 서울 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그는 생애 처음으로 후원자를 얻게 되었고

"죽기 전에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으니, 나를 도와달라."

한국의 오방색인 황·청·백·적·흑이 화면을 가득 뒤덮은,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불교와 무속을 믿음의 대상이라기보다 존경하고 사랑할 만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았는데...

박생광은 불교, 무속, 민속(탈, 장승, 민화)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한국의 기층문화를 탐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층문화란 아무리 새로운 사상이 들어와도 저변에 깔려 변하지 않는 '민초'의 자생적 문화를 가리킨다. 한국의 민초는 온갖 애증과 고통을 안은 채 아주 단순한 바람을 갖고 있었다. 아프지 않게 해달라, 헛되이 죽지 않게 해달라, 억울하지 않게 해달라...... 무언가 대단히 잘되기를 바라기보다는, 그저 액운을 물리치는 데 만족한다.

한국의 기층문화에는 애통함과 어리숙함과 염원이 뒤범벅되어 있지만, 또한 뭔지 모를 장엄함과 강인한 저력이 숨 쉬고 있다. 그래서 박생광의 작품은 집에 걸기에는 너무 기가 세고 무섭게 느껴진다. 왜 그렇게 센 그림을 그리냐는 질문에, 박생광은 "후학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 문화의 뿌리를 더듬어 찾아내고 새로운 색채와 기법으로 표현하여, 이를 후대에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졌다. - page 120 ~ 121

1984년 7월에 후두암 판정을 받게 된 그.

아마도 후두암에 걸린 이유가 늘 입으로 빨아서 뱉어낸 경면주사 때문일 것이라 하는데...

물감을 아끼기 위해 입안에서 살살 물감을 빨아낸 후 물감 접시에 조심스레 뱉어 다시 사용했는데

물감을 아껴가며 후세에 보여주고자 했던 그림...

왜 그동안 몰랐던 것일까......

157센티미터의 키에 40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던 '소인'

그의 마지막 작품 <노적도>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습니다.

박생광은 화실에서 "송충이처럼 기어들어가" 잠을 자면, 간혹 꿈을 꾼다고 말했다. "내가 두 손을 꼭 쥐면 어린애가 되어 두둥실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그는 그렇게 꿈같이 이승을 떠났다. - page 122

그리고 근대미술사의 빛나는 화가들 이름 옆에 친구이자 후원자로 등장하는 '정무묵'

그는 스스로는 주로 호떡으로 끼니를 때워 '호떡 사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지만 골동을 수집하고 예술가 친구들을 후원하는 일에는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소장했던 작품들은 대체로 가난한 화가들의 것이 많았는데...

그가 있었기에 우리에겐 훌륭한 화가가, 작품들이 존재함에,

뿐만 아니라 예술품을 사랑하되 그것을 개인의 자산으로 생각하지 않고 공공의 유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지닌 서세옥의 부인이자 정무묵의 딸인 정민자 여사까지

이들로부터 우리의 예술품에 자부심을 가져야 함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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