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해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42
맥스 아마토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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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뭔가를 그리고 있는 아이에게 살며시 다가갔습니다.

그리곤 이 책을 딱~! 하고 보여주었습니다.

완벽해


아이는 놀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뭐예요!"

"이 동화~ 왠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지금 ○○ 손에도 연필이 있잖아!"

"근데 옆에 있는 핑크색은 뭐예요?"

"뭘까? 우리 한 번 읽어보자!"

이번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 책을 바라보는 아이.

아이와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책을 펼치니 '핑크색 지우개'가 등장합니다.

깨끗한 흰 종이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지우개.


연필의 구불구불한 선도, 얼룩도 지워버리네요!


어떤 연필도 날 이길 순 없어!


그러던 중 '장난꾸러기 연필'이 나타납니다.

어떤 연필도 날 이길 순 없어! 

 


장난꾸러기 연필은 열심히 구불구불한 선도 그리고 얼룩을 내며 지우개를 약올립니다.

연필을 쫓아가는 지우개.

하지만......

 


자신의 몸은 물론이고 종이에도 얼룩이 그대로입니다.

정말 엉망이군!


연필은 엄청난 낙서로 빈틈없이 까맣게 만들어버립니다.

아아아아아!


안돼애애애애!


도대체 왜애애애!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몸을 훌훌 털고 일어서는 지우개.

어라?


뭔가 새로운 일이 생깁니다.

 


까만 종이 위에 자신의 흔적들을 보니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동안엔 그저 깨끗하게만 지우는데 급급했는데 이런 멋진 작품도 만들 수 있었음에 지우개는 새삼 연필의 존재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연필을 부릅니다.

야!


그렇게 연필과 지우개는 서로를 이해하며 완벽한 친구가 되었답니다.


책을 읽고나니 저는 이들의 관계가 마치 '톰과 제리'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로 앙숙같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둘이 있기에 더 즐겁고 행복한 그들의 모습.


아이는 책을 읽고나선 연필로 종이 가득히 색을 칠합니다.

"뭐하는거야?"

"엄마! 이렇게해야 지우개도 놀 수 있어요!"

아이도 연필과 지우개를 친구로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어쩜!

그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또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여러 색의 크레파스가 있지? 검은색을 빼고 다른 색들로 종이에 가득 칠해보자!"

한참을 칠한 뒤,

"그 위헤 검은색으로 칠하는거야!"

"엄마! 그러면 다른 색들이 안 보이잖아요!"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돼!"

검은색을 칠한 뒤 뾰족한 이쑤시개를 서로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이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이렇게 색들도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어! 검은색이 지우개가 되는 거고 다른 색들이 연필이 되는거야!"

조금 어려웠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

그래도 아이와 함께 즐거운 미술 놀이도 하며 '친구'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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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좋습니까? - 결혼해? 말아? 오늘도 고민하는 당신을 위한 현실 검증 솔루션
미깡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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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도 한때 고민했던 질문이었습니다.

결혼......

해?

말아?


당연히 어른들은 "결혼은 해야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라며 호통이었고

주변 지인들은 "내 모습을 보고도......?! 굳이 정말 꼭 하고 싶으면 해......"라는 답변들이었습니다.


그래도 결국 저에게 누군가가 묻는다면

"하하핫; 결혼은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라고 답을 할 것 같습니다.


여기 한 여자분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심연'.

나이는 33세.

눈동자를 굴리며

결혼해? 말아?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합니다.

하면 좋습니까?』 


프로포즈를 받게 됩니다.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렛이 아닌 '곱창'을 먹으면서......

뜬금없이 던진 그의 한 마디.

조만간

얘기하려고

했는데...


우리

결혼하자.


애인 말고

부부로 살자. - page 20

처음 사귈 때만 하더라도 '결혼을 배제한 만남'이라고, 결혼 생각은 별로 없던 그녀에게서 일생일대의 '결혼'을 하자는 그에게 그녀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고민에 고민이 쌓인 그녀에게 등장한 4명의 여인들.

이혼, 신혼, 비혼, 워킹맘, 그리고 동거녀 그녀.

이렇게 5명의 여인이 '결혼'에 대해 기나긴 수다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WWH 공식'

이 공식에 하나씩 대입을 해 보라는 조언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Who. 그 사람이 결혼을 고민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 냉정하게 뜯어봐라. 두 번째는 Why. 결혼을 ‘왜’ 하고 싶은가? 하고 싶은 이유가 명확히 있는가? 여기까지 통과하면 세 번째는 How,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좋아, 결혼한다고 치자. 날짜 잡고 집 구해서 웨딩마치 울리면 고민 끝? 그럴 리가! 어떻게 하면 결혼생활을 망치지 않고 살아갈지, 머리 쥐어뜯고 고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성격은 물론 살아온 환경과 방식이 다른 두 사람이 ‘생활’을 함께한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수십 년을 붙어 살고 DNA까지 통하는 가족조차도 내 마음 같지 않아 수시로 복장이 터지는데 말이다. 서로 다른 두 개체가 생활 공동체를 이뤘을 때 흔히 발생하는 문제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실천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How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 page 311


처음의 'Who'와 두 번째 'Why'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답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How'는 끝내 답을 낼 수 없었습니다.

