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이 의미심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소개글을 보았더니


정신 병원에서 자란 소년의 눈에 비친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의 유쾌한 공존


심상치 않은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미 소설 이전에 연극으로 먼저 발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이 작품.

그에 힘입어 발표한 소설은 부작 시리즈로 모든 책이 출간 직후 슈피겔 베스트셀러 차트에 진입,

독일에서만 3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세계 11개국에 수출되었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이 정도면 이 작품은 반드시 읽어야 했습니다.


배우이자 연출가 요아힘 마이어호프의 유쾌하고 탁월한 데뷔작


어린이청소년 정신병원 한가운데에서 자라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아이러니하지만 눈부시고, 고통과 사랑이 공존하며

산 자와 죽은 자가 손을 잡고 끝까지 걸어가야 할 삶에 대하여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정신병원이 집이었던 소년 '요아힘'

아버지는 어린이청소년 정신병원 원장이었는데 이들의 집은 시설의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매일 아침 등굣길의 절반은 정신병원 경내를 지나가야 했고

천오백 명이 수용된 이들이 밤이면 통곡인지 환호인지 모를 비명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습니다.

그런 요아힘이 갓 학교에 들어간 어린 시절부터 혼란스러운 청소년기, 청년이 되어 집을 떠나기까지의 삶이 담겨 있었는데...


무엇보다 이 소설의 말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의 이야기로부터 진한 여운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과거란 사실 미래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고 확정되지 않은 곳이 아닐까 하고. 흔히 우리는 내 뒤에 놓인 것이야말로 확정된 것이자 완료된 것이자, 이야기되기만 기다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것은 이른바 아직 만들어가야 할 미래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만일 과거 또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철저히 파고들어 재구성한 과거로부터만 열린 미래 같은 것이 생겨난다면? 이런 생각이 나를 짓누른다. 그럼에도 가끔은 아직 내 앞에 놓인 삶이 내게 맞게 재단된, 피할 수 없이 끝까지 걸어가야 할 구간처럼 느껴진다. 끝까지 조심조심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야 할 하나의 선처럼.

그래, 나는 이제 믿는다. 내가 기억의 꾸러미를 다시 하나하나 풀어 꺼내놓을 때, 겉으로 확실해 보이는 과거에 대한 믿음을 접고 과거를 혼돈으로 받아들이고 형상화하고 꾸미고 기념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나의 죽은 이들이 모두 다시 살아나 친숙하면서도 내가 지금껏 인정한 것보다 더 낯설고 자율적인 존재가 될 때 비로소 나는 현재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야말로 미는 그 영원한 약속을 이행하고 불확실해지고, 하나의 선이 하나의 면으로 넓어질 것이다. - page 478 ~ 479


과거의 확실성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혼돈 속에서 과거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지금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과거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가능성으로서의 미래가 열리다는 것을

한 소년의 삶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요아힘에게 세상 사람들은 유해하였습니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기 일쑤였고 골칫덩이였던 그.

오히려 정신질환자라고 불리는 페르디난트에게서 공감과 위로를 받았고

유일하게 무서워했던 '종지기'는 그저 커다란 종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울리는 것 외에는 무해하고 심지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면서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살펴보면

아버지는 정작 가족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외도를 일삼았었고

어머니는 가정에 헌신하였지만 그녀마저도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무신경한 남편에게 지칠 때면 발작적인 히스테리를 부렸던...

그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관찰하며 나아갔던 요아힘을 바라볼 때면 가슴 한편이 아려오곤 하였습니다.


정상과 비정상.

그 기준은 무엇일까...

오히려 이 경계를 허물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해'라는 자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억눌렸던 과거의 기억들이 날아오르며 비로소 자유로워진 요아힘.

이젠 제 자신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준비를 해 보려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래스메이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작가분 덕분에 알게 된 명화가 있었습니다.

(역시나 화가 이름은... 검색해야 하지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이 모델에 대한 여러 추측만이 존재하고

이 당시 화가들이 상상의 인물을 그리거나 연습 삼아 그리는 인물 연구화로 '트로니' 중 하나로 추정되지만...

저에게는 소설로 강한 인상을 남겼었습니다.

예술적 심미안과 섬세한 고증을 바탕으로 인물의 숨결과 한 시대의 공기를 완벽하게 되살려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이번에 읽게 된 책의 작가님이신 '트레이시 슈발리에'

사실 명화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책을 읽을 때 '소설'임에도 소설이 아니었던,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읽는 내내 장면들이 그려져 화가의 시선이 마치 나의 시선과도 같이 느껴졌던

정말 그때 그 책을 만나고선 화가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던......