요는, 부부가 됐다고 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공유하고 완전히 붙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거다. 느슨함이 필요하다. 거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숨이 막힌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How는 결혼 전에 함께 고민할 문제이자 실질적이고, 장기적으로는 결혼 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 page 312

역시......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극사실적인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결혼'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막상 '프로포즈'를 받게 그 해답을 못한 이들에게

는 이 책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 지! 만!!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요!

그 선택에 따른 결과 역시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기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로 정의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하면 좋습니까?'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어차피

정답은 없잖아?

마음이 더 가는

데로 가야지. - page 150

 


결혼을 선택하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나의 선택은 변화가 있었을까?

아마도 좀더 깊고 진지하게 고민을 더~ 하겠지만 결론은 지금과도 같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정답도 없기에, 가본 적 없는 길이기에,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에 우리는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향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왜 '미련'은 조금 남는 것인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조금은 결혼에 대한 선택에 '위로'를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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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정재희 지음 / 믹스커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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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서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책 표지에 적힌 글이 더 이 책의 매력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평범한

우리가 만나

특별해졌다


항상

네가 있었기에

처음 느낀

외로움이

쓸쓸하지

않았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을 닮아간다고들 합니다.

그 표현을 '색'으로 나타내서 번지고 물든다고 하니 왠지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림은 모든 것을 표현해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음이 어떤지, 입술을 다문 채 그저 그리는 것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시선도 거들어진다. 시선이 흩어지면 그들만의 방식으로 해석되어 가슴 깊이 새겨지겠지. 나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무언의 길,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받아내는 가자아 정적인 예술, 그 끝없이 무한한 창조 작업에 나는 늘 매료된다. - page 17


사각사각.

언제나 연필 소리와 함께인 그녀에게 그와의 첫 만남이 시작됩니다.


쭈뻣쭈뻣.

두근두근.

마음은 그를 향하지만 용기는 없었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다가오는 그.


그는 단지 나에게서 노랑을 보았다고 했다. - page 25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는 그녀의 모습.

낯선 그의 모습이 익숙함으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게 되어 좋았다. 생각을 바꾸니 그 사람이 보였다. 내면을 바라보니 그 사람이 다가왔다. 나를 만나서 좋아하는 모습, 마주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 묻지도 않은 말을 알아서 이야기하는 솔직한 모습, 세심하진 않지만 챙겨주는 모습, 꾸밈없는 말과 꾸밈없는 눈빛까지, 모두 다. 만나보니 느껴졌다. 그를 바라보는 건 먼지 쌓인 거울을 닦아낸 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제야 진정으로 그 사람을 볼 준비가 되었다. - page 46 ~ 47


그렇게 그 사람과의 연애를 하면서는 빨강색이기도 하고 파랑색이기도 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우리의 모습처럼......


특히나 이 이야기.

이름은 불러주면 효력이 나타난다. 이름을 별 의미 없이 받아들이며 지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름은 한 사람을 나타내주는 가장 첫 번째 표현 방법이자 인생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는 표식 같은 것이다. 한 평생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며 살 텐데 이름을 바꿈으로써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생긴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나는 '보라'의 나날보다 '재희'의 나날들이 더 좋았다. - page 139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나의 '존재'가 생긴다는 것.

그래서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도 이렇게 외쳤었나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은 서로에게 번지고 물들어 마침내 하나가 됩니다.

아마도 서로를 '인정'하면서 서로의 습관에 물들어가고 '우리'가 되었습니다.


따스한 온기란, 감정을 나눈 깊은 사이에서 느낄 수 있다. 인사를 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전에는 남도 아니고 그저 사람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렇지만 이름을 묻고 안부를 묻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관계는 달라진다. 각자 다른 세상에 살다가도 두 세상은 맞물리게 된다. 서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더없이 소중해지는 관계로. 얼굴을 마주하고 눈빛을 주고받고 두 손을 마주잡고 서로를 보듬어주고 안아줄 수 있는. 36.5도의 체온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로. - page 247

 


그렇게 그들은 '우리'라는 캔버스에 여러 색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저 역시도 거묵거묵한 색으로 가득한 도화지에 그를 만나 조금씩 내 색도 알게 되고 다른 색들이 번져 물들고 있었습니다.