(세월이 흐르면서 흐지부지했지만...)

한동안 작가님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제 관심도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는데...

(24년도에도 작품을 내셨네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찾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주 귀고리 소녀』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신작

이 문구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어떤 이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그려낼지 기대하며...

연휴 동안 읽어보았습니다.

사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다!

차별받는 여성에서 열정적이고 독창적인 예술가로!

시간, 전통, 생존, 그리고 사랑 이야기!

글래스메이커


첫 페이지, 첫 문장을 보면...!

우리는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때는 1486년, 르네상스가 한창인 시기, 그리고 베네치아는 유럽과 그 외 세계 많은 지역의 무역에서 중심지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의 도시는 영원히 부유하고 강력할 것처럼 느껴지고

그중에서도 우리가 손에 돌을 들고 베네치아의 북쪽 끄트머리에 서서, 곤돌라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무나로 유리 섬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오르솔라 로소'

우리의 주인공입니다.

무라노에 살지만, 아직 유리공예를 시작하지 않은...

유리 제작은 남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그녀의 가문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무너져가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관습을 어기고 유리공예에 뛰어들게 됩니다.

남성들에게 여성의 창작품이 받아들여지려면 완벽해야 했기에 죽기 살기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오르솔라.

그녀의 인생은 그야말로 납작한 조약돌이 물수제비를 뜨듯 뛰어오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오르솔라는 고개를 듭니다. 이제 서른일곱 살입니다. 오르솔라와 그녀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여덟 살 더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인근 도시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베네치아는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고통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면서 그 세월 안에서 너무 길게 어정거리지 않도록 우리의 길을 늘리고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역병으로 격리되거나 집이 봉쇄되는 사건이,

주요한 혁명(미국 독립 혁명, 프랑스 민중 혁명), 전쟁, 산업화, 관광화 등으로 베네치아와 무라노의 위상이 바뀌게 되면서 이제

무라노의 유리공예 산업은 전성기에서 점차 쇠퇴하게 되고

베네치아는 교역 중심지에서 관광 중심지로 변하게 됩니다.

유리구슬 사업이 예전만큼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가 없었던 오르솔라...


오르솔라...

역경을 견뎌내고 그녀가 만든 구슬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같이 구슬을 만든 사람들의 역사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겼을 모습이...

왠지 처연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장면이 더없이 울컥하게 하였습니다.

'유리 돌고래'

10대 시절의 연인인 안토니오.

같이 떠나자는 안토니오의 제안을 거부하고 가족 곁에 남은 오르솔라.

그를 향한 마음을 주머니에 늘 들어 있는 유리 돌고래처럼 함께 했었는데...

그 마음이 시간을 흘러도 변치 않게 다시금 돌고 돌아와 또다시 그녀 앞에 나타남에...

오르솔라는 잠깐 머뭇거린다. 요새는 이 돌고래들이 든 서랍을 그렇게 자주 열어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씨." 그녀는 말한다. "자리에 앉아요." 그를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 page 508

그 영롱한 유리 돌고래 빛이 제 마음속에도 오랫동안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한 여인의 일대기 속엔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시대의 역사가, 그녀라는 한 사람이, 예술가로서의 삶이...

조용하지만 강인했고 잔잔하면서도 불꽃같은 감동이 공존하며 복잡 미묘한 감정에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점점 현대로 넘어오면서는 그 시대를 살아가기에 더 공감하면서, 몰입하면서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구보다 인물들을 촘촘하게 그려내며 한 장면 한 장면을 다층적으로 그려내 마치 하나의 작품을 보는 것 마냥 생동감과 경이감을 불러일으켰던 트레이시 슈발리에.

이번 작품 역시도 매혹적이었고

영화화하기에 충분하였고

오르솔라라는 인물을 또다시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그녀의 대를 이어가는 이들은 또 어떤 삶을 살아갈까......

지금의 흐름 속에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어딘가엔 오르솔라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이를 만나게 되면 말없이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근·현대 미술...

솔직히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물방울 화가'라 불리는 '김창열' 화가님의 작품을 직접 관람한 뒤

'천경자' 화가의 작품을 보고...

점점 우리의 화가들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픽! 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근대의 숨결과 현대의 몸짓이 맞물리는 교차점을 섬세하게 포착하였다는데...