때론 어두운 색이 점으로 나타나곤 하였지만 어느새 '물'로 하여금 그 색이 흐릿해짐을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지금의 '우리'의 색을 보니 참으로 많은 색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와 그의 색이 아닌 아이들의 색도 더해지니 더 큰 도화지를 준비하고 매순간의 색에 물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엔 어떤 색들이 있었는지 꼭 우리 가족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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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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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젠 하루가 멀다하고 집으로 배달되는 택배 서비스.

예전엔 어찌 살았는지 우리 삶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심지어는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택배 왔습니다!"

라는 소리에 반응을 한다는......


너무나 우리의 일상에서의 모습을 그려서일까.

이 소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경고 문구!

"소포를 받아 든 순간,

악몽이 당신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섬뜩하기까지 한 이 소설.

책을 펼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소포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엄마 아빠의 방문을 열었을 때, 엠마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걸 몰랐다. - page 11

어린 엠마는 코끼리 인형을 가슴에 꼭 안고 엄마 아빠 방으로 갑니다.

"유령. 유령이 또 왔어. 내 방 옷장에. 제발 엄마 아빠가 와서 쫓아내줘. 안 그러면 아르투어가 나를 아프게 할 거야." - page 15

울먹이는 엠마에게 아빠는 오히려 화를 냅니다.

"당장 꺼져! 진짜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 page 19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옷장을 확인합니다.

아르투어가 옷장 안에서 그녀에게 말을 건넵니다.

주고 받는 대화 끝에 아르투어는 오른손에 뾰족한 물건을 들고 옷장을 나섭니다.


그리곤 28년 뒤의 엠마 박사가 등장합니다.

유능한 정신과 의사이지만 어느 학회에서 자바아준 르젠호텔 1904호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엔 지독한 편집증에 시달리면서 집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악몽'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요. 여기 이 소포를 대신 받아주실 수 있나요?"

살림이 신발 상자만 한 소포를 바닥에서 들어 올렸다. 엠마가 보자마자 자기에게 온 것이 아님을 직감했던 상자였고, 역시 그녀의 직감이 맞았다.

"이웃집 소포를요?"

이웃의 소포를 대신 받아주는 경솔한 짓을 하게 될 경우 야기될 결과를 상상하자 무릎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친절을 베풀어 치과 의사에게 온 책들을 대신 받아주었을 때처럼, 엠마는 다른 일을 할 엄두도 못 내고 몇 시간을 어두운 거실에 앉아 '언제' 일이 벌어질까, '언제' 초인종이 정적을 깨고 원치 않는 방문자가 모습을 드러낼까 초조하게 기다리고만 있을 게 뻔했다.

손에서 땀이 나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동안, 엠마는 분 단위로 시계를 확인하고 나중에는 심지어 초침을 따라 초를 헤아릴 터였다. 다른 이의 물건이 마침내 집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리고 소포에 적힌 수신자의 이름을 보았을 때, 소포를 대신 받아주는 일은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이 되었다. - page 74 ~ 75


책장이 넘겨지면 넘겨질수록 엠마는 자신이 겪은 일이 사실인지 아니면 망상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점점 편집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녀가 정신병에 의해 망상을 일으키는 것인지 아니면 범인이 그녀의 근처에 있는 것인지 현실과 상상의 세계 속에서 점점 조여오는 윤곽은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진실을 향해 달려가게한, 한 편의 악몽같은 스릴이 넘친 소설이었습니다.


마지막 반전은 정말......

콘라트는 존경의 눈으로 로트 박사를 훑어보았다.

"선불교의 상징에 대해 잘 아시나 봅니다?"

"조금요."

로트 박사가 싱긋 웃어 보이고 백색 카펫의 검정 테두리를 가리켰다.

"원상, 둥근 원이라는 뜻의 선불교 상징인데, 한 번의 붓놀림으로 그려지죠. 선불교 예술가들 말로는 마음이 안정되고 균형 잡힌 사람만이 완벽한 원상을 그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동그라미에서 그린 사람의 마음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해요." - page 316


왜곡된 사랑이 집착을 만들었고 결국 광기를 일으켰던 이 소설 속 그.

그가 유리벽 뒤에서 엠마에게 전한 이 한 마디는 왜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도는지......

그래서 더 잔인하게만 느껴졌었습니다.

"사랑해서 그랬어, 엠마. 오직 널 사랑해서 그 모든 일을 했어." - page 341


읽고 난 뒤엔 내 주변을 살펴보기가 조금 두려웠습니다.

어느 공간에서 누군가가 날 지켜보는 건 아닌지......

그리고 오늘 나에게 온 소포를 열어보는 것도 두렵기까지 하였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그렸기에 한동안은 그 '악몽'의 여운이 남을 것만 같습니다.

다가오는 여름에 다시 이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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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옆에 피는 꽃 - 공민철 소설집 한국추리문학선 4
공민철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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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섬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더 섬뜩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소설 속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우리 현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는 점이......