그동안 알지 못했던 화가들을,

그들이 건넨 말들을

지금의 우리에겐 어떤 위로로 다가올지 기대하며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통과 모더니즘의 절묘한 교차

삶과 예술의 본질을 함께 사유하다

근대의 숨결과

현대의 몸짓이 맞물리는

우리 그림 이야기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부 '나와 당신의 도시'는 경성과 서울의 다채로운 모습을 담은 풍경화들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근대의 예술가 김주경은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1927년)에 서양식 건물이 들어선 거리를 통해 변화하는 1920년대 경성을 모습을 그렸고

현대의 예술가 정영주는 <도시-사라지는 풍경 531>(2020년)에 불 켜진 작은 판잣집이 빼곡한 달동네 풍경을 담으며 건넨 이야기가...

새로움이 일어난다. 변화하고 움직인다. 지나가고 흘러간다. 머물고 떠난다. 잊히고 그리워한다. 도시에서의 삶은 그러하다. 치열한 도시 속에서의 오늘이 괴로웠다면 지나간다고 다독여보고, 어제가 아쉬웠다면 새로운 날들이 다가옴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다. 도시에서의 낮과 밤을 살아내는 모두에게, 그리고 한때는 전부였던 지금은 멀어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언제 어디서든 너의 안녕을 바란다"고. - page 26

2부 '경계선 위의 존재들'은 외지인·여성·장애인 등 시대적·사회적 체제에 의해 경계로 떠밀린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나혜석의 <자화상>(1928년) 속 모던걸이 꾹 담은 입술이 묻는 말 "너는 근대의 신여성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대해

이재현의 <아이돌>(2020~2023년)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흠집 하나 없는 인형이기를 바라는 시선들을 통해

우리는 태어난다. 성별은 주어질 뿐이다. 각자가 던져진 생 안에서 분투한다. 그 길 위에서 여자 또는 남자라는 이유로 아플 일들이 줄어들었으면. 나혜석이 지금의 세상을 보는 마음은 어떨지 묻고 싶다. 이재헌이 바라는 여성과 남성을 넘어서는 인간다움에 대해서도. 다시 계절의 끝자락이다. 당신의 자화상이 자주 웃음 짓기를. - page 116

청각 장애를 넘어선 화가 김기창은 <군마>(1955년)에서 표현했듯이 해방과 전쟁의 시기를 넘고 들리지 않는 세계를 딛고 나아가리라는 다짐을

현덕식이 인간 내면의 욕망들을 그리고 싶었다는 <유시도>(2024년)를 보며

불쑥 튀어 오르는 내 속의 욕망들에게 말을 건네본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당신도 부디 자책하지 말기를. 작은 힘듦도 크게 느껴졌던 추운 날들이 지나간다. 봄은 늘 온다. - page 145

3부 '계절을 통과하는 감각'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과 계절감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겨울을 표현했던 이성자와 이채원의 그림이 전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는데...

혹한의 날들이다. 이 계절이 끝나지 전 한 번 더 눈이 내리기를 바라본다. 새하얀 눈길 위에 나의 발자국을 남기리라. 이성자의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 속 고목처럼 당당하게. 이채원의 <고요의 바다> 속 얼음 조각상에 나의 온기를 맞대며. - page 213

4부 '내면의 소용돌이'와 5부 '삶에 흐르는 이야기'는 삶의 본질적 요소들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예술가라는 자아가 지닌 욕망과 불안, 사랑, 우정, 연대 등에 대하여...

그중에서 저는 이번에 이중섭 전시를 볼 예정이라 그의 이야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국민화가" "소 그림의 대가" "비운의 천재"

이중섭을 이야기할 때면 하는 말들.

하지만 그 이면엔 애달픔에 서글퍼집니다.


류노아의 <실낙원>(2021년)은 유학 생활 중 한동안 몸이 심하게 아파

"가족이 너무 그리웠지만 아프다고 바로 돌아갈 수 없었다."

7년 만에 귀국한 뒤 돌아와 그린 이 그림.

금속을 벗겨낸 듯 바래진 색의 인물들이 있다. 시간은 흐른다. 맺어짐에서 점점 멀어진 오늘날의 가족의 모습처럼. 흐릿한 변색들로 채워졌음에도 여운이 깊다. 류노아가 그리는 세계다. - page 326

이 그림들이, 화가가 전한 이야기로

가족이란 양면적이다. 마법 같은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곳보다 따스하나 칼에 배일 때도 있다. 이중섭은 가족 모두가 단단하게 엮어 있기를 바랐고, 류노아는 닿지 않는 각자의 공간을 표현했다. 당신은 어느 가족을 꿈꾸는가. 완벽한 낙원은 없다. '함께'하거나 '홀로' 있거나. - page 326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조만간 직접 이중섭과의 대화를 해 보려 합니다.

총 47인의 근현대의 예술가를 바라보며...

그중에서 한 예술가가 인상에 남았습니다.

바로 노은주 화가.

<스틸 라이트 2> 작품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스틸 라이트 2>의 꽃은 사라질 듯 흘러내린다. 피어나기를 멈춘 듯, 형태만을 남겨두고. 신기하다. 아슬아슬하게 엉켜 간신히 매달려 있음에도 동적이다. 말라버린 가지에 감겨 있는 물질들이 움직인다. 미세하게. 손을 뻗고 싶다. 떨어지는 꽃을 붙잡고 싶다. 볼수록 차갑다. 냉정한 정물화다.

...

낙화가 아니었다. <스틸 라이트 2> 속 꽃들은 피어나고 있다. 그래서였다. 삶의 귀함은 화려하게 만개하는 날들에 있지 않다. 정지한 시간 속에서 시계추를 돌리려는 작은 손짓들에 존재한다. 가느다란 선에 의지해 어려이 달라붙어 있는 마른 꽃잎들이 더 이상 애처롭지 않다. - page 39 ~ 40

'모두에게 찬란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존재만으로도 괜찮다.'

그러니 이 작품으로 모두에게, 아니 저에게 따스함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 과학으로 헤쳐 나가는 죄악의 세계
가이 레슈차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부정적인 감정들이 극복해야 할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진화해온 인간 기능의 한 형태일 수 있다

는 점이었습니다.

왠지...

부정적인 감정이라 하면 양심에 찔리고 죄책감이 들곤 하는데 핑계 아닌 핑계를 댈 수 있지 않을까... 란 얄팍한 생각으로 집어 들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깜짝! 깜짝! 놀랄 이야기들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는데...

한 번 읽고 짚어가야 했던 이야기.

지금 시작해 보려 합니다.


인류를 영원히 유혹하는 감정들의 신경학적 기원


악의 마음은 우리의 유전자, 창자, 뇌 속에

켜켜이 박혀 있었다!


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본문에 들어가기 전 그는 자신의 집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유럽 슐레지엔 출신으로 이곳은 영토 침략과 탐욕 때문에 무수한 갈등과 충돌로 점철된 지역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1938년 수정의 밤(11월 9~10일 나치가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 상점을 부수고 약탈한 사건) 때 잡혀 들어갔다가 얼마 뒤 부헨발트강제수용소로 옮겨졌으나 매우 운 좋게 살아남은, 하지만 파시즘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며 자신의 부모와 숙부, 숙모, 사촌 등 모든 집안사람이 동포의 손에 목숨을 잃는 모습을 보며 인류를 향한 믿음이 산산조각난 할아버지로부터


따라서 내가 물려받은 유산도 이런 인간 죄악들의 산물이다. 남들의 질투, 천연자원을 향한 탐욕(나치가 갈망했던 레벤스라움 생활권, 나치 독일이 지향한 팽창주의 정책의 토대), 노골적이면서 냉혹한 공격, 교만 또는 파시스트 독재자의 오만함(인간을 향한 인간의 비인간성)의 합작품이다. - page 12


그가 인간의 어두운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후 신경과 전문의로서 '레슈차이너'는 수십 년간 뇌에 이상 증후가 생긴 수많은 환자들을 대하면서

인간의 '결함', 즉 우리가 하는 '나쁜 행동', 부족함약점의 기원에 관해 더 섬세한 관점을 가지게 되었고


한 사람의 도덕적 가치가 정말로 사고나 약물, 무작위 유전자 돌연변이, 뇌발달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으로 규정될 수 있을까? 개인을 어떤 궁극적인 운명으로 이끄는 생물학적 요인은 무궁하다. - page 362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러한 '죄악'을 저지르는 성향이 인류 생존의 핵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감정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멸종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모든 측면이 그렇듯이, 이것도 정도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모두는 유전자, 진화, 신체 조정, 뇌의 구조와 기능이 규정하는 이런 성향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놓여 있다. 그러나 타고난 인간 본성과 죄악의 개념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정상과 악덕의 경계를 나누는 울타리도 표시판도 전혀 없다.

우리 자신을 만드는 이런 측면들에 우리 자신이 개인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한정되어 있거나 전혀 없을 수도 있지만, 사회 전체로서의 우리는 자신이 사는 세계, 우리가 거주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앞서 보여주었듯이, 우리 환경은 우리 뇌를 성형할 수 있고, 우리 안에 강한 힘을 조각할 수 있다. - page 369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 시선을 보다 넓혀주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논점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도덕이나 종교에서 등장하는 일곱 가지 대죄-분노탐식색욕질투나태탐욕교만-를 진화론적, 신경학적, 심리학적으로 탐구해 본 결과

분노는 위협 감지 시스템의 과활성에서

나태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동기와 보상 회로의 붕괴에서

교만은 자기 인식 회로의 손상에

비롯되며

질투와 시샘은 생존과 경쟁의 토대로

색욕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예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

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이라는 존재가 나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부정적 감정에 대해 우리는 낙인이 아닌 이해와 연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건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것을 느끼며 

새삼 내 감정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묵직한 한 방을 선사했던 이 책.