그래서 읽을 수 밖에 없는 추리소설이었습니다.

시체 옆에 피는 꽃


소설 속엔 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고독사, 학교폭력, 성범죄 등 티비를 틀면, 인터넷 검색을 하면 어김없이 보이는 그런 사건들과 연관있었습니다.

특히나 '엄마'인 저에게 유독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이야기 <엄마들>.

아이를 등하원 시키고 나면 엄마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곤 합니다.

"참, 모두 그 이야기 들었어요? 이 동네 땅값이 또 뛰나봐요." - page 41

자신의 아이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기 바라는 엄마들의 마음.

이는 '환경'이 '집값'과도 연관있음에 부정할 수는 없는 진실이었습니다.


어느 날 산책로를 따라 3동 뒤편에 하늘에서 종이비행기가 하나 둘 내려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장난이겠지만......

바위 위에 걸터앉은 한 여자아이의 얼굴로 갑작스럽게 날아온 비행기는 저 하늘로 데리고 가 버립니다.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된 소현과 그녀의 딸 채원, 그리고 준기 엄마.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

"저희 아파트가 내세우는 슬로건 아시죠? 도심 속 아이들이 살기 좋은 아파트입니다. 아파트 입구에도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거 보셨을 겁니다. 아파트 뒤편으로 비싼 돈 들여 산책로를 조성한 것도 다 그 사업의 일환이에요. 요 앞쪽 논이 없어지면서 도로가 확장되는 이야기 들으셨나요? 도로변을 따라서 건물들도 많이 생길 겁니다. 유동인구도 많아지겠죠. 저희들은 정말 노력했습니다. 그 동안 들인 수천만 원의 광고비, 그리고 앞으로 얻을 수억의 이익을 생각해 보세요. 저희 아파트가 이번에 경기도 살기 좋은 아파트 2위에 선정되었어요. 정부의 공공주택기금사업의 혜택을 받기로 확정이 났고요. 지금이 딱 호조를 보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파트 산책로에 아이가 죽어 버렸습니다. 3동 대표님 말로는 바위 위에 핀 꽃을 그리려다 실수로 떨어져 죽은 것 같다는데, 이게 소문이 나 봐요. 지금까지 쌓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박살나 버립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소현 씨,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관리소장은 잠시 말을 멈추곤 다른 사람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의 눈은 매섭게 빛났다.

"부탁이라니, 무슨......"

"낮에 본 일은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 page 56 ~ 57

저 역시도 그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준기 엄마, 돈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 page 60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

그렇기에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꽃'이 피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지막에 존재하는 <시체 옆에 피는 꽃>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긴 여운으로 남곤 하였습니다.

특히나 이 이야기는 연극 <시체 옆에 피는 꽃> 공연을 하면서 이 이야기는 고한읍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목에 칼이 꽂힌 시체와 꽃그림.

그리고 연극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한 마디.

할아버지, 아버지는 당신을 원망하고 증오했습니다. 평생에 걸쳐서요.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그리워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먼 곳을 보는 듯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주세요. 그만하셔도 됩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1974년, 잠자던 남자의 목에 칼을 꽂아 넣은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고요. - page 399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이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당시 열여덟 살 아버지와 동갑내기였던 어머니는 저를 버립니다. 아버지는 저를 혼자 키우셨습니다. 다섯 살 때까지 납치범의 손에 길러진 사람입니다. 친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사람입니다. 청소년기부터 가출을 해 친부모와 연을 끊고 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손에서 저는 어떻게 자랐을까요?

역시 불행했을 거라고요? 아니에요. 저는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즐거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을 겁니다. 아버지는 제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보고 느낀 행복을 제게도 맛보게 해 주고 싶었다고요.

...

저는 당신에게, 아버지를 키워 준 할아버지에게 박기설이라는 이름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면 제 행복은 당신이 준 것이기도 하니까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살인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러니까......

잠깐만요, 형사님들, 아직, 아직 극은 끝나지 않았어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저를 지금 이곳에 서 있을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에요. 잠깐이면 돼요. 한 번만 안아 보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page 404 ~ 406

범행을 미워해도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음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너무나 아파왔었습니다.


단순히 비판적이고 끔찍한 사건만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엔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이 밝혀지면서 비로소 한 씨앗에서 싹이 틔여 꽃이 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범죄 사실만은 대단히 나쁘고 중하게 여겨야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은 그들을 바라본 우리의 시선도 한 몫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하게도 되었습니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가슴 한 켠에서 슬픔의 눈물로 자란 한 떨기의 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할미꽃.

슬픔과 추억이라는 꽃말을 간직한 이 꽃이 유난히 생각난 이 책.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도 유독 마음에 걸리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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