역시나 인간을 이해하는 건 어렵기만 한 숙제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스킷 -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텍스트T 7
김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치독서'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었던 청소년 소설 중 또 다른 한 권.

이 책은

100% 청소년의 선택

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얼마나 청소년들에게 공감을 이끌었기에, 힘이 되었기에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것일까...

한 번 읽어봤습니다.


존재감을 잃어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

'비스킷'을 보는 소년의 특별한 성장담!


비스킷


세상에는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존재감이 사라지며 모두에게서 소외된 사람.

나는 그들을 '비스킷'이라고 부른다. - page 7


청각 과민증, 소리 공포증, 소리 강박증...

남들보다 예민한 청각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성제성'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앞서 얘기했던 '비스킷'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이들은 세 단계로 나뉜다고 합니다.

1단계 반으로 쪼개진 상태. 보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딱히 존재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변 사람들이 "어? 너 여기 있었어? 몰랐네."라고 말하는 단계

2단계 조각난 상태. 열 명 중 다섯 명이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불투명한 유리 너머를 보는 것처럼 흐릿해서 보았어도 무엇을 봤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은 단계

3단계 부스러기 상태. 존재감이 없어 세상에서 사라지기 직전인 단계로 오랫동안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왔기에 주위에서 덩달아 관심을 꺼 버리기도 하는 단계


비스킷은 

어디에든 있고,

누구나 될 수 있고,

단계는 수시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도 비스킷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제성을 비롯해 그의 친구 효진과 덕환이 손을 내밀며 위로와 용기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네가 괴로운 일을 당해 숨고 싶었던 건 잘 알아. 근데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한테 존중받을 수는 없어. 네가 먼저 널 긍정해야지 다른 사람도 동화될 수 있잖아. 괴롭힘에 깨진 네 마음, 꿈, 기분 같은 것들을 계속 말해.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널 이해할 수가 없어. 아이들이 듣지 않는 것 같아도, 말하다 보면 언젠가는 널 이해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그런 사람이 생길 때까지 우리 휘둘리지 말고 같이 자신을 지켜 내자." - page 78


이들의 시선을 통해 어른들의 편견을 반성하게 되고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한국에서 살 수 없다고 했다. 엄마가 말하는 요양원, 아버지가 말하는 '거기'에 들락대기 때문이다. '신경 전문 정신 치료 센터'라는 정식 명칭으로 부르지 않는 걸로 보아 부모님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일이 내 장래에 큰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어도 내 미래에 걸림돌은 널렸는데 말이다. - page 12


"어른들은 자기 눈으로 스캔을 끝내야만 믿는다니까. 믿지 못하는 것까진 이해해도, 본인들이 믿지 못한다고 거짓말쟁이로 모는 건 편협해." - page 131


어쩌면 지나칠 수도, 외면할 수도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 이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살만하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어른이 또다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조제는 존재감을 몽땅 잃어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미련이 없는 만큼 다른 사람들과도 동떨어져  있다. 그런 생각 탓에 조제는 비스킷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는 효진이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남인데. 도와 달라고 먼저 손 내민 것도 아닌데. 도와줘도 사라질지 모르는데. 왜 애써 힘들게 나서는지 의문일 것이다.

...

"비스킷은 마음의 한 부분이 계속 짓밟혀서 존재감을 잃은 거야. 네가 시든 꽃을 땅에 다시 심듯이 우리도 비스킷을 세상에 제대로 발 딛게 해 주고 싶은 것뿐이야." - page 144


비스킷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청소년이 어른 걱정을 왜 해요? 어른들은 알아서 잘 살아야죠."

"근데 어른이 되면 이상하게 어릴 때보다 더 잘 살지를 못해."

"장차 사회인이 될 사람이 앞에 있는데 희망을 줘야죠. 너무 현실적으로 말하지 말아 주세요."

"세상이 그런 걸 낸들 어쩌겠니." - page 160


그런데...

어른 비스킷이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성장한다고 강해지는 건 아니라고.

그러니 우선 자존감부터 채워나가며 존재감을 나타내자고.


이 책을 읽고 나니 또다시 나태주 시인이 건넸던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그중에서도 <풀꽃 1, 2, 3> 시를 끝으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